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론...시대와 맛은 연대하고 ‘진보’한다
냉면론...시대와 맛은 연대하고 ‘진보’한다
  • 고석배 기자
  • 승인 2022.08.04 11: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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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찡하니 익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고춧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식초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수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랫목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들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 '국수' 백석 시인

슴슴하다는 무슨 맛인가?

[이모작뉴스 고석배 기자] ‘슴슴하다’를 사전에서 찾으면 ‘심심하다’의 사투리로 나온다. 맛을 ‘슴슴하다’로 표현했다면 ‘싱겁다’로 의역될 수 있다. 그렇다면 평양냉면 맛이 ‘슴슴하다’ 할 때 ‘심심하다’나 ‘싱겁다’로 마무리 될 수 있을까? 차라리 ‘행주 삶고 남은 물’이나 ‘스님 머리 감고 헹군 물’, ‘포카리스위트에 맛소금 탄 맛’이 더 구체적이고 솔직한 표현이 아닐까?

때로 모든 사람의 미각이 나와 같은 기준일까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내가 짜다고 느끼는 찌개 국물을 노모가 간이 딱 맞는다고 할 때, 담백 고소해서 더 이상 소금 간도 필요 없는 콩국수에 설탕을 두 숟가락 듬뿍 넣을 때, 상대방보다 자기 혀의 미각세포를 의심하게 된다. 동물은 어떠한가? 돼지는 시궁창 냄새나는 짬밥이 정말 맛있어서 꿀꿀대며 먹는 것일까? 동물, 아니 모든 인간의 혀 세포는 평등한가?

(액자에 걸린 1960년대 당고개 냉면집. 함경도가 고향인 남편과 평양이 고향인 부인이 피난 시절 부산에서 밀면을 하다, 서울 상계동으로 올라와 감자와 메밀로 옛 냉면 맛을 구현했다. 지금은 고구마 전분을 쓴다. 촬영=고석배 기자)

호불호가 극명한 평양냉면 맛

접대한다면서 애써 유명 냉면집을 가는 영업사원은 초보다. 특히 물냉면이라 일컬어지는 평양냉면은 호불호가 극명하기에 클라이언트의 미각 파일을 미리 입수하지 않았다면 모험을 하는 셈이다. 거기다 평양냉면의 오리지널은 물냉면이라고 비빔냉면을 시키는 상대에게 맛꼰대질까지 하면 계약은 물 건너간다.

평양냉면은 외국인이 선정한 최악의 한국 음식, 부동의 1위다. 차가운 물에 국수를 말아 먹는 것도 이해 불가지만 밍밍한 맛에 고무줄처럼 질긴 면은 입안에서 벌레를 씹는 듯 할 것이다. 물론 메밀에 전분 비율이 높아지면서 툭툭 끊어지는 메밀국수 본연의 모습이 사라진 이유도 있지만 억울해도 할 수 없다. 한국인도 ‘호’보다는 ‘불호’가 더 높은 음식이니까.

변명하자면 평양냉면은 애초부터 한국인의 입맛에 맞지 않은 음식이다. 동굴에서 마늘과 파만 먹던 민족이 임진왜란 이후 고추가 들어오면서 조선 미각의 대혁명이 일어난다. 적어도 조선 중기 이후부터는 맵고, 짜고, 단 자극적인 취향으로 한국인의 입맛이 바뀌어 왔다. 특히 북에서 더운 남쪽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맛은 더 강해진다.

그런데 북쪽 지방의 수수하고 슴슴한 평양냉면이라니... 서북의 평양냉면과 더불어 삼남의 대표 냉면인 ‘진주냉면’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진주냉면의 육수는 짜고 진한 엑기스로 미리 만들어 국수를 뽑을 때마다 물에 타 먹는다.

(진주냉면, 육전을 비롯해 12가지 화려한 고명이 올라간다. 사진=하연옥 제공)

동치미의 추억

얼음이 나오면서 여름에도 서민들이 냉면을 사 먹는 시대가 왔지만, 계절메뉴에서 사철메뉴로 바뀌며 지난겨울 담가 논 동치미가 바닥난다. 급기야 무김치를 새로 담아도 가을무로 담근 겨울 동(冬)치미 맛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눈 속에서 발자국을 추적해 잡는 꿩사냥도 수월치 않았다.

고기 육수가 먼저인지 꿩 육수가 먼저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동치미 메밀국수에 올라간 고명은 꿩이었다. 국가 허락없이 민중들은 귀한 육고기를 잡을 수도 없었기에 꿩이 유일한 단백질 보충 특식이었다. 가난하고 배고픈 민중들은 꿩을 삶고 남은 국물도 아까워 동치미 국물에 섞어 메밀면을 말아 먹었다.

냉면을 먹을 때 식초와 겨자가 들어가는 건 여름날 동치미 맛의 재현과 관련이 깊다. 톡 쏘는 동치미 맛을 고깃국물로는 낼 수가 없을뿐더러 여름에 육수는 상하기 쉽다. 겨울 동치미 냉면에는 식초와 겨자를 굳이 넣지 않았다. 동남아에서 식중독 예방을 위해 라임을 국수에 짜 넣듯 식초와 겨자는 겨울보다 여름에 유용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여름냉면이 육수로 대체되지는 않았다. 해방 후 평양에서 내려온 서울의 냉면 노포들은 비율이 가게마다 달랐을 뿐 육수와 동치미 국물을 섞는 게 정석이었다.

냉면 맛의 절반은 육수

1970년대 여름만 되면 냉면 먹고 식중독 걸렸다는 언론 기사가 단골이었다. 육수야 끓여서 소독하면 되지만 20분마다 배가 되는 대장균을 동치미 국물은 감당할 수 없었다. 지금은 남포면옥을 제외한 서울의 냉면 전문 노포들은 거의 육수를 쓴다. 장충동과 논현동의 평양냉면은 소고기만을 100% 쓰지만, 의정부 계열의 필동면옥과 을지면옥은 소고기와 돼지고기 육수를 반반씩 쓴다. 그래서 고명에도 소와 돼지 편육이 함께 들어가고 수육도 반반 메뉴가 있다.

우래옥의 냉면 장인이 봉피양으로 옮겨 만든 육수에는 소, 돼지 그리고 늙은 수탉이 함께 들어간다. 수탉은 궝 대신 닭이다. 평양냉면과 결은 다소 다르지만, 해주냉면 계열의 백령도 냉면은 100% 돼지고기이고 진주냉면은 해물로 육수를 낸다.

냉면 맛의 절반 이상은 육수 맛이다. 경제력이 있는 평양은 소고기로 육수를 내고 평양보다 형편이 떨어지는 황해도는 돼지로 육수를 내었을 거라는 짐작도 말이 된다. 하지만 평양에는 수많은 냉면집이 각기 저마다의 육수 비법이 있었다. 처음에는 기름기 없는 꿩고기 육수를 재현하려고 기름기 없는 부위로만 육수를 냈다. 소, 돼지, 닭 한가지씩 쓰는 곳도 있었고 세 가지를 다 쓰는 곳이 있었다. 그때도 소고기가 제일 비쌌다면 소고기 육수로만 하는 집 냉면이 제일 비쌌을 것으로 짐작된다. 장사의 원리다.

(육수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름기를 걷어내고 맑게하는 작업이다. 촬영=고석배 기자)

냉면 맛있게 먹는 법

남자들은 태어나서 제일 맛있게 먹은 라면은 꼽으라고 하면 군대에서 먹던 라면을 손꼽는다. 그리고 제대 후 아무리 그 맛을 재현해도 똑같지 않다고 덧붙인다. 당연하다. 냉면도 라면과 다르지 않다.

이왕 냉면을 맛있게 먹으려면 비법이 있다. 우선 아무리 출출하고 목이 말라도 냉면이 나오기 전에는 절대 물을 마시면 안 된다. 타는 목마름으로 참고 참다 냉면이 나왔을 때 사발째 들이켜야 한다. 속이 뻥 뚫린다. 이때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 마시면 쩨쩨해진다. 그러고 나서 남은 국물의 간을 보고 식초나 겨자의 양 조절을 하고 넣는다. 식초는 잡내를 잡기 위해 고명의 편육에 뿌리거나 면에 끈기를 주기에 면에 뿌리고 겨자는 국물에 푼다. 겨자가 면에 붙으면 잘 풀어지지 않는다.

냉면의 계란은 언제 먹어야 하나

본격적으로 면을 흡입하기 전에 계란을 먹는다. 계란 노린자가 깨져 육수를 텁텁하게 하는 것도 싫지만 계란 노린자는 위에 보호막을 쳐주기에 메밀의 거침과 육수의 차가움으로부터 위를 보호해 준다. 그렇지만 메밀면이 아니라면 계란을 굳이 먼저 먹을 필요는 없다. 특히 함흥식 비빔회 냉면이라면 오히려 뒤에 먹는 게 좋다. 캡사이신은 지용성이고 지방이 많은 계란 노린자는 이 매운맛을 중화시켜준다. 냉면에 올라간 편육도 마지막에 먹는 게 좋다. 매운 맛을 중화 시키는 역할도 하지만 냉면 먹기 전 포만감을 조금이라도 덜 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메밀 물냉면 계통의 백령도 냉면집에 가면 면을 다 먹고 계란 노린자를 남은 육수에 잘게 부수어 마시라고 벽에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육수맛에 영향을 주지 않는 흰자는 나중에 먹는 게 정설이다. 포만감을 주면 냉면 맛이 없다. 그래서 냉면에 올라오는 계란은 반쪽이다. 하지만 이는 핑계 같다. 노랗고 하얀 색을 맞추기 위해선 계란만큼 예쁜게 없지만 예전 계란 한 줄은 쌀 두 말 가격이었다. 그래선지 백령도에선 아끼다 맨 마지막에 육수에 노린자를 잘게 부수어 마신다.

(의정부 평양면옥은 계란이 엎어져 있고 그 위에 고춧가루와 파를 뿌린다. 촬영= 고석배 기자)  

이보다 목으로 끊어 먹어라

냉면의 면은 고명과 함께 먹는다. 특히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무를 걸러 먹으면 편식 중의 편식이다. 메밀과 무는 음식궁합의 모범이다. 무는 메밀 껍데기의 살리실아민을 해독해준다. 겨울에 먹을 게 없어 구황으로 먹었던 ‘메밀’은 우리나라 어디서나 잘 자라는 ‘무’가 있어서 가능했다. 그래서 냉면의 고명에 배와 오이는 빠져도 무가 안 올라가 있으면 용서할 수가 없다. 무 없이 메밀면을 먹으면 배탈이 난다.

평양냉면은 이보다 목으로 끊어 먹는다. 메밀로 만든 평양냉면은 질기지 않고 잘 끊어진다. 하지만 요즘엔 메밀에 끈기를 주기 위해 밀가루나 전분을 섞는 경우가 많아 전분 비율이 높은 경우 쫄면 같다는 느낌도 준다. 함흥냉면은 일제강점기 개마고원에 감자를 심으면서 대중화된 농마국수가 원형이다. 감자 전분은 반죽을 하면 돌덩이가 되어 기계국수틀이 생기기까지는 국수로 만들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고무줄처럼 질기다.

그래서 함흥냉면을 먹을 때는 그릇이 따라 올라올 정도로 고개를 번쩍든다. 그리고 그릇에서부터 입까지 3분의1, 입안에 3분의 1, 목 안 뱃속에 3분의 1이 있는 상태가 최상의 면치기 맛이라고 한다. 평양냉면이나 함흥냉면 모두 면발은 이로 끊지 않고 목으로 끊어 먹어야 한다지만 쉽지 않다. 그리고 냉면을 가위로 잘라 먹으면 맛이 없다고 한다. 근거 없는 낭설이다.

가위를 써서라도 먹고 싶은 건 먹어야 한다

냉면뿐이 아니라 동양의 민간에는 국수를 잘라 먹으면 오래 못 산다는 풍속이 있었다. 그런데 정말 오래 살려면 먹고 싶은 것 먹는 게 좋다. 이가 없는 어른들은 가위로 잘라서라도 드시고 싶은 것 드셔야 한다. 아마도 가위는 나이 든 이북 실향민들이 냉면을 먹고 싶은데 이가 망가져 먹을 수 없어 대안으로 생각해냈으리라. 평안도 보다 함경도나 황해도 실향민일 가능성이 높다. 녹말로 만드는 함흥냉면은 엿처럼 질기고 황해도 냉면은 면발이 굵기 때문이다,

(살얼음 띄운 분식집 냉면. 촬영=고석배 기자)

냉면은 소리 내며 먹어야 맛있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음식 먹을 때 소리를 내면 예절에 맞지 않는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냉면만은 후루룩 소리를 내어도 용서가 되었다. 조선시대 냉면은 아무나 쉽게 먹을 수 없었다. 생각날 때마다 언제든 먹을 수 있는 이는 왕뿐이었다. 조선 26대왕 고종이다. 왕궁에 공식적인 행사가 있을 때마다 냉면을 만들어 올리게 한 고종은 냉면 매니아였다. 고종은 냉면 가닥을 흡입하며 나는 소리가 민망해선지 냉면만큼은 후루륵 소리를 내며 먹어야 더 맛있다고 상궁들에게 이야기했다.

슴슴한 맛의 진화

평양냉면을 슴슴하다고 하지만 같은 물냉면인 해주냉면에는 간장과 설탕이 들어가고 백령도 냉면에는 까나리액젓이 들어간다. 의정부 평양면옥은 선대 때부터 간장통을 식탁에 놓아 간 조절을 손님의 취향에 따라 하게 했다. 얼마 전 ‘이만갑’이라는 TV 프로에 북한에서 냉면 주방장을 한 사람들이 출연해 이구동성으로 남한의 냉면이 생각보다 너무 ‘슴슴해’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이에 음식평론가 황광해씨는 평양냉면이 남북한 환경과 정치, 경제 상황에 따라 많은 변천사를 거치며 천연 조미료가 가미돼 북한 냉면이 오히려 전통의 맛에서 멀어졌다고 평했다.

변한 건 북한만이 아니다. 노포들은 옛 맛을 유지한다지만 이미 많이 변해있고 요즘 떠오르는 신생 냉면 맛집들은 거의 요즘세대의 입맛에 맞추고 있다. 반세기 후에 ‘슴슴하다’는 맛의 표현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온면(좌)과 냉면(우), 온면에는 무 고명이 없고 배추김치가 나온다. 촬영=고석배 기자)

제5의 맛의 발견

맛에는 오감이 있다. 쓴맛, 단맛, 신맛, 짠맛, 그리고 감칠맛이다. 매운맛과 떫은맛은 맛이 아니라 자극이다, 감칠맛은 가장 나중에 발견된 미각이다. 1908년 일본 화학과 교수 이케다기쿠나가 감칠맛이 글루탐산이란 물질에서 나온다고 다시마에서 처음 발견한다. 그리고 아지노모토라는 회사가 상업화시킨다. 소위 미원이고, MSG이다. 그리고 논란 속에 2000년 미국 마이애미대학교의 연구진이 사람의 혀에서 글루탐산 수용체를 찾아낸다. 이로써 정식으로 감칠맛이 혀의 5대 미각에 포함됐다.

글루탐산은 단백질 성분인 아미노산의 한 종류다. 그래서 감칠맛의 발견은 평소 고기를 덜 먹는 동양인이 더 열광했다. 모유의 대부분은 글루탐산이고 이는 소의 우유보다 10배가 높다고 한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느낀 맛은 감칠맛이었다. 글루탐산뿐만 아니라 버섯이나 가다랑어포에 있는 핵산에서도 감칠맛이 발견 되어 MSG도 진화하게 된다.

MSG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분명한 건 MSG에 대한 고정관념이 너무 팽배하다는 점이다. 세계 보건기구와 식약청이 건강에 아무 이상이 없다해도 한번 박힌 고정관념은 쉽게 깨지지 않는다. 물론 사람의 5대 미각중 하나의 미각이 너무 심하면 밸랜스가 무너진다. 감칠맛도 마찬가지다. 과유불급은 입맛을 평준화시킨다. 세상의 음식이 모두 다 맛있으면 음식평론가가 실직을 한다.

(감칠맛을 내기위해 국요리 육수에 들어가는 다시마(글루탐산)와 버섯(헥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며느리도 가르쳐 주지 않는, 신의 한수

1920년대 일본의 아지모토사는 한국의 냉면을 타깃으로 대대적 공략을 한다. 요즘 김연아의 인기만큼이나 톱으로 치솟았던 무용가 최승희가 신문광고에 등장하기도 하였다. 냉면맛의 일대 혁신이 일어난다. 고기를 반만 넣어도 육수맛이 더 좋아지니 안쓸 이유가 없었다.

지금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쉐프가 무명시절 냉면 장인으로부터 냉면레시피를 받았다. 아무리 따라 해도 그 맛이 나지 않았다. 마지막 방법으로 MSG 한 소끔을 넣으니 그 맛이 나더라는 에피소드가 있다. 어쩌면 냉면 맛의 비결이 MSG라는 사실에 충격받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 그릇에 거의 한 숟가락의 MSG 들어가는 짜장면은 용서하고 기본 베이스가 육수인 냉면은 용서하지 못하는가? 같은 감칠맛이라도 글루탐산과 헥산이 만나야 그 감칠맛이 더 배가 된다는 과학적 사실까지 밝혀야 하나?

(칡냉면. 촬영=고석배 기자)

원조의 맛은 원래 없다

순수주의자, 보수주의자, 소위 순혈주의자들은 앞으로 냉면을 먹으면 안 된다. 세상에 오리지널 냉면맛은 없다. 서울에도 없고 평양에도 없다.

사람의 혀는 우주다. 우주에는 수억개의 행성이 있듯이 나만의 맛은 수억개 행성 중 하나일 뿐이다. 냉면 마니아들은 도장깨기를 하며 원조의 맛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아무리 오래된 전통의 가게라도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다. 마니아마다 선호하는 집이 엇갈리는 건 당연하다. 서로 다른 우주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냉면 원조의 맛은 애초부터 없었다.

의정부 평양면옥의 2대사장은 장남이다. 큰여동생은 필동면옥을 작은여동생은 을지면옥으로 재금났다. 강남에 막내도 평양냉면집을 냈다. 그는 인터뷰를 사양하면서도 딱 한마디를 남겼다.

한뿌리, 같은 레시피에서 나온 네 형제의 맛이 내가 맛을 보아도 조금씩 다르다.
그게 뭐가 더 좋다는 말을 못 한다.

- 의정부 평양면옥 2대사장 홍OO

세상이 변하니까 냉면도 변해

우주도 생노병사가 있다. 우주를 구성하는 수억개의 행성은 서로 밀치고 끌어당기며 진화한다. 별똥별조차 제자리에 가만있지 않는다. 전쟁통에 먹여주고 재워주는 냉면집에 들어와 64년간 냉면을 만들다 2019년에 작고한 김태원 장인은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음식은 전통을 지키면서 시대에 맞게 진화해야 한다.

- 김태원 냉면 장인

음식 맛은 주인이 아니라 손님에 의해 바뀐다. 유행가에 이런 가사가 있다. “세상이 변하니까 김밥도 변해 우리의 사랑도 변해...” 김밥 대신 냉면을 넣고 불러본다. 함흥냉면, 진주냉면, 해주냉면은 이미 호적에 올랐고 승소냉면, 막국수, 밀면도 냉면과 다르지 않다. 껍질째 반죽하는 막국수가 오히려 예전 메밀냉면에 가깝다는 말도 한다. 동치미 육수 맛으로 치면 스님들도 웃게 한다는 승소냉면이 진짜다. 퓨전식 신세대들의 입맛을 저격한 불냉면, 칡냉면, 육쌈냉면, 꼬치냉면, 수박냉면은 또 뭔가? 땅콩버터 듬뿍 넣어진 중국냉면도 한국에만 있으니 껴줘야 하나? 이미 굳건히 자리 잡은 콩국수야 그렇다치고 전설의 백두산 언감자국수도 넓은 의미에서 냉면이 아닌가?

(사진=한식벽제그룹 제공)

맛은 세상과 연대하며 진보한다

세상은 변했다. 다양성의 시대다. 전국의 냉면 도장깨기를 해본 사람은 안다. 소문난 냉면 맛집이나 동네 분식점 냉면이나 모두 저마다 소중한 맛 하나씩 품고 있는 냉면임을. 굳이 음식평론가가 될 게 아니라면 재벌 뺨치는 비싼 유명 냉면집 차비 들여 찾아 갈 필요 없다. 차가운 냉면이 문득 땡길 때 편하게 찾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냉면집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다. 소문이 덜 나 한가하면 수육에 소주 한 잔 시키고 여유 있게 전주후면을 실천하면 그게 바로 소확행이다. 미안하면 가끔 SNS로 소문 좀 내주면 된다. 맛보다 중요한 주인의 인심은 손님의 의리와 연대한다. 세상은 이렇게 서로 돕고 연대하며 진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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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 2022-08-05 17:59:07
냉면은 우리나라 최초의 배달음식 인데 어른들 말씀을 들어보면 갑자기 집에 손님들이 오면 냉면을 배달 시켜 먹었는데 혼자 20그릇을 자전거를 타고 나무판 위에 10그릇을 놓고 그 위에 판을 깔고 다시 10 그릇을 놓고 주전자를 들고 고명을 따로 들고 안국동 골목을 묘기대행진 하듯 왔다고 하신다.(아쉽게도 사진이 없다) 그리고 당시에는 냉면이 비싼 음식이었다는데 계란 한 알이 통째로 들어 가고 서울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잘 안먹고 소고기를 먹어 편육도 소고기로 하고 당시에는 얼음을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당시로서는 비싼 음식였다고 합니다. 냉면 얘기가 나와서 반가워 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