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투어] 서시환 화가 작품展, '詩로 풀어보는 그림 감상'2

윤재훈 기자
  • 입력 2022.03.17 10:56
  • 수정 2022.03.17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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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리, 출애굽의 광야는
특별한 백성을 뽑아서 뜻을 전하는 메시지다.
마스크로 숨을 거르며 광야를 걷는 지금,
그 메시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빈집. 서시환 화가)
(빈집. 서시환 화가)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철 따라 대륙의 광야를 이동하는 청둥오리는 다음 행선지와 떠날 때를 안다. 지난 여름 고추 이파리에 붙어있는 거푸집을 발견하고 생각이 많아졌다. 매미는 교미를 하고 나서 죽는다. 그리고 그 애벌레는 땅속에서 굼벵이로 7~14년을 견딘다. 그들도 땅속의 광야를 힘들게 견디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어느 여름 밤 고요히 꾸물거리며 나무를 향해 기어간다. 그중 많은 수는 가다가 개미나 다른 벌레들에게 발견되어 죽고, 요행히 나무로 오른 굼벵이만 껍질을 벗고 오랜 시간 날개를 말린다. 그 순간도 누가 와서 방해하면, 그의 생도 끝난다. 그리고 마침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경이를 맛본다. 그들은 이슬을 먹고, 21일 정도를 산다고 한다. 화가는 이것을 부활로 본다고 한다. 로마서 1장 20절에도,

“창조자는 자기가 만든 창조물 가운데,
자신의 신성과 능력을 새겨놓았다.
그걸 보고 너희들은 하느님이 없다고
말하지 못하리라.”

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 인간 역시 연약한 피조물이 아닌가. 예술가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안경을 쓰고 세계를 볼 것이라고, 여름날 빗속에서도 당당하게 걸려있는 저 거푸집처럼.

(절정. 촬영=서시환 화가)
(절정. 촬영=서시환 화가)

“절정의 꽃잎에서,
아침 햇살의 그림자에서,
바람이 깨우는 영원을, 그림으로 읽는다.”

잎 다지고 난
겨울나무에
까치집만 덩그랗다

새끼 다 키우고 나자
집을 버리는
그들의 홀가분함,

그 위로 고이는 텅 빈 충만
가을 한 자락도
가만히 따라와 몸을 얹은
텅 빈 충만
- 텅 빈 충만, 윤재훈

작가의 눈길은 이제 사물 곳곳에 가 닿는다. 어느 날은 마당에 달린 사과 한 알에서 바람과 뇌성의 소리를 듣는가 하면, 냉장고에 말라비틀어진 마늘 한 쪽에서 솟아오르는 새순을 보고, 생명 자체가 봄으로 피고 있음을 느낀다.

그런가 하면 마당에서 올라오는 장미를 보고는, 한 생명의 절정의 시기는 화사하게 피어날 꽃일 때가 아니라, 그 진기를 함뿍, 머금은 꽃봉오리에서 느낀다고 한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 대추 한 알, 장석주

(겨울 장미. 서시환 화가)
(겨울 장미. 서시환 화가)

어느 날은 가을날에 핀 장미가 겨울에 얼어 마당에서 그대로 박제가 되어버린 것을 보았다. 냉동실에 동태처럼 극명하게 얼어붙은 꽃, 막대기로라도 툭, 치면 일제 731부대 생체실험 만행에서 자행됐던 마루타처럼 툭, 부러져버릴 것 같은 꽃대, 그것에서 어떤 섬뜩함을 느꼈다고 한다.

박제가 되어버린 그 꽃을 보면서 삶이 교만해지거나 나태해지려고 할 때, 스스로의 진의(眞意)를 찾아보게 된다고 한다. 문득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도 떠오른다.

아, 이 부자유스러움이여
끝내는 흙으로도 돌아가지 못하는구나,
포르말린에 휩싸인 딱딱한 몸뚱아리
언제까지 이 몰골로 남아 있어야 하나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체의 아름다운 것들을
꿈꾸며

- 나비 박제, 윤 재 훈

(한 빛. 서시환 화가)
(한 빛. 서시환 화가)

아들 집에 갔을 때 아주머니가 복숭아를 따 왔다. 아침 빛에 놓인 복숭아 두 알이 한 그림자 안에서 만났다. 그것을 보고 있으니 우리 부부를 말하고 있는 것도 같았다. 둘이 만나 어떻게 한 몸을 이루는가? 한 볕 속에서 언뜻, 한 몸으로 보이기도 했다. 모양까지 하트 모양하다

그림자로 삶을 증거하는 듯했다. 두 사람이 한곳을 보는 듯. 둘이 만나 하나로 만들어가는 삶, 신앙도 서로의 내면을 공유하는 일은 아닐까? 부부의 삶에 대해, 보다 근원적인 생각을 일깨워 주었다.

(보석. 서시환 화가)
(보석. 서시환 화가)

석류는 많은 예술가들의 단골 소재다. 선홍빛 붉은 빛깔하며 어느 한치에 빈틈도 없이 빽빽하면서도 영롱하게 박혀있는 석류알을 보면, 생과 자연에 대한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투박한 나의 얼굴
두툼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내가 어이 이르리까

보소라, 임아 보소라
빠개 젖힌 이 가슴.
- 석류, 조운

(널 위한 사랑의 노래. 서시환 화가)
(널 위한 사랑의 노래. 서시환 화가)

위태롭게 흔들리는 해바라기가 어찌 보면 작가 자신의 처지인 것도 같다. 바닷가에 해바라기가 낯설어 물어보니, 바다 형상은 빌려왔다고 한다. 한 계절의 풍요를 상징하는 해바라기, 꽉 찬 씨들은 새들에게도 넉넉한 식량이 될 것이다.

그 아래 놓인 한 쌍의 새는 “작가를 위한 창조자의 사랑 노래”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 뒤에 구름 형상이 좀 특이한데, 배 형상이다. 저 배를 타고 어디론가 끊임없이 나아가는 작가의 꿈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기다림. 서시환 화가)
(기다림. 서시환 화가)

전시장 가운데에 큼지막하게 걸려있는 작품, 아마 화가의 대표작은 아닐까. 표지에도 나와 있다. 나무들은 봄을 기다리고, 철새들은 떠날 때는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세상 만물은 다 때가 있는데, 우리는 과연 그때를 알고 사는가? 그런 공간과 시간에 대한 고민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라고 한다. 우리 삶은 이런 고난과 시련 속에서 더 단단해져 가는 것은 아닐까?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落花, 이형기

문득 작가의 그림을 감상하다 보니 사실화와 추상화에 대한 관념이 궁금해졌다. 화가의 대답은 명쾌했다.

“보여지는 사물에서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이런 것들이 비틀림과 추상화의 속성이 아닐까?”

산이라는 잡지에서 2년여 시인과 함께 산을 돌아다닌 적이 있다고 한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시인이 글을 쓰고. 그때 산을 바라보면서 그림의 형식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고 한다. 그래서 더 정직하게 사물을 보려고 노력한다고.

(폭우. 서시환 화가)
(폭우. 서시환 화가)

예술가들을 만나면 가장 궁금한 것 중에 하나가 결핍에 대한 것이다.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워주기도 하지만, 배가 고프면 함께하는 사람까지 힘들게 된다. 그게 아킬레스건이다. 화가는 웃으면서, 지금까지 배 굶고 살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는다고, 꼭 그런 세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화가의 예술혼이 꽃피우기를 기도한다.

비록 초대전이지만 작품이 얼마나 나갈까,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그런 것에 작가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자신의 작품에 메시지를 들어내 보고 싶은 것이 먼저이고, 팔리는 것은 후순위다.” 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래도 여유 있는 사람들이 좀 소장했으면 좋겠다.

“팔릴 것을 먼저 생각하고 그림을 그리면 아마, 힘들어질 것이고, 종극에는 그릴 수 없게 될 지도 모른다.”  어떤 장르의 예술이고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그네와 행인 같은 짧은 인생에서 텅 빈 광야는, 화가의 삶의 가치와 행선지로 인도하는, 그 영원성을 환기시키는 것은 아닐까?

(지중해풍. 촬영=서시환 화가)
(지중해풍. 서시환 화가)

특별한 이벤트도 준비되어 있다. 와인과 함께하는 서시환 화가와의 만남이 '삶속에서 만나는 몇개의 광야를 지나며'를 주제로 열리다. 3월 18일 금요일 오후 7시 ‘더숲 갤러리’에서 정원 5명으로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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