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이다⑯] ‘동학실천 시민행동' 남해 농활(農活)을 가다 4

윤재훈 기자
  • 입력 2022.06.08 14:07
  • 수정 2022.06.08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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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실천 시민행동', 남해 농활(農活)을 가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If you want to go fast, go alone,
if you want to go far, go together.

- 인디언 속담

(농활 뒤의 저녁이 꿀맛이다. 촬영=윤재훈)
(농활 뒤의 저녁이 꿀맛이다.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있으니, 배가 굴풋해 온다. 하루 종일 평소 쓰지 않던 근육을 쓴 도시 사람들은 온 몸이 뻐근할 것이다. 점심도 제대도 먹지 못하고 가래떡 하나와 막걸리 한 잔으로 때웠으니 더욱 그러하리라.

다시 각자의 밭주인의 트럭 뒤에 올라타고 마을에서 준비해 둔 회관으로 갔다. 바닷가 마을답게 푸짐한 회와 맛있는 먹거리에 막걸리까지 넉넉하게 준비되어 있다.

그러나 저녁에는 마을 사람들을 위안하기 위한 공연이 준비되어 있으므로, 그리 많은 시간이 남아 있지 않았다. 식탁 위에는 왁자하게 술잔이 돌고 그 웃음 속에 하루의 피로가 날아간다.

첫 공연은 대북(큰북) 연주단이다. 우렁차고 깊이 있는 울림이 바다마을을 감싼다. 이어 동학 풍물패의 요란한 소리가 마을 사람들을 부르고, 여기저기 정자 아래까지 제법 사람들이 앉아있다. 몇 사람은 무대로 나와 덩실덩실 어깨춤을 춘다.

(노래자랑 출연자들. 촬영=윤재훈)
(마을주민들과 '동학실천 시민행동' 회원, 노래자랑 출연자들. 촬영=윤재훈 기자)

이어 마을주민들과 '동학실천 시민행동' 회원들의 노래 솜씨 자랑이 펼쳐진다. 마땅한 상품도 없었는데, 흥을 돋우기 위해 동행 대표가 10만 원 상금을 걸자, 여기저기 찬조금이 들어와 순식간에 25만 원이 모여 노래자랑의 흥을 돋운다. 시상식에서 필자도 5만원의 거금을 상금으로 받았다. 생전 처음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수준 높은 가족풍물패 '동동'의 공연이 흥겹게 펼쳐지면서, 마을 사람들과 동학 풍물패가 어울려 한바탕 대동놀이가 펼쳐진다.

이제 9시가 넘어가니 시골 마을은 잠들어야 할 시간이다. 농부들은 꼭두새벽부터 들로 향할 것이다. 그분들의 덕분에 도시민들은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사람들은 쉬, 그 흥이 식지 않는지, 삼삼오오 앉아 들어갈 줄을 모른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다.

시골이 살아야 사람도 살 수 있다.
결코, 그분들의 은덕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쌀 미(米)자의 의미처럼,
팔(八) 십(十) 팔(八) 번의 농부의 손길이 들어가야
한 톨의 쌀이,
우리 입에 들어온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촬영=윤재훈)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촬영=윤재훈 기자)

숙소는 마을 회관에 준비되어 있다. 오랜만에 넓을 방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자야 한다. 모든 것이 핵가족화 되어 가는 이 시대에, 모처럼 많은 사람과 함께 자는 셈이다. 동동 풍물패에 두 아이는 무척 낯설어할 풍경인 듯도 싶다.

그동안 2년여 코로나로 꼼짝, 못했던 사람들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짭짭할 해감내에, 그대로 자기에는 너무 아쉬운 모양이다. 파도 소리가 창문을 넘어 들어오고 금방이라도 갈매기가 끼륵끼륵 울며 방 안으로 들어올 것 같다. 누군가가 술을 사러 가고, 그대로 잘 수 없는 사람들은 바닷가로 모였다. 옆집에 여자분들의 숙소에서도 우르르, 몰려나온다.

그 옛날 모닥불을 피워놓고 빙 둘러앉아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나 ‘고래사냥’을 부르던 일이 생각난다. 야전 전축과 판 몇 장 싸 들고 ‘디지’와 ‘렛미’, ‘쿵푸 파이팅’에 맞춰 막춤을 추던, 검정 교복 까까머리 아이들도 보이는 듯하다.

(아침부터 햇살이 따갑다. 촬영=윤재훈)
(남해 농활(農活) 아침부터 햇살이 따갑다. 촬영=윤재훈 기자)

오늘도 새벽부터 밭일이 있다. 아직 시간이 멀었는데도, 더 이상 잘 수 없는 사람들은 일어나 소란하다. 어디선가 장닭이 울고 아까부터 정기적으로 꾸르륵, 꾸르륵, 나는 소리는 누군가의 알람 소리인 줄 알았는데, 창가 아래 칠면조가 내는 소리였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벌써 일출을 보러 나간 모양이다.

6시가 넘어가자 마늘밭 주인들이 차를 몰고 나와 사람들을 싣고 떠난다. 꼭 새벽일 나가는 일꾼들을 점지해 떠나가는 십장(什長) 같다. 매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필자로서는 참, 고역이다. 우리는 개인택시를 타고 가는데, 너무 먼 거리를 가 택시비가 은근히 걱정되어 물으니, 군에서 지원한다고 한다. 뒤에 알고 보니 우리는 그 기사님 마늘밭에서 일했다.

이미 농부의 아내는 나와 있었으며 오늘은 마늘 꼭지를 자르는 일이었다. 대부분 밭들은 마늘을 다 뽑았다고 한다. 동그랗게 낫처럼 돌아가는 칼날에 마늘대를 잘라 내는 일인데, 시퍼렇게 날이 선 칼날이 보기만 해도 섬찟하다. 여성분들은 그 칼날이 무서워 혼났다고 한다.

농부는 어부와 택시 기사까지 세 가지 일을 한다. 참 부지런한 사람인 모양이다. 그리고 농번기에는 바쁜 일손을 돕기 위해서 도시에 사는 딸과 사위, 아들, 며느리까지 와서 돕고 있다. 옆에는 며느리가 마늘 대를 잘라 내고 있는데, 그 손이 얼마나 빠른지 우리와 비교할 수가 없다. 그 모습을 힐끔힐끔 보며 잘라나가니 우리도 갈수록 속도가 빨라진다. 이대로 한 달 정도 묵으면 밥값을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아침 10시까지 쉴 틈도 없이 잘라 냈다. 따님이 새참이라고 빵과 물을 가지고 나왔다.

(여심(女心)은 식을 줄 모른다. 촬영=윤재훈)
(여심(女心)은 식을 줄 모른다. 촬영=윤재훈 기자)

아침은 문어 죽이다. 오늘은 일요일이고 남도의 끝에서 다시 서울까지 올라가야 하므로, 사람들은 마음이 바쁜 모양이다. 여행을 나오면 온전히 두고 온 것은 잊어버려야 하는데, 그것이 잘 안되는 모양이다. 서둘러 식사를 하고 내년에 또 농활을 올 것을 기약하며, 서둘러 마을을 떠났다. 그냥 가기가 섭섭하여 남해의 최고의 명승인‘ 보리암’을 가기 위해서다.

그러나 코로나로 ‘잠시 멈춤’을 했던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교통이 막힌다고 하여, 코스를 ‘독일인 마을’로 바꿨다. 오래전 고픈 배를 잡고 독일로 일자리를 찾아 조국을 떠났던, 광부와 간호사들이 귀향해서 사는 마을이다. 우리나라 근대화의 기틀은 이런 분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세계 10위 안의 경제 대국이며 한류의 놀라운 위업들은, 이런 분들의 희생 속에 이루어졌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창선도 일출. 촬영=윤재훈)
(창선도 일출. 촬영=윤재훈 기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이번 농활에 대한 서로의 감회들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그중에서도 박경수 공동대표의 말이 특히 가슴에 와닿았다.

집행부의 일원은 누구를 지시하는 자리가 아니다.
자신들을 ‘큰 일꾼, 작은 일꾼’으로 사용해 달라는 그 소박한 믿음이,
단체의 미래를 밝게 해주는 것 같다.

어디로 봉사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더불어 사는 대동(大同) 세상,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너는 나로 더불어 살고’ ,
함께 어깨춤을 추며, 서로의 등을 두드리며 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이면 좋겠다.

인디언 속담 한 구절이 더욱, 생각나는 이번 남해 여행이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If you want to go fast, go alone,
if you want to go far, go together.

- 인디언 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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