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최고의 인공지능(AI) 프로바둑기사는 누구?

김경동 기자
  • 입력 2022.05.11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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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신진서 9단과 중국의 리쉔하오 9단, 일본의 세키코타로 8단의 모습. 사진=중국 바이두, 일본기원 제공)

[이모작뉴스 김경동 기자]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I) 바둑프로그램 알파고(AlphoGo)의 '세기의 대결'이후 세계바둑계는 대전환을 맞았다. AI의 출현은 바둑생태계를 바꿨고, 기존의 바둑 교과서 내용들을 모두 흔들어 놨다. 그렇게 시간은 6년이 흘러 인공지능의 실력은 프로기사를 2~4점까지 접는 실력으로 향상됐으며, 이제는 인간이 도전하기에 너무 높은 벽이 됐다. 

AI의 영향으로 지금 대부분의 현역 프로기사들은 인공지능을 통해 바둑공부를 하면서 전체적인 실력 상향평준화를 이루어 더욱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됐다. 인공지능은 훈련이나 학습에만 이용되는 것이 아니다. 바둑팬들은 방송이나 인터넷에서 프로기사의 해설보다는 인공지능을 더 신뢰하게 되자 프로기사들도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해설하는 경우도 많아지면서 AI의 활용 영역은 더욱 넓어졌다. 

우리나라 바둑 랭킹 1위 신진저 9단의 별명은 '신공지능(申工智能)'

(세계바둑 1인자인 신진서 9단의 별명은 신공지능이다. 사진=한국기원 제공)
(세계바둑 1인자인 신진서 9단의 별명은 신공지능이다. 사진=한국기원 제공)

우리나라 바둑 랭킹 1위 신진서 9단은 '신공지능(申工智能)'이라고 불린다.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최선의 수는 프로기사들 사이에서 소위 ‘블루스팟’이라고 불리는데 신진서가 인공지능의 블루스팟을 정확하게 알아 맞히면서 얻은 별명이다. 신진서 9단은 최근까지 중국 기사를 상대로 24연승을 기록하자 농심배 최종국에서 신진서에게 패했던 중국 랭킹 1위인 커제 9단은 "알파고보다 더 강하다", "인간의 바둑이 아니다"라며 놀라면서 치팅(부정행위) 의혹을 제기할 정도로 신진서 9단의 바둑은 인공지능에 가깝게 다가 서 있다. 

지난해 주목 받는 신예들 가운데 이창석 7단, 심재익 4단, 홍무진 4단 등도 AI 애용자다. 특히 20세의 늦은 나이에 입단한 뒤 한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이창석은 2020년 연말 경 AI 공부를 위해 고가의 컴퓨터를 구매해 AI공부에 몰두했다. 이후 GS칼텍스배, 용성전 등에서 맹활약했으며, 크라운해태배에서 생애 첫 우승을 경험했고, 2021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본선 8강 에도 진출했다. 2021년 초 랭킹 18위였던 이창석은 그해 6월 처음으로 TOP10에 진입했으며, 2022년 2월 현재 랭킹 6위에 올랐다가 5월 현재 13위에 이름을 올렸다.

30대 초반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원성진 9단은 AI를 접하면서 바둑공부가 더 재미있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 AI로 가능한 한 많이 (변화도를)찍어보고, 익히다 보면 어떤 감이 생겨요. 인공지능 수법이 제 몸에 스며드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감각으로 지난 2020-2021한국바둑리그에서 시즌 17승(정규리그 14승, 포스트시즌 3승) 무패의 맹활약을 펼쳤다. 2020년 1월 랭킹 22위였던 원성진은 2022년 5월 현재 랭킹 6위에 뛰어 올랐다.

2020년 한승주 7단(당시)은 266연승을 기록 중이던 중국의 AI 골락시(Golaxy)를 상대로 흉내바둑을 두어 승리를 거두며 골락시에게 첫 패배를 안기면서 유명세를 탔다. 그는 지난해 11월 제3회 대통령배 전국 바둑대회에서 김지석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으며, 입단 후 첫 우승으로 우승과 함께 특별 승단 규정에 따라 九단으로 승단했다. 또한 지난 1월 크라운해태배 준우승, 2021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본선 8강 등의 성적을 거두며 2020년 1월 랭킹 32위에서 꾸준히 랭킹을 끌어올려 2022년 2월 현재 랭킹 8위까지 올라갔다 5월 랭킹에서 15위로 주춤했다. 그 역시 한 인터뷰에서 이런 성과 뒤에 인공지능이 있었음을 밝힌 바 있다.  

中 리쉔하오 9단, '헌공지능(軒工智能)'으로 불리며 급부상

(중국랭킹 1위 커제 9단의 대국 모습. 사진=중국 바이두)
(중국랭킹 1위 커제 9단의 대국 모습. 사진=중국 바이두)

한국 랭킹 1위 신진서는 AI를 통해 공부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반면 중국 랭킹 1위 커제 9단은 알파고와의 패배 탓인지 AI바둑에 대해서 그렇게 친화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젊은 기사들이 AI로 바둑공부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실력이 상향평준화 되면서 커제의 랭킹 1위 자리는 많은 도전을 받고 있다.  

최근 중국의 리쉔하오 9단은 2022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대표로 선발됐고, 이어 란커배에서 우승까지 차지하면서 중국바둑팬들에게 '헌공지능(軒工智能)'이라고 불리고 있다. 역시 인공지능의 수순과 부합율이 높아지면서 붙여진 별명으로 신진서의 기세에 눌린 중국바둑팬은 은근히 리쉔하오가 신공지능에게 맞설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올해 1월 초 발표한 랭킹에서 16위를 차지했던 리쉔하오 9단은 12위(2월초)-->16위(3월초)-->14위(4월초)에 올랐다가 선발전과 란커배를 거치면서 4월 한달 동안 17승 5패의 성적을 거두며 단박에 6위(5월초)로 껑충 뛰어 오르며 TOP10에 진입했다. 하지만 신진서보다 5살이나 많고 아직까지 큰 승부를 치러본 경험이 부족해 한 두 차례 신진서를 이길 수는 있을지 몰라도 신진서의 진격을 막기에는 부족할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평가다. 

커제를 위협하며 급성장하고 있는 구쯔하오 9단, 양딩신 9단, 딩하오 9단, 왕싱하오 6단 등은 적극적으로 AI를 받아들인 세대다. 구쯔하오는 “AI가 기사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온 지 5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됐지만 5년이 지난 후 현재는 모두가 교본으로 삼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예를 들어, 이전에 어떤 국면에서 우리는 아무리 오래 생각해도 이해가 안됐는데 AI의 착수법을 보고는 눈이 깨이면서 바둑이 이렇게도 둘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수상전 수읽기에서도 AI의 가장 큰 역할은 우리의 생각을 넓혀주고 풍부하게 해주어 모두의 기예 증진에 호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딩신은 “이전에는 하나의 정석에서 한수의 가치를 판단하기 어려웠지만 현재는 AI를 통해서 가치를 측정할 수 있게 됐다. AI가 3-3침입을 좋아하는 것은 그가 화점으로 귀를 지키는 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3-3침입으로 귀를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떄문이다. 하지만 AI는 또 초반에 3-3으로 지키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데 이는 3-3을 차지한 후 다음 한수의 확장성이 떨어지기때문이다. AI가 보기에 상대가 먼저 화점을 차지하고 소목으로 귀를 지키면 효율이 높다고 보기 때문에 AI는 이를 막기 위해 먼저 3-3에 뛰어드는 것이다”라고 자체 분석했다.

양딩신은 “AI의 예사롭지 않은 가치 판단 때문에 과거에 유행했던 화점, 소목+외목지킴, 3연성, 중국류 등의 포석은 거의 퇴역한 고수들의 바둑으로 전락했다. 각 돌의 효율의 문제에 있어서 AI는 ‘소목+외목지킴’의 돌의 효율은 그다지 높지않고 탄력성도 떨어져 AI는 두 칸 벌려 귀를 지키는 방식을 추천한다”고 밝혔다.

상하이 출시의 왕싱하오의 스승은 동향 선배인 후야오위 9단이다. 하지만 인터넷대국에서 신진서 9단, 박정환 9단과 스파링대국을 엄청 많이 두어 우스갯소리로 왕싱하오의 스승은 신진서, 박정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인터넷대국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왕싱하오 역시 AI를 통해 한국 정상급 기사들과 둔 바둑을 분석하고 연구하면서 급속하게 성장한 케이스다.

2018년 4월, 국가대표팀이 절예를 도입한 후 중국바둑은 6회 세계대회 우승을 차지했고 농심배, 마인드스포츠대회 등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18년 12월 26일, 천야오예는 천부배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 AI로 공부한 덕분이라고 소감을 밝힌 바도 있다.

일본 바둑계에는 'AI 소물리에' 세키코타로

(일본 천원타이틀 보유자로 'AI소물리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세키코타로 8단. 사진=일본기원 제공)
(일본 천원타이틀 보유자로 'AI소물리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세키코타로 8단. 사진=일본기원 제공)

한때 세계바둑계를 주도했던 일본은 이창호, 이세돌, 커제 등장 이후 우리나라와 중국바둑에 밀리면서 오랫동안 침체기를 겪었다. 하지만 일본 바둑계에도 역시 AI의 바람이 불면서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2001년 11월 28일생의 갓 20세 신예 세키코타로(関航太郎) 7단이 제47기 천원전 도전5번기에서 세키코타로 7단이 타이틀 보유자인 이치리키료(一力遼)를 3-1로 생애 첫 일본 7대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는 이야마유타 9단의 천원타이틀 역대 최연소 기록인 22세 5개월을 10기만에 갱신한 기록이며, 입단 후 4년 8개월에 7대 타이틀의 하나를 획득하는 것은 사상 최고 속도다. 

이후 세키코타로의 공부 방식이 많은 관심을 끌었다. 세키코타로가 입단할 때는 마침 AI바둑프로그램이 보급화되어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시기였다. 많은 기사가 그렇듯 AI를 상대로 바둑훈련을 하고 자신이 대국한 기보의 옳고 그름을 AI에게 물어보면서 공부하는 분위기가 됐다. 많은 기사가 AI의 행마를 배우게 되면서 특히 초반에 상대도 AI를 연구하여 대응하면서 새로운 벽에 부딪쳤다. 이에 세키코타로는 AI를 활용하는 방법을 바꿨다. 즉, AI끼리가 대국하는 것을 보니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수를 연발하는 것에 감탄하며 AI의 행마를 감상하면서 분석했다. 상식과 고정관념에 사로 잡힌 인간으로서 도저히 사용하기 힘들고 생각할 수도 없는 수를 수 백 번 배운다기보다 취미처럼 감상하는 사이에 그의 감각은 인공지능의 감각과 닮아가고 있었다. 

그는 기보를 보면 이것이 AI의 착수인지 아닌지 감별이 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와인에 대해 깊고, 정확한 지식을 가진 전문가를 호칭하는 '소믈리에'에 비유하여 'AI소믈리에'라고 불린다. 우리나라에 '신공지능'으로 불리는 신공지능이 있다면 일본에는 'AI소물리에'로 불리는 세키코타로가 있다. 세키코타로 7단은 "AI끼리 대국 하는 것을 보는 일이 많다. 인간이 생각하기 힘든 수를 내놓는 것이 흥미롭다"라고 말했다. 그는 상식에 사로 잡혀 있는 인간은 둘 용기도 생각도 없는 수를 몇십번이고, 몇백번이고 배운다기보다 취미처럼 보고 있는 사이에 감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AI 출현으로 인해 프로기사들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된 것은 물론이고 일본 여자바둑기사의 실력도 덩달아 강해져 여자기사들이 7대 타이틀전 본선 진출에 하는 상황도 나왔다. 과거 여자기사가 남자기사를 이기는 것 자체로 큰 뉴스거리가 됐지만 후지사와리나(藤沢里菜) 등 지금은 간간히 7대 타이틀 본선 진출의 기적을 이루고 있다. "상대가 누구든 이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대국에 임하고 있다"라고 밝힌 후지사와 여류 본인방의 목표는 기성전 리그, 명인전 리그, 본인방전 리그의 '3대 리그'에 진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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