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이다⑭] ‘동학실천 시민행동' 남해 농활(農活)을 가다2
[삶은 여행이다⑭] ‘동학실천 시민행동' 남해 농활(農活)을 가다2
  • 윤재훈 기자
  • 승인 2022.05.30 11:52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학실천 시민행동', 남해 농활(農活)을 가다

"약무호남 시무국가

(若無湖南 是無國家)"


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를 보존할 수 있었을까?

(노량진 대교, 촬영=윤재훈)
(노량대교,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우리는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에서 시작해, 종착지인 이곳 남해까지 내려오는 국도 19호선을 따라왔다. 국도의 총거리는 480.6km이다. 마침내 1973년 준공되어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현수교로써 미국의 금문교를 빼다 박은 듯한, '남해대교’를 건넌다.

이 근처에는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 유허지’가 있으며, 2001년부터 해마다 남해대교 아래 해협에서는 ‘이충무공 노량해전 승첩제’가 열린다. 건너편으로는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노량해전의 이름을 딴 노량대교가 보인다. 임진왜란 때 노량해전이 일어났던 장소로, 다리의 디자인은 이순신 장군의 대표적인 전술인 ‘학익진'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약무호남 시무국가

(若無湖南 是無國家)"


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를 보존할 수 있었을까?

또한 노량대교는 세계 최초로 경사 주탑과 3차원 케이블 등 첨단 기술이 적용됐다. 주탑 높이도 148,6m로 대한민국에서 세 번째로 높다. 또한 세계 최초로 8도 기울어진 주탑이 더 많은 힘을 부담하지만, 앵커리지 크기를 11% 줄이고, 거리도 줄이는 데 도움이 됐다. 우리나라가 갈수록 기술력이 발달하니 세계 최초도 계속 나오는 듯하여 자부심까지 인다. 왕복4차로에 최대경간장이 890m로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긴 다리이다. 첫 번째는 최근에 여수 광양간 설치된 ‘270m의 이순신 대교’이며, 두 번째로는 203m의 ‘울산 대교’이다.

(어서 가자, 마늘밭으로. 촬영=윤재훈)
( 어서 가자, 마늘밭으로. 촬영=윤재훈 기자)

마침내 마을 회관에 도착했다. 시원하게 소나무 그늘이 있고 그 아래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마을 사람들이 정답게 나오더니, 장갑과 가래떡, 우리 회원이 기증한 수건을 준다. 아마도 이 가래떡이 점심인 듯한데, 농부들의 마음이 바빠 한가하게 점심을 먹을 시간은 없는 듯하다. 해가 이미 정오를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1박 2일이니 우리의 농활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미지수이다.

대부분 트럭의 짐칸에 올라타고 출발한다. 물론 교통위반이지만 이 바쁜 농번기철에는 경찰관들도 봐줄 듯도 하다. 그러나 만약, 어떤 작은 불상사라도 나면, 서로 복잡할 듯하다. 기사님은 바쁜지 골목 커브길이나 턱에서도 별로 속도를 줄이지 않아, 나이 드신 분들은 허리를 조심해야 할 것 같다. 문득 동남아 오지 마을 비포장길을 여행하면서, 트럭 뒤 칸 비닐막 속에서 심하게 요동쳐 놀랬던 일이 생각난다.

(가지런하게 이발 되어가는 머리 같다. 촬영=윤재훈)
(가지런하게 이발 되어가는 머리 같다. 촬영=윤재훈 기자)

마치 새벽 막일을 나가는 사람들처럼, 팔려가는 짐승처럼 골목길을 빙글빙글 돌아 한참을 간다. 우리가 간 밭은 이 마을 이장님 마늘밭이다. 1,000평 밭인데 이장님이 아침부터 시작했는지, 별로 뽑지를 못했다. 벌써 한낮의 태양은 화염처럼 우리의 등짝을 때린다.

10여 명이 배정됐으나 큰 밭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작아 보인다. 그래도 오후에는 점점 구름이 끼여가더니 햇볕이 들어가 그나마 할 만하다. 출발할 때 버스 안에서 우리가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오자는 말이 주효했는지 참, 열심히들 뽑는다. 처음에는 마늘을 뽑는 것도 영, 낯설더니 점차 이장님이 하는 것은 보고 손에 익어가자, 속도들이 빨라진다.

"눈처럼 게으른 것이, 없다."

언제 할까 싶었는데, 이발하는 아이의 머리처럼 점점 뽑혀 바닥에 누워있는 마늘대들이 늘어난다. 꼭 추수할 때 나락이 길게 누워있는 듯하다. 힘들이 부치는지 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속도도 늦어진다. 아무래도 새참 생각이 나고 막걸리라도 한 잔 마셔야 힘이 날 듯하다. 카드를 내주며 이장님께 새참을 부탁했다.

몸살림 강사를 하는 분이 집에서 느린 마을 막걸리를 5병 가져와 아침부터 차에서 마시기 시작하더니 아직 남았는지 한 잔씩 돌린다. 한 잔을 마시고 나니 갈증이 약간, 가신다. 그런데 막걸리를 사러 오토바이를 타고 간 이장님은 한 시간이 훨, 지났을 것 같은데, 도무지 올 기색이 안보인다. 누군가 우리가 막걸리를 마셔버리면 일 진도가 안 나가니까, 일부러 오시지 않는 것이냐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뜸북뜸북 뜸북새
산~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늪~에서 울 제


우리 오빠 말 타고
한양 가실 때
비단 구두 사 가지고
오신다던데.

점차 잊어버려 가는 옛 마을 누이가, 갑자기 마늘밭에서 애틋하게 생각난다.

(어서 가자. 빗줄기를 피해. 촬영=윤재훈)
(어서 가자. 소나기를 피해. 촬영=윤재훈 기자)

허리를 들고 건너편 밭을 바라보니 작년에 귀농했다는 초보 농부가 장모님과 엎드려 마늘을 뽑고 있는데, 도무지 속도가 나지 않는 듯하다.

두터비 파리를 물고 두험 우희 치다라 안자
것넌 山 바라보니 백송골白松骨이 떠잇거늘
가슴이 금즉하여 풀덕 뛰여 내닷다가
두험 아래 쟛바지거고


모쳐라 날낸 낼싀만졍 에헐질 번하괘라.

사설 시조의 절창이다. 중, 고등학교 때나 들었을 법한데, 잊혀지지 않는 시조 중의 하나다. 17, 8세기에 양반들의 허장성세를 통렬하게 비웃었는데, 그 시절에 탐관오리들은 알기나 했을까? 지금도 정치권에 도둑놈들이 판치는데, 인류의 역사 속에서는 사라지지 않을 듯하다.

족히, 시간 반 정도가 지났을까, 드디어 이장님이 오셨다. 우리는 환호를 지르며 농로로 나가 바닥에 박스를 깔았다. 한 잔씩 따라 막 마시려고 하는데, 꾸물하던 하늘에서 마침내, 비를 쏟아낸다. 이장님은 비설거지를 해야 한다고 서둘러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진다.

잠깐 지나가는 소나기려니 하고 우리는 마시는데 빗방울이 굵어지고 쉬, 멈추지 않는다. 따라놓은 막걸리 위로 빗물이 퐁당, 퐁당, 떨어지며 막걸리 반, 물 반이 된다. 고향 집 처마에서 하염없이 떨어지던 빗물을 바라보며 마당이 움푹, 패이던 그 시절 고향이 그립다. 초등학교 시절 비 오는 날 어느 원두막으로 피하던, ‘소나기’ 동화 속의 소녀도 따라 나온다.

어른들도 어린 시절 개구쟁이들처럼, 누구 한 사람 일어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빗방울은 계속 거세지고 우리는 종이 박스를 찢어 머리를 덮으며 깔깔거렸다. 옷들은 모두 후줄근히, 젖었다. 그래도 모처럼 시골에서 맞는 빗줄기들이 즐거운지, 깔깔거리는 소리만이 하늘로 올라간다.

옆으로 비닐하우스가 쭉, 쳐 있어 정찰 나갔던 일행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하자, 서둘러들 일어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순간만 같아라. 촬영=윤재훈)
( ‘동학실천 시민행동' 남해 농활(農活),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순간만 같아라. 촬영=윤재훈 기자)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다시 술판을 폈다. 뒷편에는 비닐하우스 주인인 듯한 분이 일에 여념이 없다.

"술맛은 마시는 사람과 분위기에 따라,
그 맛이 배가되는 것 같다."

오늘처럼 좋은 사람들과 농활을 하다 새참을 먹으니, 이보다 맛있는 술은 쉬, 찾기 힘들 것 같다. 대부분 5~60대가 넘어간 사람들이지만 웃음소리가 가시지 않는다. 매 삶이 이 순간만 같으면, 이 자리가 바로 천국일 것 같다. 어디 극락과 낙원이 따로 있겠는가.

"처처(Jesus 處處)예수, 사사불공(事事佛供)이다. "

(고맙습니다. 우리 밭까지 해 주어서. 촬영=윤재훈)
( ‘동학실천 시민행동' 남해 농활(農活), 고맙습니다. 우리 밭까지 해 주어서, 초보 농부님들. 촬영=윤재훈 기자)

오늘 할당량은 마쳐야 한다. 우리는 서둘러 다시 밭으로 향했다, 500평 이상 했으니 금방 끝날 듯도 하다. 손이 빠른 사람과 같이 일하지 말라고 한다. 그만큼 빨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속알머리(?) 없는 분과 한 고랑을 하는데 얼마나 빨리 나가는지, 따라가기가 힘에 부칠 정도다. 그래도 4시 정도가 넘어가니 거의 밭일이 끝났다. 우리는 건너편 마을에 있는 수돗가로 가서 등목을 하고 막 쉬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두 사람이 엎드려 있는 초보농부의 마늘밭을 이장님은 마음에 걸리는 듯하다.

서둘러 가보니 다른 팀들까지 붙어 그 밭에 마늘대를 뽑고 있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초보 농부답게 옆 밭에 비해 마늘의 크기도 덜 자란 채 뽑혀있다. 500여 평은 될 것도 같은데, 20여 명이 붙으니 순식간에 줄어든다. 그런데 그 옆 밭은 보니 이 밭은 아직 시작도 안했다. 주인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장님이 연락을 하고 우리는 그 밭의 마늘까지 다 뽑았다. 이장님께서 참, 눈물겹도록 고마우신 모양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임인출 2022-06-05 17:48:38
어제 일 처럼 농활 기억이 선합니다..
옆 마늘밭에 또 그 옆까지 일을 굉장히 많이 하셨군요.^^.
이렇게 우리가 일하고 그것을 글로 접하니 더 감회가 새롭습니다.
고맙습니다.~*

윤재훈 2022-05-27 18:01:58
"댓글은 필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