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93] 베트남 몽족 오지마을 풍경4

윤재훈 기자
  • 입력 2022.08.18 10:09
  • 수정 2022.08.23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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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오지마을 풍경

젊음은 아름답다.
아직 피지 않는 꽃들은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나의 젊은 날도 그러했다.
저 연어처럼 펄떡펄떡 뛰는 생명들을 보아라.

(촬영=윤재훈)
(검불을 날리는 청년들.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세시에 오토바이 기사가 오기로 하여 아주머니들과 함께 내려가 그들의 집을 구경하고, 차까지 얻어 마셨다. 하도 고마워 가게에 내려가 그녀의 아이들에게 과자와 빵을 사주었다. 아래쪽으로 보이는 마을에도 상당한 집들이 모여있고 가게들도 여럿 있다.

뙤약볕 아래 청년들 둘, 그 옛날 우리의 농촌에서 하듯 높은 데 올라가 바람에 검불들을 날려 보낸다. 그 아래 배부른 벼들은 차곡차곡 쌓인다. 이 오지마을에는 땅 말고는 배를 채우고 돈이 나올 때가 없으니, 다른 방법은 없다. 오직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하루종일 한 마리 해오라기처럼 땅에 엎드려 있을 뿐이다.

이런 오지마을에도 관광객들이 찾아오기 시작하니, 게스트하우스도 있다. 이 층으로 올라가 보니 나무 바닥에 침상 7~8개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데, 하룻밤에 3.5~4달러 정도이며 베트남 돈으로는 7만~8만 동 정도 한다.

마을 길을 걸어가다 보니 남자가 홀로 앉아있고 그를 따라 뒤뜰로 돌아가니 사람들에게 끓여주기라도 하는지, 뱀들을 많이 잡아두었다. 석궁도 몇 개 걸려있고, 차를 마시고 가라고 한다. 그의 호의가 고마워 잠시 머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촬영=윤재훈)
(오지마을 풍경. 촬영=윤재훈 기자)

<향수>의 무대가 그대로 펼쳐지는 곳, 마을에 흘러가는 개울을 보니 그 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에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빈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에는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쁜 것도 없는
사철 발 벗는 아내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가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을 차마 꿈에들 잊히 리야

- ‘향수’, 정지용

(국경 마을, 싸파시장 풍경. 촬영=윤재훈)
(국경 마을, 싸파시장 풍경. 촬영=윤재훈 기자)

쉬엄쉬엄 싸파 마을 시장 구경을 갔다. 할머니가 꿀을 파는데, 질이 좋아 보여 한 병 샀는데, 6달러 정도 한다. 그 옆에 있는 베트남 옷도 괜찮아 보여 물어보니 20달러라고 한다. 옆에 비슷해 보이는 옷은 26달러라고 하는데, 깎을 걸 계산하고 부른 듯하다. 혹시나 하여 13달러에 달라고 하자, 24, 22, 하면서 계속 2달러씩 내려오더니, 결국 14달러에 흥정을 했다.

옆 가게들은 대부분 파장을 하고 들어갔는데, 갓난아이까지 업은 예쁘게 생긴 젊은 아주머니는 끝까지 집요하게 사라고 하고, 남편은 그 옆에서 지그시 바라보고만 있다. 문득, 장기 여행자는 무조건 짐을 줄어야 하는데, 괜히 샀나 하는 후회가 일기도 한다.

(촬영=윤재훈)
(베트남 오지에서 한 끼 식탁. 촬영=윤재훈 기자)

식당으로 가니 어제 보았던 젊은이가 다른 친구들하고 술을 마시고 있어 <러우 포>와 <깻망>, 통일벼 같이 버슬버슬한 밥을 시켜 함께 건배하고 주거니 받거니 마셨다. 밥은 <껌>이라고 하고 술은 <지오 다오매오>라고 한다. 베트남 사과술을 4잔 마셨는데, 취기가 많이 올라온다.

어젯밤 꿈에 휴대폰이 반으로 부러진 꿈을 꾸어 찜찜했지만, 아이들과 친해지려고 휴대폰 오락을 시켜주자 좋아라 한다. 한참을 하다 이제 아빠가 가라고 하자 아이는 교육을 받은 듯 금방 일어서다 바닥에 있는 담배를 주어 버리려 하자, 주인아저씨와 엄마가 달라고 한다.

옆에 있던 할머니 한 분은 그들의 선수에 멀거니 바라만 보고 있다. 할머니에게 담배 한 갑을 사 드리려고 물어보니 2만 동이라고 한다. 세월이 갈수록 점점 마음은 약해지고, 짠, 한 생각만 밀려오니 이것도 나이 탓인가?

외국에까지 나와서 술을 먹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데, 밖으로 나오니 약간 취기가 감돈다. 공원에서 청년들이 제기차기를 하고 있어 슬며시 끼였는데, 취해서 안 되겠다.

(촬영=윤재훈)
(갓 십 대를 넘겼을까. 촬영=윤재훈 기자)

젊음은 아름답다.
아직 피지 않는 꽃들은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나의 젊은 날도 그러했다.
저 연어처럼 펄떡펄떡 뛰는 생명들을 보아라.

가격이 저렴하다고 하여 술김에 호기롭게 맛사지 샵에 처음으로 들어가 보았다. 20만 동(만원 넘음)이라고 하는데, 젊은 남자가 전신을 해준다. 나는 몸을 만지는 것이 간지러워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술을 마시면 괜한 호기심들이 더 밀려온다. 이것 때문에 남자들은 종종, 실수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 12시도 되지 않았는데, 게스트하우스 문이 잠가져 있다. 문을 흔드니 젊은 아낙이 부스스, 눈을 비비며 슬리퍼를 끌고 나온다.

(베트남 싸파의 풍경. 촬영=윤재훈)

비 내음에 일찍 잠이 깼다. 문득 내가 여행을 잘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 떠나올 때 그 간절했던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가? 뭔가 꿈꾸었던 소기의 성과는 이루어 가고 있는가, 벌써 고국을 떠난 지 반 년이 넘었는데, 20여 년 이상 꿈만 꾸다 어려운 가운데 떠나왔는데, 방향을 잃지 않고 제대로 잘 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어젯밤에 먹은 술에 아침까지 속이 약간 이상하다.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 먼 이국까지 나와 앞으로 절대 취할 때까지 먹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창밖의 빗소리를 한가하게 들으며, 어제 공원에서 만난 하노이에서 왔다는 여대생에게 메일을 쓴다. 

(베트남 사파 국경 마을에서. 촬영=윤재훈 기자)

아점을 먹으려고 쉬엄쉬엄 나와 <비프르도>라는 음식을 시켰는데, 우리의 국밥과 비슷하다. 이틀째 비가 내린다. 그 덕에 모처럼 한가하게 게스트하우스에서 시간을 보낸다. 스콜 기간도 이미 지났는데, 줄기차게 내린다.

지금 고국에서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난리다. 그런데 나라까지 마비되고 있는 것 같다.
정부에서는 뚜렷한 수해 대책이 없고, 대통령은 그 물줄기를 감상하면서 퇴근했다고 한다. 
여당은 수해 복구를 돕는다며 수해 지역으로 가서 한 국회의원은

“사진 잘 나오게, 비 좀 더 오면 좋겠다고”
망발(妄發)을 하고, 그 지역구에서 떨어진 나 전 국회의원은 수해 지역 바로 옆에서 수해민들 가슴에 불을 지른 것도 아니고, 
식당에 모여서 “건배, 건배”를 외쳤다고 한다. 

그리고 급기야 수해민들과 싸우고, 경찰이 온다고 하자 급히 도망갔다고 한다.
누군가는 그 아래 ‘무정부’라는 해시 태크를 달았다. 참 한심하고 무서운 일이다.
한 나라를 이렇게 몰고 가다니. 현 사태를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수감으로 한국 정치의 한 시대의 종언(終焉)을 고한 줄 알았더니, 
탄핵 전으로 돌아간 국정 시계, 이미 죽은 시대의 부활" 
이라고 진단했다.

- 2022년, 한국 정치의 풍경, 윤재훈

이처럼 집중호우만 오면 난리가 나는 대한민국과 달리 이곳은 그렇지 않다. 도로 포장율이 낮아 곳곳에 맨땅이 드러나 있으니 흡수가 잘 된다. 여기에 복사열도 없고 자연이 햇빛을 쑥, 쑥, 빨아 들이니 덜, 덥고, 습기도 적어 짜증도 덜, 난다. 그늘 속으로 들어가면 시원하다. 또한 곳곳에 커다란 호수들이 있어 그곳으로 물들이 모인다.

그제 먹은 술 때문에 아직까지 숙취가 있는 듯하다. 숙소에 있던 베트남 청년들이 1박 2일로 <판시판(Fansipan)> 산에 간다고 하는데, 상당히 험한지 포터들이 따라가고 1인당 2,000,000동이라고 한다.

올 봄에 다녀왔던 4,100m 위치에 있던 눈 쌓인 안나푸르나 ABC가 생각이 난다. 백두산, 지리산, 설악산, 한라산 등, 우리나라 대부분의 산을 다녀오고, 그것보다 더 큰 산까지 다녀오고 나니 어느 정도 산에 대한 자신감도 생긴다.

<깟깟 오지마을>을 가기 위해 ‘하~오 하오(베트남 라면)’ 세 개와 밥을 해 김밥을 싸고, 11시가 넘어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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