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以目視目] 눈을 부릅뜨고 살면 외롭지 않겠나

정해용 기자
  • 입력 2022.10.12 16:40
  • 수정 2022.10.1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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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옛날에 ‘양자거’라는 사람이 있었다. 도를 공부하는 사람이라 늘 현인을 찾아다니려 하였고, 위대한 일이 아니면 들으려 하지 않았다. 입을 열면 도(道)를 말하고 기회가 되면 정의와 불의를 논했다. 그의 뜻이 워낙 고고해서인지, 다른 사람들이 쉽게 대하지 않았으며, 그는 그것을 존경의 뜻이라고 생각하여 은근히 그 고고함을 즐겼다.

그가 여관에 들어가면 주인이 달려 나와 방석을 내오고 하인들은 수건과 빗을 단정히 준비하여 챙겨주었다. 음식을 먹던 사람들도 감히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고, 하인들은 은근히 그를 피해 다녔다.

하지만 그는 내심 외로웠다. 왜 사람들은 나와 어울리기를 어려워하는 것일까. 그가 가르침을 얻기 위해, 덕망 높은 스승들을 찾아다니던 끝에 드디어 당대의 큰 스승 노자(老子)를 만나게 되었다. 노자는 그의 얘기를 듣고 있다가 하늘을 우러르며 장탄식하고 입을 열었다.

진정 결백한 사람은 마치 더러운 듯이 행동하고, 덕이 큰 사람은 마치 덕이 부족한 듯 행동하는 것이오.

이 무슨 역설일까. 얼른 이해를 못 하여 스승의 얼굴을 바라보니, 그제야 노자는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말했다.

그대는 눈을 부릅뜨고 있으니 누가 그대와 더불어 친해질 수 있겠는가?

老子曰 而睢睢盱盱 而誰與居 이휴휴우우 이수여거, <장자> 寓言편

도를 논하고 정의를 중시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좋은 일이다. 그러나 매사에 심각하게 도를 논하고 시비곡직을 따지느라 눈을 부릅뜨고 사는 사람에게 친근한 벗이 생기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몸에 먼지 하나라도 묻을까 탈탈 털면서 사는 사람은 그 스스로 더럽지 않다는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하나라도 덕이 부족한 일을 행하지 않을까 조심하는 사람은 자기 부덕이 드러날까 두렵기 때문이다. 스스로 외모가 부족하다는 열등감이 있을 때 외모를 꾸미는 데 힘쓰게 되고, 지식에 열등감을 가진 사람일수록 그것을 감추기 위해 현학적으로 보이려고 애쓴다. 진정한 교양은 무심히 행동하는 가운데서도 드러나니, 남들이 자연스럽게 느낄 수가 있고, 진정 외모가 반듯한 사람은 굳이 얼굴에 기름을 바르거나 좋은 옷으로 치장하지 않아도 남들이 자연히 알아보게 된다. 낭중지추(囊中之錐), 날카로운 송곳은 굳이 으르렁거리지 않고 그것을 가죽 주머니에 감추듯 유순하게 행동해도 사람들은 그의 날카로움을 느끼게 된다.

양자거가 깨달음을 얻고 여관으로 돌아가니, 이후로는 여관 주인이나 하인들은 그를 더 이상 어려워하지 않고 다른 손님들도 그와 더불어 먹고 마시기를 꺼리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주위에 친구가 많은 사람인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상대를 긴장시키지 않고 소소하게라도 양보하거나 베푸는 습관을 지닌 사람들이다. 틈만 보이면 자기 자랑을 하고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시기하며 곧잘 경쟁심을 드러내 보이는 사람에게 친구가 적은 것은 당연한 이치다. 어떤 사람이 죽었을 때는 진심으로 애도하는 사람이 많은데, 어떤 사람의 빈소는 쓸쓸하다. 흔히 돈이 많고 적음에 따라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언젠가 내가 죽었을 때 나를 기억하고 진심으로 슬퍼해 줄 사람이 몇이나 될까를 가끔 헤아려 본다. 자식 손주 같은 혈연 외에 그런 사람이 하나라도 있을까. 혈족이라 해도 진심으로 슬퍼할 사람은 몇이나 될까. 손가락 몇 개로 꼽을 만큼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면 너무 씁쓸하다.

비록 사는 동안 평범하게 살았지만, 그 무덤이 쓸쓸하지 않은 사람들을 가끔 보게 된다. 기일이 되면 친구들이 잊지 않고 모여 무덤을 방문하고 꽃을 바치고, 그 곁에 한동안 같이 앉아 노래도 부르고 영면을 위해 기도를 올리기도 한다. 사는 동안 주변을 위하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던 사람이다. 그는 잘 살았다.

‘너무 눈을 부릅뜨고 살지 말아라.’

그저 ‘좋은 말이네’하고 넘어가기엔 뜻이 심오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 단순한 조언이 더욱 진지하게 다가온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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