[삶은 여행이다⑩] 여수 ‘백리섬섬길’, 장수마을에서 낭도섬까지4

윤재훈 기자
  • 입력 2021.12.29 15:23
  • 수정 2022.01.06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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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섬섬길’, 장수마을에서 낭도섬까지4

가파도 가는 선착장에
뭍에서 막 올라온
60대 아주머니 네 분이 앉아있다


“어마, 누가 ‘낚시질’ 하고 있네”


옆에 앉은 아낙이 맞장구친다
“뭐, ‘양치질’ 한다고”


또 한 아낙도 거든다
아니, ‘망치질’이라고


서로 바라보며 자지러진다
가는 봄날, 꽃들도 웃는다


간짓대에 빳빳한 수건처럼
이 봄날, 햇볕 참, 좋다
- 운진항에서, 윤재훈

 

(장수마을에서 바라본 ‘화양 조발대교’. 촬영=윤재훈)
(장수마을에서 바라본 ‘화양 조발대교’.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어느 화가가 도화지 위에 뿌려놓은 것 같은 섬들을 바라보면, 우리는 조발도로 들어가는 섬의 입구에 있는 장수마을에 도착했다. 멀리 뻘밭 위로 고흥으로 넘어가는 ‘백리섬섬길’의 첫 번째 다리인 <화양 조발대교>가 보인다. 

이 다리는 처음에는 조화대교로 지었으나 양쪽 주민들의 의견에 따라 6개월 만에 고쳤다. 양쪽 주민들의 정서가 잘 드러내는 것 같아 정겨워 보이기까지 한다. 대교 아래 갯바위에는 낚시꾼들만 여기저기 앉아 대어의 꿈을 낚고 있다.

(조발대교 아래 갯바위 낚시꾼. 촬영=윤재훈)
(조발대교 아래 갯바위 낚시꾼. 촬영=윤재훈 기자)

2011년 11월 12일 착공된 대교는 설날 고향을 찾는 귀성객과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2020년 1월 23일부터 28일까지 잠시 개통을 하였다. 그리고 2020년 2월 28일 나머지 대교인 적금대교, 낭도대교, 둔병대교와 함께 공식 개통되었다. 현대 건설이 시공을 했으며 사업비는 550억 원이 소요되었다. 다이아몬드형 2주탑으로 3경간 연속 ‘콘크리트 사장교’로, 길이는 854m이며, 너비는 11, 5m이다. 교각과 교각 사이 거리를 나타내는 경간장의 최대 길이는 500m이며, 주탑 높이는 170m이다.

(화양 조발대교에서. 촬영=윤재훈)
(화양 조발대교에서. 촬영=윤재훈 기자)

경관의 콘셉은 가연지교(佳緣之橋)로 ‘섬으로 향하는 미래의 길을 열어 아름다운 인연을 이어가는 다리’라는 뜻이다. 조발도(早發島)는 이름 그대로 '해가 일찍 떠서 섬을 밝게 비춘다'는 뜻이다. 동남쪽은 암석해안이 형성되어 있고, 사람들은 대부분 북쪽의 경사가 완만한 선착장 부근에 살고 있다.

(떠오르는 태양 형상을 담은 곡선미, 둔병 대교. 촬영=윤재훈)
(떠오르는 태양 형상을 담은 곡선미, 둔병대교. 촬영=윤재훈 기자)

제 16회 토목건축기술대상에서 도로, 교통시설 최우수상을 수상한 현대산업개발에서 만든 <둔병대교>는, 국내 최초로 적용된 고난도 아치형 V각 원형 일주탑 사장교이다. 기존 곡선 주탑의 한계를 극복하고 떠오르는 태양 형상을 담은 곡선미와 함께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한 교량이라 한다. 길이는 990m로 폭 11m이며, 왕복 2차선의 해상교량으로서, 주경간은 370m이며, 주탑고 70m의 ‘고주탑 사장교’로서 2개의 접속교로 이루어져 있다.

(갯벌은 풍요로워라. 촬영=윤재훈)
(둔병도 갯벌은 풍요로워라. 촬영=윤재훈 기자)

다리를 막 건너자 한적한 갯벌이 나오고, 마을 입구에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마을의 안전을 위해 종일 천막을 치고 열을 재고 있었다. 특이한 풍경은 마을로 들어가니 주민들이 거의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바닷바람이 청량하게 부는 이 섬마을까지 코로나가 쫒아 왔을까, 사실, 믿기지는 않는다.

갯벌에는 인적이 없고 갈매기도 보이지 않는다. 무수한 바다생물들만 펄 구멍을 들락거리며, 그 위로 휘파람 소리 같은 바람 소리가 난다. 갯벌은 살아서 이 섬마을 주민들에게 태초 이래 무수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마을 보물이다. 그런데 이 남해안의 마을들도 수많은 갯벌이 매립되고, 황량하게 갈대들만 나부끼는 곳이 많다.

서해안의 지도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 갯벌이 완만한 이 지역은 바다의 난폭자 ‘새만금’을 비롯해서, 억만년 바다 사람들의 목숨줄을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철저하게 난도질당하고 있다.

(꽃담과 어우러진 어망. 촬영=윤재훈)
(둔병도, 꽃담과 어우러진 어망. 촬영=윤재훈 기자)

갯벌에서 한참을 놀다가 마을로 들어간다. 어는 집 마당에는 깻단을 널어놓고 있고, 맨 먼저 보이는 것이 전기줄에 매달린 어망이다. 섬에 쥐를 잡기 위해 들여왔던 고양이들이 이제 너무 많이 들고양이가 되어 생선을 훔쳐가므로 이렇게 말린다고 한다. 문득 고개를 돌리니 붉은 아치형의 적금대교가 보인다.

둔병도는 여자만 입구의 작은 섬으로, 남쪽에는 하과도(下瓜島)라는 무인도와 작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그 다리 아래에도 고양이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생선과 곶감 등을 어망에 매달아 두었다.

옛날에는 절간고구마를 많이 재배했는데, 지금은 방풍나물을 많이 재배한다. 노인들만 남아있는 섬에서 고구마 재배는 손이 많이 들고 소득도 별로인데, 방풍은 소득도 높고 운반하기가 쉽다고 한다. 겨울에도 오지에 마늘과 상추, 국화꽃이 피어날 정도로 날씨가 온화한데, 겨울 평균 기온이 2.1도라고 한다. 해안은 만과 곶이 연이어져 있어 드나듦이 복잡하며, 북서쪽 만 입구에는 간척지가 넓게 펼쳐져 있으며 남서쪽 해안은 해식애(海蝕崖)를 이루고 있다.

(사람이 떠난 폐가는 옆집 사람의 창고가 되었다. 촬영=윤재훈)
(둔병도, 사람이 떠난 폐가는 옆집 사람의 창고가 되었다. 촬영=윤재훈 기자)

마을에 약간의 벽화들이 그려져 있고, 담벼락에는 리어카 2개가 사이좋게 놓여 초가을 햇살에 졸고 있다. 담을 넘어다보니 이미 가족들이 떠난 빈 집인 것 같은데, 지개 3개가 3형제처럼 다정하게 토방 아래 놓여있다.

다시 갱번길(해안 산책로)로 나오니 요즘 보기 힘든 돌담길이 조밀하게 쌓여있다. 그 돌담 위로 그 옛날 고향 마을의 대나무밭에서 보았던 간짓대들이, 일렬로 키제기를 한다. 동구로 들어서면 맨 먼저 시계꽃들이 살랑거리며 나를 반기던 고향. 이제는 조카들도 모두 떠나고 그 집도 폐가가 되었다고 풍문으로 들었는데, 언제 고향 마을에 한 번 다녀올 수 있을지, 아득하다.

가파도 가는 선착장에
뭍에서 막 올라온
60대 아주머니 네 분이 앉아있다


“어마, 누가 ‘낚시질’ 하고 있네”


옆에 앉은 아낙이 맞장구친다
“뭐, ‘양치질’ 한다고”


또 한 아낙도 거든다
아니, ‘망치질’이라고


서로 바라보며 자지러진다
가는 봄날, 꽃들도 웃는다


간짓대에 빳빳한 수건처럼
이 봄날, 햇볕 참, 좋다
        - 운진항에서, 윤재훈

바닷가에는 정자가 하나 덩그라니 놓여있는데, 바쁜 철인지 텅 비어 있다. 마을 앞 해안에는 둠벙(웅덩이)이 두 개 있는데, 명주실 한 꾸러미가 들어가도록 깊어 ‘용굴’이라고 부르며, 이곳 지명이 되었다고 한다. 그 밖에 임진왜란 때 전라좌수영 산하 수군이 고흥 방면으로 가면서 일시 주둔하였다고 하여, 진칠 둔(屯)자와 군사 병(兵)자를 썼다고도 한다. 또한 마을의 형세가 둔병(연못)처럼 생겨 그리 부른다는 설도 있다.

낭도 대교8(촬영=윤재훈)
(낭도대교. 촬영=윤재훈 기자)

이제 4개의 섬 중에서 가장 큰 ‘낭도(狼島)’를 찾아가기 위해 ‘낭도 대교’를 넘는다. 지금까지 본 다리들과는 다르게 아주 단조로워, 어디 동네에 놓인 다리라도 보는 듯한데, 프리스트레스트 콘크리트(PSC) 박스거더교라고 한다.

길이는 640m이며 너비는 11, 5m의 왕복 2차선 도로이다. 교각과 교각 사이의 경간장은 최대 170m로 국내에서 가장 길다. 점층적 경간 구성(150m+170m+150m)으로 운전자가 다도해의 멋진 풍광과 보다 폭넓게 볼 수 있도록 개방감에 주안점을 두어, 양쪽이 텅 비어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너무 밋밋한 느낌까지 든다. 총사업비는 247억 원이 들었다.

특히나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2020년 5월 1일부터 여수시와 고흥군을 잇는 열 한 개의 다리 중 다섯 개의 다리인 ‘화양조발대교, 둔병대교, 낭도대교, 적금대교, 팔영대교’를 꿈결처럼 잇는, ‘여수 낭만버스’로 즐기는 ‘브리지 시티투어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갱번 미술길’이 정겹다. 여수의 예술가들이여 고맙습니다. 촬영=윤재훈)
(‘갱번 미술길’이 정겹다. "여수의 예술가들이여 고맙습니다." 촬영=윤재훈 기자)

섬의 생김새가 이리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낭도(狼島). 다리를 막 넘자 낭도 터널이 나오고, 우리는 본 마을인 여산마을로 갔다. 마을 곳곳에는 여수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그려놓은 벽화와 시화들이 걸려있는 ‘갱번 미술길’이, 여행자의 마음을 잡는다. ‘갱번’이란 여수말로 바닷가라는 뜻이다. 마을 중간쯤에는 저렴한 무인 커피숍이 있으니 회라도 먹고 비린 맛을 날려 보내고 싶다면 들를만하다.

(‘마셔도 또 마셔도, 질리지 않는 한국인의 술이여’. 젖샘 막걸리 예찬. 촬영=윤재훈 기자)

또 한 盞(잔) 먹새 그려
꽃 것거 算(산) 노코
無盡無盡(무진무진) 먹새 그려
이 몸 주근 후면 지게 우에
거적 더퍼 주리혀 매여 가나
流蘇寶帳(유소보장)의 만인이 우러 녜나
어욱새 속새 덥가나무 白楊(백양) 수페 가기곳 가면,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굴근 눈, 쇼쇼리 바람 불 제,
뉘 한 잔 먹쟈 할고
하믈며 무덤 우에 잔 나비 바람불 제
뉘우찬 달 엇더리.
- 장진주사,  정철

막걸리를 좋아하는 애호가로서 진즉부터 100년 도가 '낭도 젖샘 막걸리'를 맛보고 싶었다. 현재 3대째 운영하고 있는 강창훈(67세)씨는, 여수문화관광 해설사로도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하나뿐인 아들과 함께 4대가 이어 올해로 114년째 운영해오고 있다고 힘주어 말하는 주인장은, 이 지역에서 발간하는 향토지 등에서 그 근거들을 아직 찾지 못해 안타깝다고 한다. 다리가 놓이면서 천 리 먼길에서 관광객들이 찾아와 점심시간이면 무척이나 바빠, 그 시간 만큼은 여수에 사는 두 딸이 도와준다고 한다.

11시부터 4시까지 점심 때만 영업을 한다고 하니, 오랜 여행길에 갈증을 느낀 여행자라며 좀 서둘러 가야 막걸리 맛을 볼 듯하다. 바닷가 쪽으로 보니 간이 횟집들이 두어 곳 문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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