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92] 베트남 싸파, 몽족 오지 마을에서3

윤재훈 기자
  • 입력 2022.08.16 17:37
  • 수정 2022.08.2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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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파, 몽족 오지 마을에서

고국에서는 일제시대 공습을 피해
검정 판자 잇대어 짓던 그 아득했던 학교가
아직도 동그랗게 마을 가운데 남아
아이들의 지저귐 소리에 새 학기를 맞는다

언제 왔다 갔을까
창틀에는 하얗게 허물을 벗어놓고 간 뱀
그 사이 숲속 어디쯤에는 둥지라도 틀었는지
아기 새들이 눈 시리게 하늘을 나는
아득한 전설 속 어디쯤 있는 것 같은 산골 학교
아름다운 동쪽 나라, 한국에서는 사라진
아이들의 지저귐에 하루해가 뜨고 지는 마을

- 깔리양족 마을에서. 윤재훈

(오지마을 가게 풍경. 촬영=윤재훈)
(몽족 오지마을 가게 풍경.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돼지가 아침부터 마을 입구에서 흙 속에 코를 박고 헤집고 다닌다. 그러다 배가 차지 않으면 산으로 올라가 산돼지처럼 나무뿌리를 파먹거나, 벌레나 뱀까지 우걱우걱 씹어 먹다가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온다. 마치 아침이면 집을 나가는 사내와 같다.

닭들도 뒷담에서 먹이를 찾다가 논밭으로 진출하여 벌레 사냥을 하다, 해가 으슥해지면 나무 위로 올라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귀한 손님이 와서 닭이라도 잡을라치면 나무 위로 올라간다.

그러나 그 닭들은 한 번 날기 시작하면 2~30m는 족히 날아가 버려, 온 가족이 닭을 몰며 한참을 씨름해야 겨우 잡을 수 있다. 조금만 더 땅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청둥오리처럼 하늘을 날아 가버릴 것 같다.

(엄마! 아이의 얼굴에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촬영=윤재훈)
(몽족, 엄마! 아이의 얼굴에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촬영=윤재훈 기자)

마을 가게 앞에 오토바이를 세우자 '리마이'라는 30세 된 아주머니가 자청해서 안내해주겠다고 한다. 그녀의 집으로 가는 길에 마치 나를 환영이라도 해주겠다는 듯, '비무미에 꽃'을 따서 준다.

감나무를 바라보더니 '과홍'이라고 하는데, 아직 익지 않았다. 그녀는 매일 싸파로 장사를 나가서인지 영어를 상당히 한다. 그녀의 집에 다다르자 멀리 아이가 보인다. 아이는 해종일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렸는지, 보자마자 문 앞에서 배시시, 웃는다. 어쩌면 아이는 엄마의 보따리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그것이 더 궁금할지도 모른다.

나의 어린 날도 그러했다. 첩첩산중 땅끝마을, 깊은 까금(숲속) 속 쓰러져 가는 오막살이 집 한 채, 겨울이면 마당에 소복하게 함박눈이 쌓이고, 마당 건너편까지 시커먼 늑대가 내려와 먹이를 찾던 곳. 아버지가 일어나 큰기침을 하며 방문을 밀치면, 그때사 기운을 얻은 개들은 헛간에서 짓고, 늑대들이 산속으로 사라지던 곳.

어머니가 푸성귀라도 이고 시장에라도 나가시면, 나도 저 아이처럼 하루종일 엄마를 기다렸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 검정 나무판자 잇대어 지어놓은 학교, 하학종이 울리면 검정 고무신을 신고 논둑길을 무질러 아이들과 달리던 곳, 발에는 동그랗게 흙 테가 그려지고, 엄마의 가르마 같은 신작로 따라 흐드러지게 날리던 하얀 아카시아꽃들, 그 진한 내음, 지천으로 날리며 세상을 황홀한 향기로 감싸던 꽃, 둑길을 따라 한없이 흘러가던 물 위에 종이배를 따라가던 옛 동무들.

배가 고프면 언덕 위에 피던 하얀 삐비꽃을 뽑아 먹거나, 동구 밖 소나무 아래에서 송진을 벗겨 껌처럼 씹었다. 그러다 쪼르르, 소나무로 올라가 엄마가 오시나 손차양을 하고, 온종일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리면 먼 산모롱이에 흙먼지가 오르고 버스가 느릿느릿 돌아 나오면, 부리나케 뛰어 내려가 신작로에 서지만, 대부분 버스는 그냥 지나갔다. 우리 집 한 채뿐이어서.

먼지가 내려앉은 조용하던 운동장에
다시 아이들의 소리 왁자해지고
거미줄에 잠자던 노란 거미도
깜짝 놀라 길게 은빛 줄을 내리는,

고국에서는 일제시대 공습을 피해
검정 판자 잇대어 짓던 그 아득했던 학교가
아직도 동그랗게 마을 가운데 남아
아이들의 지저귐 소리에 새 학기를 맞는다

그 소리에 잔뜩 물기를 머금었던 봉오리들도

화들짝 깨어나 다시 생기를 찾고
바람에 흔들리며 잠자리를 희롱하는 오지 산마을
오랜만에 본 선생님 얼굴에
아이들의 얼굴 다시 해맑아지고
가을 햇살 아래 생글거리며 달음박질을 친다.

아득한 삼한 시대
어디쯤 놓인 것 같은 학교
누런 들판에서는 쌀 타작 하는
아빠의 굵은 근육에 저절로 배가 불러오고

언제 왔다 갔을까
창틀에는 하얗게 허물을 벗어놓고 간 뱀
그 사이 숲속 어디쯤에는 둥지라도 틀었는지
아기 새들이 눈 시리게 하늘을 나는
아득한 전설 속 어디쯤 있는 것 같은 산골 학교
아름다운 동쪽 나라, 한국에서는 사라진
아이들의 지저귐에 하루해가 뜨고 지는 마을


- 깔리양족 마을에서. 윤재훈

(그 옛날 내 모습. 촬영=윤재훈)
(잃어버린 고향. 촬영=윤재훈 기자)

 

(가지 맛이 나는 새총 알. 촬영=윤재훈)
(가지 맛이 나는 새총 알. 촬영=윤재훈 기자)

리마이의 집에 가는 길에 눈에 익은 풍경 하나가 들어온다. 아이가 새총을 들고 뭔가를 겨누고 있다. 나의 어린 시절이 꽃향기처럼 몰려왔다. 가만히 다가가서 보니 옆에 있는 열매를 새 총알로 사용하고 있는데, 익기 전에는 손톱만 한 수박을 닮았다. 씹어보니 가지 맛이 난다. 한쪽 편에는 마을에 처녀 총각들이 모여 제기 같은 것을 차면서 서툰 연예를 하고 있다.

그녀의 집에 도착하자 젊은 아주머니가 한 사람 따라 들어오더니 물건을 내보인다. 스무 살이며 열여섯에 결혼해 아이가 하나 있다는 여자, 내가 물건에 관심을 보이지 않자 그냥 나간다. 집안의 풍경은 문명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열악하기만 하다. 나무판 위에 모기장 하나 쳐두고 거기서 아들과 아빠가 자고, 엄마와 딸은 안쪽에서 잔다.

위쪽으로는 얼기설기 선반을 만들어 짐들을 올려놓았다. 땅 위에는 타다남은 나무들이 있고, 그 위에 선반이 하나 있는데, 콩을 익힌다고 한다. 그 옆에는 옛날에 우리들 집집마다 필수품이었던 미싱이 놓여있고, 뭔가를 꿰매다 잠시 밀쳐놓은 듯하다.

아저씨 한 사람이 누워있다 일어나면서 위에 동굴이 있다고 가보자고 한다. 옆에는 맥주, 음료수 캔 등, 몇 개를 가지고 다니면서 파는 17살 먹었다는 아이가, 동굴 가려면 필요하다고 후레쉬를 사라고 한다.

동굴 안은 컴컴했으며 아버지는 아들이 안내해주면 2만 동이라고 하며, 후레쉬를 들고 먼저 내려가는데 어둡고 좁아서 못 내려가겠다. 아마도 중국 같으면 이런 곳도 입장료를 받을 듯하다.

(오염되어 가는 오지마을. 촬영=윤재훈)
(오염되어 가는 몽족 오지마을. 촬영=윤재훈 기자)

다시 밖으로 나오니 아이들 몇 명과 아주머니 두 사람이 물건을 사라고 한다. 평화로운 오지 산간 마을에 사람들이 몰려오니 순박한 산골 사람들이 장사꾼이 되어간다. 상흔에 물들어 가는 그들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캔맥주를 사서 주자 세 사람이 돌려가면서 마시는데, 점점 얼굴들이 붉어 오고, 나는 어제 시장에서 사 온 사과주를 마셨다.

서양인 두 명이 오토바이를 타고 올라 오더니 별 흥미가 없는지, 이내 돌아간다. 한참 지나니 또 한 무리의 관광객이 올라오고 그 뒤로 물건을 든 몽족 아주머니들이 떼를 지어 따라온다.

(게스트하우스 풍경. 촬영=윤재훈)
(게스트하우스 풍경. 촬영=윤재훈 기자)

이 산골 오지에도 관광객이 찾아오니 게스트하우스가 생겨났다. 

간혹 이국(異國)의 하늘에서 잠시 살고 있는
여행자들을 본다.
빠이에선가는 한국인도 두셋 보았다.

이 이국의 오지 산골에서 처자 하나 만나 아이들 두셋 낳고,
한 세월을 지내며 어떨까.
코흘리개 아이들 칭얼거리는 소리 듣다가,
젊은 그녀의 얼굴에도 주름 한두 개 거미줄 내려오듯 생기고,
산등성이로 햇빛 넘어갈 때,
빨간 크리스마스 꽃, 은사시나무처럼 흔들리는 밤이 오면,
이국의 외로움에 귀양 온 죄인처럼 절절히 몸서리치고,

순박한 그녀는 무엇이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이고
바늘만 한 코 한 코 힘주어 찌르는데,
새끈거리는 그녀의 숨결이 들려오는 듯하다.

- ‘싸파에서’, 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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