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 기자수첩] 김지하 시인 추모 문화제 ‘타는 목마름으로’ 2

윤재훈 기자
  • 입력 2022.07.08 11:53
  • 수정 2022.07.08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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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인 추모 문화제 ‘타는 목마름으로’ 

나에게 김지하는 생명 시인이자 생명 사상가다.
'타는 목마름'의 대구(對句)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생명'이다.

나에게 김지하는 감탄사 같은 존재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첩첩산중이었다.

가끔은 불편함이었지만, 자주자주 놀람의 연속이었다.
그는 어마어마한 말들을 토해냈지만, 어떤 말로도 포착되지 않았다. 

- 주요섭, 생명 운동가

(염무웅 문학평론가. 촬영=윤재훈)
(김지하 시인 추모 문화제, 염무웅 문학평론가.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일본인이면서 한국의 민주화에 큰 역할을 한 ‘미야타 마리에 여사’는, ‘시인, 김지하와의 52년’을 회상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이제는 잊어버린 듯 자기 몫만 챙기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옛 동지(?)들에게도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민주화가 달성되었다고 게을러진 많은 사람에게
김지하의 처절한 맨손의 싸움, 고난의 도주의 날들을
상상해 주었으면 합니다.

‘민주주의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라는 그녀의 외침이 더욱 절절하게 다가온다.

어디 있느냐
날 맞던 불빛 아련한 그 처마 밑
부산스러이 신발 끄을던 소리
이제는 어디 있느냐

낯익은 신작로가
흙내 정다운 이 비 오는 밤에
어디서 애틋했던 그 마음
이제는 굳어 사정없이 돌이 되느냐

어렵고 지리한 먼 길을 돌아
지친 마음이 동네 어귀에 첫발을 디딜 때의 서러움이여
그토록 괴롭히던 초라한 그림자도
이제는 떠나가고 없는 밤

울어라
맹꽁이야 나를 울어라 실컷 울어
구름 낮게 흐르는 저 어둑한 고개를 다시 넘어
빈 들녘 끝없이 헤매어 갈 나를 미친 듯이 울어라

마주할 얼굴도
내밀 손길도 이제는 없는
옛날에 애틋했던 호롱불 밑의 그 둥근 미소여
이제는 어디서 굳어 사정없이

돌이 되느냐
돌이 되느냐.

- ‘비 오는 밤’, 김지하

(김지하 시인 추모 문화제 '넋풀이'. 촬영=윤재훈 기자)

작가들은 하나 같이 김지하가 군부정권 아래 목숨을 걸고, 한국 민주화를 이루는데 힘써온 소신공양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많이 외로웠을 것이라고.

눈이 내린다
술을 마신다
마른 가물치 위에 떨어진
눈물을 씹는다
숨이 지나온 모든 길
두려워하던 내 몸짓 내 가슴의
모든 탄식들을 씹는다
혼자다
마지막 가장자리
바늘로도 못 메꿀 틈 사이의 거리
아아 벗들
나는 혼자다

- ‘바다에서’, 김지하

신철규 시인은 말한다.

군부 정권의 정치적 억압과 인권 탄압에 가장 날카롭게 맞선 시인이라며,
때로는 날카로운 비판 정신을 내장한 직설적이고 외설적인 언어로,
때로는 고통받는 민중의 혼을 구원하는 씻김굿의 비장하고 애통한 언어로,
시대를 가장 뜨겁게 대결하고 민중을 가장 깊게 껴안은 시를 썼다

며, 고인에 대한 평가는 과거형으로 밖에 쓸 수 없지만, 그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

(들어가는 마당. 촬영=윤재훈)
(김지하 시인 추모 문화제 '들어가는 마당'. 촬영=윤재훈 기자)

문학평론가 홍용희는,

김지하의 시 세계를 저항에서 생명 의식으로,
그리고 죽음의 상상력과 대지적 생명력의 비장하고 절박한 정조를 넘어
애린과 화엄적 자아로 가는 세계라고 한다.
음과 양의 서열 구조가 아니라 여성성으로서의 생명성인
한(恨)에서 눈부신 용서와 화해까지 후천 개벽
'흰 그늘의 사상'이라고 얘기한다.

여기에 주요섭 생명 운동가는

나에게 김지하는 생명 시인이자 생명 사상가다.
'
타는 목마름‘' 대구(對句)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생명'이다.

나에게 김지하는 '감탄사 같은 존재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첩첩산중이었다.

가끔은 불편함이었지만, 자주자주 놀람의 연속이었다.
그는 어마어마한 말들을 토해냈지만, 어떤 말로도 포착되지 않았다. 

30여 년 전 어느 강연에서 했던 김지하의 자기 고백이 비수처럼 그의 가슴이 박혀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가 한 말을 되내인다.

나는 찢어진 사람입니다.

지난 5년 동안 혹독한 병에 시달리면서 제가 생각하는 것은
산속으로 들어가 중이 되든가, 자살을 하든가,
두 길밖에 없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동순 시인은,

어딜 가나 ’김지하‘란 이름에 대한 요구와 기준은 굳게 설정되어 있었고,
만약 그걸 충족하지 못하면 호된 비판이 뒤따랐다.
시인은 그러한 불편과 부담으로부터 떠나고 싶었다.
뜬금없는 탈각 충동과 흰두교식 화장을 떠올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김지하 시인, '묵난:불계공존', 2003. 촬영=윤재훈 기자) 

시인은 서화(書畫)에도 일가를 이루었다. 유홍준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은 ‘유려한 붓놀림에 서린 절절한 울림-김지하의 글씨와 그림’에서,

김지하의 작품 세계는
서화(書畫)가 일체로 되는 세계였다

고 하며 그의 글씨는 시와 마찬가지로 기존의 정형과 법도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글자의 크기가 일정치 않고 한 글자 안에서도 강약의 리듬이 강하다. 그의 난초 그림 중에는 ‘불계공졸(不計工拙)’이라는 화제가 쓰인 작품이 있는데,

‘잘 되고 못 됨을 따지지 않는다’

이다. 이 사언(四言)은 추사 김정희가 즐겨 사용한 문자 도장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데,

법도를 떠나지 않으면서
또한 법도에 구속받지 않았다

는 평을 받았는데, 김지하의 글씨 또한 그런 경지로 나아갔다. 한글과 한자 모두 독특한 자기 서채를 갖고 있다. 그의 글씨의 본령은 ‘초서와 행서의 필법에 의지한 울림이 강한 한글 서체’를 가지고 있다

특히나 글씨의 필획이 대단히 유려한데, 붓에 가하는 힘을 달리하여 글자의 짙고 옅음이 리듬으로 나타낸다. 그래서 글씨가 기본적으로 유려한 가운데 무언가를 호소하는 듯한 절절한 울림이 있다. 80년대 전반기에는 오랜 세월 감옥에 있으면서 벗이나 선생, 후배들에게 많은 난초를 그려주었다.

(김지하 시인, '매화:차가운 밤의 모습', 2003. 촬영=윤재훈 기자) 

그런 그의 난초 그림이 지향하는 세계는 ‘기우뚱한 균형’이었다. 그것은 그가 늘상 강조해온 ‘미(美)의 율려(律呂)’였다. 여기에 더 나아가 ‘주역과 동학’에까지 깊이 심취해 오다가 달마도까지 그리게 된다.

동학은 내 실천의 눈동자요,
불교는 내 인식의 망막이다.

미학과 출신답게 서양 미학과 미술에도 깊이 심취한 그의 화업은 갈수록 눈부시다. ‘난초’에서 시작한 유려한 난잎의 아름다움은 ‘풍란’으로 바뀌고, 새로운 세기인 21세기가 시작되자 ‘매화’와 ‘달마’로 바뀐다. 

유홍준 미술사학자는 말을 이어간다. 김지하의 매화 그림은,

추의 미학이고,
밟아도 공경스러우며 허물이 없는 세계였다

라고 평가하며, 스스로도 난초는 본래 선비들이 즐겨 그리는 문인화이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매화는,

기굴(奇崛)한 농묵(濃墨)의 매화 줄기에
작은 담묵(淡墨)의 꽃송이가 빼곡이 피어난 모습은,
그의 화제(畫題) 대로 '괴로움 속의 기쁨'이었다.

(김지하 시인, '수묵산수:갑오리', 2014. 촬영=윤재훈 기자) 

그칠 줄 모르는 그림에 대한 그의 열정은 마침내 ’수묵담수화‘로 옮겨간다. 농묵과 담묵의 카오스를 이루면서도 미묘한 조화를 이룬다.

수묵산수는 우주의 본체에 대한 접근이다.
서양화의 사실주의와 다르다. 산(어두움)과 물(밝음),
농경과 유목 문화의 대비 등을 담체와 진채(眞彩)로 드러내 보였다.

그리고 ’달마도‘에서 마침내 그 본래면목을 드러낸다. 달마도는 상징적이고 초현실적인 인물화인데, 인물화는 여간한 아마추어는 그릴 수 없다. 그림에 대한 숙련이나 천분(天分)이 있지 않고는 그릴 수 없다. 김지하에게는 일찍부터 그것이 내재되어 있었다.

대설 <남南>의 표지화 그림이나 86년 '그림 마당 민' 개관기념전에 출품되었던 춤추는 호랑이를 그린 <공갈무도恐喝舞圖>는, 오윤의 <무호도舞虎圖>와 쌍벽을 이루는 명화이다. 김지하의 달마도는 그림과 글씨, 시구가 삼박자를 이루며, 시서화의 일체를 이룬다.

(김지하 시인, '자화상' 2014. 촬영=윤재훈 기자) 

여기에 이 달마도를 빌려 <자화상>을 한 편 그렸는데, 우락부락한 상으로 눈썹을 휘날린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웃으면 대답하기를 자신은 눈썹이 잘 생겼다고 했다. 거기에 더해 그린 ’채색 모란도‘는, 붉은색 물감을 몰골법으로 단숨에 뭉쳐 풀어낸 속필의 꽃송이가 청순하고 싱그럽기만 한데, ’애린‘을 생각나게 하는 아련한 아픔도 동반된다. 그의 고백에서도,

내가 어려서 제일 그리고 싶었던 건
뒤뜰의 모란이었습니다.

김지하는 위대한 시인이자 동시에 위대한 현대 문인 화가였다.

<김지하 시인 추모 문화제 마당에서 열린 한마당 축제>

 김지하 시인 추모 문화제 ‘타는 목마름으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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