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88] 지중해 여행2, 프랑스 제2의 도시 '마르세이유 풍경'

윤재훈 기자
  • 입력 2022.03.28 11:45
  • 수정 2022.04.06 01:2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프랑스 제2의 도시, 마르세이유 풍경

오늘도 구름 아래 국경을 만들고
수많은 말과 미사일이 철조망을 넘는다
폐병 환자들처럼 반목하며,
숨 가빠 한다

지구는 나날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남극의 하늘에선 자외선이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오는데,
파란 우주 속에서 충돌하는
행성을 본다
- 인간에게 지능을 주었더니, 윤재훈

(촬영=윤재훈)
(할로윈 데이Halloween day, All saints' Eve를 미리 즐기기라도 하려는 듯, 거리마다 가면이 넘쳐난다.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기사는 운전을 하면서 오랫동안 큰소리로 전화를 한다. 대한민국의 옛날 모습이라도 보는 듯하다. 산하에 풍경은 고국과 비슷하다. 내가 어디에 있던지 스마트폰만 들고 있으면, 세계는 이제 가히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10만 8천 리에 비견되는 지구의 끝과 끝이다. 어마어마한 일이다. 인간의 지능이라는 것이.

태초에 인간에게 지능이 생기더니
이 세상을 파괴시키는 것은
그대들뿐이네

만 년을 잠자던
지구의 땅속은 텅, 텅, 비어가고
아득한 바람이 부는 사거리에는
허한 눈길만 지나가네

동물은 배부르면 살육을 멈추고
식물도 햇빛과 양분 속에서
욕심부리지 않는데,
곳간을 채우고, 넘치는 것은
그대들뿐이다.

오늘도 구름 아래 국경을 만들고
수많은 말과 미사일이 철조망을 넘는다
폐병 환자들처럼 반목하며,
숨 가빠한다

지구는 나날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남극의 하늘에선 자외선이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오는데,
파란 우주 속에서 충돌하는
행성을 본다

- 인간에게 지능을 주었더니, 윤재훈

(촬영=윤재훈)
(마르세이유 항구. 촬영=윤재훈 기자)

마르세이유 찰스 기차역(Gare de Marseille-Saint-Charles)에 12시 55분에 도착한다. 승차권을 보니 10분 정도 연착된 것 같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부터 나를 태우고 12시간 이상 달려온 버스는, 다시 새로운 사람과 캐리어들을 기름처럼 보충하고, 또 어디론가를 향해 떠난다. 이 먼 길을 달려오고 있는 기사님은 시간을 맞추기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했을까?

짐칸 관리는 허술한데, 특별하게 분실물들은 없는 듯하다. 2011년 완행열차로 중국 대륙을 횡단하면서 겪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소매치기와 악을 쓰던 시끄러움과, 창문이 다 열린 채 덜컹거리는 기차 바닥에 가래침을 뱉던 중국인들이 떠오른다. 기차가 좁아 캐리어는 아예 문밖에 세워두고 전전긍긍하던 것들도. 물건을 사면 잔돈을 집어 던지던 까마득한 그 기억과 함께, 지금은 다 사라진 모습이다.

두 정거장쯤 더 가자 바다가 나오고, 갯비린내가 훅, 끼친다. 터키에서부터 지중해가 줄기차게 따라오고 있다.

(촬영=윤재훈)
(항구의 풍경. 촬영=윤재훈 기자)

세계는 갈수록 ‘보보스족(bobos)’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부르조아(bourgeois)와 보헤미안(bohemian)를 합쳐놓은 말이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연구와 일에 몰두하고,
특별히 사치하지도 않으며,
정신적 풍요까지 구가하는 이들을 말한다.”

두 마리 토끼를 다 구가하려는 현대인들의 초상인 것 같다. 거기에다가 이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소비 감각이 있고, 정보력까지 갖추고 있다.
특별한 유행에도 따르지 않으며, 자유롭게 사고한다.
엉뚱하고 기발한 일을 즐기려 하며,
매사 여유가 있고, 적극적이며, 낭비하지 않는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브룩스가 그의 책 <보보스 인 파라다이스(bobos in paradise)>에서 처음으로 인용했던 말이다.

(촬영=윤재훈)
(요트의 천국. 촬영=윤재훈 기자)

마르세이유는 남쪽 바닷가 도시이다. 프랑스의 제 2의 도시이며, 요트인들의 천국인 것 같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내려다 보이는 항구에는 빽빽하게 요트가 들어차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상류층들의 놀이로 알고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숙소는 안채가 있고 손님이 많아서인지 별채는 최근에 지은 듯하다. 여행자가 많은지 안채에는 방이 없고 별채로 간다. 여기도 손님이 많은지 이 층으로 안내하는데 다락방이다. 어쩌랴, 선택의 여지가 없는데, 한 몸 편하니 누워서 하룻밤만 잘 자고 나면 그만일 텐데, 휴게실 공간은 그런대로 편하다.

하룻밤에 작은 침대 하나 빌리는데, 이 만원 중반대이다. 일 년이 훨씬, 넘은 여행 기간 중에 가장 비싼 숙소인 듯하다.

(촬영=윤재훈)
(고도의 골목. 촬영=윤재훈 기자)

도시를 따라 걷노라니 고도(古都)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인도가 반질반질해서 미끄러질까 봐, 겁날 정도다. 특히나 체구가 큰 서양인 두 사람이 지나가면 어깨가 부딪힐 것 같다. 멀지 않는 곳에 슈퍼가 있어 게스트하우스에서 식사 준비하기가 편할 듯하다. 쉬엄쉬엄 바닷가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지중해의 갯냄새가 물씬, 풍기니 한없이 발걸음이 느려진다. 경비에 대한 부담만 없다면 한 달 정도 가만히 머물러도 좋겠다.

 

이곳에서 20분 정도 배를 타고 들어가면 ‘샤토 디프 섬(Château d'If, 이프섬)’이 있다. 프랑스어로 “잎이 무성한 나무”라는 뜻이다. 요새로 쓰다가 감옥이 되었으며, 16세기 프랑수아 1세의 아일랜드 성으로도 사용되었다.

그 유명한 알렉산드로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배경이 된 감옥이다. 특별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볼 만도 하겠다. 영화를 촬영할 때는 감옥이 별로 단단하지 못해 다른 곳에서 찍었다.

(촬영=윤재훈)
('하몽'에 둘러싸인 사내. 촬영=윤재훈 기자)

 

유럽으로 넘어오니 ‘하몽’이라는 고기를 많이 먹는다. 돼지 뒷다리를 그대로 2~3년 정도 천장에 바람으로 숙성시켰다가, 종이처럼 얇게 썰어서 판다. 최소 1년 정도는 지나야 상품이 된다고 하는데, 슈퍼에서 파는 저렴한 것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여기에 오래된 것들은 가격이 높아, 배낭여행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그나마 날짜가 얼마 되지 않는 것이라 해도, 배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나는 처음에는 ‘하모’라는 말로 듣고, 여름 바닷가에서 소주와 곁들이던 추억이 소환됐다. 남쪽 바닷가, 특히 여수 앞에 떠 있는 경도라는 섬이 있는데, 이 섬은 그 옛날 왕비가 쫓겨와 귀양을 살던 슬픈 전설까지 숨어있어 서울 경(京)자를 쓴다.

여름날 서울에서까지 찾아온 사람들이 일부러 먹고 가는, 하모라는 ‘샤브샤브 장어요리’다. 그 옛날에는 전량 일본으로 수출을 해 일본 말인 ‘하모’로 더 유명해졌다. 그러나 실은 ‘갯장어’가 맞는 표현이다. 더더구나 가난했던 우리 조국의 현실이 들어있어 더욱, 갯장어로 불러야 마땅할 것 같다. 한마디로 여수 사람들도 먹지 못했던 생선이다.

여름이 되면 바닷가에는 ‘비브리오 불니피쿠스(Vibrio vulnificus, 패혈증)’ 때문에 특별하게 먹을 만한 회가 없는데, 이때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회가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가격이 붕장어(아나고)에 비해서 훨씬 비싸다.

여수는 장어요리의 천국이기도 하다. 장어의 종류에는 붕장어와 갯장어, 먹장어(꼼장어), 뱀장어(민물 장어) 등 다양하게 있다. 그중에서 여수 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는 회는, ‘아나고 회’다. 여기에는 우스갯소리 같은 이야기도 숨어있는데, ‘아나고 회를 먹고 나면, 그날 밤 안 하고는 못 잔다’라는 말이 있다.

만약에 따뜻한 장어탕을 먹고 싶으면 남산동 어판장 건너편 골목 안에 자리 잡은, 칠 공주집이 제격이다. 싱싱한 장어를 듬뿍 넣어 막 끓인 장어탕은, 고춧가루라도 약간 뿌렸는지 붉은빛이다. 푹, 우러나온 국물은 벌써, 냄새부터 코를 자극하며, 한 숟가락 뜨며 입안에 달라붙은 감칠맛에, 게 눈 감추듯이 사라지고 만다.

딸이 칠 공주는 아닌 듯하니, 너무 가슴 설레지 말고 갈 일이다. 지금은 어항단지 쪽이나 경도 뱃머리 근처에도 유명세를 타는 듯하다. 이쪽에는 항구가 드넓게 형성되어 있어 특히 뱃사람들이 많이 오니, 그럴 수밖에 없을 듯도 하다.

(여수항 경치. 촬영=윤재훈 기자)

기사님들도 입맛이 까다로워 기사 식당의 밥맛이 좋기로 정평이 나 있지만, 아마도 뱃사람들의 입맛에는 따라가지는 못하지 않을까? 대부분 막, 바다에서 건져온 싱싱한 해산물들만 먹다 보니, 숨어있는 맛집은 다 알고 있는 듯하다. 여행자들이 그런 허름한 식당은 알기는 곤란하다. 그래서 뱃사람들을 따라가면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가 있다. “아, 갑자기 배가 고파온다.”

나에게는 처제가 하나 있는데, 남편은 29톤의 배를 가진 선장이다. 그를 따라가면 정말 구수하고 맛깔난 장어탕을 먹을 수 있는데, 여기에 막걸리라도 한 잔 같이 곁들이며 그야말로 천국이다. 천국이 어디, 멀리 갈 필요가 있겠는가. 어느 절집 안에, 하늘을 찌를 듯한 십자가 건물 안에 있겠는가?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事事佛供)이다.”

(촬영=윤재훈)
(하멜 등대와 제2 돌산대교 위로, 한가하게 케이블카가 흘러간다. 촬영=윤재훈 기자)

언젠가는 그와 여수 바닷가 어디쯤에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아침에 해장국으로 찾아간 ‘물메기 (곰치)탕’ 집은 더더욱 잊을 수가 없다.

KBS의 ‘다큐 3일’에도 나온 낭만 포차로 유명한 ‘종포 바닷가’에 가면, 방파제를 따라 바다 가운데 서 있는 빨간 하멜 등대를 볼 수 있다. 그 건너편 간판도 없는 허름한 선술집, 창문이 6개쯤 나누어진 나무문이였을까, 드르륵, 밀고 들어가니, 두서너 개의 탁자가 놓인 좁은 공간에서 주모가 반겨 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물메기탕이 나오는데, 흐물흐물하여 뭐, 씹을 것도 없었다. 아귀탕과 비슷한 것도 같은데, 국물맛이 너무 시원했다. 지난밤에 혹시, 속이라도 쓰려 왔다면 저절로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창밖으로는 아침부터 왁자하게 관광객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난다. 부지런한 뱃사람들은 다음 출항을 위해 선착장에 앉아 그물을 꿰매고, 씨구미(바다 나갈 채비)를 다 실은 배들은 출항 준비에 분주하다.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색스폰 소릴 들어보렴
샛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사이로
짙은 색스폰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밤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창가에서
돌아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곳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최백호

 

 

저작권자 © 이모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