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이다⑪] 여수 낭도(狼島) 바닷가에서, 도갓집을 만나다 5

윤재훈 기자
  • 입력 2022.01.03 10:43
  • 수정 2022.01.07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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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도(狼島) 바닷가에서, 도갓집을 만나다 

“세월 속에 쓸모 있는 건
하나도 없어”
하릴없이 해풍에 날려 보냈던 말이
오늘 더욱 아릿하게 폐부로 들어온다

파도는 온종일 몰려와
방파제를 쳐
울덕증이 나게 하고
잠깐 아릿하게 땅멀미를 한다

파랑, 노랑, 녹색의 깃발 속에 바다로 나가,
뭍으로 돌아오지 못한 동네 사람들
삭아버린 달비 몇 가닥만 남아, 아득하다
- 폐선, 윤재훈

(낭도 앞 바닷가. 촬영=윤재훈)
(여수 낭도 앞 바닷가.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썰물이 된 낭도 포구에는 많은 배가 바닥에 삐툴삐툴 누워 있다. 이제는 바다로 나가기를 멈춘 폐선도 보인다. 대부분의 집들의 벽에는 여수에 온 화가들이 그린 그림들로 파란 바닷빛과 더불어, 이국의 어느 항구에 온 듯하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터어키의 안탈리아, 아제르바이잔, 남중국해의 바다, 베트남 무이네의 한적했던 바닷가, 인도 첸나이의 와글거림, 이란 남쪽 말 많은 페르시아만의 케슘섬의 고대화석 같은 암벽들, 철학의 산실 아테네의 해벽, 바르셀로나의 바다에 끊임없이 놓여있던 요트들, 딸랑딸랑 빨간 종소리를 달고 대서양의 리스본 해안가를 달리던 전차, 러시아의 북쪽, 옛 수도, 레닌에게 레닌그라드로 헌정되었다가 다시 그 이름을 되찾은 샹트페테르부르크, 그 너머에 핀란드만, 많은 바다의 이름들이 두서없이 소환된다.

질긴 바람 속에
한평생 뱃전에 붙어 생계를 꾸리더니
낡아가는 간판처럼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이 바다를 떠났다

더러는 방파제에서 그물이나 꿰매며
저무는 생을 보내고 있다

“세월 속에 쓸모 있는 건
하나도 없어”
하릴없이 해풍에 날려 보냈던 말이
오늘 더욱 아릿하게 폐부로 들어온다

파도는 온종일 몰려와
방파제를 쳐
울덕증이 나게 하고
잠깐 아릿하게 땅멀미를 한다

파랑, 노랑, 녹색의 깃발 속에 바다로 나가,
뭍으로 돌아오지 못한 동네 사람들
삭아버린 달비 몇 가닥만 남아, 아득하다
은물결로 뱃전에 부서지던 젊은 날들
오늘도 해풍 속에
갯내음으로 섞여 오는데,

지나온 바다는 잔잔하다
그들의 생(生)만큼이나 저물어,
놀 속에서 산란거린다
- 폐선, 윤재훈

(“도갓집이 어디일까. 목이 마르다.” 촬영=윤재훈)
(여수 낭도 “도갓집이 어디일까. 목이 마르다.” 촬영=윤재훈 기자)

노인들 몇 유모차를 끌고 가고, 그들을 따라가다 보니 이 여수 인근에서 유명한, 100년이 넘었다는 도갓집이 나온다. 입구 골목부터 도갓집에 헌사하는 그림과 시들이 여기저기 붙어있다.

(100년 된 도갓집 풍경. 촬영=윤재훈)
(여수 낭도 100년 된 도갓집 풍경. 촬영=윤재훈 기자)

마당에는 독아지와 화분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으며, 우리 어린 시절 학교에서 땡그랑땡그랑 하학종을 울리던 종도 하나 걸려있다. 이 지역에서 나오는지 해산물 몇가지도 탁자에 놓여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수많은 산악회에서 왔다갔다는 증표의 리본들이 빽빽하게 떨어지지 않으려고 저마다를 꽉, 안고 있다.

(안주인의 솜씨 자랑. 촬영=윤재훈)
(도가집 안주인의 솜씨 자랑. 촬영=윤재훈 기자)

주방을 담당하고 있는 호탕한 안주인(62)은 스물두 살 때 술도가집 며느리가 되었다고 한다. 그녀가 묻혀 내오는 서대회에서는 비린 바다 향내가 난다. 특히나 전복 내장으로 끓인 미역국과 청각 된장무침, 꼬시래기 무침 같은 해초 나물들은, 고향의 진한 된장내가 풍겨 나와 더욱 정겨웁다.

이 도가집도 다리가 생기기 전에는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한다. 특히나 섬에 교회가 들어온 뒤로 통 술이 나가지 않고, 먹던 마을 사람들마저 안먹는다고 했다고 한다. 집에 가면 분명히 술병이 있기는 한데, 하도 어려워 이 좋은 술을 그만 만들 생각도 했었다고 한다.

그러다 좋은 시절이 와, 다리가 연결되고 술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제1회 섬의 날 때는 전 국무총리 이낙역씨의 건배주로도 선정되어, 각종 매스컴들이 앞다투어 찾아왔다. 그렇게 해서 그럭저럭 운영해 온 것이 벌써 5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주인장의 개도 막걸리 자랑. 촬영=윤재훈)

여수시 화정면에는 두 개의 유명한 막걸리가 있는데, 그 중 ‘개도 막걸리’는 약간 달아 여자 술 같고, ‘낭도 먹걸리’는 조금 독해 남자 술 같다고 사람들이 말한다고 한다. 아들이 요리사라 가업을 이어받으며 더 맛있게 잘 이어갈 것 같아 마음 든든하다고 하며, 현재 함께 일하고 있다.

필자가 술병을 보다가 궁금증이 일어 두 가지 정도 질문을 했다. 전통주라고 하면서 왜 소맥분(밀가루)은 외국산을 쓰냐고 물어보니, 식약청의 허가 조건에 따라 과거에는 쌀 막걸리에서 밀가루로 바뀌다, 지금은 쌀과 밀가루를 반반씩 섞어 만든다고 한다.

막걸리 애호가로서 가장 궁금한 인공감미료인 ‘아스파탐’을 꼭 사용해야 되느냐고 묻자, 단맛을 좋아하는 일반 대중들 때문에 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서민들이 먹기힘든 비싼 가격으로 팔리는 막걸리들은 보면 우리 쌀에 아스파탐을 쓰지않고, 누룩으로 단맛을 내고있다.

막걸리는 농민이나 서민들의 술이라고 한다. 세상이 어려워지고 힘들다 보니 갈수록 막걸리 먹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좋은 술을 너무 비싸게 먹지 않은 그런 세상이면 좋겠다. 특히나 막걸리를 좋아하는 예술가들이 많다. 그중에 많은 문인들이 시름을 달래기 위해 먹지만, 특히 인사동에서 부인이 ‘귀천’이라는 찻집을 운영하며, 문인들을 만나면 ”막걸리 먹게, 천 원만 조“ 하던 천상병 시인이 떠오른다.

나는 술을 좋아하되
막걸리와 맥주밖에 못 마신다.

막걸리는
아침에 한 되 사면
한 홉짜리 작은 잔으로
생각날 때만 마시니
거의 하루 종일이 간다.

맥주는
어쩌다 원고료를 받으면
오백 원짜리 한 잔만 하는데
마누라는
몇 달에 한 번 마시는 이것도 마다한다.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음식은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때는
다만 이것뿐인데
어찌 내 한 가지뿐인 이 즐거움을
마다하려고 하는가 말이다.

우주도 그런 것이 아니고
세계도 그런 것이 아니고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니다.

목적은 다만 즐거움인 것이다
즐거움은 인생의 최대 목표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밥이나 마찬가지다
밥일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더해 주는 하느님의 은총인 것이다.

- 막걸리, 천상병

(누룩이 눈을 뜬다. 촬영=윤재훈)
(도가집 누룩이 눈을 뜬다. 촬영=윤재훈)

도가 안에는 여기저기 오래되어 보이는 독들이 놓여있는데, 보통 이 독 안에서 7일 동안 발효시킨 후에 출고시킨다고 한다. 이 독들은 아버지 때부터 물려받아 80년이 넘었는데, 보통 3일에 1200병 정도를 출고시킨다고 한다. 별로 커보이지도 않은 이 독 하나에서 600병 정도씩 나온다고 하니 깜짝, 놀랐다.

입구 쪽에는 막걸리를 자동으로 담는 기계가 있다. 옛날 아버지에게 배우던 어린시절에는 다 손으로 담았는데, 자식들은 참, 좋은 시절이라고 한다.

(‘낭도 카니발’ 오세요. 촬영=윤재훈)
(‘낭도 카니발’ 이어지길. 촬영=윤재훈)

담벼락에는 여장남자와, 남장여자들의 축제인 ‘낭도 카니발’을 알리는 벽화들이 줄지어 있다. 이곳에는 5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네 시골 마을에서 생소한 카니발을 즐겼다고 한다.

서울의 한복판, 지금은 떠나가고 있는 용산 미군부대 안에서도 미국인들은, 그들만의 카니발인 '할로인 데이'를, 전쟁으로 피폐해진 가난한 한국인들을 보며 즐겨다고 한다. 보통 정월 대보름날이며 마을마다 달집 태우기를 하는데, 이 섬에서는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행사에 참여할 때 반드시 여성들은 남장을 하고 남자들은 여장을 하고 나타나는 가장무도회였다. 그렇게 해야만 풍악이 울리는 가운데 흥겨운 춤을 추며 축제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그날만큼은 선남선녀들이 어른들 눈치 보지 않고 맘대로 만날 수 있게, 약속을 받은 날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솔로 탈출’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셈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인구감소와 고령화 등으로 중단된 상태다. 이 아름다운 섬으로 많이 이사 오세요!

(저무는 바닷가. 촬영=윤재훈)
(낭도 저무는 바닷가. 촬영=윤재훈)

또한 낭도는 공룡발자국 화석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요즘 낭도 바로 아래에 있는 부속섬인 사도가 더 유명세를 타고 있는 듯하다. 여수시는 늘어나는 방문객을 대비해 180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낭도와 인접한 ‘공룡의 섬, 사도’를 잇는 780m 인도교를, 내년 중 건설할 계획이다.

여수 낭도리 공룡발자국 화석 산지 및 퇴적층은 2003년 2월 4일 천연기념물 434호 지정되었다. 이 퇴적층들은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에 속하는 ‘낭도, 사도, 추도, 목도, 적금도’ 등 5개 섬 지역으로, 백악기의 흔적들이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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