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事] 가난한 국가의 슬픔

윤재훈 기자
  • 입력 2022.01.12 10:56
  • 수정 2022.01.12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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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국가의 슬픔

금방 이것은 부서질 거라고,
잠깐 무엇이 잘못되어 쌓아두는 것이라고,
그 시절 김 노인은 콘크리트를 약간 붓고, 대충 쌓아두었단다

그러나 반세기가 훌쩍 넘어가고,
시커멓게 삐져나온 철근 몇 가닥만 북쪽을 응시하고 있다

그 옆으로 구절초 돋고, 들풀들 수북하고,
잠 덜 깬 사마귀 한 마리 뒤룩뒤룩 눈을 굴리며,
수구초심처럼 길게 북쪽으로 목을 뺀다

- 김 노인(철도 중단 점에서), 윤재훈

 

(타일랜드와 미얀마 국경, 매싸이, 아카족. 촬영=윤재훈)
(타일랜드와 미얀마 국경 '매싸이', 아카족. 촬영=윤재훈 기자)

아침에 푸성귀를 지고 타일랜드 국경을 넘어와서 종일 팔고,
오후면 다시 넘어가는 소수 민족 ‘아카족’.
주머니에 몇 푼, 있지도 않다.

등짐의 무게를 머리와 어깨에 나누어서 지고,
그들의 생의 무게가 무거울 법도 한데,
종일 웃는 모습이다.

그 웃음에는 전혀 가식이 없고,
맑기만 하다.
그녀들의 마음이 행복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그녀들보다 훨씬 가진 것이 많은 우리,
우리는 하루을 얼마나,
웃음 지으며 보내고 있는가?

줄여야 한다.
욕심의 무게를,
아직 오지도 않을 미래를,
끌어와서 걱정하지 말고,
조금씩 덜어내며 살아야 한다.

(“기브 미 초콜릿Give me chocolate.” ’촬영=윤재훈)
(“기브 미 초콜릿, Give me chocolate.” )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국경을 넘는다는 것. 세계인들은 우리와 다르다. 반도로 꽉 막힌 '섬이 아닌 섬이 된 나라'에서 사는 우리와는, 생각 자체가 달랐다. 높은 철조망이 몇 겹으로 걸쳐서 쳐있고, 그 안에 70년 가까이 비무장 지대까지 펼쳐진 우리의 국경은, 어쩌다 시절이 좋을 때, 특별한 사람들만 특별한 허가를 받고, 넘어갈 수 있는 곳이다. 아니 넘어갈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도 넘어간다면 죽음을 각오하거나, 평생 감옥살이를 할 요량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세계의 국경은 달랐다. 현지인들은 아침이면 가볍게 무비자로 넘어갔다가 오후가 되면 넘어오고, 여행자들도 간단하게 비자를 받고 몇 시간 후에 넘어올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타일랜드나 미얀마에서는 아침밥을 먹고 국경 넘어 출근했다가, 오후가 되면 친구들과 이른 저녁 식사를 하고 넘어오는 그런 곳이었다. 하기야 유럽 연합은 아무 때나 시간 관계없이 서로 왕래가 가능하지 않는가?

(‘매싸이’ 국경시장 풍경. 촬영=윤재훈)
(미얀마 ‘매싸이’ 국경시장 풍경. 촬영=윤재훈)

조그만 국토에서 '섬 아닌 섬이 되어 살아온 우리'에게는, 참으로 낯설은 풍경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경제 대국이 되고, 수많은 한류 콘텐츠들이 세계를 선도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자부심이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세계적인 부호들이 우주를 왔다갔다 하는 이 시절에, 세계 열강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꽉, 막힌 체 열릴 줄 모르는 철조망에 대한 생각을 하면, 안타깝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라고는 하면서 자국에 대한 자주권도 없이, 그들의 이익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나라를 보면 굴욕감마저 밀려온다.

아프리카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에 의해 아무런 관점도 없이 죽, 죽, 자신들의 편리대로 자를 대고 그어버린 국경을 보면, 약소국들에 대한 비애가 느껴진다. 힘에 논리만 횡행하는 세계를 본다.

우리의 38도 선도, 마찬가지였다, 해방이 되고 6.25가 일어나기 전에는, 반듯하게 자를 대고 자르다 보니 안방이 남북이 되고 마당이 양국으로 갈라진 슬픈 국토가 되었었다. 그리고 70여 년이 흘러갔다.

(배가 고파요. 촬영=윤재훈)
(“배가 고파요, 배급 주세요.”)

오늘은 콘크리트 깨는 날
먼지를 털어내고, 돼지머리를 놓고
가을바람 속에 대추도 한 움큼 올리고, 소주를 따른다
통일경經을 외며,
사람들이 줄줄이 서서 절을 한다

금방 이것은 부서질 거라고,
잠깐 무엇이 잘못되어 쌓아두는 것이라고,
그 시절 김 노인은 콘크리트를 약간 붓고, 대충 쌓아두었단다

그러나 반세기가 훌쩍 넘어가고,
시커멓게 삐져나온 철근 몇 가닥만 북쪽을 응시하고 있다
그 옆으로 구절초 돋고, 들풀들 수북하고,
잠 덜 깬 사마귀 한 마리 뒤룩뒤룩 눈을 굴리며,
수구초심처럼 길게 북쪽으로 목을 뺀다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진 김 노인,
쓰러질 듯 절을 하고, 일어설 줄 모른다
북쪽에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홀로 살아온 회한이 절절히 배어 나오는지

그 시절 패랭이꽃은 피었던가,
들찔레는 돋았던가
이제 기억도 아득하다고 한다
철길에 널브러진 시체 몇 치우고,
김 노인은 그 자리에 콘크리트를 쌓았단다

오늘은 콘크리트를 깨는 날
안개 속에 녹슨 두 줄기 철길이 북쪽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여직, 줄달음을 치고 있는데,
새벽부터 일어난 김 노인은 양손을 걷어 재치고, 함마를 들었다

이곳 휴전선에 붙어산 지, 이미 반평생이 훌쩍, 지나가 버리고,
철조망을 넘나들던 구름도, 이제는 세다 잊어버렸다고 한다
정말 오지 않을 줄 알았다고 한다
이제는 자기 평생에 못 볼 줄 알았다고 한다

방문단이 몇 번이나 휴전선을 넘어가고,
소 떼도 넘어가곤 했건만,
옆집에 사는 송 노인이 훌쩍거리며,
북에 있는 가족을 그리며 울 때마다,
자기 평생에 이런 일이 다시는 없을 줄 알았다고 한다
- 김 노인(철도 중단 점에서), 윤재훈

(광활한 대륙, 중국의 서쪽 끝, ‘우루무치’ 역. 촬영=윤재훈)
(광활한 대륙, 중국의 서쪽 끝, ‘우루무치’ 역. 촬영=윤재훈 기자)

우리의 통일을 세계의 열강들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주변의 강대국인 중국이나 일본, 미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더더구나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갈수록 친미(親美)로 기울어 가는 한국을 보면서, 그나마 북한마저 잃고 싶지 않을 것이다.

세계의 지도를 보면 중국은 한 마리 큰 수탉 모양으로 호시탐탐 이 땅을 노리고 있는 모양새다. 한반도는 발 아래 떨어진 조그만 먹이 모양이다. 그러니 틈만 나면 '동북공정' 등으로 역사 왜곡까지 서슴치 않으며, 우리를 얕본다.

지구상에 유일하게 분단된 손바닥만한 조국. 중국의 한 성보다 작은 나라. 그러나 기술에서 콘텐츠에서, 수천 년 상전 노릇을 하려고 했던 중화의 대국을 넘어, 더 높은 국민소득을 이루어내고 있다.

<대장금>과 <강남 스타일> 등, K팝과 드라마가 세계를 강타하더니, BTS가 롱런을 하며 아예 세계 팝시장에 일반화가 되어가고 있다. 그 여세를 몰아 ‘오징어 게임’이 세계인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여기에 세계 유수의 상을 휩쓸고 있는 봉준호 감독이 칸 영화제에서 <기생충>으로 황금 종려상을 받더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윤여정씨가 <미나리>로 여우 조연상까지 받았다. 거기에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 게임>이 국민 자부심을 높여주고, 오영수 씨는 골든글로브 남우 조연상까지 거머쥐었다. 

분단된 조그만 국가에서, 1960년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하며 꿀꿀이죽과 원조에 의해서 간신히 숨을 쉬던 나라가, 이런 신화적인 일들을 이루어내고 있다.

(가난한 조국. 촬영=윤재훈)
(가난한 조국)

세계 여행을 하다 보면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자국민들에게 큰 환대를 받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불과 70여 년 전만 해도 일제 식민지와 전쟁을 치루고, 초토화 된 강산 위에서 헐벗게 굶주리고 있던 민족들이 말이다.

'꿀꿀이죽, 양공주, 양갈보에 기브 미 초콜릿(Give me chocolate)'를 외치면, 매연 가득 뿜어대는 미군의 지프를 따라가던 소년들이 살던 나라라고, 손가락질 받던 민족들이 살았는데 말이다.

(슬픔. 촬영=윤재훈)
(“기브 미 초콜릿, Give me chocolate”)

몸뚱이를 가릴 옷이 없고
벽돌 조각이 고깃덩이로 보일만치
배가 고픈 젊은 계집에게
숙녀가 되고, 정숙하기를 바랄 수 있을까?

배가 고팠다.
철든 계집애가 살을 가를 곳이 없었다.
이것이 내 죄가 될까?
그래서 나는 ‘안나’라는 갈보가 됐다.
- 안나의 유서 중, 오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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