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94] 베트남 '깟깟 오지마을'에서 5

윤재훈 기자
  • 입력 2022.08.23 17:57
  • 수정 2022.08.30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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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깟깟 오지마을'

가난한 시골,
엄마는 먹고살기 위해 논에 나가면서
서너 살 아이를 마루 대들보에 띠로 묶고 나갔다.
아이는 하루종일 마당을 기어 다니면
흙 위에 온갖 그림을 그리고,
똥을 싸면 비비고도 다녔다.

몇해 전까지만 해도 부모님이나, 명절 날 친척들이 모이면,
‘찹쌀 고추장 한 단지 다 먹은 아이’라고 놀려대던 일들이,
지금도 아련하게 생각난다.

- ‘시골집에서’, 윤재훈

(깟깟 오지마을' 새끼들 집을 만들 위해 짚을 뺀다.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20살 먹은 앳된 여자가 아기를 업고 종일 걸어 다니면서 장사를 하는데, 17세에 결혼했다고 한다. 가슴에는 두꺼운 링에 체인 같은 것이 있는 목걸이를 차고, 큰 귀거리까지 4개나 차고 있어 귓불이 축, 쳐지니 구멍처럼 크게 생겼다. 상당히 아플 것도 갔는데, 전통를 지키는 것은 무엇이고, 미는 또 어떤 개념일까?

<깟깟 오지마을>에 도착했는데, 돼지가 풀을 아주 맛있게 먹는다. 처음 보는 참, 신기한 풍경이다. 모든 짐승은 완전히 방목한다. 다락처럼 얼기설기 나무를 얹어 놓은 곳에는 옥수수 푸대가 엄청 쌓여 있고, 족히 80kg은 될 것 같은 쌀가마를 사람들은 이층으로 옮긴다. 건너편 산에는 돼지가 온 동네 산과 들을 마치 자기 집 마당처럼 돌아다니면, 킁, 킁, 댄다.

다른 집으로 가보니 돼지가 사람들이 쌓아 올린 짚단을 일어서 듯이 해서 새처럼 짚을 뽑아, 새끼들의 집을 만든다.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진화하면 인간처럼 지능이 발달해 갈지도 모르겠다. 한참 후 사람들이 오더니 대나무로 돼지들을 쫒아내고 원래 대로 짚을 옮겨버린다.

(깟깟 오지마을 '선풍기로 검불을 날린다. 촬영=윤재훈 기자)

방앗간 앞에는 아랫도리 옷도 입지 않은 아이들이 놀고 있고, 선풍기 앞에서 검불을 날리는 여인들의 표정은 무심하다. 방앗간 안쪽은 컴컴한데, 아줌마가 맷돌 위에 옥수수를 놓고 돌리며, 아이들은 그 옆에서 스스로 알아서 논다. 나의 어린 날도 그러했다.

가난한 시골,
엄마는 먹고살기 위해 논에 나가면서
서너 살 아이를 마루 대들보에 띠로 묶고 나갔다.
아이는 하루종일 마당을 기어 다니면
흙 위에 온갖 그림을 그리고,
똥을 싸면 비비고도 다녔다.

어느 핸가 그 띠가 풀려, 뒤란의 장독대로 간 모양이다.
그 시절 우리네 어머니들은 집에서 찹쌀 고추장을 담궈,
작은 오가리에 담아 두었다.
아이는 우연히 그 키 작은 독을 열고,
그 안에 빨간 고추장을 한 번, 찍어 먹어본 모양이다.
배는 고팠고, 처음에는 매웠지만,
뒷맛은 달콤한 기운으로 남았나 보다.

두 번 찍어 먹어보고, 얼굴을 붉히고,
또 한 번 찍어 먹어보고, 또 얼굴을 붉히고,
그러다 아이는 통째로, 먹기 시작했나 보다.

몇해 전까지만 해도 부모님이나, 명절 날 친척들이 모이면,
‘찹쌀 고추장 한 단지 다 먹은 아이’라고 놀려대던 일들이,
지금도 아련하게 생각난다.

-‘ 시골집에서’, 윤재훈

(나에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촬영=윤재훈)
(깟깟 오지마을' 나에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촬영=윤재훈 기자)

조무래기들은 빠끔살이라도 하는지, 동네 계단에 앉아 놀고 있다. 아이가 동생을 힘겹고 업고 놀고 있는 모습이 그 옛날 우리네 시골 모습과 똑같다. 그곳에는 우리가 잊어버렸던 고향이 소롯이 앉아있다. 잠시 눌러앉아 살고 싶은 마을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들의 꿈과 우리들의 추억이 박물관처럼, 화석처럼 간직되어 있다.

(깟깟 오지마을 입구. 촬영=윤재훈 기자)

온 동네가 똑같은 물건을 놓고 장사를 하니 경쟁력이 없어, 서로 장사들이 안되는 것 같다. 아이는 엄마랑 어디 마실이라도 다녀오는 것일까, 마냥 신이 났다. 

(오지에서 라면 끓이기. 촬영=윤재훈)
(깟깟 오지마을'에서 라면 끓이기. 촬영=윤재훈 기자)

오지마을에 와서 라면을 끓이기가 마땅찮다. 동네를 동네를 배회하다가 돌 작품을 만드는 어느 가게 옆에 조그만 정자 같은 것이 비었다. 그 위에서 허기를 달래며 베트남 라면을 끓였다. 누군가 지나가다가 힐끔, 본다.

(깟깟 오지마을' 물래방앗간. 촬영=윤재훈 기자)

반 년 가까이가 우기인 나라이다 보니 특히나 물과 밀림들이 풍부하다. 특히나 오지 산골은 사철 물이 흘러 넘친다. 마을에도 물이 풍부하니 여기저기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곳이 많고, 그것으로 대부분의 곡식을 찧는다.

(깟깟 오지마을' 폭포. 촬영=윤재훈 기자)

폭포를 보고 어두운 길을 걸어 동네를 돌다보니 어느 집에 아이들이 모여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아침 드라마 <난 네게 반했어>이다. 나는 한국에서도 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다. 그 옛날 장욱조, 태현실 주연의 <여로>라는 드라마가 생각이 난다. 70년대였던가? 드라마를 하는 시간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흑백 티비가 있는 집을 찾아 다녔다.

4개의 다리 위에 서 있던 커다란 나무 상자, 셔터처럼 옆으로 문을 드르륵 열며, 브라운관이 나오고 아이들은 주인의 눈치를 보아가며 코를 훌쩍거리며 연속극에 빠졌다. 거리에는 통행금지처럼 정적에 쌓였고 사람들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여로>의 주제가를 곧잘 불렀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때, 인근의 이강산이나 구봉산으로 소풍을 가면 선생님이나 아이들은 곧잘, 나에게 이 노래를 시켰다.

그 옛날 옥생댕기, 바람에 나부길 때
범나비 너를 위해 꿈을 실어 보았는데,
날으는 낙옆 따라 어디론가 가버렸네
무심한 강물 위에 잔주름 여울지고
아쉬움에 돌아보는 여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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