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문학기행⑤]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박인환 시인5

윤재훈 기자
  • 입력 2022.07.22 18:00
  • 수정 2022.09.1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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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박인환 시인

 

운명이여
얼마나 애타는 일이냐
권태와 인간의 날개
당신은 싸늘한 지하에 있으면서
성조를 간직하고 있다.

전신의 수렵을 위해 죽은
랭보와도 같이
당신은 나에게
환상과 흥분과
열병과 착각을 알려주고
그 빈사의 구렁텅이에서
우리 문학에
따뜻한 손을 빌려준 …,
- ‘죽은 아폴론’, 박인환

(러시아 외투)
(러시아 외투)

2004년에 방영한 EBS 드라마 명동 백작에서 3명의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등장하는 박인환 시인. 그중 최고의 댄디 보이였다. 단조로운 여름보다 겨울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시인.

여름은 통속이고 거지야.
겨울이 와야 두툼한 홈스펀 양복도 입고 바바리도 걸치고
머플러도 날리고 모자도 쓸 게 아냐?
이게 바로 에세닌이 입었던 외투란 말이야.

땅바닥에 질질 끌릴 듯한 긴 외투를 입고 자랑하던 시인, 에세닌은 러시아 시인인데 그가 입었던 외투를 보고 자신이 직접 미군용 담요로 본떠서 지어 입을 만큼 멋을 부렸다는 시인.

‘이상’을 너무 사랑해 그의 20주기가 되던 1956년 3월, 그를 추모한다며 제삿날 3일 전부터 싸구려 술을 마셔대던 시인, 빈속에다 계속 술을 부어대는 것을 본 김훈 화백이 자장면을 시켜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수돗가에서 개우는 것을 아들이 보고, 어머니는 급히 의사를 부르러 나갔지만 데리고 오지 못했다다. 사인은 급성 알콜중독성 심장마비.

사실 이상의 기일은 4월 17일인데, 너무 좋아한 나머지 착각을 했을까? 그의 실수였는지 3일 후에 닥칠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는지 모를 일이다. 당시의 언론은 ‘이상이 시인을 천국으로 초대했다’고 보도를 했다. 시인은 죽기 3일 전에 이상 시인을 추모하며 한 편의 시를 남긴다. 이것이 그의 유작이 된다.

오늘은 3월 열이렛날
그래서 나는 망각의 술을 마셔야 한다.
여급 마유미가 없어도
오후 세 시 이십오 분에는
벗들과 제비의 이야기를 하여야 한다.

그때 당신은
동경 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천당과 지옥의 접경으로 여행을 하고
허망한 서울의 하늘에는 비가 내렸다.

운명이여
얼마나 애타는 일이냐
권태와 인간의 날개
당신은 싸늘한 지하에 있으면서
성조를 간직하고 있다.

전신의 수렵을 위해 죽은
랭보와도 같이
당신은 나에게
환상과 흥분과
열병과 착각을 알려주고
그 빈사의 구렁텅이에서
우리 문학에
따뜻한 손을 빌려준
정신의 황제
무한한 수면
반역과 영광
임종의 눈물을 흘리며 결코
당신은 하나의 증명을 갖고 있었다.
이상(李箱)이라고.

- ‘죽은 아폴론’, 박인환

김수영 시인은 박인환 이런 면모를 익히 알고 있었기에 그의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박인환의 비석을 제막할 때는 망우리 산소에 갔다. 그러면서

부부란 자식 때문에 사는 거야.

- ‘벽’

라는 말을 해놓고 정작 자신은 실천하지도 않고 떠나간, 그를 원망했다고 한다.

(망우리 묘역, 촬영=윤재훈)
(박인환 시인 망우리 묘역, 촬영=윤재훈 기자)

그가 ‘세월이 가면’을 쓴 일주일 후쯤 세상을 떠났다. 1956년 3월 20일 밤이었다. 강원도 인제 태생, 훤칠한 키에 영화배우처럼 잘생긴 용모, 6·25 전쟁 때는 경향신문 종군기자를 하다 1952년 27살에 그만둔다.

그리고 대한해운공사에 취직을 하고 1955년 30세에 화물선 남해호의 사무장이 되어 우연한 기회에 미국을 여행하게 된다. 귀국 후에는 조선일보에 19일간의 아메리카에 대한 기억을 연재하여 반향을 얻고 퇴사한다. 친구와, 영화와, 스카치 위스키, 조니 워커, 카멜 담배를 좋아했던 시인, 그는 관심사는 상당히 서구적이었다.

장례식 날, 많은 문우와 명동의 친구들이 왔다.
모윤숙이 시 낭독을 하고 조병화가 조시를 낭독하는 가운데
많은 추억담과 오열이 식장을 가득 메웠다.
망우리 묘지로 가는 그의 관 뒤에는 수많은 친구와 선배들이 따랐고,
그의 관 속에 생시에 박인환이 그렇게도 좋아했던
조니 워커와 카멜 담배를 넣어주고 흙을 덮었다.
- 강계순, 『박인환 평전』중에서

(박인환 시인 망우리 묘역, 촬영=윤재훈 기자)

시인은 위스키에 대해 논하면서 이런 말도 남겼다.

우리는 위스키를 마신다.
첫 잔은 과거를 위해,
두 번째 잔은 오늘을 위해,
내일, 그까짓 것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는 말도 남겼다. 그의 아들 박세형은 20년 후인 1976년 아버지의 시를 모아 박인환 시집 ‘목마와 숙녀’를 내면서, 후기에 선친의 사인(死因)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아버지께서 타계하신 지 오래되어 사인 등에 관하여
궁금해하시는 독자가 계실 것 같아 이 기회를 빌어 말씀해 둔다.
아버지께선 평소 약주를 좋아하셨는데,
그날도 친구분들과 함께 명동에서 약주를 드신 후 귀가,
심장마비로 별안간 돌아가셨다. 1956년 3월 20일 밤 9시 경이었다.

그의 나이 불과 30세였다. 1976년 아들에 의해 시집 《목마와 숙녀》가 간행되었다.

어머니 나이 고작 서른에 애가 셋이었잖아요.
절망의 깊이를 이해한들 어린 자식들은 알 수가 없을 겁니다.
어머니는 떠난 아버지의 책들, 사랑채 벽면을 빼곡히 둘러쌌던
아버지의 흔적을 죄다 버렸습니다.
넝마주이가 다 가져갔어요.
아버지 옷가지들도 없애 버리셨어요.
우리 집처럼 선친의 유품이 없는 집이 없을 거예요.
그저 사진 몇 장 밖에.

그의 묘소는 망우리 공동묘지에 있다. 그가 태어난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상동리에는 그를 기리는 박인환문학관이 2012년 개관하였으며 그를 기리는 문학상도 있다.

8, 15 해방 후 혼란의 소용돌이와 6, 25의 전란의 황폐 속에서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등 70여 편의 시를 남겨 한국 현대시의 맹아를 키워냈다는 모더니즘 시인, 현대 시의 토착화에 기여하였고, 문학사에 일정한 획을 그어놓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시인,

그의 시비 건립 추진 위원회는 1988. 10. 29 인제군 남북리 아미산 공원에 시비를 건립하였으나, 국토터널공사에 의해 1998, 6, 20일 현재의 합강정 소공원에 이전, 건립했다. 박인환의 20주기를 맞아 1976년 그의 아들 세형씨에 의해 근역서재에서 간행된 ‘목마와 숙녀’는, 그가 생존하던 1955년에 낸 첫 시집인 ‘박인환 선시집’에 수록된 56편 중 54편과 유작 미수록 시 7편 등, 모두 61편으로 출간됐다.

아무 잡음도 없이 도망하는
도시의 그림자
무수한 인상과
전환하는 연대(年代)의 그늘에서
아, 영원히 흘러가는 것
신문지의 경사(傾斜)에 얽혀진
그러한 불안한 격투
- ‘최후의 회화에서, 박인환’

라는 시에서 보듯 그는 ‘도시 문명과 그 그늘에 대한 감각적 인상을 비유적으로 묘사하는 시풍’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청록파 시인 등 전원적인 서정들이 일상을 이루는 1950년대에 도시적 서정에 관심을 가진 의미 있는 시인’이었다.

(‘명동백작에서’, 소설가 이봉구, 작곡가 이진섭, 가수 나애심, 박인환)
(드라마 ‘명동백작'에서 소설가 이봉구, 작곡가 이진섭, 가수 나애심, 박인환)

그의 선시집 후기에는,

나는 십여 년 동안 시를 써왔다.
이 세대는 세계사가 그러한 것과 같이 기묘한 불안정한 연대였다.

시를 쓴다는 것은 내가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지지할 수 있는 마지막 것이었다.
나는 지도자도 아니며 정치가도 아닌 것을 잘 알면서 사회와 싸웠다.

라고 기술하고 있다. 해방공간으로부터 한국전쟁 및 전후의 혼돈시대를 배경으로 쓰여진 것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그의 시는,

좌절과 허무의 시대를 살아가는 도시 청년의 비극적 현실 인식 및 모더니즘 풍의 감각과 시어로서 형상화된 시들을 쓰려고 노력한 그의 공이 귀하다.

歲月도 사랑도 묻어놓고. 詩人 朴寅煥 一周忌 三月 廿日에, 李德珍 시인의 편지를, 원문 그대로 감상해본다.

나이쓰, 모오닝! 굳데이! 오늘 兄과 함께 거리를 散策하기에는 좋은 날씨이네.

인환! 우리들은 그대로 살아있네. 인환의 멋과 詩와 죠니워카와 더불어 오늘도 明洞에서 그대를 생각하고 있네. 형의 「木馬와 淑女」처럼 또한 「幸福」의 老人처럼 「바아지니아 울포」의 生理를 理由 없이 되풀이 하고 있네.
지금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내 가슴속에 살아있네. 바람은 불어 落葉은 떨어져도 그러나 寅煥! 落葉위에 歲月은 살아 있네. 雪禍가 극심한 昨年 이맘때 꽃피는 봄 날이 오면 修復된 故鄕 麟蹄를 찾겠다는 나들이의 꿈은 아직도 살아있는가. 寅煥!
世馨이도 잘있고, 世華, 世崑, 모두다 비둘기처럼 귀엽게 자라고 있네. 兄이 간 오늘 主人없는 詩는 살아있고, 멋없는 明洞엔 兄의 體臭만이 남아 있네.
아아, 우리들의 멋, 寅煥! 뜻없이 떠나는 나그네처럼 그대의 傲慢과 怪癖과 孤獨이 적시는 어쩔수 없는 鄕愁를 우리는 술과 락키스트라이크의 紫煙속에 파묻고 있네.
寅煥! 이제 兄이 간지 一年이 되네. 歲月은 가도 사랑은 남아 있고, 사랑은 가도 歲月은 살아있네. 조촐한 우리들의 「싸롱」 동방! 매담은 바꿨어도 兄의 音樂과 詩는 오늘도 들려오고 歲月은 가도 兄의 멋은 우리를 싸주고 있네.
슬플수록 익어가는 明洞의 에레지! 세월도 사랑도 이제 모두다 묻어놓고 그립던 지난날의 우리들의 멋을 이렇게 오늘 한자리에 모인 永遠한 兄의 벗을 보게! 寅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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