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식의 인생 바라보기㊲] 사랑의 불시착

윤창식 칼럼니스트
  • 입력 2022.09.19 10:51
  • 수정 2023.08.23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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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식- 수필가- 前 초당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 문학과환경학회 회장 역임
▲윤창식
- 수필가
- 前 초당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
- 문학과환경학회 회장 역임

안달식(70)은 늙으막에 G군청 문화관광과에서 마련한 무료 유튜브 제작 강습회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다니는 재미가 쏠쏠했다. 뭐 별로 눈에 띄는 콘텐츠도 없는 황망례 할머니와 손녀가 만든 유튜브 채널이 구독자가 100만명에 달하고 한 달 수입이 수천만 원이 넘는다는, 강사의 설명을 들은 날부터 달식에겐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인생을 헛살았어. 오냐 좋다! 나도 너튜븐가 물놀이용 튜븐가 맹글어서 돈 좀 벌어보자!"

달식은 혼자 된 지 꽤 된 마당이라 동영상을 함께 찍고 노닥거려줄 환상의 콤비를 구하는 일이 문제였다. 몇날 며칠 궁리 끝에 초등학교 동창으로 읍내에서 참기름집을 하면서 역시 혼자 사는 김할머니를 떠올렸다.

"어이 김말자! 잘 있었냐?"

"저 작껏이 뭣할라고 또 나를 찾아왔으까?"

"말자씨! 내 말만 잘 들으먼 앞으로 참지름 같은 것 안 짜도 된당께!"

"5학년 때 우리 외삼촌이 사준 고무지우개 반틈 짤라묵고 아직도 안 갚은 놈이 또 뭔 수작을 부릴려고?"

"아따 고것이 아니랑께. 우리가 이 세상에 나와갖고 요따구로 살다 죽어불먼 억울하제잉."

"나 지금 겁나 바뻐. 꼴도 보기 싫은께 얼릉 가부러야."

"말자야! 그날은 참 미안하게 되았다. 메밀꽃이 희카가 피던 날 밤 물레방앗간 뒷전에서 만나자는 약속 못 지킨 거."

"지키지도 못할 약속 뭔 염병한다고 했더라냐?"

"아따 옛날 그 착하던 말자씨가 으짜다가 이렇게 변해부렀을까잉. 이번엔 진짜여. 내가 하잔대로만 하먼 말년이 꽃길이 될 테니께."

"대체 무슨 일이관디?"

"너랑 나랑 한 집에 사는 것으로 하고잉. 내가 새벽에 잠에서 깨는 순간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으먼 되는 일이여."

"오메 남사스러워라! 평생 모지리 짓거리만 하더니 꿈도 야무지네잉."

"아니, 진짜로 같이 사는 것이 아니고 그냥 그렇게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니께."

"나는 고스톱도 모르고 나이롱뽕도 모릉께... 너 인제 정신 차릴 나이도 되었구만 쯔쯔."

"한寒 데 앙거서 의지 꺽정하고 있네. 나야 기초연금 30만원으로 충분히 살 수 있지만, 우리 말자씨 보먼 늘 안쓰러워서."

말하는 뽄세는 느밀거리지만 결코 밉상은 아닌 달식이의 하소연을 끝내 마다할 말자는 아니었다.

둘은 결국 유튜브 제작을 함께 하기로 하였다. 기술적인 부분은 군청 유튜브 강사의 조언과 도움을 받기로 하고 드디어 "안달식과 김말자의 분홍빛 라브스토리"라는 유튜브 채널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세상은 요지경이라 했던가. 엉성하기 짝이 없고 화질도 구린 동영상에 조회수와 구독자가 팍팍 늘어나리라 꿈에 부풀었던 것이 애당초 잘못이었다. 한 달 동안 구독자 겨우 7명을 채우고 좌충우돌 포복절도 실수연발 악전고투의 '달식과 말자의 사랑'은 결국 오발탄이 되어 불시착하고 말았다.

하지만 오늘도 말자씨의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가게 앞을 지나며 달식씨는 사람좋게 찡긋 웃어보인다. 리정혁(현빈)과 윤세리(손예진)만 사랑하라는 법이라도 있간디.

세상의 모든 사랑은 너와 나의 튜브(tube)를 타고 스치다 서성이다 스미는지 모른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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