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투어] 남자가 엿보아야 할 세 여자 이야기...영화 ‘인연을 긋다’ 시사회

고석배 기자
  • 입력 2022.05.19 16:42
  • 수정 2022.05.19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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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일, 인연으로 맺어진 세 여인의 특별한 동행이 시작된다

('인연을 긋다' 시사회. 촬영=고석배 기자)

[이모작뉴스 고석배 기자] 영화 '인연을 긋다'는 1분에 33 번 돌아가는 LP판 같은 영화이다. 먼지에 싸이고 세월에 긁혀 틱틱거리는 소리가 귀를 거슬리지만, 매끈한 디지털 음원으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고혹적인 영혼의 울림이다.

LP판 같은 영화

고부갈등, 동서 간 갈등, 치매, 얼마나 레트로한 영화 소재인가? 지독한 시집살이로 도망치듯 외국으로 가 20년만에 돌아온 막내며느리와 나이가 두 살 어린 맏며느리, 그리고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가 함께 길을 떠난다. 목적지는 요양병원. 영화에는 현란한 카메라웤도, 화려한 편집장치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단지 여수의 여자만과 광양의 매화마을 풍광이 그나마 숨통을 틔울 뿐 자동차 여행 내내 세 여인 간에는 팽팽한 긴장의 연속이다. 세월은 LP판처럼 돌고 돌아 시어머니의 기억은 잃었지만 두 며느리의 가슴 속 앙금은 턴테이블의 바늘처럼 늘 제자리다.

(포스터=㈜해오름ENT 제공)

감성로드영화

보도자료에는 영화를 감성로드영화라 홍보하지만 전혀 감성적이지 않다. 특히 중년 남성들에게는 무대위에서 세여자가 연극하는 것을 몰래 엿보는 느낌이다. 눈물, 콧물 빼다 카타르시스를 얻는 아리스토텔레스식 연극이 아니라 밑바닥까지 보여주며 위선과 위악에 속지 말라 계속 메시지를 보내는 브레히트의 서사극이다. 주연은 세 명의 여자이지만 남자가 꼭 보아야 할 영화이다. 아내 몰래 먼저 보길 강력히 추천한다. 그리고 안 본 척 아내와 함께 다시 보는 것은 선택사항이다.

(사진=㈜해오름ENT 제공)

연기력 삼국지 

'인연을 긋다'에서 가장 조심해서 감상해야 할 포인트는 배우들의 미친 연기력이다. 50년간 연극과 영화, 드라마를 오가며 100여편의 작품을 소화한 시어머니역의 배우 정영숙이야 워낙 국대급 연기력이지만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대중들에게 감동의 잔상이 아직 남아 있는 막내 며느리 김지영의 탄탄한 연기력에 자칫 넋을 놓을 수 있다. 여기에 카멜레온 같은 연기 변신의 귀재 조은숙이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보여준 신선한 충격에 이제 원숙미까지 장착해 연기 대결에 뛰어든다. 마치 삼국지 같은 세 배우의 연기에 푹 빠지면 자칫 영화의 메시지 마저 놓칠 수 있다.

(광양 매화마을. 사진=㈜해오름ENT 제공)

영화 속 '긋다'의 의미?

'긋다'의 사전적 의미에는 '경계를 분명하게 짓는다‘는 부정적 의미와 비 등을 '잠시 피한다'는 긍정적 의미가 있다. 두 의미중 어느 쪽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정섭 감독은

“’인연을 긋다‘는 인연을 ’잇다‘라는 의미도 되고 두 사람의 인연을 ’끊다‘라는 의미도 된다. 핏줄하나 섞이지 않은 여자들 간의 관계이기에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 인연을 이을 수도 있고 끊을 수도 있다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며 정답을 회피한다.

(사진=㈜해오름ENT 제공)

틱틱 튀는 반전과 복선 

어느 영화나 반전의 장면은 있다. 영화 초반, 큰며느리 조은숙이 운전대를 잡고 앞좌석에 앉으려는 작은며느리 김지영을 뒷좌석 시어머니 옆에 앉힌다. 영화 중반의 어느 순간 운전대는 김지영이 잡고 조은숙은 시어머니 옆이 아닌 앞자리 조수석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에는 복선이 촘촘하게 숨어있다. 숨은그림찾기처럼 몰두하지 않으면 그 복선을 못 발견할 수 있지만 영화는 마치 관객이 알아서 찾아내라며 불친절하다. 때로 LP판처럼 틱틱 튀며 건너뛴다.

(왼쪽부터 신준영대표, 이정섭 감독,정영숙 배우, 조은숙 배우. 촬영=고석배 기자)

고령화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  

이 영화의 제작사인 ㈜해오름ENT 신준영 대표

“고령화 시대에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노인’과 ‘치매’ 문제에 대해서 이 영화를 통해 한번쯤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다”며 코로나 이전에 촬영한 이 영화를 어려운 난관이 있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개봉을 결심하게 된 소감을 밝혔다.

(조은숙 배우. 촬영=고석배 기자)

시사회가 끝난 뒤 간담회에서 배우 조은숙은

"제 아이도, 가끔 엄마 왜 그때 그렇게 말했잖아? 반문하면 내가 정말 그런 말을 했었나 생각하게 돼요. 망각은 나이 든 노인에게만 있는게 아니고 누구에게나 일상과 함께 하는거예요. 결국 인간은 매 순간 망각하며 사는 동물이라는 생각을 했다"며 불치병이라 터부시하지 말고, 우리가 모두 겪는 일상이라며 치매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호소한다.

70대에도 건강을 자랑하며 왕성한 연기활동을 하는 정영숙은

우리가 하나 더 생각해야 할 점은 영화에서도 자식으로 인해 쇼크를 먹었잖아요. 쇼크를 받는 것도 치매의 한 요인이 되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되도록이면 부모에게 그런 쇼크를 주지 않아야 되겠고, 전화 한마디라도 살갑게 통화했으면 좋겠다며 배우가 아닌 노인세대를 대변해 한마디 덧붙였다.  

영화 외적으로 한 가지 아쉬운게 있다면 대사 중에 ‘요양원’과 ‘요양병원’이 혼용되는 점이다. ‘요양원에 버린다’는 표현이야 스토리 전개상 불편을 감수할 수 있지만 ‘요양원’과 ‘요양병원’은 현실에서 격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정영숙 배우. 사진=㈜해오름ENT 제공)

'가족'이라는 인연, 동행 

최근 문화계에서 레트로 바람이 불고 있다. MZ세대 젊은이들이 오디션 프로에서 기가 막히게 편곡한 7080의 POP을 듣고서 황학동 시장을 뒤지며 LP판을 찾고 있다. ‘원곡’이 듣고 싶어서다. 아무리 핵가족화 하고 비대면화 된다해도 가족의 갈등 문제는 ‘원곡’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가족은 ‘인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족’은 세상의 비를 잠시 긋고 쉴 수 있는 ‘집’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짜 가족이 될 수 있을까?“

5월 26일, 인연으로 맺어진 세 여인의 특별한 동행이 시작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로 만난 정영숙, 조은숙 배우. 촬영=고석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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