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90] 베트남 국경을 넘으며1

윤재훈 기자
  • 입력 2022.08.08 13:02
  • 수정 2022.08.09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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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국경을 넘으며

細推物理須行樂 (세추물리수행낙)
何用浮名絆此身 (하용부명반차신)
一片花飛減却春(일편화비감각춘)
一葉落, 天下知秋,(일엽락,천하지추)

사물의 이치 헤아려 즐겨야 하리니
어찌 부질없는 이름으로 몸을 얽어맬 건가
꽃잎 하나 날려도 봄이 가고
나뭇잎 하나 떨어져도 가을인 것을 아는데
- 곡강1(曲江), 두보

(베트남 국경. 촬영=윤재훈)
(베트남 국경.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인천에서 배를 타고 단동에 내려 우리의 동포들이 사는 지안, 연길, 용정, 심양 등을 지났다. 베이징에서는 몽골 국제열차를 타고 10월 첫눈이 올 때까지 몽골 벌판을 떠돌았다.

그리고 다시 중국 국경을 넘어 중국 3대 석굴이며 세계문화유산인 다퉁의 윈강 석굴과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인 핑야오, 천년 고도 뤄양(낙양)과 역시 세계문화유산인 룽먼 석굴, 진시황의 고도, 시안 등을 지나 1차 세계여행에서는 진로를 아래로 틀었다.

一片花飛減却春 (일편화비감각춘) 꽃잎 하나 날려도 봄이 가는데
風飄萬點正愁人 (풍표만점정수인) 수만 꽃잎 흩날리니 사람의 근심 어찌 할가
且看欲盡花經眼 (차간욕진화경안) 지는 꽃 보고 어른거림 잠깐 사이려니
莫厭傷多酒入脣 (막염상다주입순) 서글픔 많다 말고 술이나 마시자.
江上小堂巢翡翠 (강상소당소비취) 강변의 작은 정자 비취가 둥지 틀고

苑邊高塚臥麒麟 (원변고총와기린) 궁원 큰 무덤에 기린 석상 누어 있네.
細推物理須行樂 (세추물리수행낙) 사물의 이치 헤아려 즐겨야 하리니
何用浮名絆此身 (하용부명반차신) 어찌 부질없는 이름으로 몸을 얽어맬 건가
一片花飛減却春(일편화비감각춘) 꽃잎 하나 날려도 봄이 가고
一葉落, 天下知秋,(일엽락,천하지추) 나무잎 하나 떨어져도 가을인 것을 아는데

- 곡강1(曲江), 두보

대나무로 유명한 두보의 고향 청두, 석림(石林)과 토림(土林), 소수 민족들의 고향, 윈난의 고색이 완연하고 소박한 풍경과 문화들, 그리고 쿤밍에서 이 광활한 대륙을 뒤로 하고 칠레처럼 긴 땅덩어리를 가진 베트남 국경을 넘었다.

쿤밍에서 출발한 야간 버스는 밤새 달려 새벽 5시 정도에 베트남 국경 근처에 섰다. 밤새 피로에 지친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고 아직 잠이 덜 깬 몇몇은 더 잤다. 기사는 버스 문을 개방해 주며 쉬어가라고 한다. 참 넉넉한 기사 같다. 그는 이쪽 노선은 운전한 지 얼마 안 되었는지, 국경에 대해서 궁금한 것을 물어봐도 잘 모르는 듯하다.

(‘싸파’의 거리 풍경. 촬영=윤재훈)
(‘싸파’의 거리 풍경. 촬영=윤재훈 기자)

강을 따라 5분 정도 가면 나온다던 국경 검문소는 가도 가도 나오지 않는다. 30여 분 걸어가다 비슷한 팻말이 있어 들어가 보니 아니다. 웬 남자가 나오더니 고맙게도 사람을 불러 15분여 달려 데려준다. 이렇게 먼 거리를 걸어가라고 했으니, 엉터리 정보에 밤새 버스에서 시달린 몸으로 한참을 헤맸다. 하지만 곳곳에 제천(諸天)이 있어 음덕(陰德)을 많이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국경 검문소는 두 명의 군복을 입은 사람이 서 있는데 초라하고, 기계에서 셀프로 하라고 하더니 도와준다. 그런데 세상에나, 한국말이 나온다. 절차는 아주 간소하다. 가방을 보고 옷이냐고 물어보더니, 엑스레이 검사도 안 한다. 그런데 중국과 몽골 대륙에서는 요행히 트렁크에 넣어 오면서 빼앗기지 않은 등산용 대검을, 여기에서는 두고 가야 된다고 한다. 하긴 내가 봐도 칼이 너무 크다.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장사 가는 베트남 여인. 촬영=윤재훈)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장사 가는 베트남 여인. 촬영=윤재훈 기자)

검문소를 나오자 다리가 하나 놓여있다. 이른 아침인데도 상당히 많은 베트남인들이 건너온다. 바나나를 가득 담은 바구니를 어깨 양쪽에 매달고, 논라(삿갓)를 쓴채 출렁거리며 오는 아주머니가 보인다. 저것을 오늘 하루 다 팔면 얼마나 될까? 별로 되지 않은 것 같다.

앞으로 나는 베트남의 세 군데 국경을 넘을 것이다. 중국의 쿤밍에서 들어가는 ‘라오까이 국경’, 남쪽 끝에서 캄보디아로 배를 타고 메콩강으로 올라가는 ‘쩌우독(Châu Đốc) 국경’, 마지막으로 서쪽에서 라오스로 넘어가는 ‘라오바오(Lao Bao) 국경’이다. 동쪽으로는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라 마땅한 국경이 없다.

베트남 국토는 S자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북남 방향의 길이는 1,650km이다. 동서의 길이가 가장 넓은 곳은 약 500km이고, 가장 좁은 곳이 약 50km이다. 베트남 사람이라도 북, 서, 남까지 세 개의 국경을 모두 넘은 사람은 흔치 않으리라.

바로 위에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은, 북쪽의 흑룡강(黑龍江)에서부터 남쪽의 남사군도의 회모암사(會母暗沙)까지 거리가 약 5,500km이며, 동서의 길이는 흑룡강과 우쑤리강의 합류점으로부터 서쪽의 파미르 고원까지 약 5,000km에 이른다. 정말 어마어마한 국토이이다. 아직은 우뚝한 초강대국인 미국에 대항하여 으름장을 칠 만하다. 사실 4~500년 정도의 '대항해의 시대'를 빼고 나며. 그 이전의 시대는 대부분 아시아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심에 중국이 있었다.

여기에 베트남 화폐는 단위가 높아도 너무 높다. 100,000동을 우리 돈으로 바꾸면 단돈 5,000원에 해당된다. 뒤에 0을 떼고, 그것을 반으로 나누면 우리 돈이 된다.

(베트남 북쪽 관문, 라오까이역. 촬영=윤재훈)
(베트남 북쪽 관문, 라오까이역. 촬영=윤재훈 기자)

아까부터 같이 따라 나온 말쑥한 차림의 베트남 젊은이는 아마도 차를 운행하는 듯하는데, 너무 비싸게 부른다. ‘싸파’까지 택시는 40만 동, 버스는 25만 동인 듯하다. 환전하는 창구가 세 개 있는데, 젊은 친구가 데려다주는 곳이 믿음이 안 간다. 직원에게 비자에 대해서 묻자 영어를 하는 사람이 있는 사무실로 데려다 준다. 궁금한 것과 환율에 대해서 묻는데, 돈을 던져주고 기차 바닥에 가래침을 뱉던 중국과는 달리 아주 친절하다.

밖에서 환전이 마음에 안들어 사무실로 오니 다른 사람에게 바꿔준다. 50 달러를 주니, 1,000,000동을 준다. 앞에는 상당히 큰 호텔이 보이고, ‘사파’로 가야 하는데 교통수단을 잘 모르겠다. 아까 사무실에서 물어봤으며 좋았을 텐데, 환전 때문에 미처, 그 생각을 못했다.

미니버스가 있는 곳까지 데려다준다고 하는데, 택시 기사가 상당히 불친절하다. 여행서를 뒤적여 보니 라오까이역으로 가면 시간별로 미니버스가 대기하고 있다고 하여, 5분여 걸어갔다. 영어가 한마디도 없는 역이라 영문을 잘 모르겠는데, 잠겨진 창문 너머로 기차가 보이고 한산하다.

(장거리 버스. 촬영=윤재훈)
(베트남 장거리 버스. 촬영=윤재훈 기자)

아무래도 상황판단을 좀 하기 위해 화단에 앉아있는데, 아직까지 아침도 못 먹었다. 계란과 홍시를 먹으면서 영어라도 하는 사람이 있나 눈여겨보아도 찾을 수가 없다.

그런데 말쑥하게 차린 아이가 영어를 하면서 다가와 사파 가는 사무실 데려다 준다고 하는데, 아마도 아빠 상점인 것 같다. 남자가 나와 싸파까지 가는 미니버스는 20만 동, 오토바이는 2만 동이라고 한다.

그때 빈 버스가 지나가는데 사내가 급하게 잡는다. 아마도 싸파 가는 버스인 모양이다. 20만 동을 주고 버스에 오르는데, 환호를 한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큰 돈인 모양이다.

빈 버스에 차장 아이도 한 명 있고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온다. 1시간여 달려 싸파에 도착하자, 바로 앞에 있는 호텔로 가라고 한다. 식민지 시절에 지었을까, 프랑스 풍의 누리끼리한 3층 건물이다. 30살이라는 서글서글한 아주머니는 영어도 잘하고, 이 산간마을에서 서비스 정신이 몸에 배어 있는지, 아주 친절하다. 하룻밤에 5달러이다.

(싸파의 거리 풍경. 촬영=윤재훈)
(싸파의 거리 풍경. 촬영=윤재훈 기자)

아주머니가 마침 점심을 먹고 있어 맛있겠다고 하자, 같이 먹자고 한다. 돼지고기에 토마토 스프를 주어 맛있게 먹었다. 베트남은 국과 밥을 모두 젓가락 하나로 해결한다. 탁자에는 항상 차가 준비되어 있어 차를 좋아하는 나를 기분 좋게 한다. 무슨 일이든 시작이 좋으면 연쇄적으로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경향성이 있는 것 같다. 시차는 중국보다 한 시간 늦으니, 고국과는 두 시간이 늦는 셈이다. 지난밤의 여독 때문에 잠깐 자고 싸파 거리를 걷는다. 이 깡촌에서도 유럽인들이 많이 보인다. 

우리도 환율이 괜찮지만 서양인들은 환율이 높아 좋겠다. 특히나 유럽인들은 더욱 좋겠다. 하지만 현지인들의 입장을 생각하면 이것도 도둑놈 심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이다. 

옆에서 누군가 아이를 얼르면서 ‘까구’해서 깜짝 놀랐다. 거의 ‘까궁’처럼 들린다. 서양 노부부들이 앉아 여러 가지 음식을 시켜놓고 풍족하게 먹는다. 여유가 있어 보인다. 장기 배낭여행자의 주머니는 항상 목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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