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108] 꿈꾸는 하롱베이 3

윤재훈 기자
  • 입력 2023.01.03 17:13
  • 수정 2023.01.1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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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하롱베이

바람이 눈앞에서
어른거리나 싶더니

솔방울 하나
툭, 하고
소 등으로 떨어졌다

- ‘흰 소를 찾아서’, 윤재훈

(하롱 야시장에서. 촬영=윤재훈)
(하롱 야시장에서.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중국인들이 얼마나 몰려오는지 상인들은 중국말도 잘한다. 하긴 바로 지척이 거대한 중국 땅이고, 중국에 바다가 아닌가? 팔찌가 모양이 좋아 물어보니 30만 동이라 하는데, 8만 동에 샀다. 그래도 제대로 산 건지 긴가민가하는데, 싸기는 하다.

세계 여행을 다니면서 그 나라의 수제 팔찌와 목거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간다. 젊은 날에는 맨몸 하나로 나서도 자신감이 있는 것 같더니,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꾸 외부적인 것으로 나를 꾸미려 하는 것 같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달도 차면 기운다.

(하롱베이. 촬영=윤재훈)
(하롱베이. 촬영=윤재훈 기자)

“딩동” 그리운 문자가 뜬다. 고국에서 온 것이다. “꿈꾸는 여행이 되길”, 아내의 한 마디가 우주에서 반짝이는 고운 별처럼 깊이 마음에 박힌다. 잊혀진 생각들을 일깨운다.

외로운 밤이면 별을 보았지
더 외로운 밤이면,
찬란한 유성이 되고 싶었지
그대의 심장 가장 깊은 곳에,
흐르는 별빛처럼 꼬옥, 묻히고 싶었지.

젊은 날 동해안 해안가에서 초병을 서던 푸른 옷의 젊은이들이, 그 외로운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 애인에게 보냈던 편지 문구에 있었던 글이다. 멀리서 보이는 밤 풍경이 내 고향 여수항과 그 건너 돌산대교의 모습과 비슷하다.

갓빠 방파제에서는 청년 두 명이 낚시대도 없이 줄만 던져 넣는데, 얼마나 고기가 많은지 가끔씩 쟙(감생이, 돔)이 올라온다. 동네 친구들도 얼마나 잡았는지 오토바이를 타고 마실 나오듯 와서 보고가고, 나는 그 옆에서 왕포도를 반 송이씩 나누어 먹는다.

저 넓은 바다에서 호기롭게 유영하던 것들이
머리와 꼬리가 닿은 조그만 통 속으로 붙잡혀 와
마지막 생을 불안한 눈빛으로 끔벅거리며
유영하고 있다.

나를 놓아주면
삼세의 음덕(蔭德)이 미칠거라고,
젊은이들의 눈망울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듯도 하다

(갓빠섬 방파제에서. 촬영=윤재훈)
(갓빠섬 방파제에서. 촬영=윤재훈 기자)

나의 젊은 날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 하릴없이 남쪽 바다에 앉아 세월을 가늠할 때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뚜렷하게 기억나지는 않아도 나의 정신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강태공의 낚시대가 위수강에 잠겼듯이 젊은 날의 방황은, 세월의 가고 옴을 알 수가 없어서였을까?

바람이 눈앞에서
어른거리나 싶더니

솔방울 하나
툭, 하고
소 등으로 떨어졌다

깜짝 놀란 소
길길이 뛰더니,
산문으로 들어가
십우도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 ‘흰 소를 찾아서’, 윤재훈

나도 친구가 찾아오면 고추장에 소주를 사들고 낚시대를 매고, 무작정 바다로 나갔다. 그곳에 가면 젊은 날 열정을 식혀줄 탁 트인 시원함과 안주가 무진장 널려 있으니까 말이다.

공자님도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면 머리를 감다가 세 번이나 들고 밖으로 나가서 맞이했다고 한다.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와주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어마어마하게 큰 땅덩어리인 중국을 여행하면서 수많은 고분을 보았다. 그 속에는 인간의 헛된 욕망과 무지를 말하고 있는 듯, 생멸(生滅)의 열락(悅樂)을 무언(無言)으로 말하고 있었다. 언젠가 이 지구도 생이 있었으니 멸이 있을 것이라고, 캄캄한 방파제에 앉아 끄덕이며, 끄덕이며, 일어설 줄 몰랐다.

아득한 간짓대 끝에
앉아있는 선승(仙僧)

바람이 불면
갔다가 다시 오고
갔다가 다시 오고

-'잠자리', 윤재훈

(갓빠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촬영=윤재훈)
(갓빠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촬영=윤재훈 기자)

가만히 보니 입갑(미끼)은 쏙 새끼를 사용한다. 표피가 딱딱하고 날카로운 가시까지 있어 입으로 물기가 상당히 힘들 것 같은데도, 계속해서 올라온다. 하긴 바위에 붙은 굴껍질 같은 것도 깨서 먹는다고 하니, 쏙 껍질도 깨부수고 올라올 수 있는 모양이다. 특별히 손맛이 우렁차고 기품이 넘치는 고기, 낚시꾼들에게는 바다의 왕자인 돔, 국적을 불문하고 좋아하는 어종일 것이다. 방파제에 앉아 홀로 캔맥주를 들이키니 마치 고향 바다에 앉아있는 착각을 순간순간 일으킨다. 문득 휴대폰을 내어 친구에게 전화라도 할 듯 가깝게 느껴진다.

오토바이 타고 시내 투어를 한다. 한국 글씨로 <발맛사지>, <하롱포차>, <아리랑 가라오케> 등, 이 멀고 낯설은 섬에서 한국 글씨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조그만 물건을 하나 사는데 2만 동이라고 하더니 갑자기, 10만 동이라고 강하게 말한다. 다행히 근처 가게에서 포카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바꿔 2만 동을 주고 서둘러 돌아선다.

아주머니가 오토바이 타고 돌아다니면서 마사지 호객을 하는데 20만(12000원) 동이라 하고, 남자는 따라오면서 붐붐 잘하는 곳이 있다고 한다. 참 할 일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가, 그들에게는 이것도 생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카페가 어슴푸레하게 불을 켜 놓고 있는데, 저곳은 아마도 휘빠리 골목 같은 곳인 모양이다. 세움 기사들도 돌아다니며 수시로 호객행위를 한다. 밤에 거리를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옆에 다가와 입만 열면, 붐붐이다.

뮤직 비디오를 들으며 포카 오락을 하는 호텔직원은 <이동진>이라는 한국 가수를 좋아한다며 발가락을 까닥거리며 음악을 듣고 있다. 몽골이나 중국 등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는 여행을 하면서 이질감을 많이 느꼈는데, 묘하게 베트남 사람들에게서는 동질감이 느껴진다.

(프랑스인 여행자. 촬영=윤재훈 기자)

게스트하우스 홀에 못 보던 낡은 오토바이가 한 대 놓여 있다. 서른한 살의 프랑스인 <잭 마크>의 것인데, 400불에 샀다고 하니 상당히 저렴하다. 그는 두 달 일정으로 하노이에서 오토바이를 사서 중국과 국경을 접한 베트남의 오지마을인 사파를 거쳐, 하롱베이로 왔다고 한다. 그다음에는 뱀처럼 기다란 베트남 해안선을 관통하여, 옛 월남전 남베트남의 수도인 사이공(호치민)까지 간다고 한다. 수많은 우리 젊은이들이 괜한 미국의 전쟁에 끼여 세계인의 원성을 들으며, 피를 흘린 그 땅이다.

그리고 아마도 쩌우독 국경을 넘어 캄보디아로 들어가 크메르인들의 엄청난 유산인 앙코르와트의 깊은 불심에 잠겼다가, 불교 왕국 타일랜드로 들어갈 모양이다. 그 옆에는 군부의 어마어마한 장기독재 집권의 나라이지만 지고한 불심의 사람들로 역시 커다란 불교 왕국을 이룬, 바간 왕국의 땅 미얀마가 있다. 그곳 또한 메솟 국경쯤에서 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으리라.

잭 마크는 평양에도 다녀왔는지 그곳에 찍은 사진들을 보여준다. 서로의 홈피 주소까지 나누었는데, 그가 찍은 사진들이 참 좋다.

간간이 흙먼지가 올라오는 치앙마이 북쪽의
어느 오지 산마을을 걷고 있는데,
만행이라도 떠나는지 한 무리의 스님들이

터벅터벅 끝없는 길을 걷고 있었다
그중에 한 스님이 나에게 손짓을 하더니
자신이 걸고 있던 백팔염주를 주고 간다

한참을 지난 후
나는 이제사 생각을 한다
그분은 나에게 왜 108개나 번뇌가 있는

물건을 주고 갔을까
자신의 번뇌를 나에게 다 벗어주고 갔을까
혹시, 그 분은 지장보살이었을까

- ‘길 위에서 길을 묻다’, 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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