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론2,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은 '옛날'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다.
담배론2,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은 '옛날'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다.
  • 고석배 기자
  • 승인 2022.09.09 09: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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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선물인 흡연권이 왜 유독 여자에게만은 마음 졸이며 숨겨야 하는 비밀스러운 행위였을까?  

남자들에게는 그저 단순한 기호품일 뿐인 담배가 왜 여성에게는 무언가 이유와 의미를 대야만 하는 존재로 탈바꿈하는가?

(담배밭의 담배잎. 사진=게티이미지 뱅크 제공) 

차를 마시지 않는 나라

[이모작뉴스 고석배 기자] 동아시아 가운데 조선은 유일하게 차를 마시지 않는 국가다. 차는 손님을 맞이할 때 중요한 사교의 수단이었는데 조선에 차 문화가 없었고 대신 술을 내왔다 한다. 과연 술을 좋아하는 민족이었다. 그러다 담배가 들어왔다. ‘대객초인사 식후제일미’라는 말이 널리 퍼졌다. ‘대객초인사’란 손님을 대할 때 ‘첫인사’라는 뜻으로 우선 담배 한 대를 권하는 예절이다. 식사 후에 먹는 가장 맛난 맛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지없이 ‘담배’였나 보다.

(사진=게치이미지뱅크 제공)

연다(煙茶) - 연기로 차를 마시다

담배가 조선에 급속히 보급되는 데는 ‘차’ 문화가 없었다는 게 결정적 이유라고도 한다. 그래서 담배를 ‘연다煙茶’라고 부르기도 했다. ‘연기 차’는 담배의 별명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50대 이상은 학창 시절 한 번쯤 들어 보았을 담배의 별명이 있다. ‘구름과자’다.

19세기 중반 이후 외세는 조선을 먹으려고 호시탐탐 노렸다. 일본은 조선을 평정하겠다며 담배의 영웅, 히로(HERO)를 들여왔다. 히로는 권연(卷煙, 궐련)이었다. 곰방대나 장죽 파이프로만 피던 조선의 담배 문화는 종이로 싼 궐련의 맛에 일대 혁명이 일어났다. 처음엔 너무나 고가여서 고종황제나 명성황후만 피우다 점차 하층민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1899년 독립신문에 게제된 히로 담배 광고. 촬영=고석배 기자)
(1899년 독립신문에 게제된 히로 담배 광고. 촬영=고석배 기자)

파이프 vs 궐련

일제강점기는 새로운 차별을 갖고 왔다. 이에 앞서 조선의 위정척사파 주도로 국채보상운동이 벌어졌다. 단발과 함께 단주, 단연 운동도 벌어졌다. 그들은 서양이나 일본이 조선에 해독을 끼치고자 담배를 전파했다고 봤다. 애연가였던 고종도 담배를 끊고 동참했다.

이때 조선에 들어온 기독교도 시류를 타고 금연과 금주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선교사들이 조선 땅을 밟으며 느낀 첫인상은 사람들이 술과 담배를 너무 많이 하는 나라였다. 그때는 차도 안 마셨고 커피도 들어오지 않아 술과 담배가 사교 수단이었으니 선교사가 당황했을 만 하다. 본래 술과 담배는 기독교 교리와 배타적 관계라고 보기 힘들었지만, 조선에 들어온 기독교 선교사들은 근대 계몽주의와 결탁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시가는 사라지고 시가레토만 남았다

궐련공장이 전국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 산업의 독점권을 잡은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이 세운 동아연초주식회사는 조선총독부의 지원 아래 조선 담배 생산량의 80%까지 차지했다. 뒤이어 일본은 담배에 세를 메기고 전매제를 시행했다. 담배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의 하나다. 일본은 전매제를 통해 막대한 세금을 거둬 들이며 조선을 수탈하고 민족자본을 악화시켰다. 담뱃세를 올릴 때마다 국민의 건강을 핑계 삼았다. 해방 후에도 일제 잔재인 전매청은 사라지지 않았다. 담배, 인삼, 소금 중 소금만 풀어주었다. 그리고 1989년 한국담배인삼공사로 이름이 바뀌더니 KT&G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조선인이 담뱃대와 쌈지를 빼앗았다. 그 이유는 자신들의 궐련을 피우게 하여 조선 농민과 토착 상인의 생산과 판매를 악화시키려는 속셈이었다. 곰방대와 장죽은 식민지 조선 사람의 서러운 운명과 같았다. 여성 차별의 상징인 ‘담배’는 일제강점기 제국주의와 식민지국 간 ‘차별’과 ‘수탈’의 대명사가 되었다. 시가(잎담배)는 사라지고 시가레토(종이담배)만 남았다. 

(19세기 성냥의 발명은 궐련 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렸다.  사진=뉴시스 제공)

담배피우는 마녀   

담배가 아메리카에서 나와 세상에 퍼지게 하는 데는 프랑스인 ‘장 니코’의 역할이 컸다. 그는 약초로서 담배를 키웠으며 담배의 주성분 ‘니코틴’은 그의 이름에서 왔다. 도입 초기 유럽에서도 담배에 대한 잘못 알려진 상식과 편견이 많았다. 담배가 성적 흥분을 유발한다는 마녀사냥을 당하기도 했다. 실제로는 정력이 감퇴한다고 현대과학에서 밝혀졌지만. 유럽에서도 여성이 담배 피우는 것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았다. 건강보다는 미신과 편견이 주된 이유였다.

성냥의 발명과 담배 제조 기술의 발달로 19세기 유럽과 미국의 궐련 소비량은 급격히 늘었다. 광고나 그림, 문학에서 흡연 장면과 함께 여성이 빈번히 등장했다. 그러나 여성이 직접 담배 피우는 장면은 거의 없었다. 약속한 적은 없지만, 말하지 않아도 지켜야 할 사회적 금기였다. 광고에서의 여성은 단지 잠재적 흡연자인 남성들을 유혹하기 위해서였다. 

흡연 여성이 직접 그려지지 않은 것은 흡연 여성이 소수자였기 때문이다. 담배는 남성 사회 사교의 전유물이었다. 엘리자베스 시대, 문학에선 담배는 여성을 상징했다. '그녀를 다정하게 입술에 대네', '파이프를 피우며 아내 고르기' 등의 표현을 흔하게 썼다. 17세기, 네덜란드의 도덕적 미술은 흡연을 '나쁜 여자', '나쁜 엄마'의 상징이었다. 때로 미술에서 담배는 남근을 상징하기도 했다. 화가 뭉크의 '사적인 대화'에서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마실 것을 놓고 앉아 있다. 남자의 파이프에서 나온 연기가 여자의 웃는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1895년, 뭉크, '사적인 대화'. 그림= 아미고 제공)
(1895년, 뭉크, '사적인 대화'. 그림= 아미고 제공)

담배와 여성해방 

20세기만 해도 여성의 흡연을 금기시하는 경향이 컸는데 미국의 담배회사 럭키스트라이커가 일을 냈다. 프로이트의 조카이자 미국 PR의 아버지 에드워드 베네이저에게 마케팅을 의뢰했다. 그는 여성 흡연을 여성해방과 남녀평등의 상징이라며 여성권리향상이슈를 담배 마케팅에 이용했다. 당시 선도적 페미니스트, 루스 헤일을 모델로 활용하고 뉴욕 부활절 퍼레이드에 예쁘지만, 모델처럼 보이지 않는 배우지망생 여성 19명을 섭외해 담배를 피우며 행진하게 했다. 늘씬한 이 여성들은 자유의 여신상을 연상시키려 담배든 손을 흔들며 자유의 횃불을 외쳤다. 카메라 후레쉬가 터지고 사진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유명 여배우 콘스턴스 탤매지, 알라 나치모바가 달콤한 디저트 대신 몸매 관리를 위해 럭키 스트라이크를 피웠다. 우리에게 오즈의 마법사로 알려진 배우 주디 갈란드는 아역시절부터 담배를 강요받았다. 순전히 살을 빼기 위해서였다. 여성의 매출은 3배가 늘어났다. 여성해방과 다이어트는 모순된 개념이지만 마케터는 인간의 욕망을 이용했다. 담배회사의 목적은 해방이 아니라 매출이었다.

(세븐스트라이커 광고.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립스틱과 갈색필터

담배회사의 마케팅은 꼭 여성을 타깃으로만 하지 않았다. ‘갈색 필터’로 유명한 말보로는 초기 여성들이 주 고객층이었다. ‘갈색 필터’는 '뷰티 팁'이라고 해서 일반적인 ‘흰색 필터’’에서 묻어나는 여자들의 립스틱을 가려주는 팁이라며 여성에게 구애했다. 그러나 2차대전 후 여성을 버리고 마초적으로 변신한다. 현재 말보루의 상징인 빨간 지붕 디자인을 도입하고 서부영화로 유명한 남자배우들을 동원해 ‘말보루맨’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전쟁 후 향수를 이용한 것이다. 여성보다 시장이 훨씬 큰 남성 흡연자 세계에서 대박이 나고 전 세계 1위의 담배회사가 되었다.

여성 흡연율을 부추겼다고 담배회사의 상술만 욕할 건 아니다. 럭키스트라이커가 '여성해방'을 담배시장에 최초로 등장시킨 때는 1927년이다. 그런데 니코틴과 타르가 건강에 해롭다는 의학적 결과가 나오기 시작한 때는 1940년 이후부터다. 담배회사들이 페미니즘의 가치를 상술로 이용하기는 했지만, 무지하게 여성들이 그런 상술에 이용당했다고 말하긴 어렵다. 여성 쪽에서도 남성우월주의적 금기를 깨기 위해 담배를 이용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담배가 여성에게 유독 가혹한 도덕적 누명을 씌운 것도 팩트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흠연권- 가장 기쁜 자유의 산물 

17세기 독일에서는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을 법으로 금지했고 어기는 자는 사형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 이후 18483, 독일 동북부 프로이센에도 혁명의 바람이 일어났다. 성난 민중들은 당장 왕을 끌어내 죽이려 했고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어떻게든 그들을 진정시켜야 했다. 프로이센 시민들이 요구한 것은 헌법 제정검열 폐지’, 그리고 공공장소에서의 흡연권이었다. 왕은 특사를 보내 결국 그 요구를 수용했는데 국민들이 가장 환호했던 것은 흡연권이었다. 아무 데서나 눈치 볼 것 없이 담배를 피울 수 있다는 자유가 그들에게는 가장 기쁘고 피부에 와닿는 승리의 선물이었다.

자유의 선물인 흡연권이 왜 유독 여자에게만은 마음졸이며 숨겨야 하는 비밀스러운 행위였을까?  남자들에게는 그저 단순한 기호품일 뿐인 담배가 왜 여성에게는 무언가 이유와 의미를 대야만 하는 존재로 탈바꿈하는가?

(칠레 산티아고에서 대마합법화 퍼포먼스를 하는 시민들. 사진=뉴시스 제공) 

아빠가 알면 '죽음' 남친이 알면 '절교'

2020년 한국의 여성 흡연율은 6.6%다. 남성 흡연율 34%에 비해 5분의 1밖에 되지 않고 전체 평균 흡연율을 낮춰주고 있다. 10%대가 넘는 전 세계 여성 흡연율보다 현저히 낮다. 다행이다. 이 모든게 담배 예절을 철저히 가르쳐주신 조상님들 덕분이다. 그런데 정말 다행일까? 체감적으로 6.6%에 동감할 수 없는 수치다.

자발적인 설문조사와 달리 모 단체의 실제 소변검사를 통한 조사에서는 13.9%가 나왔다 한다. 남성들은 설문 조사와 별 차이가 없는데 여성들은 큰 차이가 있다. 수수께끼다. '아빠가 알면 죽음, 남친이 알면 절교', 제주올레 이사장 서명숙 이사장은 이것이 담배 피우는 여자는 많은데 정작 주변에 흡연 여성은 없는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키워드라고 그녀의 저서 ‘흡연 여성 잔혹사’에서 말하고 있다.

(삽화=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흡연여성잔혹사

서명숙 이사장은 1979년 봄 시국 사건으로 경찰에 끌려갔다. 그녀의 가방에서 담배와 라이터가 나오자 담당 형사는 서명숙의 뺨을 때리면서 “담배나 피워대는 갈보 같은 년들”이라는 폭언을 퍼부었다. 한때 군사정권은 ‘운동권 여학생은 모두 담배를 피운다’는 소문을 의도적으로 언론에 흘리며 도덕적으로 약한 고리를 건드리기도 했다. 캠퍼스에서 담배 피우는 여자 후배들을 줄 세워놓고 복학생 선배가 따귀를 때리던 시절이기도 했다. 서명숙 이사장은 5년간의 노력 끝에 현재 비흡연자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의 흡연에 대한 편견과 열렬히 맞서고 있다. 

(그림=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빗물처럼 내리는 담배

남령이라는 두 글자는 제목으로 딱 맞으나
심중에는 한 가지 특별한 괴로움이 있네
권세가의 뇌물 보따리는 만 근도 하찮으나
가난뱅이 빈 주머니는 한 주먹도 보배라네
하느님은 담배를 빗물처럼 뿌려주어
높고 낮고 마른 곳을 가리지 말지어다
.

- 이시원, [남초가 南草歌]

외세가 조선의 개방을 요구하며 병인양요를 일으켜 치열한 저항 끝에 강화도가 함락되었다. 그때 강화도 지식인 한 명이 음독자살한다. 그는 남초가라는 시를 남긴 이시원이다. 그는 부자는 담배가 넘쳐나도 가난뱅이는 구하기 힘든 것이 현실임을 직시하고 누구나 실컷 담배를 피울 수 있도록 하느님이 담배를 빗물처럼 뿌려주기를 소망했다.

남초가에서 이시원은 은나라 고전에서 좁쌀 비를 내린 우속의 기적을 빗대어 담배의 기적을 꿈꾸었다. 여기서 담배의 의미는 자유의 좁쌀비이고 평등의 이다. 한때 담배는 호랑이도 먹던 자유의 기호품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이 태평성대라고는 할 수 없다. 담배를 피운다고 배가 부르지는 않았지만 배는 곯아도 담배를 피우는 것이 자유와 평등이라 할 수는 없다

( 담배피우는 호랑이. 사진=수원 팔달사 제공) 

호랑이도 담배 먹던 시절은 없었다  

금연과 흡연, 담배의 해악을 떠나 어떠한 문화가 특정 계층, 특정 성별에 치우치고 편견과 차별로 반대편의 인권을 유린했다면 옳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인권은 더디지만 점점 향상되고 있다. 호랑이도 담배를 먹고 배불러 하는, 높고 낮고 마른 곳를 가리지 않는, 평평한 세상은 점점 다가오고 있는지 모른다. 어쩌면 호랑이도 담배 먹던 시절은 과거의 옛날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다.

이 세상 절반의 사람은 여자다.

('살찐 여자의 노래'. 담배 광고의 종말을 풍자. 2002년, 영국)
('살찐 여자의 노래'. 담배 광고의 종말을 풍자. 2002년,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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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트라 2022-09-13 21:09:45
재미있는 주제 기사네요. 흡연권이 자유의 산물이니 정말 다행입니다. 억압을 위해 강제 흡연하게 했으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어쨌든 자유니 안피는 걸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