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103] 질곡한 하노이의 거리 풍경들14

윤재훈 기자
  • 입력 2022.11.30 11:20
  • 수정 2022.12.0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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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곡한 하노이의 거리 풍경들

(하노이 장인의 붓질.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초상화를 그려주는 할아버지의 손길, 그 손길이 갈 때마다 한 세월을 바쳐온 장인의 지나온 시간이 보이는 듯하다. 한 땀 한 땀 변해가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딸의 얼굴도 시간이 지날수록 환해진다.

(꺼리낌 없는 아이의 내장 손질. 촬영=윤재훈)
(하노이 꺼리낌 없는 아이의 내장 손질. 촬영=윤재훈 기자)

허름한 시장가 LP가스통들 옆에서 무심히 내장을 손질하는 아이, 나이에 걸맞지 않게 그 손길이 맵차다. 어느 오지 산골을 떠나 이 도시로 나온 아이일까, 아마도 부모님이라면 저런 일을 시키지 않았을 텐데, 아무 거리낌 없이 하는 아이에게 짠한, 마음이 밀려온다.

(하노이 거리의 손톱 손질사. 촬영=윤재훈 기자)

허름한 가방을 들고 지나가던 젊은 아낙, 상인이 부르자 다가가 앉고 그녀는 무심히 손을 내민다. 거리의 손톱 손질사인 모양이다. 아낙의 옆얼굴이 아직 앳되고 예쁘다. 모두가 살아온 세월만큼 얼굴에 나타난다.

40대 이후의 얼굴은 자신의 책임이라고 하는데, 단 한 번 태어나 사는 이 초록의 행성, 작은것이라도 이 세상에 베풀고 가는 인생이면 좋겠다.

(하노이 잊혀진 오락들. 촬영=윤재훈 기자)

허름한 오락실에는 종일 아이들이 붐비고, 빅뱅, 타비오, 댄스뮤직 등은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아이들이 일어설 줄 모른다. 거리를 가득 매운 오토바이의 굉음은 난청이 올 정도로 광폭하고, 매연이 너무 심해 마스크를 써야 할 정도다.

공원을 따라 쉬엄쉬엄 걷고 있는데, 거리에서 여행서를 팔던 30대 사내가 강변에서 아이를 데리고 술을 마시다가, 아는 척을 한다. 그때도 당구를 치러 가자고 하더니, 오늘도 가자고 한다. 호기심도 일고해서 따라갔는데, 포켓볼 뿐이다.

10분에 3만 동(1,500원), 이곳 물가에 비해 너무 비싸다. 이삼십 분이나 쳤을까 했는데, 70분이나 지났다고 한다. 그가 나누어 내자고 해 10만 동을 주고 나니, 친절하게도 호텔까지 데려다준다.

(천혜의 절경, ‘하롱베이.’ 촬영=윤재훈)
(천혜의 절경, ‘하롱베이.’ 촬영=윤재훈 기자)

베트남에 가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 한군데 있었다. 바다속에서 불규칙하게 불쑥불쏙 솟아오른 봉우리들이 있는 곳, 마치 법화경에서 보았던 지용의 보살들이 땅 속에서 용출하는 것 같은, 중국의 어느 깊은 산사, 천 불 천 탑이 땅 속에서 솟아오르는 것 같은, 그런 비현실적인 풍경이 있는 곳, 중국의 계림에서나 보았던, 아니면 라오스의 방비엔에서 보았던, 그런 산들이 있는 <하롱베이>, 그곳에 가고 싶었다. 11월 일요일, 떠나기 좋은 가을날이다.

도미토리에 27세의 일본인 처녀가 들어왔다. 호치민에서 온다는 그녀는 일 년 여정으로 고국을 떠나, 현재 한 달이 되었다고 한다. 불량청소년들 선생을 한다는 그녀, 서로 의기가 통해 하롱베이까지 같이 가기로 했다.

오늘은 일요일인데 체육대회라도 하려는 것일까, 아침 일찍부터 건너편 학교에서는 엄청나게 스피커를 크게 틀어놓아, 집안에서도 옆 사람과 대화하기도 힘들 정도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 불평하는 사람이 없으니 참, 신기하기만 하다. 자신의 아이나 손자들이 학교에 다녀서일까? 아니면 그냥 순응하고 사는 걸까? 자연 속에 하늘을 우러르며 살아왔던 우리의 조상들도 매사 순응하는 삶을 살아왔다.

(엄마와 둘이 운영하는 가게. 촬영=윤재훈)
(엄마와 둘이 운영하는 가게. 촬영=윤재훈 기자)

이국의 길은 몇 번 지나가도 항상 낯설다. 어젯밤에는 숙소를 찾으면서 <신카페 트러블>이라는 간판이 나란히 두 집이 붙어있어 똑같은 집인 줄 알고 들어갔더니 달랐다. 그런데 오늘도 같은 간판이 보인다. 똑같은 간판이 과연 몇 개나 되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베트남은 중국이나 몽골에 비해 아직까지 인간이 배제된 자본주의의 비정한 상흔이 덜 상륙했는지, 사람들의 심성이 맑은 느낌이다.

거리에는 지나치게 비대한 중년을 넘긴 서양인 부부들이 많이 보인다. 저 몸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먹어야 할까? 동물은 먹은 양이 많을 수록 거기에 따른 탄소발자국이 더 많아진다. 지나치게 먹는 것을 경계해야 하겠지만, 인간은 특히나 육식의 양을 줄여야 한다. 한 마리의 동물을 키우기 위해서는 그만큼 사료와 엄청난 환경파괴가 불가결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죽제품과 동물의 털을 사용한 옷을 입는 인간의 의식구조도 분명히 고쳐져야만 한다.

문득문득 여행을 하다보면 장기 여행자들을 만났다. 장기 여행은 경비와의 싸움이다. 그중에서 가장 많은 비용이 자는 것과 먹는 것이다. 때문에 가능하며 야간 버스에 몸을 실고, 먹는 것도 주로 길거리 음식을 먹는다. 오늘은 아침과 점심을 계란과 바나나를 준비하여 호안끼엠 호수를 바라보며 먹는다.

(하노이 풍경. 촬영=윤재훈)
(하노이 풍경. 촬영=윤재훈 기자)

터미널에 가 하롱베이 가는 표를 샀다. 호안끼엠 호수로 나오니 시민들이 호수 주변에서 운동을 많이 한다. 아예 웃통을 벗은 사람도 있다. 밤이 되자 연인들을 상대로 장미꽃을 파는 소녀가 나왔다. 큰길가 벤치에서는 진한 키스를 나누는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몽롱한 사랑에 빠졌다. 순전히 호르몬의 장난질인가?

밤이 되자 곳곳에 오토바이 맡기는 곳이 있다. 워낙 오토바이가 많기도 하지만, 아마도 분실이 잦은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 당구장에서도 오토바이를 지키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오니 새로 들어온 서양인 청년이 팬티만 입고 1인용 침대에 누워있다. 바로 옆 침대에는 아가씨가 있다. 아무리 개성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예의가 없는 것 같다. 상대방 나라의 전통도 있을 텐데, 배려가 너무 없는 것 아닌가? 더구나 혼자 쓰는 방도 아니고 여러 사람이 쓰는 방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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