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건희의 산책길㊺] 잊히지 않는 기억 저편의 아련함…김효근 아트팝 뮤지컬 ‘첫사랑’

천건희 기자
  • 입력 2022.09.21 10:59
  • 수정 2022.09.23 00:1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이모작뉴스 천건희 기자] 김효근의 아트팝 뮤지컬 <첫사랑>을 지난 9월 3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 관람했다. 우리 고유의 정서와 감성이 담긴 시(詩)에 선율이 담긴 한국 가곡들이 뮤지컬 무대에서 펼쳐졌다. 아트팝(Art Pop) 뮤지컬은 ‘가곡의 예술성에 대중성을 더했다’라는 의미의 뮤지컬의 새로운 시도이다.

뮤지컬 <첫사랑>은 ‘눈’, ‘첫사랑’,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등 김효근 작곡가의 가곡 16곡이 뮤지컬 넘버로 이루어진 쥬크박스 뮤지컬이다. 김효근 작곡가는 ‘눈’으로 1981년 제1회 대학가곡제 대상을 수상하고, 6장의 가곡 앨범을 발표한 작곡자이자 경영학자(현재 이화여대 경영대학장)이다. 국내 첫 ‘가곡 뮤지컬’이 마포문화재단(대표이사 송제용)의 마포아트센터 재개관 기념 창작 뮤지컬(오세혁 작•연출)로 만들어졌다니 궁금했다.

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1004석 규모로 재개관된 마포아트센터의 넓은 로비에는 기존 뮤지컬과는 다르게 중장년층과 어린이와 함께 한 가족 등 다양한 관객들이 많았다. 뮤지컬<첫사랑>의 포스터는 실사 타입과 만화 타입이 같이 만들어졌는데 첫사랑의 순수함과 풋풋함이 전해져 미소 짓게 했다.

사진=마포문화재단 제공

무대 위에는 8인조 오케스트라가 배치되어 있어 연주회에 온 기분이다. <첫사랑>은 사진작가인 50대 주인공(윤영석, 조순창)이 어느 날 알츠하이머에 걸리면서, 주인공이 첫사랑의 아내(양지원)를 만나던 20대 주인공(변희상)으로 시간 여행을 한다. 학보사 사진기자로 활동하던 20대 자신과 국제음악제 무대에서 본인의 노래를 부르는 게 꿈인, 성악가 지망생이었던 아내를 만난다. 삶의 기억이 지워지고 있는 50대 주인공은 첫사랑을 만나던 아련한 설렘의 순간을 가곡 ‘첫사랑’으로 가슴 아리게 불렀다.

그대를 처음 본 순간이여

설레는 내 마음에 빛을 담았네

말못해 애타는 시간이여.

나 홀로 저민다.

.........

언제나 그대에게 내 마음 전할까

오늘도 그대만 생각하며 살다

-가곡 ‘첫사랑’ 중에서

사진=마포문화재단 제공
사진=마포문화재단 제공

휴대 전화도 없던 시절인 1990년대의 순수하고 싱그러운 장면들은 시어로 표현된 가곡의 가사들과 잘 어우러졌다. 20대 주인공이 아내에게 처음으로 반했던 대학 가곡제가 재연되는데, 아내는 가곡 ‘눈’을 부른다. 배우 양지원의 맑은 음색은 흰 눈이 곱게 쌓인 새하얀 눈길이 보이는 듯했다. 같은 사진작가의 길을 걷는 아들(김지훈)은 사고로 돌아가신 엄마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는데, 기억 속에서 엄마를 만나는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며 엄마를 느낀다. 세상을 떠난 엄마는 남겨진 가족에게 자신은 바람 속에 살아있다며 따뜻한 위로를 전해준다.

그 곳에서 울지 마오

나 거기없소, 나 그곳에 잠들지 않았다오

그 곳에서 슬퍼 마오

나 거기없소, 그 자리에 잠든게 아니라오

가곡 ‘내 영혼 바람되어’ 중에서

사진=마포문화재단 제공

뮤지컬 <첫사랑>에는 입에서 흥얼거려지는 멜로디와 함께 가슴을 울리는 대사들이 많다. 사진기가 사진을 많이 찍으면 용량이 부족해서 저장 공간에 있는 사진들을 지워야 하는 것처럼, 사람의 기억도 그래서 지워지는 거라는 50대 주인공에게 알츠하이머 병을 설명하는 의사의 표현은 너무나 적절했다. 또한 주인공과 첫사랑을 이어준 매개체인 사진에 대한 표현들도 가슴에 하나하나 와 닿았다.

“아름다운 존재를 아름다운 마음으로 사랑하는거.

그게 사진의 시작이야”

“사진은 찍는 내가 아닌,

찍는 대상을 사랑하는 것이다”

화려한 무대 전환이나 현란한 춤은 없었지만, 잊혀져가는 기억들의 소중함이 느껴지는 힐링의 시간이었다. 50대 주인공이 20대 시절과 한 무대에서 만나는 장면이나 카메라 플래쉬를 활용한 안무 등 신선하고 다양한 시도들도 좋았다. ‘가곡 뮤지컬’ <첫사랑>이 3일 동안의 4회 차 공연으로 공연 기간이 짧은 것이 아쉽다. 다시 무대에 올려지길 소망해본다.

가곡 뮤지컬 <첫사랑>을 제작한 마포문화재단이 2018년부터 매년 한국가곡 공연들을 기획하고, 올해는 ‘한국 가곡 세기의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음에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여섯 번의 공연에서 1920년대부터 현재까지 100년에 이르는 한국 가곡들이 무대에 올려지는데, 10월 4일 마지막 공연인 ‘어버지처럼’이 예정되어 있다니 기대가 된다.

내 삶에서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것은 누군가와 함께한 기억이다. ‘오늘도 그대만 생각하며 살다’라는 허밍이 입안에 맴돈다.

먼 훗날, 마지막까지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붙잡고 있는 기억엔 누가 있을까?....

사진=마포문화재단 제공

 

저작권자 © 이모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