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작 성공수기] 미술관에서 인생을 이야기하다...열정상 ‘홍미옥’

김남기 기자
  • 입력 2022.02.03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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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경상남도에서 실시한 제1회 신중년 인생이모작 성공수기 공모전 수상작품을 연재한다. 연재될 수상작품들은 퇴직 후 삶 준비, 재취업 성공사례, 사회공헌활동, 재능나눔 경험 등을 공유하고, 신중년 세대의 성공적인 인생 2막을 엿 볼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미술관에서 인생을 이야기하다
열정상 ‘홍미옥’

('홍미옥' 작가 앞줄 왼쪽 첫번째. 사진=홍미옥 작가 제공) 

집안에서 아이 잘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하고, 시부모 봉양 잘하면서 사는 게 여자의 일생이고, 행복인 줄 만 알고, 그런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이지요. 직장을 가져도 결혼을 하면 그만두고, 가정에 충실하고, 가족 뒷바라지에 집중하는 것이 잘사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제 삶의 행복은 남편과 자식 잘되는 것뿐이었죠. 나의 재능이나 하고 싶은 것은 다 잊고, 그들의 발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끌고 당기며 안달할수록 부딪힘이 많아져 가족과의 관계가 힘들어지고, 저는 늘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내 뜻대로 안 되는 상황들은 가족과의 갈등으로 이어져 저를 많이 지치게 했지요. 서로의 바람과 방법이 맞지 않았나 봅니다. 갱년기가 오면서 몸은 아파 오고, 우울감까지 겹치자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어 아침에 눈 뜨는 것조차 싫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주위의 지인들은 종교를 권하기도 했어요.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고요.

(전시작품 설명하는 홍미옥 해설사. 사진=홍미옥 작가 제공) 

집에서의 시간을 견디기 힘들었던 저는 도서관, 미술관을 다니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종일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고 인문학 강의를 찾아 들으면서 마음을 다스리려 애를 많이 썼습니다. 도서관에서 ‘북스타트’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아이들에게 동화책 읽어주는 봉사, 부모교육 봉사를 꾸준히 하며 미술관에서의 자원봉사를 같이하게 되었습니다. 경남 도립미술관에서 봉사를 하다 보니 그림을 설명해주는 전시 해설사(도슨트)들의 모습을 보고 작품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많은 생각들을 관객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전시작품 설명하는 홍미옥 해설사. 사진=홍미옥 작가 제공) 

저는 미술대학을 졸업했고, 중등 미술교사 자격증이 있었지만, 결혼으로 인해 미술교사를 해보지도 못해 늘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친정아버지께서 교직에 계셨었고, 제 자신도 남을 가르치거나 설득하는 능력은 꽤 있다고 생각해왔었어요. 내가 참 잘할 수 있는 일이겠다 싶어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첫 도전은 실패였습니다. 저의 첫 도전은 55세에 시작이 되었지만, 그때 까지만 해도 전시 해설사들은 거의 모두가 2,30 대였어요. 서울의 많은 전시장·미술관에는 나이와 상관없이 능력있는 해설사들이 많아, 질 좋은 전시설명을 들을 수 있었지만, 지방은 아직까지 나이 든 사람을 뽑지 않았던 것 같아요. 오랫동안 학부모였고,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관객의 입장으로 지내왔기 때문에 관객들의 취향을 잘 이해하고 뭘 원하는지, 창의적인 미술교육과 예술의 지적인 호기심까지 저는 누구보다도 설명을 잘할 자신이 있었으나, 미술관 측에 서는 검증이 되지 않은 자원봉사 아주머니를 쉽게 선택해주지 않았습니다.

(전시작품 설명하는 홍미옥 해설사. 사진=홍미옥 작가 제공) 

그해 5월 초, 프랑스 퐁퓌드 미술관에서 ‘아르망의 아뜰리에’라는 교육 프로그램이 도립 미술관에서 시행되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의 교육 강사채용 공고를 보고 저는 다시 도전하였죠. 3개월 계약직인 탓에 경쟁률이 낮아서인지, 저는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전업주부로만 살아서 규칙적인 직장생활이 익숙지 않아 처음엔 많이 힘들었지만,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자 최선을 다했습니다. 프랑스 미술교육을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게 한국식으로 절충해서 아이와 부모가 같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창의적으로 진행시켰으며, 그 프로그램은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관객들의 많은 칭찬과 댓글들 덕분에 저를 미술관 측에서 높게 평가되었고, 다음 해 1년 계약직 전시해설사로도 취직할 수 있었습니다.

(전시작품 설명하는 홍미옥 해설사. 사진=홍미옥 작가 제공) 

전시해설사로 처음으로 취직된 그해에는 해설사로서 많은 성과를 내었습니다. 현대미술·퓰리처 사진 전·추상 조각전 등 다양한 전시설명을 위해 그동안 비워두었던 나의 뇌속에 미술에 대한 지식들을 일깨우기 위해 많은 공부를 하였습니다. 미술해설은 전문적인 단어가 많아 일반인들이 듣기에 이해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특히, 현대미술은 해설이 없이는 흥미를 느끼기가 쉽지 않습니다. 준비된 원고를 외워서 설명하기도 하지만, 저는 제 방식으로 해석하여 좀 더 쉽게 소통하며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저 자신은 삶의 힘든 부분을 내려놓으려는 작업일 수도 있었던 독서와 인문학강좌 듣기는 전시 설명의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작가들의 삶과 스토리텔링을 통해 인문학적인 관점까지 같이 이야기하는 쉽고도 흥미로운 전시설명을 시도하였습니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서울 국립 현대미술관 전시설명보다 더 감명 깊었다는 칭찬과 감상 후기들을 인터넷에 많이 올려주셔서 그동안 바닥이었던 저의 자존감이 많이 회복되었고, 성취감 또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예상치 못한 힘듦도 있었습니다. 젊은 선생님들과의 세대 차로 인한 의견 차이가 많았습니다. 이런 게 직장 내 동료와의 갈등이겠구나 생각했지요. 새로운 경험이었지만 현명하게 대화로 잘 풀었고, 덕분에 젊은 사람들을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삶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관객들과 미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한 소통으로 위로가 되고 영향을 줄 수 있는 순간들이 꽤 많아져서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 자신을 힘들게 했던 깊은 상실감과 우울함은 더 이상 저를 좌절의 늪에 빠뜨릴 수 없었습니다.

1년 계약직 전시해설사를 마치고 8년째 지금까지 경남 도립미술관교육 프로그램과 창원문화재단 전시해설사, 조각 비엔날레 전시해설사, 다양한 미술교육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근 코로나로 인해 전시설명이 없어지고 전시 규모가 축소되는 상황에서도, 올해 1월 진해 야외공연장 전시관에서 ‘인상주의 작가 모네 전’의 전시해설사로 활동하였습니다. 이 전시회에서도 관객들의 적극적이고도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 큰 성과를 이루어내었습니다.

올해로 63세.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도전하고 싶습니다.

코로나가 끝나고, 좋은 전시회에서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오늘도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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