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2022년 8월 신림동 반지하에서 바라본 하늘

고석배 기자
  • 입력 2022.08.10 09:31
  • 수정 2022.08.12 17:1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퇴근하면서 보니 침수 시작되더라!

[이모작뉴스 고석배 기자] 2022년 8월 8일은 퇴근길 수도권 직장인들에게 ‘노아의 홍수’ 처럼 기록될 날이다. 직장인 A씨는 평소 1시간이면 충분한 귀가를 2시간 만에 마쳤다. 강남에서 근무하는 B씨는 부천까지 4시간 동안 기나긴 퇴근 여행을 해야 했다. 지하철이 멈춰 중간에 버스를 갈아타며 허기를 때운 시간까지 포함하면 5시간이다.

퇴근길 침수를 보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는 직장인은 없다. 그리고 다음 날 11시까지 출근했다. 공무원도 직장인이다. 구청장도, 시장도, 행안부 장관도 그리고 대통령도 직장인이다. 직장인은 퇴근길 침수를 보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8일 오후 퇴근길 강남역  도로. 사진=뉴시스 제공)

8일 대한민국의 모든 직장인들이 퇴근하는 시간, 서울 관악구 신림동 다세대 골목에는 빗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저녁 9시 어느 반지하에서 비명에 가까운 절박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여기 사람 있어요!

이 소리를 들은 주민 2명이 뛰쳐나왔다. 이미 도로에는 물이 허벅지까지 차올랐고, 반지하 현관문은 차오른 물의 압력으로 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급하게 위로 올라가 창문을 뜯으려 했다. 방범창이 있는 창문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하지만 성인 남자 2명의 힘으로 특별한 장비없이 방범창을 듣어내기란 불가능했다. 순식간에 물이 차올랐다.

신고를 받고 경찰이 왔다. 경찰은 배수 작업이 필요하다고 보고 소방당국에 공동대응을 요청했다. 좁은 다세대 골목 도로에는 이미 물이 허리까지 차 소방차가 들어갈 수도 없었다. 11시쯤에야 물이 빠지기 시작했고 3시간 만에 배수 작업 후 방범창을 뜯어냈다.

지난 8일 내린 많은 비로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한 빌라 반지하가 침수돼 일가족 3명이 갇혀 사망했다. 사진은 9일 오후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사고가 발생한 빌라에 물이 차있는 모습.
(9일 오후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사고가 발생한 빌라에 물이 차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제공)

9일 0시 26분. 신림동 다세대 반지하 방에서 숨진 상태로 있는 세 사람을 발견했다. 이 집에는 4명의 가족이 살고 있었다. 70대 할머니와 2명의 40대 자매. 그리고 13살 난 자매의 딸이다.

40대 자매 중 한 명은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 소속의 부루벨코리아 노동자였다. 그녀는 가장이었다. 13살 딸과 병든 노모 그리고 장애인 언니를 부양하며 살았다. 언니는 다운증후군 환자였다.

9일 낮 신림동 반지하에 번듯한 직장인들이 찾아왔다. 구청장, 서울시장, 행안부장관, 대통령이 출근 후 찾아왔다. 그리고 "왜 대피 못했나 모르겠네"하며 안타까운 듯 혀를 찼다.

(9일 수재 현장을 찾은 오세훈 시장. 사진=뉴시스 제공) 

반지하 집에서 이들은 왜 탈출하지 못했을까? 그들은 잠들어 있지 않았다. 갑자기 불어난 물이 계단을 따라 지하로 흘러들어 철제대문 바깥을 채웠다. 장정들이 있었어도 안에서는 문을 열 수 없다. 그 시간 자동차가 침수되어 강남 도로에 갇힌 운전자도 문을 열지 못했다. 마찬가지다. 억지로 문을 열어도 쏟아져 들어오는 물 때문에 계단을 올라올 수가 없다. 훈련받지 않은 사람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환기를 위해 만들어 둔 창에는 방범창이 있었다. 이들을 구하러 온 이웃들이 이걸 뜯어내려고 했지만 이미 그때는 방범창을 넘을 정도로 물이 차오른 상태였다고 한다. 방범창을 뜯고 유리창을 깼으면 구할 수 있었을까?

(반지하 수재 참사 현장. 사진=뉴시스 제공)

BBC 한국 특파원 진 맥켄지 씨는 9일 트윗 하나를 올렸다.

오늘 서울 곳곳이 파괴되었지만, 이 모습이야말로 진짜 비극이다. 자매와 그중 한 명의 13세 딸이 영화 기생충에 나온 것과 유사한 다세대주택 건물 반지하에서 홍수로 익사했다.

트윗은 다음 글로 이어진다.

이 반지하 건물은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에 나온 것과 거의 동일하다. 여기에서 벌어진 일은 호우가 쏟아지는 동안 가족들이 필사적으로 물을 퍼내는 영화 오프닝 장면을 연상시킨다. 실제 일어난 일은 훨씬 안 좋았다.

이들의 죽음은 큰 피해를 본 강남의 화려한 주상복합 타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수백 명의 한국인이 주거 목적에 부합하지 않은 반지하 건물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해준다.

(BBC 진 멕켄지 한국 특파원 트윗)

한편 SNS상에서는 신림동 반지하 수해로 인한 세 사람의 죽음에 안타까운 댓글이 달리고 있다. 한 MZ세대 청년은 어른들의 표현으로 ‘억장이 무너진다’는 댓글을 달았다. 또한 이번 수해를 비판하는 패러디도 봇물 터지듯 올라오고 있다.

한 네티즌은 "반지하여서 죽었다"라는 말은 오늘의 한국에선 "그러니 절대로 (반지하라는) 나락에 떨어져선 안 돼"라는 은밀한 결심 혹은 단호한 각오로 이어진다며 그것이 더 안타깝다고 글을 남겼다. 또 한 네티즌은 다음과 같이 세월호의 아픔을 되새겼다.

모든 반지하가 늘 죽음의 위협 앞에 서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여전히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마치 세월호를 생각할 때처럼 숨이 막힌다.

(네티즌 패러디 포스터. 서울시 올해 수방·치수 예산 896억원 삭감, 지난달 2차 추경을 통해 292억원을 추가 편성)

신림동 반지하에서 숨진 홍수지님은 발달장애인 언니와 초등학생 딸, 그리고 지병이 있는 노모를 모시고 살았다. 마침 노모는 병원에 입원해 참사를 모면했다. 시민들은 그녀의 짊어진 그 삶의 무게가 남달라 더 비통해한다. 그녀는 노동조합의 간부활동도 하면서 항상 밝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거나 비관할 법도 하지만, 그는 세상을 바꿀것을 택하며 살았다고 동료들은 기억한다.

신림동 수해 사건에는 발달장애인이 포함돼 있다. 기후위기 담론에서도 장애인은 여전히 배제되어 있다. 파리 협정 192개 국가에서 탄소 감축 정책에 장애인을 언급한 국가가 45개국 밖에 되지 않는다. 그마저도 형식적으로 기후재난이 어떻게 장애인들의 삶을 투과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미미하다.

이는 비단 국내의 문제만은 아니다. 작년 뉴욕 홍수 때도 반지하와 지하가 잠겨 가난한 약자들부터 침수시켰다. 저소득 유색인, 이주노동자, 장애인, 홈리스 등.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 당시 미국의 한 언론 타이틀 제목은 "부자들은 차를 잃고 가난한 사람들은 생명을 잃는 물난리다“였다.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 폭우. 사진=뉴시스 제공)

숨진 세 가족은 방범창 위로 희미하게 들어오는 햇빛을 바라보며 지상의 희망을 꿈꾸며 지냈다. 비가 그치면 그 방범창으로 언제 그랬냐는 듯이 햇빛이 창틀 사이로 들어올 것이다. 이제 병든 노모 혼자 그 햇빛을 보게 된다. 어느 네티즌의 ‘억장이 무너진다’는 표현으로 노모의 심정을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이 사회의 번듯한 직장의 직장인님들은 안 되는 공감 능력이라도 한껏 키워, 반지하에 홀로 남은 노모의 심정을 헤아려 보아야 한다. 

(사진=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제공)

 

저작권자 © 이모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