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事] 겨울바람이 분다, 고향이 생각난다.

윤재훈 기자
  • 입력 2021.12.30 10:30
  • 수정 2021.12.30 17:2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겨울바람이 분다, 고향이 생각난다.

- 한 해가 저물어가는 세(歲)밑에.

멀리 종소리 들리면 허리에 책보를 두르고,
논둑을 가로질러 학교를 뛰어가던 아이들
머리가 커지면서 그 안에서는
딸그락, 딸그락, 양은 도시락 소리가 났다
화덕 난로 위에는 도시락들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질척질척, 걸을 때마다 소리가 나던 검정 고무신
유난히 큰 박달나무가 버티고 섰던 교문
공습을 피해 일제 시대 때 지어놓았던
검정 판자 잇대어 있던 교실

- 겨울바람이 분다, 윤재훈

(함박눈이 내리던 날. 촬영=윤재훈)
(함박눈이 내리던 날. 촬영=윤재훈 기자)

“어느 집 담 너머,
가지를 늘어뜨린 감나무를 보면,
문득 큰 집 뒤란의 감나무와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이모작 뉴스, 윤재훈 기자] 우물이 하나 있었다.

여름이면 더위에 지친 사촌 형들은,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온몸에 퍼부었다. 어둑씬한 뒤란에서 좍, 좍, 물 떨어지던 소리, 이가 시리게 차갑던 그 물. 옆에는 재래식 치깐(뒷간)이 있었고, 수북하게 짚단이 쌓여 있었고, 우리는 부드러운 지푸라기들을 모아 마무리를 지었다.

언제부턴가 일어나던 그 앞에 밧줄이 하나 달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요즘 수세식 화장실처럼 나무 의자가 하나 놓여있었던 생각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철없는 나는 놀기에 바빴지만, 할아버지는 점점 화장실이 힘드셨나 보다.

2고향의 보리밭
(고향의 보리밭. 촬영=이미숙)

설날과 추석날이며 경향각지(京鄕各地)에 있던 친척들이 모였다. 부모님은 제수를 준비하고, 고향 마을 돌고개 입구 낡은 가게 앞에서 아버지는 꼭 정종을 샀다. 동구 밖에는 유난히 시계풀이 많았다. 눈처럼 하얗던 그 꽃, 우리는 그 꽃으로 저마다 시계를 만들어 손목에 매었다. 물질문명이 넘치는 이 풍요의 시대에 잊어버린 그 소박한 그리움들.

멀리서 바라만 보아도 정겨운 고향 집, 대나무숲이 바깥과 경계를 지워주고, 잇대어 있던 정겨운 돌담. 어느 해인가 여름 방학 때 대문 앞 평상에서 낮잠을 자다가, 돌 틈에서 목을 길게 빼고 나를 빤히 쳐다보던 뱀, 지금 생각해도 섬뜩하다.

대문 밖에는 벌써 친척들이 나와 있고, 마당에는 이미 모닥불이 올랐다. 귀한 고기 굽은 냄새, 일가친척들의 왁자한 웃음소리. 덕석이 펴지고 “윷이야, 모야”, 목청껏 외치던 소리가 고향 마을 파란 하늘 위로 퍼져갔다. 그 소리에 이웃집 아저씨가 빼꼼하게 담 위로 고개를 내미는 시절.

(고향은 어디에 있을까? 촬영=윤재훈)
(고향은 어디에 있을까? 촬영=윤재훈 기자)

이제 그 고향 집에 아무도 없다. 하마 큰집도 폐가가 되어갈 것이다. 아이들은 모두 객지로 나가고, 큰 형수님 혼자 읍내에 나와 아파트에 사신다고 하는데.

우리 가족이 살던 그 까금(산속) 속 외딴집도 오래전에 형체도 없어졌다. 겨울날이면 마당에 함박눈이 소복이 쌓이고, 마당 건너까지 내려온 시커먼 늑대 두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먹이를 찾던 곳, 주인의 문소리에 힘을 얻은 누렁이는, 그때사 헛간에서 짖던 곳.

쓰러져 가던 땟집, 낡은 문틀, 창호지 한 겹이 겨우 산속의 겨울바람을 힘겹게 막던, 문은 귀퉁이가 말라 비틀어져 황소바람이 들어왔다.

무거운 미영(무명) 이불 한 장, 밤새 가족은 서로 당기고 밀고, 부슨 방(아랫목)만 뜨거웠던 집. 전부 발이라도 겨우 밀어 넣지만, 아침이면 형제들 발에는 물집이 잡히고. 간밤 아버지 취한 속 달래라고 어머니가 머리맡에 떠놓았던 물그릇은, 하얗게 얼어붙어 있던 집.

(고향은 어디에 있을까? 촬영=윤재훈)
(우리들의 세상이에요. 촬영=윤재훈)

땅 끝 마을, 두메산골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날이면,
새카만 늑대 두 마리가 마당 건너까지 내려왔다
아버지가 방문을 열어젖히고 큰기침을 하면,
헛간의 개들도 그때사 짖기 시작했다

멀리 종소리 들리면 허리에 책보를 두르고,
논둑을 가로질러 학교를 뛰어가던 아이들
머리가 커지면서 그 안에서는
딸그락, 딸그락, 양은 도시락 소리가 났다
화덕 난로 위에는 도시락들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질척질척, 걸을 때마다 소리가 나던 검정 고무신
유난히 큰 박달나무가 버티고 섰던 교문
공습을 피해 일제 시대 때 지어놓았던
검정 판자 잇대어 있던 교실

둑길 따라 동무들과 종이배를 띄우며 달려가던 하학길
툭, 코스모스 꽃망울을 누르면 새파랗게 터지던,
그 첫사랑 같은 냄새

산모롱이 하얀 먼지가 날리며
하루에 몇 번 버스가 지나가던 신작로
할머니 가르마 같던 그 아득한 길
그 버스를 따라잡기 위해 무작정 내달리던 코흘리개들
손을 흔들고 어쩌다, 누군가 내리면
버스 뒤에 살짝, 올라가던 아이들
그러다 기사님에게 된통, 혼나고
언젠가는 물이 떨어지는 둑 아래 기어가는 뱀을
기어코, 돌로 맞히던 아이들

길가에 흐드러지게 날리던 아카시아 꽃잎들
지금도 어디선가 그 냄새가 나면
못 견디게 동무들과 고향이 떠오른다

배고프던 시절
쌀이 부족하니 무밥이나 감자밥을 먹던
고봉으로 먹어도 항상 허기가 지던 시절
일 년이 가도 눈깔사탕 하나,
과자 봉지 하나도 구경하기 힘들었던
항상 소매에 눌어붙은 코처럼, 배가 고팠던

그래도 못내 배가 고프면, 남의 밭에 몰래 무서리를 해
손톱으로 돌, 돌, 벗겨 먹으면,
톡, 코를 쏘던 그 매운 냄새
하얀 삐비꽃을 뽑거나,
송진을 갉아 껌처럼 씹던 고향 동무들

팔월 한가위가 다가오면
초가지붕 쪽마루에서 엄마와 만들던 송편의 기억
거짓말처럼 둥그런 보름달이 떴고,
지붕에는 하얀 박꽃이 흩날렸다
그 사이로 흥부네 박은 탐스렇게 열려있던 고향

바람이 분다
추운 겨울날이며 못내, 그 시절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 겨울바람이 분다, 윤재훈

(코스모스 피어있던 정들은 고향 마을. 촬영=윤재훈)
(코스모스 피어있던 정들은 고향 마을. 촬영=윤재훈 기자)

고향을 생각하면 푸근했던 옥천 막내 고모 집이 생각난다. 5녀 1남이 단칸방에서 살던 그 집, 속없는 나는 방학 때면 가난한 고모 집에 놀러 갔다. 어느 해인가는 마을 아이들과 새를 맞춘다며 새총을 쏘다가 그만 어느 집 독아지를 깨버렸다. 그 후부터는 해마다 그 집에서는 독아지 값을 물어달라고 했다던, 그래서 어느 해부턴가, 가지 않았을까?

조그만 마을에는 마당이 넓은 도가 집이 있었고, 그 집 아들과 조무래기들은 어울려 시골 마을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지르며 만세빵(어린 시절 놀이)을 했다. 마을 하늘로 퍼져가던 아이들의 고함 소리, 그 코흘리개들은 지금쯤 다 무엇을 할까?

재 너머 사래(이랑) 긴 밭을 가면 유난히 담배 농사를 많이 짓던 마을, 동산 위로 정말 보름달이 뜨던 마을. 그런 날이면 불깡통을 돌리던 아이들. 변변한 옷들도 없는 시골의 겨울날은 추웠고, 밖이 추운 날은 고모집 5남 1녀랑 모여, 고구마 광이 있던 건넛방에서 놀았다. 온종일 옷에 흙을 묻히며, 빨간 밤고구마와 하얀 물고구마 위를 오르내리며, 정신없이 놀던 시절.

(해남 대흥사 앞 마을에서. 촬영=윤재훈)
(해남 대흥사 앞 마을에서. 촬영=윤재훈 기자)

그리고 밤이 되면 그 조그만 방에서 아홉 식구가 오글오글 모여서 일렬로 잤다. 가장 안쪽 뒤란으로 나갈 수 있는 창호지 쪽문 앞에는 고숙과 고모가 자고,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문 앞에서 잤다. 밤새 문틈으로 들어오는 왕바람에, 얼마나 이불을 잡아당겼을까?

그러다 추위에 자다 깨다 했을까? 약간의 밝은 빛이 비치기 시작하는 쪽문 앞으로, 자꾸만 무슨 그림자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다. 호기심이 많았던 그 시절, 무심결에 그것을 보다가 다시 꿈나라로 빠져버렸던 기억이 나 피식, 웃음이 지어진다. 그때 다른 아이들은 다 잠들어 있었을까? 혹 자꾸만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찬바람에,

“엄마, 좋으면 좋다 그라소,
추워 죽것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 않았을까? 어린 시절, 힘들었던 고향 마을, 우리의 부모님 세대들은 그런 단칸방에서도, 아들딸 대학까지 보내며, 억척스럽게 살아오신 분들이다.

(품어주고, 용서해주고, 안아주는 고향 마을, 가파도에서. 촬영=윤재훈)
(품어주고, 용서해주고, 안아주는 고향 마을, 가파도에서. 촬영=이미숙)

그렇게 겨울방학은 끝나가고, 집으로 돌아가던 날. 안개가 잔뜩 끼어 있는 아침나절, 박달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는 신작로를 따라 터덜터덜 걷고 있을 때, 갑자기 나무 뒤에서 아이들이 쏙, 고개를 내밀었다. 그다음 나무에도, 그다음 나무에도, 마치 나무늘보처럼 매달려 환하게 웃던 아이들, 그새 우리는 까맣게 정이 들었나 보다. 그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족히 오십 년은 다 되어가지만, 마치 꿈결인 양 두고두고, 생각이 난다.

(즐거운 새참 시간. 촬영=윤재훈)
(새참시간, 80일 동안 자전거 전국 일주 중에. 촬영=윤재훈 기자)

나는 땅끝土末에서 태어났다
그 후 도시로 나와, 명절날 고향 가는 버스를 타면 항상 종착지에서 내렸다
남쪽 바다 끝에서 완행버스에 몸을 실으면,
비포장 길을 따라 순천, 벌교, 보성, 강진, 장흥, 유배지의 땅들을 샅샅이 훑고,
다시 바닷가 마을에 도착했다
그 길에서 고산(孤山)을 만나고, 다산(茶山)을 만나며,
초의와 영랑도 만났다

선인들의 깊은 고뇌에 찬 얼굴을 보았으며,
그 사이 버스를 타고 내리던 수많은 남도의, 주름 패인 얼굴도 보았다
돌고개 따라 펼쳐지던 누런 들판에서 가끔씩, 튀던 메뚜기도 보았으며,
허기지게 달려가던 도랑물도 보았다
천관산 아래로 내달리던 버스에서 본, 남도의 山모랭이, 山모랭이들
지금도 순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 후 기차를 타도,
여전히 시발지(始發地)에서 종착지(終着地)까지 줄기차게 달려갔다
하룻밤을 샌 기차는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긴 기적 소리를 동백꽃처럼 역두(驛頭)에 뿌렸다

오동도 절벽 위 어디쯤,
위태로이 걸린 횟집에서 친구와 소주잔을 부딪치며 회를 씹던,
설익은 회포들이 오늘따라 더욱 굴풋하다
밖에서 울어 애이던 파도 소리와 갈매기들의 소리도.

기차간에서 만났던 아지매들의 낯선 음성,
한밭 어디쯤에서 새벽시장을 나가기 위해
굽은 허리로 올리던 밤색 광주리에 대한 기억과,
억센 손가락 마디도 보았다

기나긴 열차 시간에 피곤해지면, 의자 사이로 기어들어 가 자거나,
선반 위에 올라가 잤다
사람들의 구수한 사투리 소리에 잠을 깨면,
기차는 목쉰 소리를 내면 만경 평야 어디쯤 달리고 있었다

이제 나는 변방으로 더 밀려났다
어젯밤 잠 속에서 새 한 마리 울고 가는 것을 보았다
노(老)철도원의 목쉰 소리가 플랫포옴의 천장을 타고 울려온다
역 대합실은 언제나 만원이다

그러나 나는 수도(首都)의 종착역에서 내려,
다시금 지하철을 타고 한참을 더 달려가야만 한다
테크놀러지(technology)가 우주로 전파를 쏘아대는 이 시대에도,
항상 변두리로 변두리로만 내몰리는 삶들이 있으니,
오늘도 그 삶들 몇, 서로를 껴안고,
문득 지하도에서 잠이 든다
찬송가를 틀고 노래를 부르면 지나가는 맹인의 낯선 삶도,
저 혼자 열차 칸을 맴돌다가 빠져나간다

오늘 아침 산길을 내려오다 문득, 다람쥐 한 마리를 만났다
내 앞으로 지나가는 어린 시절,
이 길을 내려가 오늘도 나는 길게, 기지개를 켜고 달려온,
저 지하철을 탈 것이다

- 땅끝 인생(人生), 윤재훈

저작권자 © 이모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