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건희의 산책길㊲] 앙코르 산울림 고전극장의 ‘동물농장’에서 마주한 21세기 사회상

천건희 기자
  • 입력 2022.03.03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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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진정 구원하는 것은 스스로 각성하여 질문하는 용기를 되찾는 것이다”

사진=산울림 소극장 제공
사진=산울림 소극장 제공

[이모작뉴스 천건희 기자]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연극이었다. 지난 2월 24일, 산울림 소극장에서 「앙코르 산울림 고전극장」 중 <동물농장>을 관람했다.

<동물농장>은 1945년 8월에 발표된 조지 오웰의 소설을 극단 ‘동네풍경’(연출 김규남)이 올린 무대이다. 농장에 있는 동물들이 포악한 주인을 쫓아내고 자율적인 농장으로 평등과 자유를 추구했지만, 동물들 사이에서도 부당한 권력이 생기고 불평등으로 또다시 혁명이 요구된다는 내용이다. 당시 소련 상황을 빗댄 풍자 소설로 알려져 있는데, 연극에서는 동물들을 어떻게 의인화하여 무대에 올렸는지 궁금했다.

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원형 무대의 양쪽에는 상자들이 쌓여있고 뚜껑이 열려있는 빈 상자 한 개가 한가운데에 놓여있다. 연극은 농장주인 존스가 늙어서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동물들을 도살하여 빈 상자에 담아 버리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동물 배역을 맡은 배우들은 동물의 가면이 달린 빗자루, 삽, 걸레 등을 들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기했다. 정교하게 만든 가면으로 등장 동물의 캐릭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면서 노동할 때는 소품으로 활용했다.

사진=산울림 소극장 제공
사진=산울림 소극장 제공

농장의 동물들은 돼지 ‘메이저’ 영감의 주도로 혁명을 일으키고 동물농장을 건설한다. 동물들은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이면 안 된다’ 등의 7계명을 만들고 인간들을 위한 노동이 아닌 자신들을 위한 노동을 시작한다.

그러나 맛있는 우유의 맛을 본 돼지들이 자신들의 글자를 읽고 이해하는 비범함을 “우리에겐 자격이 있어”로 합리화시키며 다른 동물과 차별되게 농장의 재화를 독식한다. 다른 동물들의 반발은 세뇌시키거나 협박한다. 그들의 혁명 가치를 담은 7계명은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이유 없이 죽이면 안 된다’ 등으로 교묘히 바뀐다.

사진=산울림 소극장 제공
사진=산울림 소극장 제공

농장이 풍족해졌음에도 점점 동물들의 삶은 고달파진다. 동물들은 혁명의 정신이 변질된 것을 느끼지만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에 입을 다물고 일한다. 돼지들은 자기들의 뜻에 따르지 않는 동물들은 농장주인 존스처럼 죽여 상자에 넣는다. 우직한 말 ‘복서’는 돼지보다 힘이 더 세지만, 돼지들의 횡포에 의문을 갖지 않고 ‘나의 농장, 나의 노동, 나의 친구들’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 풍차를 만들면 편해질 수 있다는 돼지들의 계략에 풍차를 만드는 데 혼신을 다한다. 결국은 쓰러져 폐마 도축업자에게 팔려 죽음을 맞이하면서 막은 내린다.

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배우들의 열정이 무대에 가득 찼다. 출연한 이두아, 이연준, 인규식, 김나현, 오청우, 김동희, 한영선, 최희태 배우들의 열정어린 눈빛과 연기는 작품의 내용을 힘 있게 전달했고 몰입하게 했다. 연극인데도 혁명의 순간, 동물들이 함께 부른 합창은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무대 위의 종이 상자들은 동물들이 노동할 때 노동력의 상징으로, 돼지들이 지배계층으로 군림할 때는 연단으로, 인간의 급습을 막기 위한 장벽 등으로 활용되어 무대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자유와 평등을 위해 세워진 동물농장에서 평등이 멈추고 선동과 폭력이 난무할 때는 21세기 현재 진행형인 오늘날의 사회상이 오버랩 되어 가슴이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산울림 고전극장」은 소극장 산울림이 젊은 연출가, 신진 연극단체들을 육성하기 위한 기획 프로그램으로 고전문학을 품은 연극 레퍼토리 공연이다. 2013년 시작하여 그동안 그리스 고전, 세익스피어, 러시아 문학, 프랑스 고전, 영미 고전 등 45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앞으로 어떤 작품이 다시 무대에 오를지 기다려진다. 고전문학 100권을 연극무대에 올리겠다는 소극장 산울림의 꿈이 이루어지길 응원하는 마음이다.

「앙코르 산울림 고전극장」은 지난 2021년 진행된 작품 중 두 작품을 선정하여 다시 관객과 만나는 프로그램으로 <동물농장>에 이어 <휴식하는 무늬>도 다시 무대에 오른다. 샬롯 퍼킨스 길먼의 ‘누런 벽지’를 각색한 창작집단 혜윰의 <휴식하는 무늬>는 6일까지 이어진다.

“우리를 진정 구원하는 것은 스스로 각성하여 질문하는 용기를 되찾는 것이다”라는 김규남 연출의 말이 대선을 앞둔 시기여서 그런지 더욱 가슴에 새겨진다.

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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