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68] 재건축을 기다리며

오은주 기자
  • 입력 2022.08.1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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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오은주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
2019년 조연현 문학상 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우식씨의 작은애가 대학교에 입학하던 해였다. 살고 있는 강남 아파트의 재건축이 시작된다는 거창한 계획이 단지 주민회의에서 발표되었다. 우식씨는 향후 10년 이상은 걸린다는 말에 학군 문제도 신경쓸 일이 없어진 터라 그 아파트를 전세 주고 외곽의 신축아파트로 전세를 얻어 나왔다. 그런데 벌써 어언 15년이란 시간, 아니 긴 세월이 흘러버렸다. 15년이 흘렀지만 ‘명품아파트’로 거듭난다던 그 아파트는 아직 재건축의 첫 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1980년대 초에 결혼해서 그 시절에는 요즘과 달리 강남에만 아파트가 있어서 어쩌다 강남에 둥지를 틀게 되었고 재주가 없어서 이사를 가지 못하다 보니까 엉겁결에 강남 아파트 재건축대상 아파트의 소유주가 돼 있었다.

우식씨는 부인과 함께 “우리 살아생전에 새 아파트에 들어갈 수나 있을까?”하는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많아졌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행여나 이번에는 관련법이 변경돼 재건축 시기가 빨라지지 않을까 목이 빠지게 기다려봤지만, 곧 공사를 시작할 것처럼 후끈 달아올랐다가도 맥없이 꺼지기가 수십 차례라 이젠 인내심이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다. 늘 아파트에 신경의 한쪽 끝이 닿아있는걸 보면 재건축아파트 때문에 만성신경증이 생길 것 같았다,

애초에 아파트는 외국처럼 100년 이상 가는 구조이니 새로 짓느니 어쩌니 하는 말이 없었으면 전체적으로 고쳐가면서 살고들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서울로 유입되는 인구가 많다 보니 먼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고 외국에 비해 수명이 짧은 아파트를 빠른 공사기간에 지은 게 잘못이고, 아파트의 인기가 이렇게 높을 줄 몰랐던 것도 요인이라면 요인이었다.

그나저나 재건축을 기다리며 자기 집을 떠나 새집을 갖게 된다는 ‘희망고문’속에 중년기를 다 보내는 이 삶이 맞는건지, 이 시대의 현상이 그러하니 물길을 따라 흘러가듯 살아야 하는건지, 집 한 채에 따라 달라지는 삶의 색채가 우식씨는 뭔가 크게 잘못돼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 얼마나 많은 준비단계가 있었던가. 재건축준비위원회, 정밀안전진단, 주민총회, 주민설명회, 시공사 설명회…… 이제는 신물이 난 생경한 조어들…… 그런 단계가 순조롭게 진행이 됐다면 벌써 그 자리에 새워진 ‘명품 새 아파트’에 입주하고도 남았을 시간이 흘러버렸다. 희망고문이라기보다 해결 못할 우환거리를 안고 사는 듯 우식씨의 아내는 재건축의 ‘재’자만 나와도 신경이 예민해졌다.

그런데도 그 아파트를 판다고 하면 주변에서 난리들이었다. 한마디로 현재의 불편을 참지 못해 미래의 황금수익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선택이며, 자식들에게 강남아파트를 물려줘야 한다는 논리였다. 경제논리에 상속윤리까지 얽힌 난제 중의 난제였다.

오늘 낮에 퇴직한 친구들과 강남에서 점심밥을 먹고 오다가 모처럼 그 아파트가 있는 대치동 거리를 걷게 되었다. 아들과 딸을 키웠던 정다운 추억이 스민 아파트 건물과 상가를 요란스런 현수막들이 뒤덮어 버렸다. 재건축 심사에 통과하기 위해 낡아빠진 아파트 외벽도 도색이나 수리를 하지 않아 초라함을 지나 흉할 지경이었다. 집주인이라는 단어 대신 이제는 모두 조합원이라고 불리는 소유주들의 재산증식이라는 공통의 욕망에 불을 붙여서 연대의식을 고취시키고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들이었다.

워낙 얽힌 변수가 많아서 재건축 아파트의 사업진행 속도는 대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를 떠올리며, 우식씨는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받는 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인내심의 승리가 언젠가는 오겠지라며 편하게 마음을 고쳐먹었다. 명품 아파트의 주민이 되기가 어디 그리 쉽겠는가.

내용과 관련없음/이미지=뉴시스 제공
내용과 관련없음/이미지=뉴시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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