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시니어] 시니어 참여 '시민극단마들' 2...연극 ‘서울에 온 맥베스' 두번째 공연

윤재훈 기자
  • 입력 2022.12.09 20:18
  • 수정 2022.12.1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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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인생의 무대에서 헛소리를 하다가
넘어지는, 꼭두각시 인형에 불과하군.
지난날~, 피를 흘려 얻은 영광은,
순간의 꿈이었을까.

군악대의 행진곡에 맞추어, 활보하던,
그~, 휘황한 삶의 퍼레이드가,
저, 흩날리는 눈발만도 못하다니.

높게 쌓아 올린 바벨탑조차, 눈송이 사이로
아른거리다가 사라지는, 환영일 뿐이라니.
텅 빈 하늘 가득 채우고 쏟아지는 저 눈발들도
조만간 땅 위에 떨어져, 녹아버리고 말리니.

아~, 구원의 예불 소리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마는구나

- 연극 ‘서울에 온 맥베스’ 사령관의 독백 중

(단원들의 즐거운 한 때. 촬영=윤재훈)
(시민극단마들 단원들의 즐거운 한 때.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연극의 가장 큰 장점은 뭘까? 아마도 가장 큰 매력은 다른 여러 사람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기자도 처음 연극에 참여할 때 마찬가지였다. 너무나 소극적인 성격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한 인생을 살면서 한 사람만의 삶을 살다는 것은 너무 아까운 일이다. 

연극배우들은 많은 사람의 삶을 경험해 보고 싶어한다.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다른 사람의 삶속으로 들어가 그 내면의 음영(陰影)과 슬픔에 대해 공유해보고, 가능하다면 깊은 내면의 연기로도 표현해 보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그래서 오늘도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한 가닥 빛을 바라며, 수많은 연극 배우들이 그 철저한 가난과 고독 속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12월 10일 오후 3시, 시민극단마들의 ‘서울의 맥버드’ 앵콜 공연이 전태일 기념관에서 오른다.

마들 시민극단의 배우들은 그 이력면에서도 다채롭다. 현직에 종사하거나 은퇴한 사람들, 여기에 자유로운 직업까지 그 아우라가 대단하다. 특히 이번 ‘서울의 맥베드’ 앵콜 공연을 주도적인 노력으로 성사시킨 이판도 씨는, 희망제작소 친목 단체인 아름다운 모임 ‘강산애’ 회원이기도 하다. 강산애는 매년 겨울이며 회원들이 십시일반 100, 200장 연탄을 기부하여 몇천 장을 만들어서, 직접 빈민촌까지 배달해주는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번에 그 천사들의 주도로 공연이 이루어진다고 하니,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감사함이 밀려온다.

더구나 이판도 씨는 이번에 처음으로 참여한 신인배우인데, 그 추진력 하나만큼은 인정해줄 만하다. 사실 그녀는 이번 한 번만이 아니다. 작년에도 시민극단마들이 무대에 올렸던 ‘리어, 파고다 공원에 오다’를 보고 감동하여, 자신이 사는 지역의 어른들에게 보여주면 좋겠다고 하여 기어이 파주에서 성사를 시켰다. 고마울 따름이다.

(연습중에. 촬영=윤재훈)
(시민극단마들 연습 중에. 촬영=윤재훈 기자)

이판도 씨는 지금 화성에 살고 있는데, 연습장 오는 데까지 지하철로 세 시간이 걸린다. 왔다갔다 6시간이다. 정말 어마어마한 열정이 아니면 올 수 없는 거리이다.

기자도 대학원 박사과정을 할 때 기차로 왕복 12시간 거리를 3년 반이나 다녔다. 기차 안에서 레포트를 쓰며 바쁘게 다녔지만, 정말로 그때는 한 번도 지루하다거나, 가기 싫은 적이 없었다. 꼭 하고 싶은 일이었고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냥 즐겁기만 했다. 그녀도 그러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나는 땅끝(土末)에서 태어났다
그 후 도시로 나와,
명절날 고향 가는 버스를 타도 항상 종착지에서 내렸다
남쪽 바다 끝에서 완행버스에 몸을 실으면,
비포장 길을 따라 순천, 벌교, 보성, 강진, 장흥, 유배지의 땅들을 샅샅이 훑고,
다시 바닷가 마을에 도착했다

그 길에서 고산(孤山)을 만나고, 다산(茶山)을 만나며,
초의와 영랑도 만났다
선인들의 깊은 고뇌에 찬 얼굴을 보았으며,
그 사이 버스를 타고 내리던 수많은 남도의, 주름 패인 얼굴도 보았다
돌고개 따라 펼쳐지던 누런 들판에서 가끔씩, 튀던 메뚜기도 보았으며,
허기지게 달려가던 도랑물도 만났다
천관산 아래로 내달리던 버스에서 본, 남도의 山모랭이, 山모랭이들
지금도 순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 후 기차를 타도,
여전히 시발지(始發地)에서 종착지(終着地)까지 줄기차게 달려갔다
하룻밤을 샌 기차는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긴 기적 소리를 동백꽃처럼 역두(驛頭)에 뿌렸다

오동도 절벽 위 어디쯤,
위태로이 걸린 횟집에서 친구와 소주잔을 부딪치며 회를 씹던,
설익은 회포들이 오늘따라 더욱 굴풋하다
밖에서 울어 애이던 파도 소리와 갈매기의 소리도.
기차간에서 만났던 아지매들의 낯선 음성,
한밭 어디쯤에서 새벽시장을 나가기 위해
굽은 허리로 올리던 밤색 광주리에 대한 기억과,
억센 손가락 마디도 보았다

기나긴 열차 시간에 피곤해지면, 의자 사이로 기어들어 가 자거나,
선반 위에 올라가 잤다
사람들의 구수한 사투리 소리에 잠을 깨면,
기차는 목쉰 소리를 내면 만경 평야 어디쯤 달리고 있었다

이제 나는 변방으로 더 밀려났다
어젯밤 잠 속에서 새 한 마리 울고 가는 것을 보았다
老철도원의 목쉰 소리가 플랫포옴의 천장을 타고 울려온다
역 대합실은 언제나 만원이다
그러나 나는 수도의 종착역에서 내려,
다시금 지하철을 타고 한참을 더 달려가야만 한다

테크놀러지technology가 우주로 전파를 쏘아대는 이 시대에도,
항상 변두리로 변두리로만 내몰리는 삶들이 있으니,
오늘도 그 삶들 몇, 서로를 껴안고,
문득 지하도에서 잠이 든다
찬송가를 틀고 노래를 부르면 지나가는 맹인의 낯선 삶도,
저 혼자 열차 칸을 맴돌다가 빠져나간다

오늘 아침 산길을 내려오다 문득, 다람쥐 한 마리를 만났다
내 앞으로 지나가는 어린 시절,
이 길을 내려가 오늘도 나는 길게, 기지개를 켜고 달려온,
저 지하철을 탈 것이다

- ‘ 땅끝 인생’, 윤재훈

(이판도 배우. 촬영=윤재훈 기자)

이판도 씨는 자그마한 체구에 적지 않은 나이인데, 어디서 그런 열정이 나오는지 알 수가 없다. 그녀는 피아니스트이며, 음악학원을 운영하다 지금은 은퇴했다고 하는데, 프랑스에서 10여 년 이상 자식들하고 살다가 온 걸로 기억한다.  

새로운 액티비티를 찾아 연극단에 들어왔으며, 모든 예술 장르에 관심이 많은데, 특히 공연 예술에 많은 감명을 받고 있다고 한다. 친구 따라 왔다가 연출자가 갑자기 역을 맡겨 참여하게 되었다. 무대에 선다는 것은 자기를 다듬는 좋은 기회이며, 특히 무대예술은 그 과정이 쉽지 않지만, 팀웍을 배우고 성취감도 많아 즐겁게 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연극은 관객과 가장 가까이서 소통할 수 있는 직접적인 예술이다. 짧은 시간에 마음을 움직이는 살아있는 행위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꼭 관객만의 입장이 아닌 배우로 직접 참여해보면 더 좋겠다고 한다. 무대예술을 통해 자기를 다듬고 시민들의 생각과 의식을 성숙시키고 변화시키는 장으로 삼으면, 더할 나위 없겠단다.

이판도 씨는 이번 공연에 관객모집을 위해 자신의 사비는 물론, 며느리가 준 상품권까지 현금화하여 표를 사는데, 지원해 주고 있다. 특히나 그녀는 문화운동에 많은 보람을 느끼는데, 문화를 통해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싶단다. 또한 우리가 혜화동이나 예술의 전당 등에 가려면 너무 비싸기도 하여, 지역 문화운동 차원에서 가까이서 저렴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장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판도 씨 마케팅에도 깊은 관심이 있단다.

(분장사 남도진 씨. 촬영=윤재훈 기자)

남도진 씨는 분장사다. 작년 공연 때도 분장을 했다. KBS 분장실에서 25년간 분장사로 근무하다 퇴직하여, 보건대학에서 분장학 교수로 10년간 일했다. 지금은 동아방송 예술대학에서 겸임교수로 분장 강의를 하고 있으며, 연출가와의 친분 때문에 졸지에 케스팅까지 되어 배우로도 출연한다. 우리 동네에서 하는 연극이라 더욱 정이 간다고 한다.

특히나 연극은 연습 기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드는데, 가뭄에 콩나듯이 하는 협찬이나 지원에 의지해야 하고 그것마저 안되면 개인 사비까지 써서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한다. 그러니 갈수록 연극이 활성화되기는 더욱 어려운 현실이라고 한다. 그리고 틈틈이 행사에 출장 밴드 연주도 해주고, 기타 강습까지 하고 있단다.

(최은주 배우. 촬영=윤재훈 기자)

이번에 신인배우로 참여하게 된 최은주 씨는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다. 대학 때 배웠던 교수님의 소개로 참여하게 되었다는데, 극단에서 가장 젊은 배우다. 고향은 땅끝마을 해남으로 학창 시절부터 고향을 떠나 객지를 떠도는 현실이라고 한다. 고향에는 나이 든 어머님이 계시고, 얼마 전에는 치료차 서울까지 올라 왔단다.

연극에 참여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자신의 소극적인 성격을 바꾸어 보고 싶어서 였는데, 몇 달 되지 않아 주위에서 많이 바뀌어졌다고 해, 이제는 자신이 직접 친구들에게도 권하고 있단다. 이번 연극에서 시위대와 대학생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너무 재밌단다. 그리고 여건이 된다면 앞으로 계속하고 싶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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