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작 성공수기] 트라우마가 인생 2모작의 변곡점이 되다...열정상 '박종덕'

김남기 기자
  • 입력 2022.01.10 14:26
  • 수정 2022.01.10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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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경상남도에서 실시한 제1회 신중년 인생이모작 성공수기 공모전 수상작품을 연재한다. 연재될 수상작품들은 퇴직 후 삶 준비, 재취업 성공사례, 사회공헌활동, 재능나눔 경험 등을 공유하고, 신중년 세대의 성공적인 인생 2막을 엿 볼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트라우마가 인생 2모작의 변곡점이 되다
열정상 ‘박종덕’

(독거노인 말벗동무 활동. 사진=박종덕 제공)

인생 2모작을 시작한지 어언 3년째....

이젠 안정된 직장 생활로 접어들었기에 서투른 글 솜씨로 흔적을 남겨보지만 한편으로 내려놓아야 할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년퇴직이 다가오자 무슨 일이든지 해야 하는데 막상 갈 곳도, 오라고 하는 사람도 없어 밤잠을 설치며 뜬눈으로 지새운 날도 적지 않았다. 다행히도 퇴임 임박 무렵에야 몇 군데에서 취업 제의를 받았다. 병원전문 장례식장, 메이저 상조회사, 토털 장례서비스 업체 등인데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들이라 나의 활동과 성향을 잘 알고 있기에 영업 활동은 하지 않아도 되니 그냥 출근하여 자리만 지키면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고 어찌 월급만 받을 수 있겠냐며 정중하게 사양했다.

(무료 급식소 배식 활동. 사진=박종덕 제공)

2001년 지인들과 무료급식소를 만들어 현재까지 운영 전반에 깊이 관여해 오고 있었다. 또 다른 급식소 운영과 20여 년간 혼자서 무연고 독거노인 20명을 가족같이 근접 케어해 왔기에 장례와 관련된 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내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퇴직 10일을 남겨둔 시점에 찾아온 사람이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는 **교육원 원장인데 대뜸 이름을 부르면서 “퇴직하거든 나 좀 도와 달라”라고 하기에 의아한 생각이 들면서도 내심 남에게 인정받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분도 가족묘원 조성부터 벌초 대행까지 장례에 관한 모든 업무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적임자라며, 장례지도사 국가자격증 교육 분야를 맡아달라고 했다. 나로서는 당장 갈 곳도 없고 교육분야 업무라 흔쾌히 승낙하여 현재까지 근무해 오고 있다.

“직장에 소홀하면서 봉사에 전념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이런 신념으로 하루 평균 4시간 정도만 잤다. 24시간 교대근무를 하는 직장 생활과 봉사에만 10여 년간 전념한 결과 과분하게도 2002년 경상남도 자원봉사상 금상을 수상하였다. 이를 계기로 봉사의 깊이와 영역이 더욱 확대되었다.

(장애인 자활지원  활동. 사진=박종덕 제공)

1993년부터 장애인복지단체를 10년 동안 떠안다시피 운영하게 되었다. 장애청소년 7명의 먹거리와 사무실 운영, 임대료, 공과금, 병원비, 자활교육 등으로 시간에 쫓기며 경비에 쪼들리다 혼자의 힘으로 도저히 버틸 수 없는 막다른 길에 다다르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만성 수면부족과 피로가 누적되어 극도의 통증을 수반한 고통스런 대상포진이 자주 발병하였다. 사람들이 두렵고 미워지기 시작하여 자신감, 자존감은 땅바닥에 떨어져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최악의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각자 전문 분야에서 활동하는 가족들의 든든한 지원은 지속적인 봉사활동에 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최소한의 수면만 취하고 여덟 군데 봉사활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오던 터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온 셈이었다.

(결식노인 빵만들기 활동. 사진=박종덕 제공)

여태껏 해온 일들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스스로 병원 트라우마센터를 찾아갔다. 담당 센터장은 업무도 봉사도 왜 이렇게 죽기 살기로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스트레스 수치가 위험 수준에 이르렀으니 일을 좀 줄이고 자책하지 말며 자신의 시간을 조금 가지라고 권고하였다.

마음을 어느 정도 추스를 무렵 오랫동안 나를 지켜보았던 전문 직업컨설턴트의 간곡한 조언을 새겨듣게 됐다. 퇴직 후에도 활동 할 수 있는 20년의 시간을 위해 우선 봉사와 관련된 사회복지를 전공하여 학위증과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이어 사이버대학에 편입하여 상담심리를 전공하여 관련 자격증 2개를 취득하였다. 개인적인 작은 소망은 퇴직 후 모든 봉사활동을 접고 세상의 모습과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한적한 곳에 위치한 청소년수련원에 근무하고 싶었다. 그래서 8년 전에 관련 자격증 4개를 취득해 놓았는데 세상사 가 어디 자기 마음 먹은 대로 되랴!

장례지도사 자격증은 퇴직 후 나이가 들어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면 어르신들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잘 배웅해 드리기 위해 취득했다. 뜻 깊은 봉사가 될 것 같아 취득 해 둔 것이 조기 취업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강의 활동. 사진=박종덕 제공)

강의는 인간생활의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되는 사회복지와 상담심리를 공부한 덕분에 어느 정도 아는 척은 할 수 있어 자신감 회복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퇴직 후에는 산업직업전문학교, 대학교 평생교원, 직업교육기관 전직특강 등으로 예전보다 더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퇴직 후 본격적인 강의 활동으로 월급 외 수입도 꽤 늘어 재정난에 허덕이는 봉사기관 살림살이에 후원을 더 보낼 수 있다. 가뭄에 단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으며 바쁜 일상으로 봉사활동에 항상 함께하지 못해 죄를 짓는 느낌이랄까, 조바심 나는 내 마음의 큰 위안이 되고 있다.

봉사는 내 인생의 최고 지향점이라는 목표는 아직도 변함이 없지만 넘지 못할 한계가 분명히 있었다. 강의 또한 봉사 못지않은 희열과 일상의 즐거움이 있기에 지금은 그동안 힘들었던 시간들을 한꺼번에 보상받는 감사함을 누리고 있다.

(도시락 배달 활동. 사진=박종덕 제공)

회한의 36년!

행복하고 성공한 삶이었다고 남들은 부러워하지만, 사건·사고 현장이나 극도로 불만을 표출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해야 했던 직장 생활과 오랜 봉사가 심신을 짓눌러 왔다. 이제는 나의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경청해주고 격려해주어 강의 활동의 소중한 자양분이 되고 있다.

TV 등 많은 언론 매체의 호의적인 보도와 표창으로 주위의 부러움을 사면서도 정작 내 자신은 내가 만든 올가미에 스스로를 옥죄면서 질곡의 삶을 살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하루 단 10분이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가졌더라면 병원 신세까지 이르지 않았을 텐데”라는 부질없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도저히 헤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생의 갈림길에서 좌절하지 않고 슬기롭게 헤쳐 나왔기에 트라우마는 성공적인 인생 2모작을 위한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나의 인생 여정은 소중한 교훈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기에 오늘도 얼굴 가득히 행복한 미소가 넘쳐흐른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봉사와 강의 활동은 계속할 것이다. 언젠가는 장례 서비스로 돌아가 그동안 모셔왔던 어르신들의 마지막 길을 평온하고 품위 있는 모습으로 기억 속에 남기며 영원한 동반자로 또 다른 세상에서 만날 것을 기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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