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반격] ‘인제 안하나? 내년도 해야지!’...해녀들 학사모 쓰다 ‘평동누나대학’

김남기 기자
  • 입력 2022.11.21 16:39
  • 수정 2022.12.2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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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동어촌계 사무실 평동누나대학 졸업식. 사진=바다드림 제공<br>
평동어촌계 사무실 평동누나대학 졸업식. 사진=바다드림 제공

[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평동마을은 울산 울주군 동남쪽 끝자락에 있다. 평동마을의 해녀들은 어려서 제주도에서 원정을 오고 줄곧 평동마을에서 일생을 바다에서 물질하며, 가족을 부양했지만, 정작 그들에게는 변변한 교육의 기회가 없었다. 

"글 좀 갈켜주면 안 되겠나!"

우리도 글 좀 가르쳐 주고, 휴대폰 사용하는 것도 가르쳐 주면 안 되겠나?

고수성 사단법인 바다드림 이사장에게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원로 해녀가 찾아왔다. ‘울산 디스코’에 참가한 해녀들을 부럽게 바라보던 다른 해녀들은 자신들도 그동안 목말라 했던 교육을 받고 싶어 했다.

지난 6월 울산 평동마을에서는 ‘울산 디스코’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나우(나를있게하는 우리)이한철 총감독이 작곡한 멜로디로, 평동마을 주민들이 가사를 쓰고 노래를 불렀다. 해녀, 해양연구원, 어촌계장, 초등학생 등이 참여해 두 달간의 노래 만들기 워크숍을 진행했다. 80년대를 연상시키는 복고풍 디스코 음악에 바다 내음 가득한 평동마을의 아름다운 풍경과 어촌 이야기가 노랫말로 담겨있다.

해녀들을 위해 농어촌의 무료한 저녁시간을 배우며 즐기는 놀이터 겸 학교로 만들기로 했다.  교육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하여 이왕 하는 것 좀 더 알차게 프로그램을 짜보자고 의기투합했다. 

- 고수성 이사장

평동어촌계 사무실 평동누나대학 입학식진. 사진=바다드림 제공<br>
평동누나대학 입학식. 사진=바다드림 제공

해녀누나들, 무엇이 배워보고 싶으세요

고수성 이사장은 ‘바다드림’의 주민들과 함께 해녀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짜기 시작했다.

애초에 해녀누나들이 요청하신 한글과 스마트폰 수업만으로는 다소 지루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정규과목 외에 예능과목을 사이사이에 넣기로 했다. ‘해녀누나들이 지치지 않고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많은 예체능 아이템을 가지고 고민했다.

- 고수성 이사장

평동어촌계 사무실에 마련된 평동누나대학. 사진=바다드림 제공
평동어촌계 사무실에 마련된 평동누나대학. 사진=바다드림 제공

평동누나대학의 출발은 해녀들의 갈증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교육프로그램 역시 해녀들이 원하는 것을 반영하기 위해 선호도 조사를 했다. 해녀누나들이 배우고 싶은 한글, 스마트폰 외에 미술이나 음악, 스포츠테이핑강좌 등 다양한 놀며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지난 7월부터 10월까지 총 12회차 교육을 진행했다. 교양수업은 꽃신만들기(4주)와 미술심리치료(1회특강), 웃음치료(2회특강), 숟가락난타(3주)수업과 실생활에서 활용도가 높은 스포츠테이핑(2회특강) 과목을 진행했다.

평동누나대학 학생 이름표. 사진=바다드림 제공<br>
평동누나대학 학생 이름표. 사진=바다드림 제공

평동누나대학에 참가한 해녀들은 총 18명이다. 80세부터 60세 이상의 해녀들로 1주일에 한 번은 꼭 평동어촌사무실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이름표를 달고 교육에 참여한다. 어떤 해녀는 유모차에 몸을 기대어 오는 분도 있다. 육지에선 제대로 걷지도 못하지만, 바다에서는 물개처럼 날렵하게 해삼, 멍게, 낙지 등을 한 광주리씩 채워 온다.

해녀들이 원하는 수업내용을 진행해서인지 수업의 열의와 반응은 놀라울 정도였다. 고 이사장은 수업 중에 눈시울을 붉힌 사연을 소개했다.

해녀 두 분이 뭔가를 급히 숨기는 것을 보고.
“뭡니까 함 봅시다”
“안할란다”
“뭔가 봅시다”
“니만 봐래이”

해녀누나가 살며시 보여준 것은 한글 노트에 전에 배운 한글을 정성스레 복습한 흔적이었다.

나이가 들었다고 배움의 열정이 식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누나대학을 통해 교육복지 사각지대 해소에 일조하고 싶다. 행정이나 관심 있는 분들이 도움을 주시면 좀 더 알차게 진행될 것이다.

- 고수성 이사장

'해녀들의 수다' 나에게 ‘평동누나대학’이란?

강승자 해녀의 자작시 '가을풍경'
강승자 해녀의 자작시 '가을풍경'

그냥 뭐 휴대폰하고 글도 가르쳐 준다고 하고 그냥 함 와봤는데 너무 좋네요. 인제 안 하는 거 같아서 한숨이 나옴디더~

- 임온예 해녀누나

꽃신을 만들고 있는 평동누나대학 학생들 . 사진=바다드림 제공<br>
꽃신을 만들고 있는 평동누나대학 학생들 . 사진=바다드림 제공

처음에는 몰랐어요. 어촌계장이 일단 놀러와 보이소 해가지고 왔어요. 부끄러버가 안갈라 켔더만. 가니 많이 나와 있길래 재밌겠다 싶어서 다니게 되었죠. 어데서 우리가 이런 대접 받으면서 글도 배우고 하겠는교~

- 노봉순 해녀누나

평동누나대학 미술심리치료. 사진=바다드림 제공<br>
평동누나대학 미술심리치료. 사진=바다드림 제공

춤도 추고, 그림도 그리고. 글자도 배우고. 다 좋았심더

- 양경옥 해녀누나

평동누나대학 스마트폰 활용 강의. 사진=바다드림 제공<br>
평동누나대학 스마트폰 활용 강의. 사진=바다드림 제공

어촌계장! 인제 안하나? 내년도 해야지! 참 좋았는데~ 끝나서 아쉽다. 인자 월요일 저녁에는 뭐하꼬. 재료고 선생님 출장비고, 돈 많이 들낀데, 한번 더 해달라 할라카니 미안타 아이가?

- 노영순 해녀누나

평동누나대학의 주역들

한글교육중인 김학재 바다드림 기획이사. 사진=바다드림 제공

김학재 바다드림 기획이사는 평동누나대학의 기획을 하고, 한글교육의 강사로 참여를 했다. 김학재 이사는 처음 해녀누나들의 요청을 받았을 때, 고민이 한가득했다.

내가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원하는 것들을 잘 해줄 수 있을까? 돈도 없는데 예산은 어디서 충당하지? 지원신청을 어디에 하지? 사람들이 많이 모일까? 재미있어야 할텐테...중간에 그만두면 어떻하지? 일주일 내내 밤마다 꿈에서 까지 고민을 하고 여기저기 조언을 받다가 결론을 지었다. 일단 한번 해보자. 사례가 없어서 지원을 못해준다면 우리 돈으로 직접 만들어보자는 결론을 내고 일단 부딪혀 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 김학재 이사

하지만, 김학재 이사는 강사섭외에서부터 난간에 부딪혔다. 스마트폰, 미술강사, 음악강사, 웃음특강 등 전국 각지에 계시는 강사님들께 취지를 설명하고 무료강의 부탁을 드리고 섭외를 진행했다. 그런데 가장 쉽게 생각했었던 한글강사를 섭외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김학재 이사는 직접 외국인 대상으로 한글강의를 하시는 교수님을 찾아가서 과외받았다.

20년 넘게 음악강사로 활동했지만, 한글을 가르친다는 게 쉽지는 않았다. 월요일 1시간 수업을 위해 일주일 내내 한글 수업 준비했다. 그런데 전혀 글자를 써 본 적도 읽어 본 적도 없던 누나들이 입학식 때 나눠드린 노트에 빼곡하게 지난주에 배운 글자들로 채워왔다. 누나들이 복습한 노트를 보면서 함께 고생한 동료들의 마음을 녹여 버렸다.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이 일을 하는지 정확하게 읽으시고, 응답해주시는 모습에 더더욱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 김학재 이사

평동누나대학 졸업앨범 촬영현장. 사진=바다드림 제공<br>
평동누나대학 졸업앨범 촬영현장. 사진=바다드림 제공

김학재 이사는 요즘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누나대학 졸업생들이 멀찍이에서도 알아보시곤 빠른 걸음으로 “선생님 오셨는교”하고 반갑게 맞이한다고 한다. 해녀누나들은 내년에 2기 3기 계속해서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혹여나 돈이 많이 들면 힘들겠지. 선생님들 멀리서 오는 것이 내심 미안하셨던 마음에 속으로만 되뇌시는 모습에 김학재 이사는 감사하고 미안할 따름이다.

2년전 평동마을 앞바다에 어머니를 모셨는데 저희 사무실 제자리에서 고개만 들면 보이는 곳이다. 어쩌면 저도 모르게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닿아서 평동누나대학의 열여덟분의 어머니를 모시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김학재 이사

고수성 이사장은 멀리 서울에서 평동누나대학을 위해 한달음에 와서 무료로 강의를 해준 웃음치료 문우택 회장, 미술심리치료 송정은 교수에게 특별한 감사인사를 전했다. 또한 한국에자이와 함께 나우혁신랩에서는 내년도 누나대학 수업진행을 위해 미술심리치료 100세트를 지원하고, 해녀누나들을 위한 훌라춤강좌도 진행한다.

내년 누나대학을 위해 ‘바다드림’은 주변기업에 사업자지원사업으로 누나대학 사업지원신청을 하고, 관할 군청에 열심히 홍보하고 있다. 내년에는 누나대학을 울주군에 있는 10개 어촌마을까지 확대해 어르신들 삶의 질이 높아지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누나대학이 지역 교육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는데 도움일 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길 바란다.

평동누나대학 졸업사진. 사진=바다드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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