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문학기행①]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을 찾아서1

윤재훈 기자
  • 입력 2022.06.23 11:11
  • 수정 2022.09.15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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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을 찾아서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 메어 우는데

 - ‘목마와 숙녀’, 박인환

(박인환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서울 문학기행.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희의 감칠맛 나는 목소리로 우리들의 젊은 날 혼돈과 황홀로 몰아넣었던 시, 막연한 애수에 젖어 어디론가 머언 산 속이나 무인도로 떠나고 싶게 만들었던 시, 음악다방에 가서 DJ에게 꽤나 신청했었던 시. 그 시절의 목마와 숙녀들은 지금쯤 무얼하고 있을까?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서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 메어 우는데

- ‘목마와 숙녀’, 박인환

다음은 영문으로 감상해 본다. 이 시집을 영어로 옮긴이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하는 시인 여국현이다. 원 시집의 시 56편을 영역했다. 1955년도에 발간된 시집을 옮겨놓아서 가을에 읽기 좋다.

Having a drink
We are talking of Virginia Woolf’s life
And the hem of a lady’s dress who has gone riding on a wooden horse.
It has disappeared into the autumn tinkling just its bells,
Leaving its owner behind A star falls from a bottle.
The heart-broken star is shattered lightly against my heart.
When the girl I kept in touch with for a while
Grows up by the grasses and trees in the garden,
Literature dies away and life fades out
And even the truth of love forsakes
The shadows of love and hate,
My beloved one on the wooden horse is not to be seen.
lt’s true that the days come and go
The time of us withers away to avoid isolation
And now we should say goodbye
Hearing the bottle falling by the wind,
We must look into the eyes of the old female novelist.
‥‥To the Lighthouse‥‥
Though the light is no more to be seen,
For the future of pessimism we cherish for nothing,
We must remember the mournful sounds of the wooden horse
Whether everything leaves or dies,
Even just with gripping the dim consciousness lighting up in the minds,
We must listen to the sorrowful tales of Virginia Woolf
Like a snake that has found its youth after creeping between the two rocks,
We must drink a glass of liquor with open eyes.
As life is not lonely
But just vulgar as the cover of a magazine,
Why do we apart for fear of something to regret.
When the wooden horse is in the sky
And its bells are tinkling at our ears,
When the autumn wind mourns hoarsely
In the fallen bottle of mine.

– 「A Wooden Horse and a Lady」, Park Inhwan

목마와 숙녀의 경우 연배가 있는 분 중에는 박인희의 노래만 알고 원작의 존재를 모르는 분들도 있다. 노래에 묘사된 가사까지만 들었을 때는 어느 정도 애틋한 감정이 들 법도 하지만, 원작의 경우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은 구절을 비롯해 노래에서 생략된 후반 부분이 온전히 더해져 한층 더 탄식과 체념의 정서가 짙다.

(서울로 이사 와 살던 집터, 지금은 흔적도 없다, 촬영=윤재훈)
(서울로 이사 와 살던 집터, 지금은 흔적도 없다, 촬영=윤재훈 기자)

시인은 강원도 인제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면사무소 직원이었으며, 4남 2녀 중 장남이었다. 인제에서 공립보통학교를 다니다가 상경한 시인은 서울 덕수초등학교 전신인 경성 덕수공립소학교로 전학을 온다. 그리고 경기공립중학교로 진학하지만 재학 중에 교칙을 어기며 영화관 출입한 것이 문제가 되어 중퇴한다. 그 시절 시각으로는 문제아로 공무원인 아버지가 많이 걱정하셨을 듯하다.

이후 한성학교 야간부를 다니다가 황해도 재령에 있는 명신 중학교를 졸업하고, 부친의 강요에 의해 평양 의학전문학교 입학하게 된다. 그 시절에는 의대에 가면 징집을 피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 사진=임응식사진아카이브 제공)
(박인환. 사진=임응식사진아카이브 제공)

그러다 광복이 되고 졸업도 하지 못한 채 서울로 내려와 종로에 마리서사(茉莉書舍)라는 서점을 차리는데, 대략 해방이 된 해 같다. 그리고 겨우 2년 정도 운영하다가 22살인 1948년 입춘을 전후해 문을 닫는다.

박인환 시인은 아버지에게 300원과 이모님에게 200원을 얻어 종로 3가 2번지, 지금은 빨간 서울 보청기라는 간판만 을씨년스럽게 서 있는 낙원동 입구에 서점을 차렸다. 옆에는 이모부의 포목점이 있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풀’의 시인 김수영 시인도 ‘마리서사’라는 산문에서 ‘낙원동 골목에서 동대문 쪽으로 조금 내려온 곳에, 요즘에는 공립약방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집이다’라고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서점은 문인들의 사랑방으로 유명했으며, 주로 김광균, 김규동, 이봉구, 박영준, 김수영, 이시우, 설정식, 김기림 같은 문인들이 드나들었다. 큰아들인 박세형 씨에 의하면,

누군가는 주인이 서점에 없고 장사도 안 되는 데다
책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아닌
문학청년들만 모여서 떠드는 소굴

이라고 했다곤 한다. 그가 서점을 차린 가장 큰 이유는 책을 좋아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돈을 벌 생각보다는 오히려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맘껏 읽고 시를 쓰며, 시인과 예술가들을 만나기 위한 아지트의 용도가 더 컸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가 시와 영화 등에 빠져 경기중학교 2학년 때 자퇴까지 한 걸 보면, 그런 사실들이 충분히 유추되는데, 아들은 자퇴가 아니라 선생에게 걸려 퇴학을 당했다고 한다.

(박인환 시인의 생애에 관하여, 맹문제 교수의 설명. 촬영=윤재훈)
(박인환 시인의 생애에 관하여, 맹문제 교수의 설명. 촬영=윤재훈 기자)

이곳은 원래 절친이자 선배인 오장환 시인의 낙원동 남만 서점을 물려받은 것인데, 양병식 시인에 의하면,

"마리서사는 마치 외국 서점의 분위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책이 비치되어 있었다.
가령 앙드레 브르통의 책, 폴 엘뤼아르의 시집, 마리 로랑생 시집, 콕토 시집,
일본 고오세이가꾸에서 나온 『현대의 예술과 비평 총서, 하루야마 유키오가 편찬한 『시와 시론』,

가마쿠라 문고에서 나온 『세계 문화』, 일본의 유명한 시 잡지인 『오르페온』, 『판테온』, 『신영토』, 『황지』 등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가 소장하던 장서들을 내다 놓은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 정도로 책을 좋아했다."

아들의 말에 의하면 마리서사 진열된 책들은 대부분이 아버지가 보유하던 외국 문학 서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와 절친했던 시인 김수영도,

"마리서사는 우리 문단에도 해방 이후 짧은 기간이긴 했지만
가장 자유로우면서, 좌우 구별이 없는 몽마르뜨 같은 분위기였다."

"아버지는 문우들과 모여 저녁을 먹더라도,
자기가 밥값을 내고 싶어했어요.
책 판 돈은 대개 그렇게 나갔어요."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스무 살에 서점을 차린 시인은 새로운 사상과 문물에 관심이 많은 나이였다. 김수영 시인도,

인환이가 제일 기분을 낸 때가 그때였고,
그가 죽은 뒤에도 살아 있을 동안에도
나는 그 책 가게를 빼놓고는 인환이나 인환이의 시를 생각할 수가 없었다

라고 증언하는 것을 보면 그의 활달했던 모습이 보이는 것도 같다.

(전쟁 중이던 1951년 4월 부산에서. 앞줄 왼쪽 셋째가 박인환. 뒷줄 맨 오른쪽에 영화배우 최은희. 사진=박인환 문학관 제공)

두 분은 마리서사에서 처음 만나셨어요. 여성 잡지사 기자였던 어머니의 사촌언니(이석희)와 누구를 병문안 가다가 우연히 서점에 들렀대요.
문을 열고 들어서니 쪽방 같은 곳에서 여름 모시옷을 시원하게 차려입은 청년이 나와 자리를 권하는데, 그게 바로 아버지와의 첫 만남이었다고 해요.
두 분은 많은 시간을 명동에서 보냈는데 어머니가 아버지 시의 첫 독자였어요. 
시를 쓰면 꼭 어머니께 먼저 보여드렸습니다.
또 그 무렵 개봉하던 영화는 거의 모두 보았다고 하고 두 분이 명동에 나타나면 문우들이, 한 쌍의 학(鶴)과 같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여기에 박인환의 서점 ‘마리서사(茉莉書舍)’의 이름도 독특하다. 일부 문인들은 ‘마리’라는 명칭이 일본의 모더니즘 시인 안자이후유에(安西冬衛)가 31살 때 출간한 첫 시집 《군함 말리》에서 왔다고 주장한다.

말리(茉莉)란 외래종 떨기나무의 일종으로, 당시 말리를 일본에선 ‘마리’라 불렀다고 한다. 시인 김수영도 훗날 “박일영(朴一英)이란 화가가 ‘서점 상호를 시집 《군함 말리》에서 따 준 것’이라 말했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아들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는 프랑스의 여류 예술가였던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을 좋아하셨는데 그분의 이름 ‘마리’와 관련 있다는 얘기를 어머니께 들었습니다.
마리 로랑생은 당대 피카소, 기욤 아폴리네르 등과 교우(交友)하신 분입니다. 자유로운 환상과 감상을 화폭에 담은 독특한 화가였다고 해요.
저나 어머니는 《군함 말리》보다 ‘마리 로랑생’에서 유래하고 있다고 믿고 있어요.

여기에 책방을 뜻하는 서사(書舍)를 합친 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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