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100] 천년 고도, ‘하노이’를 향하여11

윤재훈 기자
  • 입력 2022.10.26 16:14
  • 수정 2022.10.26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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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고도, ‘하노이’를 향하여

머리에는 기계충이 돋고
얼굴에는 영양부족으로
하얗게 마른버짐이 내려앉던
6, 70년대 한국의 아이들

누런 코가 턱 아래까지 내려오다
훅, 하는 소리에
다시 급하게 따라 올라가던,
소매에는 항상 하얀 코가
두껍게 눌어붙어 있어도
그냥 그렇게 살아가던 시절,

엄마는 언제 오실까
아이는 해종일 기다리고 있다
- 마른버짐, 윤재훈

(거리 이발소. 촬영=윤재훈 기자)
(베트남 거리 이발소. 촬영=윤재훈 기자)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곳 

사람들이 느긋하고, 여유가 있어 보인다. 

미소까지도 느릿느릿하다.”

인근에 사는 오지 민족들이 밤을 새워 만든 수공예품이나, 푸성귀들을 망태에 지고 먼 산길을 돌아 돌아 나오는 싸파 시장, 그 옛날 우리 시골 장터를 고스란히 빼다 닮은 것 같다. 어느 후미진 모퉁이에서는 영양이 부족해 얼굴에 마름버짐이 피고, 머리에는 허옇게 기계충이 오른 아이들의 머리를 깎아주었을 것 같은 난장 이발소, 하도 오래 써서 허옇게 색이 바랜 가죽에 죽, 죽, 면도를 문질러, 날을 세우는 아저씨, 바리깡은 마치 진군하는 작은 탱크처럼 놓여있다. 그 옆에는 허옇게 김이 피어오르고 튀밥 기계를 뱅, 뱅, 돌리는 아저씨는 연신 바쁘다.

머리에는 기계충이 돋고
얼굴에는 영양부족으로
하얗게 마른버짐이 내려앉던
6, 70년대 한국의 아이들

누런 코가 턱 아래까지 내려오다
훅, 하는 소리에
다시 급하게 따라 올라가던,
소매에는 항상 하얀 코가
두껍게 눌어붙어 있어도
그냥 그렇게 살아가던 시절,

비포장 신작로를 따라
어쩌다 낡은 버스가 지나가고
아카시아 꽃이 눈부시게 흩날리던 고향
턱을 괴고 동구 밖을 내다보다
누렁개와 놀다
소나무 위에 올라가
장에 간 어머니가 돌아오시는지
손차양을 하고, 실눈을 뜨다가
아이의 한낮은 빨랫줄 위의
잠자리 날개처럼 가볍다

산모롱이 먼지가 날리며
버스가 돌아오고
아이는 급하게 내려가
신작로에 서던
그러다 운전수 아저씨 몰래
버스 뒤에 올라타기도 하던
6, 70년대 한국

엄마는 언제 오실까
아이는 해종일 기다리고 있다

- 마른버짐, 윤재훈

(아빠와 함께. 촬영=윤재훈 기자)

아이가 아이를 업고 거리를 헤매던 소녀가 어느 하꼬방 앞에는 과자 봉지 하나를 들고 만지작거리고 있다. 동생까지 등에 업은 체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픈지, 움직일 줄 모른다.

깨진 거울이 걸려 있는 소박한 기념품 가게, 이런저런 인연으로 만난 아저씨의 좌판에는 낡아가는 팔찌와 목거리들, 우리도 썼을 법한 옛 동전들이 가지런히 쌓여있고, 그 옆에서 젊은 아빠와 아이는 뭔가를 만드느라 열심이다.

(동생을 업고 계단을 오르기가 힘들다. 촬영=윤재훈 기자)

한참을 과자를 만지작거리던 소녀는 계단을 힘겹게 올라가는데, 배까지 고픈지 무척 지쳐 보인다. 시장 안으로 들어간다. 양쪽으로 죽, 가게들이 펼쳐져 있고 리본 뭉치가 일 층에서는 400,000d(2만원)인데, 이 층으로 올라가니 직접 만드는 할머니들은 3만 동을 받는다. 가격 차이가 너무 심한 것 같다.

(일 년만에 보는 한글. 촬영=윤재훈 기자)
(일 년만에 보는 한글. 촬영=윤재훈 기자)

드디어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를 향해 출발한다. 마침 게스트의 여주인이 볼 일이 있다고 함께 가자고 한다. 낯설은 초행길, 친절한 그녀하고 간다고 하니 훨씬 마음이 놓인다. 특히나 낯설은 여행지에서는 숙소 잡은 것이 큰 문제인데, 약간 마음이 놓인다.

싸파sapa에서 밤 6시에 출발하는 야간 버스를 탄다. 오랜 배낭여행 중에는 하룻밤 숙박료를 줄이기 위해 간간이 야간 버스를 탈 때가 있다. 그런데 발판을 막 오르는데, 낯익은 한글이 보인다.

“어서 오세요”
“신발을 털어주세요”

세상에나, 이 먼 곳에서 우리 글로 된 버스를 보다니, 아마도 한국에서 수입한 중고차인 모양이다.

버스 안은 우리가 7, 80년대나 이용했을 법한 그런 풍경이다. 의자들도 협소해 건장한 사내들 두 사람이 앉기에는 버거워 보인다. 더구나 사철 더운 나라에서, 에어컨이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면 힘들 것 같다. 수많은 외국인이 이용하는 차 안에서 보이는 한글은, 오히려 당당해 보인다. 어쩌면 한국산임을 자랑하기 위해서 일부러 붙여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세계 최고의 자동차 생산국인 조국, 외국을 여행하다 보면 이런 경우를 곳곳에서 본다. 언젠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도 한국 차가 천지였는데, 특히 길도 없는 초원에서 마치, 징기스 칸의 말처럼 거침없이 진군하는 트럭들을 보면, 어김없이 기아의 봉고였다.

(쌀국수집. 촬영=윤재훈 기자)
(쌀국수집. 촬영=윤재훈 기자)

박항서 씨의 축구 외교에 의해 더욱 가까워진 나라, 한참을 달리던 버스는 8시쯤 인근 산속 마을에서 가장 큰 도시인 <라오까이>에서 잠깐, 쉰다. 며칠 전 이곳 역에서 만난 베트남 청년이 생각난다.

그는 양주와 인천에서 6년간 일을 했다고 했다. 약간 선뜩한 기분으로 한국 생활을 물어보았더니, 사장이 월급을 안 주고 도망갔다고 했다. 혹시나 한국인에게 나쁜 앙금이라도 남아 해꼬지라도 하면 어쩔까 걱정을 했는데, 그런 마음은 없는 것 같았다.

버스는 밤새 구부러진 산길을 하염없이 달려가더니, 두어 집 어둑한 불빛만이 졸고 있는 집 앞에 선다. 몇 대의 버스가 줄을 이어있다. 아마도 휴게소 같은 곳인 모양인데, 그 옛날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다.

자정이 이미 넘어간 시간인데 사람들은 주섬주섬 소지품을 챙겨 밖으로 나간다. 그런데 가게마다 한국 연속극을 틀어놓고 있어 저절로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 같다. 아마도 베트남의 자랑인 쌀국수라도 먹을 수 있는 모양이다.

화장실에 갔는데 여기도 문이 없다. 소변보는 데가 안쪽으로 있어 사람들이 지나다니지만, 개의치 않고 볼일을 본다.

(하노이 아침 풍경. 촬영=윤재훈 기자)
(하노이 아침 풍경. 촬영=윤재훈 기자)

초강대국, 미국을 이긴 나라, 이란처럼 끝까지 자신들의 자주성과 자존심을 지킨 나라, 칠레처럼 길다란 띠처럼 연결된 국토.

우리나라는 베트남 전쟁이 치열해지는 1964년부터 73년까지, 제국주의들의 힘에 의해 연인원 30여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조국의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보냈다. 야자수 나무가 평화롭게 한들거리던 곳, 그곳에서 우리 젊은이들은 목숨을 담보로 외화벌이를 했다. 그것이 조국의 고도발전에 한몫을 했다. 파독 광부, 간호사, 사우디 근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두 나라는 공산군에 의해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되고, 반공통일을 국가의 지상목표로 하는 점 등이 서로 비슷한 동병상련(同病相憐)이었다.

남 남쪽 먼 먼 나라 월남의 달밤
십자성 저 별빛은 어머님 얼굴
그 누가 불러주는 하모니카냐
아리랑 멜로디가
가슴에 젖네, 향수에 젖네
- 월남의 달밤, 윤일로

(화장실 풍경. 촬영=윤재훈 기자)

 호치민의 영도하에 전쟁을 이긴 후 새롭게 수도가 된 하노이, 그곳에 가면 또 어떤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지 가슴이 설렌다. 그래도 베트남의 버스 안은 막 넘어온 중국보다는 조용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졌다.

중간에 두세 번이나 쉬었을까, 비몽사몽간에 지나간 시간들, 어슴푸레 새벽이 다 되어 가는 것 같은데, 버스는 계속해서 산을 돌고 돌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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