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97] 베트남 오지마을의 아이들8

윤재훈 기자
  • 입력 2022.09.13 10:04
  • 수정 2022.10.27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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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오지마을의 아이들

소녀들이 재잘거리며 걸어가는 너머로
금송화 한들거리고, 그녀들 뒤로 파랑새가 따라가다가
솟구치는 곳에 하늘이 흔들리고 있다
그 너머로 아스라이 복숭아 꽃밭이 펼쳐지고 시냇가에서
천렵하는 아이들, 등에는 한낮의 태양이 빛난다

- ‘먼 산 바래서서’, 윤재훈(전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이 산 속까지 뭐하러, 왔을까?”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사철 더운 나라이니 삼모작이 가능한 나라, 일 년 내내 농사철이다. 소출품은 더 많을 듯한데, 인간의 삶에는 어떤 것이 더 좋을까, 사계절의 운행에 따라 봄에는 심고, 여름에는 바쁘게 땀 흘리고, 가을에는 걷어 들이고, 겨울에는 쉬는 이 사계절의 운행이 있는 나라가 더 나을까? 국가 소득에서 우리나라와는 많은 차이가 있는 나라이니 쉬, 대답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베트남이 더 잘 사는 나라였다. 한국전쟁을 끝내고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써레질이라도 할 양일까, 농기구를 지고 언덕을 오르는 청년, 그에게서 이방인에 대한 낯선 경계심이 보인다. 마치 외진 숲속에서 짐승이라도 만난 것처럼, 그가 힐끔, 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버린다. 집 한 채가 보이고 대여섯 살쯤 보이는 여자아이가 동생을 업고 있는데, 금방이라도 힘에 부쳐 쓰러질 것만 같다.

청년이 올라간 언덕 위로 이번에는 달디 단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소녀가 올라간다. 학교가 끝나고 시오리 길, 집에라도 가는 것일까, 아니면 밭에 나간 엄마를 찾아가는 길일까?

(이방인에게 호기심 어린 소녀. 촬영=윤재훈 기자)

소녀들이 재잘거리며 걸어가는 너머로
금송화 한들거리고, 그녀들 뒤로 파랑새가 따라가다가
솟구치는 곳에 하늘이 흔들리고 있다
그 너머로 아스라이 복숭아 꽃밭이 펼쳐지고 시냇가에서
천렵하는 아이들, 등에는 한낮의 태양이 빛난다
시냇물 따라 은피리 떼들 앞서가는 길 위로 전신주에는 연이 걸려 있고,
까치도 걸려 있고, 소녀도 걸려 배시시 웃는다

내 모습도 태양 빛에 걸려 길게 늘어지고,
산그늘에 포개지면, 기슭에 앉아 먼 산등성이로 피어오르는 구름을 본다

세월은 유전하는가
저만큼에서 빛나는 모습, 바라볼수록 아련해지는데,
그리운 것들은 다시 무엇이 되는가
매어도 매어도 자꾸만 매듭은 풀리고, 물그림자에 비치는
노란 물봉선에 앉으려던 잠자리는 자꾸만 떠오르고,
호반새의 부리에 수면은 산산이 부서져 버리는데,
그리운 것들은 다시 무엇이 되는가

- ‘먼 산 바래서서’, 윤재훈(전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돼지 가족에게 쫒기는 소년. 촬영=윤재훈 기자)
(돼지 가족에게 쫒기는 소년. 촬영=윤재훈 기자)

이른 아침 마을 사람들이 모두 논밭으로 나가고 나면 이제 마을에는 어린 아이와 가축만 남는다. 돼지가 온 마을을 헤집고 다니면 왕노릇을 하고, 아이는 돼지에게 쫒겨 다니다가 배가 고프면 흙도 주워 먹고, 자기가 싼 똥도 만져보고, 개천가로 넘어지기도 하며,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무슨 수심이라도 있는 것일까? 촬영=윤재훈 기자)

슬리퍼를 신은 소녀 하나 이방인에 대한 부끄러움인지, 뭔가 수심이 있는 건지, 망태 하나 매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자그마한 개울을 넘는다. 방금까지 엄마랑 전통 수공예품을 만들다 왔는지, 손에는 푸른색 물감이 잔뜩 들어있다.

(배부른 연기가 피어오른다. 촬영=윤재훈 기자)
(배부른 연기가 피어오른다. 촬영=윤재훈 기자)

저녁밥이라도 짓고 있는지 멀리 배부른 저녁연기 피어오르는 마을, 일이라도 끝내고 오는지 망태를 메고 휘적휘적 아주머니들이 올라온다. 대부분 이방인의 얼굴도 보지 않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지나가는데, 저만치 올라가는 지앙기 있어 보이는 여자 하나 힐끗, 하고 훔쳐본다.
그 아래에는 집 한 채가 있고, 아이에게 주는 밥그릇이 마치 개밥그릇 같다. 그 옆에는 정말 개가 어슬렁거리고, 그 간극이 '문명의 충돌'을 보는 것 같다. 어린 시절 우리들의 모습도 찢어지게 가난하였지만, 저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백의(白衣) 민족, 흰옷의 민족, 깨끗하게 빨아 입고, 나들이 나갈 때 선비들은 의관을 정제하고, 그렇게 다녔던 것 같다.

(가정마다 필수품, 촬영=윤재훈 기자)
(가정마다 필수품, 촬영=윤재훈 기자)

숲속으로 가는 아이들은 저마다 망태에 큰 칼 하나씩을 넣고 다니는 게 일상이다. 밀림이 울창하니 그것을 헤치고 나가려면 꼭 필요할 것이다. 문득 산짐승이라도 만날 때에는 오직 저것에 의지해야 한다.

노인들의 이가 심하게 상해있다. 이 오지 산골에서 어떻게 치료를 받을 수 있겠는가. 읍소재지 정도 되는 싸파에 나간다고 해도 변변한 치과가 어디 있을까? 치과가 넘쳐나는 한국에서 온 여행자는 이 낙후된 현실 앞에서, 거대한 차별을 느낀다. 얼마나 오랜 시간, 턱을 부여잡고 끙, 끙, 앓으면서 아려왔을까, 그 소리가 마치, 들려오는 것 같다.

아이들은 시장 나온 부모를 따라 학교도 가지 않고 하루 종일 그 곁을 지키고 있다 맹모삼천지교가 배고픈 현실 앞에서는 아득하기만 하다.

(장난기들이 잔뜩, 묻어나는 산골아이들. 촬영=윤재훈 기자)

‘국토세간(國土世間)’이라고 하는데, 자신의 복덕에 따라 태어나는 땅이 다르다고 하는데, 이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은 그나마 복덕(福德)을 쌓아서 이 땅에 태어났을까, 그러나 쪽방촌이나 고시원에서 사는 사람들은 과연 이 땅이 행복할까? 그것도 복덕의 차이라 해야 할까?
한 동이의 물을 얻기 위해 수십 리 길을 걸어가서 흙탕물을 마시고, 그것을 또 이고 지고 길러오는 아프리카 사람들, 그리고 기생충에 감염되어 항생제 한 알만 먹으며 나을 병으로 죽어간다. 이것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사람이 남기고 갈 것은 ‘음덕(陰德)’뿐이라고 한다. 그 덕은 3대를 간다고 한다. 내가 못 받으면 나의 후손들이 받는다.

(소녀의 호기심, “어느 나라에서 온 사람일까?” 촬영=윤재훈 기자)
(소녀의 호기심, “어느 나라에서 온 사람일까?” 촬영=윤재훈 기자)

도덕과 윤리가 땅에 떨어졌다고 한다. 기성세대들의 욕심에 의해 그런 과정들을 학교에서 못하게 막아버리니 당연한 업보(業報)다. 자국의 역사책마저 철사줄을 휘듯 왜곡시켜 버리고, 조상들의 죄상를 덮으려고 거짓 역사책을 만들고 있다. 아예 학교에서 역사 시간을 없애 버리려고 하는 파렴치한(破廉恥漢)들이 있다.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은 가난하고 힘들게 살지만, 동족을 팔아 일제에게서 엄청난 땅을 받은 자들은 여지껏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그들에게는 역사보다는 영어교육이 우선이며, 고액 과외를 일삼고 있다.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더욱 그 격차를 높인다. 학원과 과외에 목을 맨 정치인과 고위 관료들의 자식들은, 해외에서조차 현지인들이 혀를 내두른다. 특권과 반칙으로 그 부정부패가 이미 도를 넘어 버렸다.

세계의 과외 시장에서 타락한 관리 자식들의 음성 고액 과외는 비난의 대상을 넘어, 
국민마저 부끄럽게 만드는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 자식들은 공부 대신 마약을 하거나 타락한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철면피(鐵面皮)한 얼굴은 중용의 윤리를 잃어버리고, 비윤리적이고 비이성적으로 갖가지 만행을 저지른다.
여기에 현대의 아이들은 거의 흙을 밟지 못하고 산다. 자연은 멀리 차를 타고 나가야만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골목길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자연을 가까이하지 못한 아이들의 인성은, 어른들에 의해서 망가져 가고 있다.

쓰러진 친구는 일으켜 함께 가야 할 동반자가 아니고,
그냥 밟고 지나, 우리 아들만이 1등을 해야 한다고

뻔뻔스럽게 가르치는 어른들이 만연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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