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식의 인생 바라보기㊳] 애정이 꽃피던 시절
[윤창식의 인생 바라보기㊳] 애정이 꽃피던 시절
  • 윤창식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1.1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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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식-수필가- 前 초당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 문학과환경학회 회장 역임
▲윤창식
-수필가
- 前 초당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
- 문학과환경학회 회장 역임

오만상씨(70)는 오만 가지 직업을 전전하다가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서 서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인생 칠십이면 종쳐야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돌아보니 좋았던 기억보다 험난했던 나날의 숫자가 훨씬 많지 않았던가.

하지만 막걸리통 배달과 나무도장 파기와 중학교의 문서 필경사와 교문 수위 생활은 그나마 그이를 지탱해준 고마운 이력이었다. 그에 비하면 만상씨의 부인 띠동갑 황난애(58) 여사의 내력은 그닥 난해하지 않았다. S중학교 근방에서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는 아버지 덕분으로 어릴 적부터 동네를 휘젓고 다녔던 것이다. 네 살 때 처음 태권도를 시작한 천재 태권소녀는 이단옆차기와 나래차기가 특기여서 태권도장 천장도 뚫을 기세였고 지역 티비에도 출연하여 기염을 토하기도 하였다.

만상과 난애가 부부가 된 것은 우연과 필연의 뒤얽힘과 불가사의한 카르마의 결과물이었던 것. 방위병을 갓마친 스물 일곱 만상은 S중학 교문 앞에서 어릴 적의 손재주 하나만 믿고 나무도장집을 차리게 되었고, 당시 난애는 중학교 2학년생이었다. 중2병은 고질이어서 쉽게 고쳐지는 병은 아닌 듯했다. 난애는 공부는 꽤 상위권이었으나 짓궂은 내분비 호르몬의 장난인지는 몰라도 질풍노도 같은 사고를 곧잘 치고 다녔다.

그날도 만상은 학교가 파할 무렵 하루네 겨우 나무 도장 두 개의 매출을 올리고 가게 마칠 준비를 하던 차에 골목에서 비명 소리를 듣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아뿔사! 태권소녀 난애양이 근처 남자 중학교 1년생 서넛이를 일렬로 세워놓고 예의 강력한 나래차기를 시전하고 있었던 것. 허우대는 꽤 큰 녀석들이 순전히 난애의 기세에 눌려 제풀에 코피를 터뜨리며 우는 놈, 배를 움켜쥐고 싹싹 비는 놈, 얻어터지며 실성한 듯 실실 웃는 놈, 영화 '친구'에 나오는 장동건은 게임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 폭력사건은 의외로 커져 난애는 양쪽 학교의 교무실과 근처 파출소를 전전하게 되었고 사건의 골목길은 어둡고 애매하여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은 만상이 뿐이라 두 학교와 경찰서에 수차례 불려다니는 어처구니없는 꼴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결국 그 사건은 자라나는 청소년의 가벼운 일탈행위로 판명이 나서 난애는 피해를 입은 남학생들에게 빼빼로데이를 맞아 빼빼로 한 통씩 사주는 것으로 화해를 하고 학교에서는 7일 간의 근신처분을 받았다. 이러한 비교적 경미한 처벌은 목도장의 전사 만상이의 공이 컸다. 만상은 난애 학생은 비록 자잘한 말썽은 부려도 결코 '안 될성부른 나무'는 아니라 여겼고 사건 목격자 진술에서도 난애의 입장에 적극 호의를 보였던 것이다.

그 사건 이후 난애는 만상이를 보면 꼬박 인사를 하는 착한 소녀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그러한 변화는 만상이의 얼굴에 만면의 미소를 머금게 하였고 나아가 목격자 진술에 쓰인 글씨체를 눈여겨 본 S중학교 학생주임 선생님의 권유로 만상은 그 학교 문서 필경사로 들어가게 되었으며, 말년엔 학교 교문 수위를 했으니 이는 무엇보다도 난애 학생의 덕분이었던 셈이다. 참 난해한 세월이었다. 세상은 돌고도는 물레방아의 순환고리 속에 존재하는 것일까.

황난애 여사는 동사무소 복지센터에서 마련한 스포츠댄스 강습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다가 골목길에서 오만상을 만났다. 황 여사로부터 찬거리를 사오라는 지시를 받았던 오만상씨는 슈퍼에서 사온 봉다리를 심사를 받듯 난애씨에게 보여준다.

"이것 뭐예요? 계란에 찍힌 숫자를 잘 보고 사오라니깐! 맨 끝자리 1자를 확인해야지. 이건 2잖아욧."

"잘 본다고 봤는디..."

황여사는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느닷없이 만상씨의 어깨죽지를 이빨로 깨무는 것이었다. 이는 신혼 때부터 하던 버릇이다.

"아야, 오늘따라 왜 이렇게 쎄게 물어(요)? 아프구먼..."

"이게 애정 표신 줄 알면서 왜 그러셔~."

(애정이라고? 애정이 꽃피던 시절은 진즉에 끝난 것 같은디, 아닌가?)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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