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 남은 달력을 바라보며1

윤재훈 기자
  • 입력 2022.12.16 09:38
  • 수정 2022.12.21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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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저를 휘적일 때마다
동동 섬처럼 떠다니는
고깃덩어리 두어 점
코를 훌쩍거리며
아이들은 바라보고

아빠는 끝내 먹지 못하고
헛기침만 몇 번하고 나가면
달려드는 형제들의 수저
끝내 어머니 지청구를 듣고…

- ‘아버지의 국’. 윤재훈

(겨울 강가. 촬영=윤재훈)
(겨울 강가.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그랬을까, 아침 잠결에 ‘여’자로 시작하는 말이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여유, 여자, 여기, 여수, 여비, 여주, 여태…’ 이런 말들이 문득 떠올랐다.

(돌산 동백골 애기 섬, 엄마 섬. 촬영=윤재훈)
(키르키스탄, 하늘 아래 천산 호수 이시쿨. 촬영=윤재훈 기자)

우선 장기 세계 배낭여행을 다닐 때 ‘여유’가 없었다. 주머니가 너무 가벼우니 항상 먹는 것이 변변치 못했다. 까페 한 번 들어갈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요즘 나는 카페에 앉아 노트북이나 책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 번잡함 속에 나만의 고요함이 넉넉하다.

다음 여행 때는 약간의 넉넉한 ‘여비’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걱정 없이 그 나라의 특산품을 먹을 수 있는 여유가 좀 있었으면 더욱 좋겠다. 주머니에서 인심 나온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여행자와 어깨동무하며 식사 한 끼 나누어줄 수 있는 그런 넉넉한 사람이면 좋겠다. 일단 여유가 있으면 사람의 생각에 물기가 고인다. 여유로워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박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

돌산 동백골 애기 섬, 엄마 섬. 촬영=윤재훈 기자

‘여수’는 나의 제2의 고향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남쪽 바닷가다. 어린 시절 가이없이 이어지는 수평선을 보면 인생을 생각하고 꿈을 키웠다. 그곳에서 연애(戀愛)를 하고 평생의 반려자(伴侶者)도 만났다. 파도가 밀려와 갯바위에 부딪치며 속울음을 울 때도 있었고, 갈매기는 끼륵거리며 다가와 잘 살고 있는지 묻는 것도 같았다. 그럴 때면 나는 항상 파도처럼 흔들렸다.

아름다운 여수항, 다도해가 꿈결처럼 펼쳐지는 은물결 바다, 동백꽃과 오동도 시누대가 유난히 반짝거리는 곳, 단감처럼 걸린 케이블카들이 늦은 밤까지 여수 앞바다에 놓인 이순신대교를 따라 자산 공원으로 올라가던 곳.

북쪽에는 종고산이 솟아있고요
남쪽에는 장군도가 놓여있구나
거울 같은 바다 위에 오고 가는 배
돛을 달고 왔다 갔다 오동도 바다

아, 아름답구나 여수항 경치
아, 아름답구나 여수항 경치

- 여수항 경치

(돌산대교 야경. 촬영=윤재훈)
(돌산대교 야경. 촬영=윤재훈 기자)

한해 1,3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도시, 그 풍경에 반해 장범준이라는 가수는 여수의 어느 카페에서 알바를 하다가 ‘여수 밤바다’라는 노래를 만들어, 일약 유명 가수가 되고 그 노래는 여수의 상징이 되었다.

눈을 감으면 오동도, 향일암, 방죽포 해수욕장, 향일암의 금빛 바닷길, 여수항 경치가 눈에 선하다. 중학교 때인가 다리가 생기기 전 도선을 타고 소풍을 가서, 엄마 선그라스를 쓰고 사진을 찍었던 돌산섬, 그리고 여수 중고등학교의 단골 소풍 장소였던 이강산과 구봉산, 그날이 되면 여수에 있던 온갖 잡상인들을 학교 앞에 다 모였다가 우리를 따라 산 중턱까지 올라왔다. 그 속에 숨어있는 천 년 고찰 한산사, 그 아래 도공(陶工)의 작업장 등, 추억이 명태알처럼 알알이 뭉쳐있는 곳이다.

‘여자’란 말도 참 좋다. 나와 함께 평생 같이 사는 동반자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 이어 평생 나에게 좋은 음식을 먹여주고, 깨끗한 옷을 입혀 주고, 술 좀 적게 먹고, 남과 다투지 말고, 조금 손해 본 듯 살라고, 상선약수(上善若水)처럼, 예수님이나 부처님 마음처럼 살라고 하는, 나의 제2의 어머니 같은 분이다.

(어느 길가를 지나다. 촬영=윤재훈)
(어느 길가를 지나다. 촬영=윤재훈 기자)

여기에 이제 ‘여유’가 좀 있었으면 좋겠다. 코흘리개 시절 두메산골에서는 너무 가난했다. 농사를 짓지만 쌀을 보기가 힘들었고, 무밥과 감자밥을 수시로 먹던, 산골의 긴 겨울은 고구마와 부뚜막에 놓인 싱건지로 때우거나, 수제비로 넘기던 시절.

그래서 보리밥에 건강에 좋다는 이 시절에도 어머니와 아버지는 항상 하얀 쌀밥에 고기반찬을 좋아한다.

멀건 국물 위로
기름 동동 떠다니고
누우런 무우 몇 조각만
운동장의 아이들처럼
포개져 있는,

동그란 밥상에 둘러앉은 아이들은
자꾸만 아빠 국으로 눈길이 간다

수저를 휘적일 때마다
동동 섬처럼 떠다니는
고깃덩어리 두어 점
코를 훌쩍거리며
아이들은 바라보고

아빠는 끝내 먹지 못하고
헛기침만 몇 번하고 나가면
달려드는 형제들의 수저
끝내 어머니 지청구를 듣고

참지 못한 막내가
울음을 터뜨리는
먼, 먼, 시골집
흔들리는 한나절

- ‘아버지의 국’. 윤재훈

(주막에서)
(주막에서. 촬영=윤재훈 기자)

 

겨울이면 시커먼 늑대 두 마리가 내려오던 외딴 집, 금방 쓰러질 것 같던 땟집, 겨울이면 말라 비틀어지고 찌그러진 한지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던 그 황소바람, 미영 이불 한 장을 밤새 식구들은 끌고, 부슨 방만 따숩던 그 방에 형제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저마다 복송시에 물집이 잡혀있고, 지난 밤 술에 취해 들어온 아버지 머리맡에는 어머니가 떠다 놓은 한 사발의 속풀이 물이 쨍, 쨍, 소리를 내며 동태처럼 얼어있었다.

조선 창호지 문틈으로
겨울바람은 몰아치고
형제들은 춥다고 서로
무명 이불을 잡아끌던
먼 머언 고향집

아버지 머리맡에서는
한 사발 물이 얼었다.

- ‘신기리’, 윤재훈

(새참시간. 촬영=윤재훈)
(새참시간. 촬영=윤재훈 기자)

아버지는 깨어 무슨 울화가 있는지 문을 열어 제치면,
소복하게 눈 쌓인 마당 건너편에 배고픈 늑대 두 마리가 먹이를 찾고,
그와 동시에 헛간에 개들이 짖던 곳,
찢어지게 배가 고프니 동산 넘어 학교 갈 때 삐비꽃을 뽑아먹고,
장에 간 엄마가 언제 오려나 돌아오는 버스 보려고 동구 소나무 위에 올라가다,
송진을 벗겨 오랫동안 껌처럼 씹던,
어머니 가르마 같은 신작로를 따라 좀처럼 버스는 오지 않던,
그러다 모락모락 산모롱이 사이로 먼지가 올라오고 이내 버스가 나타나던,
논길 사이로 한없이 이어지던 또랑물,
명절날이면 객지에서 다 모이던 사촌 형들은 그 둑을 막아 아예 물을 퍼내고 고기를 잡던,
공습을 피해 일본인들이 검정 판자 잇대어 지어놓은 교실에서 하학종이 울리면,
코흘리개 아이들은 메뚜기처럼 튀어나와 그 또랑물에 코스모스 꽃잎이나, 종이배를 띄우고,
종일 따라가던 한국의 아이들,
책보에 뺀또(도시락)을 넣어 달리며 달그락거리며 종일 따라오던 그 허기진 소리,
검정 고무신 테가 동그랗게 나 있던 그 서러운 고향길,

- ‘고향을 생각하면’, 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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