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사후 약방문을 쓰는 나라...OECD 노인자살률ㆍ노인빈곤율 1위

고석배 기자
  • 입력 2022.09.02 11:50
  • 수정 2022.09.03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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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노인일자리 6만 개 감축, 허리 굽은 어르신들께 질 좋은 일자리를 준다고요?

[이모작뉴스 고석배] 약방문은 처방전이다. 사람이 죽은 후에 약방문(藥方文)을 쓰는 것은 "처방이 늦긴 했으나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는 면피용 행동으로 보이기 위해서다.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건이 터지면 그때야 요란하게 대책을 세운다며 난리를 피운다. 재발 방지 차원에서 사후약방문이라도 쓰는 건 좋다. 그런데 처방이 틀리면 무슨 소용인가? 이미 죽은 사람으로서는 정확한 처방전이 나올 수 없다. 어디가 어떻게 아팠는지 묻고 싶어도 망자는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지난 8월 우리 사회에 두 건의 사건이 세상 사람들을 아프게 했다. ‘신림동 반지하’와 ‘수원 다가구 주택’. 한 사건은 수해로 인한 사고사이고 또 한 사건은 생활고에 의한 자살이다. 하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 미리 대처했으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고 언론은 보도한다. 늘 그렇듯이 정부 당국은 또 땜질하듯이 사후약방문을 썼다. 11년 전에도 서울에 물난리가 났다. 그때 서울 시장은 시민들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다시는 이런 아픔이 없을 특효약이라고 기자들 앞에서 선전하며 처방전을 썼다. 8년 전 겨울에는 송파 석촌동 지하 방에서 번개탄을 피워놓고 세 모녀가 자살했다.

송파 세 모녀 사건과 수원 세 모녀 사건은 너무나 판박이다. 그들은 죽으면서도 미안해하며 죽어야 했다. 송파의 어머니는 다니던 식당에서 실직당하고 나서도 월세를 한 번도 미루지 않았다. 세상과 작별을 준비하면서도 ‘주인아주머니께…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글과 함께 현금 70만 원이 든 봉투를 남겼다. 남편과 아들을 먼저 잃고 난치병 딸 둘과 함께 자신도 암투병하던 수원의 어머니는 ‘병원비에 이번 달 월세를 내기 어렵다. 죄송하다’는 문자를 남겼다. 그들은 죽음마저도 죄송해야 했다.

무엇이 죄송한가? 가난은 부끄럽고 죄송한 것인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혹 순결하고 고상하신 목사님이나 철학자님들은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라고 목소리 키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마음이 가난’하면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몸이 가난’하면서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되겠는가? 살아 봐서 안다. 어느 국회의원은 온 국민이 생방송으로 보는 청문회장에서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라며 ‘살아 봐서 안다’고 말했다. 그리고 뻔뻔하게 당적을 갈아탔다. 맞다. 사람은 마음에 지배받지 않고 환경에 지배받는다. 살아봐서 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세상을 많이 산 사람은 절망도 빠른가? 숱한 인생의 고비를 겪고 볼 것 안 볼 것 다 본 노인은 어지간한 일에 상심하지 않는다? 틀린 말이다. 분석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중년에서 노년으로 가는 동안 가장 큰 과제는 늙음과 죽음에 직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인은 자신의 노쇠한 육체, 지친 마음을 감당해야 하며, 가까운 지인들과 가족들이 떠나가고 벗이 죽어가는 것을 견뎌내야 한다. 이런 일이 쉽게 익숙해지는가? 인생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제는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 놀랍지도 않지만,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노인 자살률 1위와 노인 빈곤율 1위를 휩쓴 2관왕 국가다. 2관왕이라는 의미는 곧 자살의 원인이 빈곤이라는 쉬운 공식으로 연결된다. 노인 자살률을 낮추려면 노인빈곤율을 낮추면 된다. 초고령사회와 함께 모두 심각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다. 실제로 노인 자살률과 빈곤율을 낮추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2019년 연령대별 자살률. 그래픽=통계청 제공)

대한민국 자살자 3명 중 1명은 노인이다. 하루에 12명가량의 노인이 자살한다. 연령대로 70대가 2위이고 80대가 1위다. 2019년, 80세 이상 남성 노인의 경우 10만 명당 133.4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끔찍하고 무서운 통계 수치다. 많은 노인이 사회와 가족의 외면 속에 빈곤과 소외감과 싸우다 자살을 선택한다. 이러면 비극적인 노인의 유서가 공개되고 신문방송에서 한 번쯤 난리가 날법하다. 고위직 공무원님들은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현장에 나가 사진도 찍고, ‘사후약방문’이라도 발표해야 하는데 잠잠하다. 살 만큼 살았으니까 ‘안 됐지만 별거 아니다’인가?

물가가 치솟고 있다. 물가가 치솟으면 부자보다 서민들이 더 힘들다. 서민 중에서도 장애인과 노인들은 직격탄을 맞는다. 인플레이션은 누군가에게는 찻잔의 바람일지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겐 나무가 뽑히는 태풍이다. 경제학적으로 인플레이션 해결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걸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태풍이 지나가면 제일 피해를 본 집 지붕부터 고쳐주는 게 상식이다.

인플레이션을 잡겠다고 국민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한다. IMF도 견뎠는데 전 국민이 동의하고 협조하면 극복 못할 것 없다. 그런데 갑자기 2023년 예산안에 노인일자리 6만 개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단순노무형 일자리를 줄이고 대신 민간형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입장이다.

(2023년 예산안 발표하는 추경호 부총리. 사진=뉴시스 제공)

노인의 학력이 높아지면서 잡초 뽑기나 쓰레기 줍기 같은 단순노무직 일자리 일색의 노인일자리에 문제가 있는 것은 맞다. 그런데 노인의 경력과 자존감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의 질적 개선을 요구하니, 그럼 한번 당해보라는 식으로 양적 개선(?)을 하겠다는 것은 골난 아이 심술과 뭐가 다른가? 양적 확대 없이 질적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도 예산 확대 없이 질적 개선을 핑계로 노인일자리 6만 개를 줄인다는 것은 개탄스럽다 못해 황당하다.

당장 그나마 있는 단순 노무 공공일자리로 생활비를 마련했던 노인 6만 명은 일자리를 잃는다. 그들 대다수는 노인 중에서도 고령층이다. 정부는 6만 개의 일자리 대신에 60%에 해당하는 민간 일자리를 3만 8,000개 만들겠다고 한다. 계획대로 된다고 해도 그 민간형 일자리는 상대적으로 나이가 적은 노인들의 몫이다. 민간 기업은 경쟁을 붙이며 한 살이라도 나이가 적은 사람을 뽑을 것이고 결국 노노 간의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구인게시판 앞 공공일자리를 찾는 노인. 사진=뉴시스 제공)

대한민국이 초고령사회가 되는 2025년은 현 정부 임기 중에 도래한다. 초고령 사회가 닥쳐도 고령자들이 모두 부자라면 문제가 그리 심각하지 않다. 진짜 문제는 가난한 초고령 사회가 닥친다는 현실이다. 발등에 불이 붙어야 그 심각함을 깨닫는 대중이라면 홍보 캠페인으로 그 폐해를 알리고 거기에 대응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준비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그런데 오히려 거꾸로다. 사전 약방문은커녕 사후 약방문이라도 기다려야 할 판이다. 얼마나 노인들이 더 죽어야 하나?

노인들이 자살할 때는 징후가 나타난다. 근심과 슬픔이 가득한 얼굴 표정을 짓고 자주 눈물을 흘린다. 때로 감정을 잃어버린 듯 멍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더 살아서 뭐하나.”, “이만큼 살았으면 됐지.”, “너희도 힘든데 부담되기 싫다.”, “나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 같은 말을 자주한다고 한다. 그리고 옷차림에 신경을 쓰지 않고 평소 소중히 여기던 물건을 갑자기 나누어준다.

자살은 막아야 한다. 어떻게든 주변의 노인에 관심을 두고 자살만은 막아야 한다. 무엇보다 국가와 사회는 노인이 경제적인 궁핍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쓸모없는 인생은 하루도 없다. 단 하루의 인생도 고귀하기 때문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징후가 보인다.
지금 대한민국의 노인은 우울하다. 위태위태하다.
또 사후약방문을 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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