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以目視目] ‘개통령’ 강형욱의 리더십
[정해용의 以目視目] ‘개통령’ 강형욱의 리더십
  • 정해용 기자
  • 승인 2022.12.0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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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을 명령으로 다스리고 형벌로 구속한다면, 백성들은 일시적으로 범죄를 모면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범죄가 수치스러운 일임을 깨닫지는 못할 것이다. 백성에게 수치심을 가르치면 사람들은 마음으로부터 복종하게 된다.

- 공자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요즘 대중의 인기를 얻는 사람들 중에는 일명 ‘개통령(’개들의 대통령‘을 의미한다고 함)’이라 불리는 애견훈련사 강형욱 씨가 있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인기가 거의 스타급이다.

아무리 거친 개도 그의 손에 닿으면 이내 차분해지거나 잘못된 버릇을 그만 둔다. 마법이라도 거는 듯 놀라운 기술을 가진 전문가다. 그러나 그가 대중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단지 기술력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개를 다루는 동안 한 번도 고압적이거나 징벌적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애정으로 대한다는 느낌, 그래서 그가 동물에 대하여 진심을 다 하고 있다는 느낌이 크다. 동물들도 이러한 진심의 마음을 느끼고 쉽게 순응하는 것이 아닐까. TV 화면을 통해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 마음에도 ‘개통령’과 반려견 사이에 오가는 신뢰와 애정이 생생히 느껴진다.

흔히 동물을 교육하는 데에는 ‘당근과 채찍’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런 방식은 심지어 귀한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학교에서조차 바른 훈육을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고 아끼는 놈 매 한 번 더 친다’는 속담도 있을 정도로, 처벌을 병행하는 교육방식은 당당하게 역사와 전통을 가진 지도 수단이었던 것이다.

‘신상필벌: 잘한 일은 상을 주고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반드시 벌을 준다’는 방식은 리더가 백성을 이끌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아주 오래된 원칙의 패러다임이다. 말을 기르는 마부도, 개를 길들이는 훈련사도, 그리고 백성을 다스리는 지도자도 이러한 패러다임 안에서 밀고 당기거나 베풀고 거두는 기술을 구사한다. 그런데 이 시대에 가장 뛰어난, 그리고 가장 존경받는 ‘개통령’의 방법은 좀 다르다. 당근은 있으나 채찍이 없다. 말도 통하지 않는 개들을 향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게 통한다. 채찍을 사용하는 방법보다 더 효과가 좋다.

옛날에 백성을 사랑하고 잘 이끌었던 지도자들은 어땠을까.

요순지절, 처음으로 문자를 써서 법을 만들 당시 요임금은 백관을 향하여 ‘신중하시오 신중하시오. 형벌은 오직 신중해야 하오(欽哉, 欽哉, 惟刑之靜哉)’라고 거듭 주문한다. 베푸는 일은 한 없이 베풀되 처벌에 관한 한 신중하고 더 신중해도 부족하다고 한 것이다.

훌륭한 제왕들이 칭송받은 것은 백성에 대한 진정성 있는 애정과 그 스스로 모범을 보임으로써였다. 한발 물러서서 손가락으로 명령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일은 그 스스로도 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은 그 스스로 솔선수범했다. 이를 보는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본받지 않을 수 없었다.

순 임금이 아직 평민으로서 농사를 지을 때 그가 농사하는 주변에서는 물꼬싸움이나 밭고랑 싸움이 일어나는 일이 없었다. 먼저 양보하고 먼저 배려하니 다툴 일이 없었고, 한 사람이 그렇게 하니 주변 인심이 절로 좋아져서 즐겁고 평화롭게 어울려 사는 마을이 되었던 것이다. 뇌택이란 물가에 살며 고기를 잡은 적도 있는데, 이 때에도 사람들은 서로 좋은 자리를 양보하며 어로를 했다. 하반이라는 곳에 가서 그릇을 구을 때는 마을에서 불량품이 나오는 일이 없었다. 주민들을 윽박지르거나 명령해서 그리 된 것이 아니다. 순은 아직 평범한 농민이었다. 그러나 성실하고 양보심 많은 그를 따라 하니까 더 좋은 결과가 나와서 사람들이 그를 본받았을 뿐이다. 자연히 그가 사는 곳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어 번성하였다. 그래서 요 임금의 후계자로 발탁되었던 것이다.

평생 무도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천하를 주유했던 공자도 잠시 관직을 맡은 적이 있었다. 51세 때의 일이다. 모국인 노(魯)나라에서 중도라는 고을의, 지금으로 치면 읍장이나 군수 정도의 수령직에서 시작했다. 우선 천하에 성인으로 명성이 자자한 공자에게 이런 미관말직이 주어졌다는 것부터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공자는 마다하지 않고 겸허히 받아들였다.

“노나라는 나의 조국이다. 그래서 관직의 크고 작음을 묻지 않고 내 나름대로 증명하려는 것이다.”

공자의 정치철학은 백성을 도덕으로 일깨운다는 것이었다.

“백성을 명령으로 다스리고 형벌로 구속한다면, 백성들은 일시적으로 범죄를 모면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범죄가 수치스러운 일임을 깨닫지는 못할 것이다. 백성에게 수치심을 가르치면 사람들은 마음으로부터 복종하게 된다.”

양을 물 먹여 파는 상인과 음탕한 아내를 방관하는 남자와 오만과 사치를 자랑으로 여기는 부자가 고을에 살고 있었는데, 공자는 그들을 굳이 처벌하지 않았건만 얼마 안가 상인은 스스로 불법한 일을 그치고 정당한 거래를 하였고, 음탕한 여자는 남편을 떠났으며, 오만한 부자도 스스로 고을을 떠났다.

공자는 일자리가 없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공장을 짓고 일하기 어려운 노인들을 위해 양로원을 지었다. 일 년이 지나자 백성들은 성실히 일하기를 즐거워하고 노인은 존경받고 어린이들은 사랑을 받으며,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모욕 주는 일이 사라졌다. 사치와 음란 퇴폐한 일이 사라졌으며, 도둑은 없어지고 길에서 주운 물건을 취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나라 안팎의 수령들이 그의 정치방법을 배우려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로써 공자는 정치적 위상이 높아졌고, 노나라 군주는 그를 재상으로 발탁하여 국정 전부를 맡겼다.

명령이나 강압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들보다는 자발적 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들이 더 큰 힘을 갖는 법이다. 정치든 기업경영이든, 가정이든, 혹은 짐승을 기르는 일까지도 이 법칙은 똑같이 적용된다. 백성으로 하여금 자발적 동기를 갖게 만드는 데에는 명령이나 채찍보다 리더의 솔선수범과 진심어린 애정이 먼저였다는 것을 잊지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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