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Review] 두 중년 남자의 유쾌한 기행 영화 '트립 투 시리즈'

김경동 기자
  • 입력 2022.04.29 11:18
  • 수정 2022.04.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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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립 투 잉글랜드, 트립 투 이탈리아, 트립 투 스페인, 트립 투 그리스 총 4편 화제
유럽의 풍광과 맛의 향기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코미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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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영화 트립 투 잉글랜드와 두번째 편 트립투 이탈리아의 홍보 포스터)

[이모작뉴스 김경동 기자] 중년에 접어들 무렵의 나이에 마음 놓고 열정적으로 놀고, 열심히 먹고, 유쾌하게 마시는 삶을 즐길 수 있다면 어떨까? 런던 , 파리, 로마, 피렌체, 토론토, 이스탄불, 뉴욕, 리스본, 베를린, 마드리드, 벨파스트, 샌프란시스코, 코펜하겐, 도쿄, 상하이, 베이징, 아테네, 쿠알라룸푸르, 마라케시, 바르셀로나 등과 같은 대도시는 관광객이 많고 역동적이고 재미있는 음식 문화가 가득한 도시이며, 특히 이색적인 길거리 음식이 돋보인다. 하지만 이런 지역을 우회해서 오히려 숨겨진 멋과 맛을 찾아내는 여행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듯하다. 

영국의 마이클 윈터버텀 감독이 연출하고 1965년생 동갑내기인 영국 대표 배우, 가수, 코미디언 등 다방면에서 재능을 발휘하고 있는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이 본명으로 주연을 맡은 영화 ‘더 트립’ 시리즈에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더 트립’ 시리즈는 여행과 미식을 잘 버무려 두 중년의 리얼한 인생 여행기를 다룬 영화로 트립 투 잉글랜드(2015 개봉)을 시작으로 이후 트립 투 이탈리아(2015 개봉), 트립 투 스페인(2018 개봉), 트립 투 그리스(2021 개봉)까지 총 4편의 다양한 나라의 미식 여행기를 선보였다.  

이 영화는 마흔이 넘은 두 중년의 남자가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될까라는 근심을 갖고 떠나는 여행이기에 삶과 나이에 대한 고민이 밑바둑에 깔려 있는 작품이다. 두 사람의 단조로운 여행에 낭만주의 대표시인 윌리엄 워즈워스, 콜리지(Coleridge, Samuel Taylor)를 이야기 하고 성대모사를 하는 배우들을 끌어들이면서 수많은 레퍼런스들을 만들어 내며 이야기 구조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사실 이 때문에 이 영화 시리즈는 주인공들이 나누는 대화의 배경 지식이 없다면 100% 즐기기 힘든 영화일 수도 있다. 

두 사람의 결이 다른 성격도 사전에 이해하고 가는 것이 좋다. 스티브 쿠건은 여행을 가더라도 항상 독방을 써야 하고 자기만의 영역이 확실히 있는 인물이지만 롭 브라이든은 '같이 자면 어때?'라는 오픈된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스티브 쿠건은 삶에 대해 비관적이지만 야심차고 자기 중심적이지만 롭 브라이든은 가정적이면서 웃기는 게 우선인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본분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두 사람은 경쟁관계에 있는 대비되는 성격이지만 고유한 케미가 적절하게 잘 어우러져 기름칠을 한 듯 스토리가 감칠맛 난다. 

영화 전체에서 스티브 쿠건은 모험, 자부심, 풍류, 중한 가족애, 약간의 편집증이 매력적이며, 무엇보다 배우로서의 경력, 가족문제 등에 있어서 진실하다. 하지만 외로운 뒷모습에 황폐한 덤불과 멀리 서늘한 설산이 어우러져 보는 내내 짠하다. 롭 브라이든은 수다쟁이, 흉내 내기, 작은 상자 안에 갇힌 사람이지만 그는 수다스러운 가정적인 남자다. 부부처럼 찰떡 궁합을 선보이는 두 사람은 중년의 위기, 친구이자 라이벌 관계에 대한 예리하고 솔직한 통찰을 보여준다. 

요즘처럼 코로나19로 전세계 여행이 자유롭지 않은 가운데 이 4편의 영화로 유럽의 풍광과 맛의 향기를 간접적으로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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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험 석회암 협곡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스티브 쿠건. 사진=영화 홍보영상)

첫 번째 여행지인 잉글랜드에서 촬영된 영화 ‘트립 투 잉글랜드’는 영국인이 가장 여행하고 싶어 하는 여행지인 잉글랜드 북부로 여행을 떠나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과 맛있는 음식들의 대리만족을 카메라에 담은 두 중년의 리얼한 인생 여행기다. 지역 곳곳의 작가들 이야기나 문화적 배경을 많이 이야기해서 굳이 지식을 얻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보다보면 소소한 재미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깨알 같은 영화다.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먹으며 쉴 새 없이 수다를 떨며 티격태격하는 두 남자의 모습을 보는 것은 영화의 또 다른 재미이다. 사업 슬럼프에 빠진 스티브 쿠건은 한 매거진의 제안으로 6일 동안 영국 북부 최고의 6곳 레스토랑을 둘러보다가 여행을 떠나기 전 여자친구에게 바람맞아 친구인 롭 브라이든을 초대한다. 두 사람은 다양한 음식을 맛보면서 인생에 대해 깊이 탐구했다.

1편은 모든 사건의 중심에 스티브 쿠건을 주인공으로 한 듯한 느낌이 들고 롭 브라이든은 조연의 느낌이 살짝 드는 가운데 두 사람의 기싸움도 보인다. 주방에서 식사가 나오기 전 요리를 만드는 과정이 소개되고, 두 사람이 식사하고 음식에 대한 평가를 마친 후 끝없는 대화를 나누다 영화 속의 유명 배우인 앤서니 홉킨스, 숀 코너리 등 배우에 대한 성대모사 개인기 대결을 펼친다. 

원래 목적은 레스토랑 리뷰를 위한 두 남자의 영국 먹방 여행기다. 이들은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흔적을 따라가며 예술과 사랑, 인생 그리고 광활한 자연, 화려한 만찬을 경험하고, 유머가 깃든 대화를 이야기하며 인텔리전트한 잉글리쉬 듀오의 멋을 보여준다. 쓸데없이 아바(ABBA)의 'Winner takes it all'의 가사에 딴지를 걸고, 그 가수와 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먹고 마시고 웃는 여행을 이어간다. 이 영화는 삼시세끼와 알쓸신잡을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이다. 두 사람은 이 영화로 2011년 타임지가 선정한 최고의 연기력을 선보인 남자 배우 5위에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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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식당에서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있는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 사진=영화 홍보영상)

'트립 투 잉글랜드'가 여행지에서 생긴 일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보다 더 중요한 현실의 삶에 대한 이야기하는 영화라면 '트립 투 이탈리아'는 여행지에서 일어나는 일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방식의 영화다. 1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고 했던가? 전편보다 더 괜찮다고 평가받는 속편 '트립 투 이탈리아'에서는 처음 해외에서 촬영한 것으로 피에몬테에서 로마, 그리고 카프리까지, 지상낙원 이탈리아에서의 달콤한 여행을 통해 인생, 사랑 그리고 현재를 되돌아본다. 차원이 다른 인텔리 듀오의 먹고 마시고 생각하는 이탈리아 여행에서 그들은 이들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갈까? 

영국 감독 중 가장 영국적인 색채를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 마이클 윈터바텀이 선보이는 영화 '트립 투 이탈리아'는 영국 대문호 '바이런과 셸리'의 이탈리아에서의 삶을 돌아보고, 영화 '로마의 휴일', '노팅 힐'을 소환하면서 이탈리아 구석구석을 누비며 예술과 삶을 이야기한다. 이탈리아 바다에서 사고로 죽은 셸리의 죽음을 애도하며 중년을 넘어서며 죽음과 가까워지고 있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좀 더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두 중년의 5박 6일 이탈리아 여행기는 2015년 최고의 코미디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다. 말도 안되는 수다를 늘어 놓지만 그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너무 똑같아서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마음마늠은 아직 청춘임을 드러내는 두 주인공의 바다를 바라보는 뒷모습은 기성세대의 모습처럼 비친다. 최고의 드립을 선보이며 쉴 새 없이 끊임없는 대화를 주고 받는 것을 보고 과연 대본이 있는지가 궁금할 지경이었는데 이는 촬영현장에 따라 즉흥적인 연출에 능한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에 의한 것이다. 수다를 나누면서 성대모사 개인기를 펼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대화의 스펙트럼이 아주 다양하여 통속적인 여자 이야기를 비롯하여 역사, 문화, 철학 등을 넘나들며 지적인 얘기를 나눈다. 사진을 왜 자꾸 찍냐는 스티브 쿠건의 질문에 사진 한 장이 글자 천 자와 같아라는 대답을 하는 롭 브라이든의 대화에서 이탈리아의 맛과 풍광을 사진 한 장에 담는 것이 가치가 크다는 대사도 인상적이었다. 영화에서 스티브 쿠건은 '박물관은 살아있다'에서 옥티비아누스 황제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2014년 '필로미나의 기적'으로 영국 아카데미 최우수 각색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솔직하고 유쾌한 대화를 위한 윤활유 역할을 해주는 음식들, 그리고 이들은 이탈리아 해변 도로를 달리면서 자신들이 젊었을 때 들었던 음악인 앨라니스 모리셋의 'Hand in my pocket'란 곡이 배경으로 깔리면서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다. 여행의 아름다운 풍광과 기억을 한순간에 씻어버리는 지하무덤, 시체, 해골 등을 본 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저녁 노을(Im abendrot)'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면서 애잔하고 허전함을 높여 삶이란 굉장히 허무하다는 것을 대비하여 보여준다.

중년의 여행은 돌발 변수도 많다. 이들은 여행 이전에 가졌던 문제들이 여행 중에 그대로 투영되어 나타나는 상황도 나온다. 스티브 쿠건은 이혼한 아내가 키우는 자녀들과 계속 통화를하며, 롭 브라이든은 생계를 위해서 현지에서 오디션 영상을 찍어서 에이전시에게 보낸다. 안정된 삶에 갑자기 찾아온 변화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으려고 애쓰는 중년들의 애잔한 마음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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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시리즈 트립 투 스페인과 마지막 네번째 편 트립투 그리스의 홍보 포스터)

'트립 투 스페인'은 스페인 곳곳을 다니며 맛있는 음식과 멋진 장소를 찾아가는 영화다.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같은 대도시를 우회해서 다니는 여행으로 낯설긴 하지만 황량한 초원과 산골짜기들이 운치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포인트다. 전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100위권에 들어가는 그릴 요리전문 레스토랑 아사도르 에체바리에서 군침이 넘어가는 요리를 곁들여 식사를 하며 맛에 대한 평가를 쏟아낸다. 전 세계 최소의 레스토랑 100위권에 항상 올라있는 아사도르 에체바리는 해산물 그릴요리 전문 레스토랑으로 버킷리스트에 저장해 두고 싶은 곳이다. 스모크한 향이 가득한 식당에서 바베큐 요리를 기다리던 중 스티브 쿠건은 이 식당에게 제공하는 버터의 맛에 대해 '살맛나게 하는 버터'라는 절묘한 표현으로 맛을 극찬했다. 피카소의 고향 말라가의 수도원 식당 엘레렉토리움은 현지 맛집 가운데 전채요리 '타파스'가 유명하다. 벽은 와인 진열장으로 꾸며져 있고, 러시안 샐러드와 하몽, 새우구이도 맛본다.

두 남자는 돈키호테의 발자취를 따라 산탄데르에서 라만차, 그라나다, 말라가까지 이동하는 자동차와 식탁에서 스페인의 풍미를 가득 담은 유머러스한 대화를 나누며 여행을 이어간다. 돈키호테도 세 번의 여행을 했는데 두 파트너도 세 번째 여행을 스페인에서 하게 됐으며, 남쪽 바닷가에 있는 피카소의 고향 말라가에 위치한 엘레펙토리움에서 스페인 최고의 산세바스티안 음식을 맛본다. 

이베리아반도에 정착한 무이인들이 그라나다에 지은 알람브라 궁전은 기독교와 이슬람 건축 양식이 절충된 정교하고 화려한 궁전이다. 풍차의 나라 스페인을 여행하는 것이니 당연히 풍차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풍차에 관한 노래도 듣는다. 이 영화에서는 스페인의 소설가로 '돈키호테' 작가인 미겔 데 세르반데스와 잉글랜드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셰익스피어는 1616년 4월 23일 같은 해 같은 날 사망했다는 신박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첫 번째 편과 두 번째 편이 너무 강렬한 인상을 남겨서인지 스페인 편은 약간 뭔가 부족한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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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차의 나라 스페인에서 돈키호테 복장을 한 두 주인공. 사진=영화 홍보영상)

시리즈의 마지막 편으로 네번째 영화인 '트립 투 그리스'에서는 터키에서 시작하여 오딧세우스의 고향이자 사랑하는 아내 페넬로페가 있는 아티카까지 오딧세우스의 모험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맛있는 음식과 철학, 신화 등에 얽힌 이야기를 두 절친 스티브와 롭의 유머, 연극과 영화의 주요 대사를 양념삼아 곁들였다.

오딧세우스의 이야기를 따라 아테네, 델포이, 이타카까지 펼쳐지는 여정에서도 더스틴 호프만, 믹 재거, 안소니 홉킨스 등의 성대모사 쇼가 펼쳐졌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더 대왕의 이야기, 아테네 전투, 마라톤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리스의 역사를 돌아본다. 그리스인들은 델포이가 세계 중심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리스의 델포이 신전, 파르테논 신전 옆에 있는 원형극장, 아리스토텔레스 기념비를 찾아 가며 그리스의 풍광을 보여주며, 지중해, 맛집, 친구가 있어 더욱 맛의 풍미가 더해진다. 이런저런 설명을 가져다 붙이지 않더라도 두 사람의 유머와 그리스의 향기가 아울어지면서 지루할 틈이 없다. 

오딧세우스가 10년 간의 긴 여행과 모험을 끝내고 고향인 이타카로 돌아오는데 이 두 남자도 그리스의 마지막 여행를 이타카에서 맺는다. 안정감과 근원적인 행복을 제공하는 고향이라는 곳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함께 돌아볼 수 있는 작품이다. "난 나이 들수록 멋있어져"라는 스티브 쿠건의 말에 친구 롭 브라이든이 "넌 젊었을 땐 밥맛이었잖아.."라고 응수하는 절친의 대화가 구수하게 느껴진다. 이타카에서 스티브 쿠건은 부친의 죽음으로 여행 도중 돌아가게 되고, 롭 브라우든은 남아서 부인과 함께 남은 여행을 하는 장면에서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두 사람은 모두 가족에게 돌아가게 되지만 각자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을 꼽을 때 스티브 쿠건은 수 차례의 아카데미 수상을 그리고 '대영제국훈장 5등급'을 받은 바 있는 롭 브라이든은 나의 가족이라는 서로 다른 답을 내놓으면서 서로의 차이를 확인한다. 여행이 끝나면 돌아갈 곳이 있어야 비로소 그 여행은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이거늘. 

'트립 투 그리스' 역시 그리스 역사나 신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으면 좀 더 스토리를 쫓아가기 수월하고, 두 주인공이 영화 속 대사를 따라 하는 모습에서도 영화를 본 사람들만이 웃을 수 있는 포인트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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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고대 원형극장에서의 두 주인공. 사진=영화 홍보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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