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98] 베트남 오지민족들과 국부(國父) 호치민9
[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98] 베트남 오지민족들과 국부(國父) 호치민9
  • 윤재훈 기자
  • 승인 2022.09.16 16:5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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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오지민족들과 국부(國父) 호치민

자유 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키시다
조국의 이름으로 님들은 뽑혔으니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가시는 곳 월남 땅 하늘은 멀드라도…
- 유호 작사, 이희목 작곡

(종일 앉아있어도 사 가는 사람이 없다. 촬영=윤재훈 기자)
(종일 앉아있어도 사 가는 사람이 없다.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산골에 사는 몽족 처녀가 싸파로 나와 데이트 하면서, 남자 친구와 국수라도 한 그릇씩 하는 모양이다. 뭔가 특별한 옷이라도 입을 것도 같은데, 좀 괜찮은 옷이라고는 전통 복장 한 벌뿐이니 그걸 입고 온 모양이다. 슈퍼에 가서 다정하게 과자도 사는 모습이, 대한민국의 어느 커플 같다.

따뜻하고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 안에서 밥을 먹는 관광객들, 그 집 앞 차가운 바닥에 앉아있는 소수민족들은 밥이나 먹었을까? 계단에 앉아 한 개라도 팔릴까, 추위에 집에 가지도 못하고 앉아있다.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들은 집 안의 모습과 너무나 대조적인데, 더러는 맨발이다. 그렇다고 꼭, 팔 생각도 없는 것 같다. 자기 물건을 계속 만들면서, '팔리면 좋고, 안 팔려도 그만'인 듯한 얼굴이다.

그래도 이 도시는 사람들의 온기로나마 조금 녹일 듯한데, 그 쌀쌀한 산속 집의 아이들은 오늘 밤 얼마나 추울까? 싸파 읍내는 그나마 중국과 국경 지역이라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지 호텔들이 넘쳐난다.

(상인의 손, 촬영=윤재훈 기자)
(상인의 손. 촬영=윤재훈 기자)

딩동, 문자가 뜬다. 오늘 고국은 빼빼로 데이인 모양이다. 아내에게서 긴 막대기 과자 끝에 초콜릿이 묻은 사진이 뜬다.

베트남 돈은 동(d)으로 표기한다. 모든 돈들에는 전부 호치민 얼굴이 그려져 있다. 조국을 통일시킨 국부로 추앙받고 있는 분이다. 그들의 통일이 한없이 부럽기만 한데, 동족상잔(同族相殘)이 없는 그런 평화로운 통일을 기도해 본다.

500,000동짜리 지폐를 꺼낸다. 엄청나게 큰 돈인 것 같아 약간 쓰기가 두려운데, 우리 돈으로 30,000원이 조금 못된다. 종이 질이 반질반질한 것이 우리 돈보다 나아 보인다.

(”많이 먹어“, 어린 여인들. 촬영=윤재훈 기자)
(”많이 먹어“, 어린 여인들. 촬영=윤재훈 기자)

베트남 하면 생각나는 것이 많다, 우리의 어린 시절에는 ‘월남’이었다. 북쪽은 ‘월맹’이었다. 월맹은 북한처럼 옛날 이야기책에 나오는 뿔이 달린 도깨비들이 살고 있는 줄 알았다. 나라에서 그렇게 가르쳤고 그 배후에는 미국이 있었을 것이다.

미국은 전쟁을 일으키며 우리의 젊은이들을 원했고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많은 청춘들이 갔다. 그리고 우리의 경제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그 시절 베트남인들은 따이한의 잔인함에 몸서리쳤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미군들이 무차별적으로 항공방제한 고엽제 후유증으로 몸서리를 치고 있다. 지금은 많은 관광객이 가고 있지만 때때로 여행지에서 그것이 알킬레스건이다. 그나마 박항서 감독의 축구 외교 때문에 좀 나아진 느낌이다.

맹호 부대, 백마 부대, 비둘기 부대, 청룡 부대, 백구 부대, 은마 부대, 십자성 부대 그 이름을 다 외우기도 힘들다. 영문도 모르고 이데올로기에 휩쌓여 우리의 아까운 젊은이들은 그렇게 남의 땅 전쟁에 목숨을 걸었다.

수많은 국군 아저씨들이 김포공항에서 비행기 트랩에 오르는 텔레비전 화면을 보면서, 그 시절 우리는 뜻도 모르고 자랑스러워했다.

아느냐, 그 이름 무적의 사나이
그 이름도(세운 공도) 찬란한 백마고지 용사들
(정의의 십자군 깃발을 높이 들고
백마가 가는 곳에 정의가 있다.)

달려간다, 백마는 월남 땅으로
이기고 돌아오라, 대한의 용사들

- 작사 김석야, 작고 김강섭

(”휴대폰을 갖고 싶어요.“ 촬영=윤재훈 기자)
(”휴대폰을 갖고 싶어요.“ 촬영=윤재훈 기자)

그 시절 학교에서 우리는 위문편지 쓰는 것이 일이였다. 영문도 모르는 아이들은 그냥 시키니까, 편지를 썼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위정자들은 어린 학생들에게 그런 것을 시켰다. 그 첫머리는 보통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보고 싶은 국군 아저씨께“로 시작되었다. 그래 보았자, 그들의 나이가 고작 20대 초반이였을 것이다. 그리고 음악 시간에는 의미도 알지 못하고 이데올로기로 점철된 노래를 목소리 높여서 불렀다.

자유 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키시다
조국의 이름으로 님들은 뽑혔으니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가시는 곳 월남 땅 하늘은 멀드라도

한결같은 겨레 마음 님의 뒤를 따르리라
한결같은 겨레 마음 님의 뒤를 따르리라

- 유호 작사, 이희목 작곡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을까?“ 촬영=윤재훈 기자)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을까?“ 촬영=윤재훈 기자)

1955년부터 75년까지 20년 동안 일어난 인류의 비극, 초 강대국 미국과 조그만 사회주의 국가였던 월맹이 수많은 무기의 열세 속에서도 승리한 전쟁, 베트남인들은 지금도 그것을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아프카니스탄이나 이란, 북한, 쿠바들처럼 미국에게 무릎 꿇지 않고 끝까지 자주권을 지킨 나라들, 그리고 이긴 나라도 있다.

그러나 그 애꿎은 전쟁에 참전했던 수많은 나라의 젊은이들은 고엽제와 부상으로 신음하고 그 가족들에게까지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주었다. 전쟁을 진행했던 자들은 호의호식하며 뉘우침 없이 잘살고 있을 것이다. 많은 나라의 젊은이들은 ‘고엽제 동지회’까지 만들어서, 그 신음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 아무도 그 전쟁을 책임 느끼는 사람이 없는 말로(末路), 조국은 그 실상에 책임감을 통감하고, 한 번이라도 응답한 적이 있는가, 그들만이 외롭게 호소하고 있었다.

문득 ‘세계 원수폭 금지’를 염원했던 도다 선생의 제자로 전쟁만큼은 절대로 반대한다는, 이께다 선생의 외침이 생각난다.

이 세상에, 
전쟁만큼 비참한 것은 없다.

(젊은 상인과 여인들. 촬영=윤재훈 기자)
(젊은 상인과 여인들. 촬영=윤재훈 기자)

cùng ở, cùng ăn, cùng làm
'꿍어(함께 산다)' '꿍안(함께 먹는다)' '꿍람(함께 일한다).

이 전쟁을 이끌었던 베트남의 영웅 호치민은, 1890년생이니, 132년이 되었다. 본명은 응우옌신꿍(Nguyễn Sinh Cung, 阮生恭, 완생공)으로 자(字)는 필성(必成, Tất Thành)이며, 호찌민은 가명이고 '깨우치는 자'라는 의미가 있다. 베트남인들은 '호 할아버지'(Bác Hồ, 박 호, 伯胡)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호찌민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민족주의자란 이유로 수배되어 세계를 떠돌며 살았기 때문에, 가명이 호찌민을 포함하여 대략 196개가 있다고 한다.

그의 강직한 성격은 아버지에게서 본받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베트남 ‘응에안(Nghệ An, 乂安)성’에 있는 호앙쭈(Hoàng Trù)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응우옌 신 삭’은 농민 출신으로 가난한 유학자였고, 어머니는 서당 훈장의 딸이었다. 그의 가계가 객가(客家) 출신이라는 설도 있다. 불행하게도 아버지가 관직에 오른 해 어머니가 사망하였다.

그의 부친은 프랑스 식민지 치하에서 명맥을 유지하던 응우옌 왕조의 관리가 되어 수도 후에로 가족을 데려올 수 있었으나, 자신의 일이 식민지 경영의 주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에 절망했고, 결국 불복종을 이유로 해직된다. 현실에 실망한 그는 이후 후에를 떠나 시골에서 약제사로 여생을 보냈다 그러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형과 누나도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체포를 당해 수감된다.

내가 죽은 후에 웅장한 장례식으로 인민의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내 시신은 화장시키고, 재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 도자기 상자에 담아
하나는 북부에, 하나는 중부에, 하나는 남부에 뿌려다오.
무덤에는 비석도 동상도 세우지 말라.
다만 단순하고 넓으며 튼튼한 통풍이 잘되는 집을 세워
방문객들을 쉬어가게 하는 것이 좋겠다.
방문객마다 추모의 뜻으로 한두 그루씩 나무를 심게 하라.
세월이 지나면 나무들은 숲을 이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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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2022-09-16 19:53:13
전쟁만큼 비참한것은 없고
평화만큼 존귀햔것은 없다

그 참화속에 다시 꿋꿋이 일어난 베트남도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에의 갈망ㅡ모든 인간의 희망이 아닐까 ,

윤재훈 2022-09-16 16: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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