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문의 드론으로 보는 세상] 논개의 고장, 진주성을 찾아서

이종문 기자
  • 입력 2022.01.03 12:07
  • 수정 2022.01.04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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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이종문 기자] 12월 매서운 북풍한설을 피해 따뜻한 남쪽으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기대고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러 길을 재촉해 본다. 어느덧 열차는 힘을 다했다는 듯 거친 숨소리를 내며 이내 숨을 멈추었다.

마중 나온 벗을 뒤로 한 채 나는 서둘러 남강으로 향했다. 늘 그립도록 보고 싶은 여인이 있어서 길을 서둘러 재촉했다.

저녁노을에 물든 하늘이 어둑하게 저물 무렵 도착한 진주성은 진주시의 남강변 한 중심가에 우뚝 서있다. 진주성은 임진왜란 당시 김시민 장군의 진주대첩(1차 방어전)으로 유명하다.

진주성 안은 매우 고요했고, 남강 유등축제를 즐기기 위해 가족 단위 산책을 나온 진주시민들이 다소 보였다.

나는 촉석루 뒤에 자리 잡은 의기사(義妓祠)를 제일 먼저 찾았다. 그곳은 논개를 기리는 사당이었다. 논개의 초상화는 후세에 구전으로 전해 온 이미지를 형상화한 그림이었지만, 살아 있는 듯한 강인함과 절개가 느껴졌다.

임진왜란 초기 1592년. 진주성이 왜적에게 짓밟힐 때 기녀로서 적장을 유인하여 남강(南江)에 빠져 산화했다는 전설이 구전으로만 전해진 논개.

호국충절의 정신으로 자신의 몸을 바친 의로운 행위가 기생이라는 천한 신분 탓에 형식과 계급을 중시하는 사대부 정치인들로 인해 기록되지 못했다. 다행히 논개에 관한 역사적 사실은 많은 백성들의 증언과 입으로 전해져 마침내 150년이 지난 조선 경종 1년(1721년)에 의열사로 등록됐다. 이후 1739년(영조왕 16년)에 지금의 의기사(義妓祠)가 세워져 그녀의 업적을 기리고 혼을 달랬다고 한다.

임진왜란 전쟁 초기에 진주성은 조선군 1만 명이 왜군 10만 명에 대항해 끝까지 저항하다 몰살된 곳이다. 이처럼 어렵고 힘들었던 시기에 불의에 항거하고 호국을 생각한 논개는 단순히 기녀가 아니라 그 어떤 조선의 장수보다 위대하다.

진주는 가야산, 지리산을 배경으로 경상도와 전라도를 이어주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다. 이런 탓에 진주는 예로부터 의인과 충인이 많이 배출됐다.

본래 진주는 교통이 불편하고 외진 곳이었으나, 지금은 KTX 직행열차가 연결되어 있어서 서울역에서 2시간 30분 정도면 급행으로 도착할 수 있는 거리가 됐다.

진주는 소싸움, 남강 유등축제 등 볼거리가 많다. 특히 먹거리로는 진주시민들이 권장하는 한우소고기 비빔밥과 진주냉면은 반드시 먹어봐야 할 매력적인 맛을 지니고 있다.

진주 남강 유등축제는 유등축제로는 국내 최대 규모인지라 볼거리도 대단하지만 규모가 엄청나다. 오늘은 그리운 벗과 이야기보따리를 풀며 회포를 풀어 볼 생각이다. 내일은 본격적으로 남강 유등축제를 둘러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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