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以目視目] 거짓 없는 말, 필요한 말, 품위 있는 말

정해용 기자
  • 입력 2022.09.27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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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모든 성인의 경전에서 개인의 수양 덕목으로 중시하는 것 중의 하나가 말(言)에 대한 경계다.

불교에서는 몸으로 짓는 신업(身業), 생각과 의지로 짓는 의업(意業)과 함께 말로 짓는 구업(口業)을, 선을 쌓기도 하고 악을 쌓기도 하는 인간의 세 가지 수단 중 하나로 경계한다. 기독교의 경전 중에 있는 잠언과 전도서에는 지혜로운 말과 어리석은 말의 차이가 사람의 흥망성쇠를 바꿀 만큼 중대함을 깨우치는 격언이 수없이 반복돼 나온다. 또한 말 한마디가 세상을 위로하기도 하고 화를 일으키기도 함을 거듭 강조한다. ‘함부로 뱉는 말은 비수가 되거니와 슬기로운 혀는 남의 아픔을 낫게 한다.’ 스스로 화와 복을 가를 뿐 아니라, 자기가 사는 세상을 향해서도 화와 복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일관되게 가르치는 말들이다. 공자와 맹자는 물론이고, 누가 지었는지 모를 속담 가운데도 말을 조심하라는 내용은 수두룩하다.

미국 작가 ‘데이 클라렌스’는 말의 황금률 세 가지를 이렇게 제시한다.

그것은 진실한 말인가, 필요한 말인가, 그리고 친절한 말인가. 꼭 해야 할 말이고 동시에 거짓이 없는 진실의 말을, 예의에 맞게 해야 말로 인한 실수가 없다는 얘기다. 이렇게만 한다면 그가 하는 말은 언제나 사람들의 신용을 받게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이런 지혜를 잊지 않고 조심해서 말하는 사회는 혼란이나 부패가 없이 안정되고 편안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말을 참 조심스럽게 한다.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오랜 경험의 축적, 성인 현자들이 깨달아 가르쳐준 지혜가 축적된 결과인 듯도 하다. 예를 들면, 요즘은 많은 사람이 말꼬리를 ‘~ 같아요’라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아주 조심스러운 의견표명 방식이다. 단정적인 표현보다 조심스럽게 여지를 두는 표현은 일단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 ‘강(强) 대 강’의 충돌이 벌어지는 것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자기 의견을 잘 피력하지 않으려는 경향도 볼 수 있다. ‘잘하면 본전, 잘못하면 손해’라는 인식이 퍼지다 보면, 사람들은 자기 생각은 물론 분명한 사실이나 현상에 대한 객관적 서술조차도 망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심지어 자기 기분조차도 너무 좋아요가 아니라 너무 좋은 것 같아요라고 표현할 정도는 지나치다. 두려움과 조심스러움이 지나친 나머지 사람들은 주관을 잃어가는 것이다. 조심스러움과 반대 현상도 있다. 말을 조심스럽게 하는 사람들과 반대로 극단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을, 특히 익명의 인터넷 공간 등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사람의 숫자도 은근히 많다. 이런 태도는 좌중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고 나아가 사회적 불안을 일으킬 수 있다. 거짓까지 보태진 악담은 비열하기까지 하다.

어떤 종류의 말이 유행하는가에는 그 시대, 그 사회의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전쟁의 시대에는 전투적인 말들이, 태평성대에는 우아한 말들이 유행하게 마련이다. 위선의 말이 유행하는 사회, 거짓말이 유행하는 사회, 아부나 좌절의 말이 흔한 사회, 투쟁적인 말(악다구니)을 흔히 들을 수 있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 반면 유머가 발달한 사회, 웃음소리가 많이 들리는 사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말소리나 말의 내용만 들어도 그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를 어느 정도 짐작한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옛 현자 중에 ‘귀곡자’라는 은자가 있다. 그는 유학자들처럼 고상하고 품격 있는 화법이 흔히 빠지는 위선을 경계했다. 실사구시를 논했고, 당장 사람들 사이에서 즉시 효과를 볼 수 있는 실천적 경세이론을 가르쳤다. ‘무엇이 매인가’라는 이론적 설명보다는 ‘꿩 잡는 게 매’라는 실전적 지혜를 중시했다. 그에게서 배운 소진과 장의가 합종연횡의 계책으로 전국시대의 균형을 깨뜨려 장차 진(秦)나라가 천하통일의 기회를 잡게 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귀곡자도 말에 대해 한 가지 교훈을 남겼다.

“하지 말아야 할 말에 다섯 가지가 있다. 즉, 병든 말, 두려워하는 말, 걱정하는 말, 노한 말, 희롱하는 말이다(辭言有五, 曰病, 曰恐, 曰憂, 曰怒, 曰喜).”

그의 설명에 따르면, 병든 말이란 제정신이 아닌 듯 기운이 쇠약하게 느껴지는 말이다. 두려운 말이란 애절하게 억울하여 중심을 잃은 말이며, 걱정하는 말이란 사방이 가로막힌 듯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말, 노한 말이란 걷잡을 수 없이 미쳐 날뛰는 말이고, 희롱의 말이란 산만하여 요령을 잡을 수 없는 말이다.

이런 말들이 난무한다면 그 사회는 정상적일 수가 없다. 쇠약한 말, 두려움의 말, 걱정의 말, 분노의 말, 희롱의 말들이 흔해진다면 그럴수록, 우리는 정신을 다잡아야 한다.

지금 내가 하려는 말은 오류나 거짓이 없는 참말일까, 지금 여기에 필요한 말일까, 그리고 예의를 잃지 않게 잘 표현된 말일까. 나이가 많든 적든, 지위가 있든 없든, 책임이 크든 작든, 사람마다 입을 열기 전에 자기 위치에서 한 번씩 자문을 거친다면 사회에는 바른말들이 흘러넘칠 것이다. 바른말들이 흘러넘치는 사회는 더욱 올바르게 흘러가는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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