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시니어] 복지부동(福祉富動) 공무원,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말하다...‘고치범’ 한국장례문화진흥원 원장

김남기 기자
  • 입력 2022.10.24 17:58
  • 수정 2022.10.25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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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20년 후에 당신은 저지른 일보다는 저지르지 않은 것에 더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밧줄을 풀고 안전한 항구를 벗어 나 항해하는 돛에 무역풍을 가득 담고 탐험하고, 꿈꾸며, 발견하라.”

- 마크 트웨인(Mark Twain)

고치범 원장은 마크 트웨인의 ‘인생의 항해에서 탐험하고, 꿈꾸며, 발견하라!’라는 말을 늘 가슴에 새기고, 늘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채찍질했다.

“밧줄을 풀고 항구를 벗어나도록 범선의 돛을 올려야 한다. 그리고 돛에 바람을 가득 담고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 그리고 꿈꾸고 탐험하며 발견하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50대 이후 전 생애에 말이다.”

고치범 한국장례문화원 원장. 촬영=김남기 기자

[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고치범 한국장례문화원 원장은 32년간 공직에서 몸을 담았다. 아마도 복지부동형 공무원이었을 것이다. ‘복지부동(伏地不動)’이 아니라 복지부동(福祉富動)형 공무원이란 말이다. 우리는 흔히 공무원을 땅에 엎드려 움직이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복지부동을 말한다. 하지만 고치범 원장은 '국민의 편안한 삶을 위해 자기 몸을 재빠르게 움직인' 복지부동(福祉富動)형 공무원이다. 이에 대한 팩트 체크는 이어지는 인터뷰에서 확인해 보겠다.

이제 고 원장은 평생 복지분야의 전문가에서 죽음을 다루는 올바른 ‘장례문화’의 정착을 위해 인생이모작을 새롭게 시작하고 있다. 그의 지난 발자취와 앞으로의 포부를 들어보는 시간을 갖겠다.

34살때 큰딸과 함께한 모습. 사진=고치범 제공

‘요람에서 무덤까지’

2차 대전 이후,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은 경제학자 ‘베버리지’에게 복지 국가를 위한 청사진을 요청했다. 베버리지는 ‘사회 보험 및 관련 서비스에 관한 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어 1942년 ‘베버리지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의 핵심이 바로 ‘요람에서 무덤까지’이다.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에서도 이를 따라 복지 국가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나라도 90년대 중반 이후 복지정책이 본격화되며, 다양한 분야에서 복지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나라 복지정책은 ‘요람에서 죽기 직전’까지이다. 아직 무덤까지 진입을 못 하고 있다.

고 원장은 “유럽 선진국의 장례문화나 묘지관리에 대한 복지정책을 한국에도 도입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 원장은 7급 공무원으로 총무처에 첫발을 딛고, 보건복지부로 자리를 옮겨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시행, 기초생활보장과 제도 시행, 나눔정책 추진, 질병관리본부에서 메르스 감염병 연구기획과장 등 보건복지분야에서 처음 시도하는 일들에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갔다. 마크트웨인의 말처럼 '안전한 항구를 벗어 나 항해하는 돛에 무역풍을 가득 담고 탐험하고, 꿈꾸며, 발견'하는 공무원 생활이었다.

이런 그가 한가지 아쉬움이 있었다. 바로 살아있는 자의 복지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현실에 대한 고뇌였다. 죽은자에 대해 존엄함과 유가족에 대한 복지정책의 부재를 늘 고민해 왔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돛을 올리고 항해할 임무가 주어졌다. 인생이모작의 기회에 한국장례문화를 관장하는 원장으로 취임을 한 것이다.

한국장례문화원 원장실에는 고 원장이 키우는 화초들이 탐스럽게 자라고 있다. 촬영=김남기 기자

잔칫날, 장례날을 기다리는 꼬맹이

고 원장은 1962년 태어난 1차 베이비 부머 끝자락 세대이다. 박정희 정권시대에 고등학교까지 다닌 세대이며, 농촌에서 태어나 우리나라의 빈곤한 생활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세대이다.

저희 집안은 2남 5녀 부모님까지 포함하면 9식구였습니다. 상상해보세요. 그리 넉넉하지 않은 농촌에서 9식구가 삶의 모습을. 먹는 양이 어떨까? 농사를 짓더라도 쌀을 사 먹어야 했던 어린시절이 꽤 궁핍했습니다. 방학기간 점심은 맨밥이 아니고 밥을 끓여서 먹었습니다. 끊여서 먹으면 적은 양으로 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죠. 삶은 고구마도 점심으로 많이 먹었었습니다.

어린시절 동내 잔칫날 장작불로 가마솥에서 소고기와 소뼈에서 우려낸 국물에 삶은 국수 맛은 다시 먹어 볼 수 없는 맛이라고 아직도 추억의 한 페이지로 기억하고 있다. 고 원장은 어린시절 마을장례식 장면도 추억한다.

농촌에서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음식도 준비하고, 묘지도 준비하는 등 마을 전체의 일로 장례를 치릅니다. 겨울이면 밤새도록 마당에 장작불이 피어오르죠. 한쪽 천막에서는 밤새 화투놀이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그 시절 장례식 전날 오후 늦게 상여를 보관하는 장소에서 장례를 치르는 집까지 마을 사람들이 상엿소리를 내며 꽃상여를 옮기죠. 
장례날 꽃상여로 무덤까지 이동하면 어린 조무래기들은 따라가죠. 매장문화가 중심이었던 그 시설 매장시 회다지놀이라고 해서 장단을 맞추어 무덤을 돌면서 흙을 다지는 의례도 있죠. 저는 동네 잔칫집이나 초상집 같은 곳을 많이 다녔던 기억이 지금도 어린시절의 추억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1982년 대학 2학년때 학과 친구들과 야유회 모습 앞쪽 왼쪽. 사진=고치범 제공

대학시절의 꿈이 아직도 마음을 젊게 한다

중앙대학교 흑석동 성모병원 먹자골목의 막걸릿집에서 토론하던 젊음의 열정을 돌아보면 지금도 마음이 뜨거워진다.

인문사회계열 입학 후 좌고우면 없이 바로 사회복지를 전공으로 선택한 후 1980년대 초반의 억압적인 사회적‧정치적 대학생활의 고뇌 속에 폭넓게 사회과학책을 보며 꿈을 키워 갔다. 그때의 사회복지에 대한 열정이 보건복지부에 한 알의 씨앗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소위 요즘 세대의 스펙 쌓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어찌 보면 너무도 낭만적인 열정으로 계속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 부모님께 공부를 더 하겠다는 욕심을 말씀드리기에는 집안 여건이 좋지 못했다. 당시 조카의 여러 해에 걸친 백혈병 투병이 농사짓는 부모님과 형님의 1년 소득을 다 써도 벅찬 경제 상황이 여러 해에 지속되어 일단 나도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때부터 사회복지에 대한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을 것이다. 과중한 의료비와 학비 부담, 실업과 비정규직을 등 사각지대를 보호하지 못하는 현실을. 가난으로 내몰리는 이웃 그리고 또 그 자녀들이 꿈을 포기하고 다시 재기하지 못하는 현실을.

1993년 승진임용장 받는 모습. 사진=고치범 제공

7급 공무원 총무처에서 보건복지부로

100:1의 경쟁을 뚫고 7급 국가직 공무원시험에 합격했다. 합격 후에 전공을 살려 보건복지부에 가고 싶었으나 신규직원 수요가 없어 총무처에서 1990년부터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18년 만에 보건복지부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시행하는 데 참여하고 국민기초생활보장업무를 하게 됐다.

옮기는 결정은 큰 부담과 도전적인 선택이었다. 인사상 승진이 지연되는 적지 않은 불이익을 감수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아쉬움을 두기보다는 때론 후회가 되어도, 새로운 항해의 돛을 올리고 꿈을 이루고 싶었습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며 꿈꾸던 마음을 실천할 수 있었습니다. 때론 ‘부끄러운 관료주의에 젖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도 있었습니다.

공직생활 중 여러 부처에 걸친 행정을 하며 우리나라의 정책을 만들고 실현하는 소중한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중앙부처의 정책실무자로서 국가정책의 작은 주춧돌을 놓는 심정으로 책임있게 행정을 했다.

중국 상항이 중국 최대자연과학연구소인 중국생명과학원방문. 사진=고치범 제공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초석을 놓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는 노후의 돌봄문제가 크게 대두되는 상황에서 사회보험으로 2008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제도이다. 노후의 돌봄을 사회가 책임지는 중요한 제도이다. 장기요양보험을 앞서 시행한 독일과 일본의 장단점을 여러 해 동안 국회를 중심으로 논의를 거쳐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비교적 잘 설계된 제도이다.

고 원장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재정추계를 담당하는 사무관으로서 향후 노인인구가 많이 증가하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장기요양보험의 재정문제가 크게 부담되는 상황에 관심을 가졌다.

제도시행 첫해인 2008년도에는 건강보험가입자 1인당 건강보험료가 2,700원이었습니다. 그동안 대상자 증가뿐만 아니라 적용범위도 확대하여 내년도 직장가입자 장기 요양보험료는 월 30,911원, 지역가입자는 가구당 14,446원입니다. 향후, 장기요양보험료는 더 가파르게 증가할 겁니다. 선진국의 경우 건강보험료의 50% 수준까지 보험료를 내고 있습니다.

고 원장은 향후 국민연금 수급자 증가 시 후세대의 부담이 커질 것을 걱정한다. 노령인구의 증가에 따라 후세대의 건강보험료와 장기요양보험료 부담도 커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료는 적립식이 아니고 당해 연도에 소요되는 비용을 거두는 갺출방식입니다. 저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재정을 담당하면서 ‘노후에 들어갈 비용을 사전에 부분적립과 갹출방식을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당해연도 보험료 소요액 외에 1년에 장기요양보험료를 1조억원 정도씩 적립하여 기금운용을 20여 년 동안 하면 후세대의 부담을 크게 완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고 원장은 국회 입법조사처 등 전문가에게 여러번 의견을 개진했다. 우리나라의 돌봄제도의 문제점으로 공급주체가 과도하게 민간주도형이라는 것이다. 통상 20~30% 정도가 공공 부분에서 부담해야 하는데 노인장기요양시설을 10%로도 안 된다는 것이다.

향후, 서비스 질 제고를 위해서는 공공시설에서 선도적으로 해야 하는데 민간시설이 중심이다 보니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민간시설은 어느 정도 수익을 가져가야 하는 상황이니 지속적인 서비스 개선에 걸림돌이 되는 상황이죠. 유럽은 우리와 달리 지방자치단체나 종교법인에서 주로 운영한다.

2014년 해외 연수 폴란드에서. 사진=고치범 제공

기초생활보장제도 눈시울을 뜨겁게 했던 현장을 가다

고 원장은 기초생활보장제도업무를 보던 시절을 ‘우리사회의 가장 어려운 삶의 모습을 보아야 했던 업무였다’고 회상한다. 고 원장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가정에 현장방문을 통해 실태조사를 하던 때 일화를 들려주었다. 지금도 기초수급자 두가구가 지금도 떠나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한가구는 익산에 사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였습니다. 어린 자녀를 3명을 둔 일용노동자 아버지와 부인이 있는 가구였습니다. 일용노동자인 남편은 병환으로 일을 못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린 자녀 3명을 두고 있는 부인도 일할 수 없는 상황이고요. 그 당시 기초수급비로만 산다는 것이 너무도 힘든 모습이었습니다. 어린애들이 먹고 싶은 것도 많은데 변변한 간직도 사줄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집도 옛날 흙벽돌이 담이 무너져 비닐로 가리는 집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부인은 애들에게 못 배워 빈곤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학습지로 공부시키는 모습을 봤습니다.

강원도 홍천의 어느 외진 마을에 사는 가구에 자매지간도 아닌데 두 분이 살고 있었습니다. 서로 의지해서 사는 60대 중반이 넘은 두 여성분하고, 남이 돌보지 않는 남자아이를 어렸을 때부터 자식처럼 키우고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가을 수확인 끝나는 들녘에서 벼 이삭을 주어 쌀 몇 가마를 마련하고, 고구마 수확한 들녘에서 남은 고구마를 캐는 등 시골에서 어렵게 사는 가구였죠.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에게 공부방을 마련해 주고, 할머니들은 뒷바라지를 잘해 주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지켜보았습니다.

고 원장은 지금도 그때의 현장에 찾았던 모습이 지워지지 않고 있다. 현장에서 삶의 지난한 가난을 극복하면서 자식에게 공부시키고, 남모르는 아이를 데려와 키우는 분들의 삶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특히 고 원장은 국민기초생활보호제도 운영의 문제점을 찾아 개선하려고 애썼다. 국방의무를 위해 군입대 자녀가족이 있는 경우 소득의 변동이 없음에도 군입대자로 인한 가구원 변동으로 수급자격이 탈락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해, 민원이 많았다. 그래서 고원장은 군입대로 인한 경우 수급자격이 유지되도록 특례규정을 마련하는데 노력을 했다. 이에 따라 5,000 여명의 수급자가 자격 상실이 되지 않도록 했다. 이는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기초생활 수급가족이 군입대라는 사유로 피해를 보는 것을 방지하는 복지부동(福祉富動) 공무원 의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메르스 사태후 중국 우한시에 있는 중국과학원 우한감염병연구소 방문. 사진=고치범 제공

코로나19 대응 매뉴얼, 질병관리본부 ‘메르스 감염병’ 연구에서 출발

고 원장은 2015년 메르스 발생 시 질병관리본부에서 연구기획과장이었다. 주요 업무는 질병관리본부의 R&D를 감염병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두었다. 감염병 연구는 보건복지부 당시 미래부, 농림부 등 여러 부처에서 나누어서 수행했다. 정부부처 내 컨트롤 타워가 감염병 대응기관인 질병관리본부가 중심이 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메르스 이후 질병관리본부는 감염병 연구에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 그 당시의 감염병 연구의 결과가 코로나 19에서도 잘 대응할 수 있는 초석이 되었다.

국립재활원, ‘장애인건강검진센터 건립’ 왼쪽 아래. 사진=고치범 제공

국립재활원, ‘장애인건강검진센터 건립’과 코로나19 대응

중증장애인들은 일반 병원 검진 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장애정도에 따라 검진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국립재활원에는 중증 장애인이 불편함이 없도록 다양한 검사를 할 수 있도록 최신 장비를 갖추어 2021년 9월 개원했다.

장애인 전문 건강검진센터를 갖추고 있는 나라는 극소수 일 겁니다.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를 높이는 상징적인 것이 바로 장애인검진센터입니다. 많은 장애인이 활용되도록 알려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19 환자가 지속되면서 장애인 환자에 대한 돌봄과 치료가 일반병원에서는 어려운 점이 계속 제기됐습니다. 2021년 1월부터 국립재활원에 장애인 코로나19환자 전문치료 병동을 운영하는 지원업무를 수행했습니다.

고치범 한국장례문화원 원장. 촬영=김남기 기자
고치범 한국장례문화원 원장. 촬영=김남기 기자

인생이모작 ‘한국장례문화진흥원 원장’되다

고 원장은 2021년 7월 장례문화진흥원장으로 부임하자마자 보건복지부와 함께 향후, 장례문화와 장사정책 발전 방안을 마련하기 위하여 장사정책협의회를 6개월 동안 운영했다. 이때 우리나라 장례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미래의 방안도 논의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올해, 3~4월 코로나19 사망자 급증으로 처음으로 모든 장례예식장에 시신 안치소가 차고 오일장은 기본이고 심지어 7일장까지 치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당시 전국 60개 화장시설의 예약시스템을 운영하는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은 정확한 현장상황을 파악하고, 화장시설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을 보건복지부에 건의하여 고비를 넘긴 적이 있었습니다.

향후, 우리나라의 사망자는 1차 베이비부머의 사망자가 정점에 도달할 2050년에서부터 2060년대까지 지속해서 증가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매장문화에서 화장문화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봉안당 안의 늘어선 유리 창안에 유골도자기들이 층층이 쌓여있다. 마치 아파트 단지가 생각이 난다. 그중 눈높이에 있는 로열층은 배나 비싼 가격에 판매된다.

고 원장은 납골당 폐해의 대안으로 대두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자연장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자연장의 한 형태인 수목장이 또 다른 묘지화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골을 자연으로 돌려보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자연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독일은 지자체가 장례식의 절차를 지원해 줍니다. 지자체가 시신을 수습하고, 화장하고 공설묘지에 안치합니다. 복지의 개념이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면, 우리나라는 무덤까지는 아니고 사망 직전까지이고, 건강보험이 적용됩니다. 돌아가시고 나면 국가에서 지원하는 것은 화장비 지원 정도입니다.

독일의 공원묘지 도시 근교에 있어서 가족들이 언제든 방문해 가족묘를 정원처럼 가꾼다. 사진=고치범 제공

고 원장은 우리나라도 독일처럼 묘지를 공원화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을 한다. 유가족이 늘 찾아와 즐기며 고인을 추모하는 공간의 필요성을 늘 되새긴다. 고 원장은 현재의 장례문화와 봉안묘의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유럽의 장례문화 선진국을 방문하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오늘도 새로운 항해를 위해 돛을 올리고 있다.

나이가 조금 더 들수록 삶에 있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덕을 쌓으면 언제가 그 보람이 반드시 온다는 너무도 지당한 삶의 이치를 다시금 마음에 담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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