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투어] 서시환 화가 '출애굽(Exodus)의 광야를 지나며'展1

윤재훈 기자
  • 입력 2022.03.14 10:07
  • 수정 2022.03.1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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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서시환 화가)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서시환 화백. 사진=서시환 화가 제공)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나는 요즘 그림을 배우고 있다. 하얀 도화지 위에 색칠을 하는 것, 아마도 초등학교, 아니 중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인 것 같다. 루소는

“어린 아이들의 뇌는 마치, 하얀 백지와 같다.
그 머리 속에는 내가 원하는 대로,
무슨 그림이라도 그려지게 할 수 있다.”

라고 했다. 일면, 교육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 같다. 요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주위에 점점,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왜 그럴까?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뇌 속이 신선해지는 느낌이 든다. 마치 내가 숲속의 요정이 된 것 같다. 녹색을 칠하면 깊은 산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고, 노란색을 칠하면 봄꽃밭 속에 포근히 안긴 것 같다. 나비가 날아다니고, 금방이라도 잉, 잉, 거리며 꿀벌들이 눈 앞으로 스쳐갈 것 같다. 이제 3월 초인데, 벌써, 우리 집 마당에는 말벌과 꿀벌이 찾아왔다.

(촬영=서시환 화가)
(물과 바람. 사진=서시환 화가 제공)

그림을 그리다 보면, 내가 요술쟁이가 된 느낌이다. 짠, 하고 허공에 요술봉을 돌리면 파란 하늘이 펼쳐지고, 또 한 번 돌리면 보라색 색감이 칠해질 것 같은 환상에 빠지기도 한다. 마치 창조자가 된 느낌이다. 사진을 찍을 때와는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사진을 찍을 때는 마치 어떤 사물을 피사체 안에 포획하는 느낌이 드는데, 그림은 뭔가를 창조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수많은 화가가 이젤 앞에 앉아서, 오랜 시간을 정물처럼 보내는 모양이다.

(촬영=서시환 화가)
(지중해 영감. 사진=서시환 화가 제공)

우리나라의 전시장 수준은 참 척박한 것 같다. 그림 구경이라고 하고 싶는 날, 인사동 아니면 생각이 안난다. 오늘처럼 봄볕 좋은 날, 아니면 금빛 낙옆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날, 문득 그림을 구경하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런데 가까운 곳에는 그런 장소가 없다. 인사동까지 가기에는 너무 멀다. 그래서 이내 포기하고 만다.

(서시환 화가)
(겨울 잠. 서시환 화가)

가끔씩 그런 생각을 했다. 주위에 전시장 같은 곳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그래서 그림이나 사진이나, 시화전이나, 쉽게 구경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이번에 그런 곳을 발견했다.

바로 노원구 상계동에 있는 ‘더숲 갤러리’이다. 탁무권 대표는 스스로를 ‘문화 사업가’라고 했다. 실내의 풍경은 약간 낯설었다. 지하 1, 2층인데 넓어서 지하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커다란 커피숖이 있고, 빵들이 놓여있고, 옆에는 와인까지 있었다. 간단한 식사도 할 수 있었다. 전시관은 두 군데가 있었고, 아래로 내려가니 영화 상영관도 두 개나 있었다. 서점까지, 그야말로 복합문화 공간이었다.

대표는 이런 공간을 더 크게 꾸미는 것이 꿈인 것 같았는데, 이 시대에 참으로 중요한 자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문화공간이 많아질수록 문화대국으로 가는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다.

땅끝 마을 해남에서 태어난 중견작가인 ‘서시환 화백’의 전시회 소식을 우연히 페북에서 보았다. 언젠가 포천에 사는 강구원 화백이 고모리 저수지에서 전시회를 할 때, 인연이 되었다. 특히나 고향이 같아 관심이 갖다.

땅끝 물감자나 풋나락이 이 험한 서울까지 올라와 벌써 18회째 개인전을 한다. 그것도 초대전이다. 단체전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이 했다. 물감자나 풋나락은 그 시절 촌놈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어디 우리 뿐이었으랴.

(촬영=서시환 화가)
(광야를 지나며. 사진=서시환 화가 제공)

열여덟 번째 그의 개인전는 ‘광야를 지나며’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우리에게는 아직 알려지지 전 ‘코로나’가 막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2019년 12월, 17회 개인전을 막 마치고 여행을 떠났다. 이집트와 요르단을 거쳐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출애굽(Exodus)의 광야’ 여행이었다.

요단강을 건너기 전, 다른 행성 같이 경이롭기까지 한 ‘와디럼’의 붉은 사막을 맞닥뜨렸다. 얼굴을 때리는 모래바람은 마치 그 옛날 대상들의 행렬처럼 마스크와 목도리로 눈, 코, 입을 틀어막게 했다. 발목까지 빠지는 사막을 지나며 험한 광야을 맛보았다. 마치 ‘예수’의 길처럼.

(촬영=서시환 화가)
(광야(와디럼 붉은 사막). 사진=서시환 화가 제공)

이스라엘인들은 하느님에게 죄를 지어 가나안(현재 팔레스타인)과의 경계선 요단강을 건너지 못하고 40년 동안 방황하게 된다. 그러다 세대가 바뀌고, 다음 세대를 길러낸 출애굽의 광야를 담아가려는 화가는, 다음 해 1월 그 여행길에서 ‘코로나 19’를 뉴스로 만났다. 빡빡한 일정 속 겨울비에 젖어 여행 말미에는 몸살과 고열로 몸을 가누기도 힘든 녹초였다. 더구나 우기였다. 여행객들이 돌아가면서 감기를 앓았다.

그러다 보니 막상 귀국은 했지만,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급기야 검역관들에 의해 코로나 의심 환자로 음압병실에 격리되어, 두렵고 깜깜한 처지의 ‘출애굽의 광야가 독방의 광야’로 연결되었다.

(촬영=서시환 화가)
(지중해 영감. 사진=서시환 화가 제공)

인류가 처음 경험한 팬대믹은 이웃과의 왕래까지 단절된 ‘거리두기 광야’을 걷게 했다. 감염되면 동선(動線)을 추적하여 만났던 ‘모든 사람의 호흡도 의심했다.’ 익숙한 환경으로부터 격리였다. 들숨과 날숨을 멈추지 못하는 우리는,

“생명의 호흡이 코끝에 긴박하게 놓인 사실에서,
연약한 자신을 대면하게 되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이 세상을 살아나가면서, 크고 작은 광야를 겪게된다.

살아있는 것들에게는
먹는 문제가 삶의 전부다
먹기 위해 일을 해야 하고
먹기 위해 상대에게 거짓말도,
때로는 서슴없이 칼도 겨눈다

깊은 밤 하얀 벽을 따라
오글거리며 오르는 것들
풀씨처럼 작은 개미들이
제 몸보다 수백 배 큰
거미를 옮긴다
멀리서 보니 바람에 나뭇잎이
살랑이는 듯 흔들리며
거대한 절벽을 오른다

살아있는 것들에게
가장 숭고한, 먹기 위해
제 몸보다 수백 배 큰,
만다라를 끌고
사람들이 잠든 후
막 생을 마감한 경전을 끌고
야단법석野壇法席 중이다

- 만다라. 윤재훈

특별한 이벤트도 준비되어 있다. 와인과 함께하는 서시환 화가와의 만남이 '삶속에서 만나는 몇개의 광야를 지나며'를 주제로 열리다. 3월 18일 금요일 오후 7시 ‘더숲 갤러리’에서 정원 5명으로 마련됐다.

(촬영=서시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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