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87] 지중해 여행1, 베네치아를 떠나며...

윤재훈 기자
  • 입력 2022.03.24 13:45
  • 수정 2022.03.29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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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를 떠나며

저 천변에 하얗게 핀
꽃눈들을 보아라
지난 겨울,
그 추위를 견뎌낸 꽃눈들이
일제히 꼰지발을 들고
동동거린다

모래톱 위를 아장아장
걸어가는 천둥오리
백조의 깃털은 나날이
새하얗다
- 부용천 꽃샘바람

(물의 도시, 베네치아)
(물의 도시, 베네치아.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물의 도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를 떠난다.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 '베니스의 상인'의 고향, 인도를 주어도 바꾸지 않겠다던 그들의 자존심과 동시에, 거대한 대륙 아시아와 무굴제국을 욕보인 서구인의 오만과 전도된 사고의 부산물이 팽배했던 땅. 다음의 ‘사무엘 존슨’의 논평은 셰익스피어를 가장 적절하게 평가하는 글로 기록되기도 한다.

“보편적인 자연을 올바르게 재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많은 사람을 오래도록 즐겁게 할 수 없다.

…셰익스피어는 어느 작가보다도 자연의 시인이다.  

즉 그는 독자들에게 삶과 세태의 모습을 충실히 비추어주는 거울을 들어 보이는 시인이다.

 

그의 등장인물들은, …공통의 인간 본성을 지닌 인류의 진정한 자손들이며…,

그가 그린 인물들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삶의 전 체계를 움직이게 하는 보편적인 감정과 원칙에 따라 말하고 행동한다.

 

다른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개별적 인간이라면,

셰익스피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일반적으로 하나의 종(種)이다.”

한때 베네치아의 한 해 예산은 프랑스의 한 해 국가 예산을 뛰어넘는 번영을 이룩했던 부유한 나라였다. 그러나 그것은 아시아와 북아프리카에서 생산된 향신료 등의 약탈에 기인했다.

아드리아해(海)를 따라 무심하게 프릭스(Flix bus) 버스가 달린다. 그 위로 고요히 노을이 내린다. 눈이 부시다. 지금 고국의 어느 바닷가 위로는 해가 뜨고 있을 것이다.

(아드리아해로 지는 노을)
(아드리아해로 지는 노을. 촬영=윤재훈 기자)

1453년 동로마제국의 멸망에서 시작되는 서양의 근대는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유럽의 전성기를 이룬다. 이탈리아의 피렌체(플로렌스)에서는 르네상스 즉 문예 부흥과 학문의 시대를 꽃피우며 인간 중심의 사상과 자유가 활발하게 촉진된다.

(엔히크 왕자 사후 500주년을 기념하여, 1960년 리스본에 세워진 ‘발견 기념비’. 촬영=윤재훈)
(엔히크 왕자 사후 500주년을 기념하여, 1960년 리스본에 세워진 ‘발견 기념비’. 촬영=윤재훈 기자)

여기에 포루투갈의 침략자 엔히크 항해 왕자를 필두로 바스코 다가마의 약탈선들이 아시아로 떠나는 대항해 시대가 열린다. 

그리고 종교개혁, 중상주의, 과학과 인문학의 발달이 가속화된다. 군함을 앞세워 인도를 침략한 영국은 무력으로 목화를 침탈하는 것을 넘어, 인도 목화 기술자들의 손목을 자르거나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면서 자국으로 목화를 약탈해 간다. 여기에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하면서 자동화를 이루어내고, 이것이 ‘해가 지지 않은 대영 제국‘의 산업혁명 기틀을 마련해준다.

여기에 더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싹트고, 전 세계를 식민지화하는 야욕을 드러내며 심지어, 인간을 동물처럼 학대하고 죽이는 노예제까지 만드는 제국주의들의 만행이 시작된다.

피카소 '아비농의 처녀들'

밤새 버스에서 자다깨다를 반복한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시 눈을 떠보니 검문소다. 구글 지도를 검색해보니, 우리의 청춘 시절 가슴을 자극했던 모모라는 노래에 나오는, 프랑스 남쪽 바닷가 니스에 가까워진다.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이 꿈꾸는, 모모는 환상가.
그런데 왜, 모모 앞에 있는 나는 외로운가.…”

그 위로는 1907년에 미완의 대작으로 끝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을 생각나게 하는 아비뇽이 보인다. 그러나 사실 아비뇽은 마도로스들을 상대하기 위해 바르셀로나의 서민가에 만들어진 홍등가 뒷골목의 명칭이다. 나의 다음 여정의 목적지이기도 하다. 그림에 나온 여인들도 그곳의 창부들이며 미술사 최초의 입체주의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현재 이 작품은 뉴욕 근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세기 회화사의 기념비적 가치의 전환을 의미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산꼭대기까지 집들이 들어찬 프랑스의 ’니스‘ 모습. 촬영=윤재훈)
(산꼭대기까지 집들이 들어찬 프랑스의 ’니스‘ 모습. 촬영=윤재훈 기자)

 

막연히 아름다운 도시일거라 상상했는데, 도시는 회색빛이다. 나즈막한 산기슭을 따라 정상 부분까지 엄청나게 집들이 들어차 있다. 엄청난 환경 파괴가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서구인들을 산에 오르는 것을 ‘등산(登山)’이라고 하고, 동양인들은 옛날부터 ‘포산(抱山)’이라고 했다. 그들은 산을 정복과 파괴의 대상으로 생각했지만, 동양인들은 산의 품에 안긴다고 했다. 그래서 산속에 정자를 지을 때도 사방을 툭, 터놓고 자연을 관조한다.

평생 고생하여 초가삼간 지어놓고

너 한 칸 나 한 칸 달님 한 칸 들여놓고

청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얼마나 호쾌한 자아인가? 그 광활한 자연을 어떻게 집안에 구겨 넣고 감상할 수 있겠는가? 또한 산바람과 새소리, 물소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나 지금의 한국의 건설사들과 관리들은 오직 산을 ‘파괴의 대상’으로만 생각한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어’라는 말은 옛 시조 속에서나 존재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

저 산꼭대기까지 도로를 놓았을 것이고, 산 위에서부터 엄청난 오염과 쓰레기가 나올 것이다. “인간은 쓰레기만 무한 배설하는 동물”에 지나지 않는가?. ‘만물의 영장’이란, 이 세상의 수많은 자연물과의 공생을 거부하는 오만 덩어리의 이명(異名)일 뿐인가?

“인간이 스무 살까지만 산다면 어떻게 될까?

욕심이 팽배해지기 시작하고, 더욱 사악해지고,

전쟁만 일삼기 전에,

그래도 십 대 시절까지는, 그나마 선한 자아가 더 많을 때 아닌가?

 

생태계를 보호하고 공생을 꿈꾸는 것은,

인간의 삶, 그 이후에나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일일까?”

 

코로나가 목숨줄을 더욱 옥죄이는 이 시절에도,

지구인들은 도무지 반성이 없다.

꼭 철면피(鐵面皮) 같다.

(프랑스 제 2의 요트 도시. 마르세이유에 핀 봄꽃들. 촬영=윤재훈)
(프랑스 제 2의 요트 도시. 마르세이유에 핀 봄꽃들. 촬영=윤재훈 기자)

유럽이 하나임을 실감한다. 국경을 넘어갈 때도 검문이 전혀 없다. 반도에 꽉 막힌 섬이 아닌 섬이 되어버린 조그마한 국토에서 살다 온 우리에게는 너무나 신선한 충격이다.

하나의 땅덩어리 위에 단지 인간들의 필요에 의해, 전쟁과 피비린내 속에서 땅이 나뉘고 이름만 달리 부르고 있을 뿐이다. 프릭스 버스(Flix bus)는 상당히 돌아가면서 소도시마다 선다. 누군가는 커다란 트렁크를 들고 내리고, 누군가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차에 오른다.

“이틀만 지나면 3월이다.
벌써 고국을 떠난 지가 1년이 훨씬 지났다.
아름다운 한국의 산하에도 꽃들은 지천으로
피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부용천 꽃샘바람. 촬영=윤재훈)
(부용천 꽃샘바람. 촬영=윤재훈 기자)

저 천변에 하얗게 핀
꽃눈들을 보아라
지난 겨울,
그 추위를 견뎌낸 꽃눈들이

일제히 꼰지발을 들고
동동거린다

모래톱 위를 아장아장
걸어가는 천둥오리
백조의 깃털은 나날이
새하얗다

얼었던 개울물이
봄 소리를 낸다
경쾌하게 흐르는 물줄기가
까르륵, 거리는 아이의 상에 오른
햇냉이 같다
버들붕어 도래질도
울대가 섰다

먼 산모롱이부터 온다
이제 아지랑이 아른거리며
참꽃이 피는
봄날이 오고 있다
- 부용천 꽃샘바람

어느 외진 산골짜기에는 눈을 뚫고 복수초가 나왔을 것이고, 섬진강의 매화도 쌍계사 마당의 홍매화도 붉은 눈을 떴을 것이다. 

봄이다, 꽃들이 다 피었다. 유럽의 온 산하에도 펑펑, 아가의 초롱초롱한 눈망울 마냥, 꽃봉오리들의 생글생글한 눈빛이 선하다.

그 옛날 이른 개화(開花)를 했다는 대륙에, 동족상잔의 비극을 치르고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라고, 선교사들이 와 포교를 하고 문명을 전달했던 나라, 그 대륙에서 여행자들이 찾아온다. 수많은 식민지를 건설하고 인간을 노예로 사용했던 제국들의 땅에, 마르코폴로처럼 수많은 여행가들이 탐험했던 그 대륙에서.

밖으로 나올수록 이제 세계는 지구촌이다. 순식간에 모든 정보가 소통되는 'WWW(World Wide Web, W3)'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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