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작성공수기] 두 번째 날개...장려상 최정란

김남기 기자
  • 입력 2023.01.12 13:11
  • 수정 2023.01.12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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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경상남도에서 실시한 제2회 신중년 인생이모작 성공수기 공모전 수상작품을 연재한다. 연재될 수상작품들은 퇴직 후 삶 준비, 재취업 성공사례, 사회공헌활동, 재능나눔 경험 등을 공유하고, 신중년 세대의 성공적인 인생 2막을 엿 볼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공모전 주제는 '은퇴 후에도 활기찬 나의 인생이야기'이다.

우간다 해외봉사단활동, 현지 학생들 교류전 준비모습. 사진=최정란 제공

37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을 한 달 앞둔 2019년 1월 어느 날.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남편에게 말했다.

“아프리카 우간다에 가려고요.”
“해외여행 가려고? 그렇게 하시오. 그동안 수고했으니 이제 해외여행도 다니고 자기 자신에게 쉼을 주는 것도 좋은 일이요. 며칠이나 다녀올 것이오?”
“아프리카로 여행을 가는 것이 아니고 봉사활동 가고 싶어요.”

한동안 아무 말 없던 남편은

“아프리카로 여행 가는 것도 걱정인데, 그 나이에 어떻게 해외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말이요?”

남편은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더 이상 가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다. 평소 나의 신념을 알고 있기에.

2019년 2월 27일 37년여의 교직 생활을 마치는 날 직원들과 저녁 식사를 했다. 마지막 식사라는 의미로 크게 건배사를 외쳤다. “청바지!” “청춘은 바로 지금부터” 맥주잔을 부딪치며 흥을 돋우고 있을 때쯤 부장 선생님의 질문이 이어졌다. “교장 선생님 퇴임 후는 어떻게 지낼 실 예정인가요?” 순간 모든 직원은 맥주잔을 내리며 고개를 돌려 나를 향해 앉았다. 나는 마치 중대 발표라도 하듯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해외 봉사를 떠나려 합니다. 이미 코이카에 지원서와 건강검진까지 통과되어, 내일 최종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약 봉사단원으로 선발된다면 1년간 해외 봉사를 할 예정입니다.”

말을 마치자 직원들의 표정은 모두 놀란 눈빛이었다. 어떤 직원은 “국내에서도 봉사가 가능한데 왜 굳이 힘든 해외까지?”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예상했던 반응이었기에 침착하게 다시 얘기했다.

“1950년 6월 25일 16개국의 참전으로 휴전이 되면서 그들로부터 도움받은 것을 적은 힘이라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 '같이'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나의 삶이 얼마나 더 이어질지 하나님만이 알기에 평소 나눔에 대한 생각을 실천하려 합니다.”

굳은 결심을 확인한 직원들은 나의 도전에 박수를 보냈고 자신들도 기회가 되면 반드시 봉사하러 가겠다는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다음날 해외봉사단 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퇴직을 앞둔 1년 전부터 해외 봉사하러 가서 쓰일 수 있도록 생활체육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공부를 했다. 이론시험에 합격하고 실기시험을 앞두고 면접관 앞에 섰다. 면접관은 나의 주민등록증과 나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첫 질문이 “왜 자격증을 취득하려고 합니까?” 그 질문 속에는 ‘늦은 나이에 왜?’라는 느낌처럼 보였다.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 거의 1년이 걸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2년이 걸렸어도 도전했을 것이다. 진심으로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간다 해외봉사단활동, 현지 학생들 미술시간. 사진=최정란 제공

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드디어 2019년 5월 6일 11시간의 비행 끝에 아프리카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출입구를 나오자 ‘이곳이 아프리카입니다.’라고 환영 인사하듯, 뜨거운 바람이 얼굴에 닿았다. 그때 생각했다. 이 뜨거움을 반드시 감동으로 바꾸어 고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말이다.

파견된 곳은 우간다 수도인 캄팔라에서 약 11킬로 떨어진 은산지 중등학교였다. 2천여 명 학생과 100여 명의 교사가 있었다. 학생 수와 교사 수가 정확하게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학비가 있으면 등교하고 학비를 못 내면 교문에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인원이 몇 명인지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교사들도 월급만으로 생활하기 어려워 별도의 아르바이트를 하여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기관에서는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학교 정문에서 학비 영수증을 검사하여 교문을 통과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가슴이 아팠다. 그 모습을 보니 초등학교 다닐 때 육성회비를 못 내 집으로 돌아갔던 어린 시절 기억이 났다. 학비는 꿈도 꾸지 못하는 학생들이 약 500명이 넘는다고 하였다. 학비는 어떻게 마련해도 점심값 1,500실링(500원)이 없어 굶는 학생이 많았다.

우간다 해외봉사단활동, 현지 교사들고 함께. 사진=최정란 제공

과연 이게 같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실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런 모습을 보며 한국에 있는 같은 학년의 학생들은 얼마나 풍족하게 살고 있는지 자신들은 모르고 있는 현실이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에 대한 고마움과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것에 대한 감사가 절로 나왔다. “해외에 나오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그렇게 현지 생활을 인정해가며 조금씩 적응해갈 무렵 생각지 않은 변수가 생겼다. 바로 코로나19였다. 결국 오랫동안 꿈꾸며 준비했던 해외 봉사활동 임기를 끝까지 마치지 못했다. 코로나로 인해 2020년 3월 긴급 대피하여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눈을 감고 두 번째 다짐했다. 본국으로 돌아가서도 남은 삶은 덤이라 생각하고 나누는 삶을 살겠노라고.

우간다 대사와 함께. 사진=최정란 제공

귀국 후 규칙적으로 하는 일이 없으니 불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경남 인생 이모작지원센터에서 스마트폰 교육 지도사양성과정이 있어요. 지원해 보세요.” 나에겐 가뭄 속 단비 같은 전화였다. 하지만 기계치였던 나에겐 스마트폰 활용은 두려움의 대상이었기에 선뜻 지원하기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도전하였다. 남을 가르치기보다 내가 먼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교육은 8주간 진행되었다. 교육을 마치고 자격증을 취득한 날! 뛸 듯이 기뻤다. 학교밖에 몰랐던 나에게 새로운 인생 이모작의 시작 신호 같았다. 평소 스마트폰 활용에 대해 몰랐던 부분을 배우고 익히니 자신감이 생겼다. 주변에 소외된 분들을 위한 재능기부가 가능할 것 같았다. 그날 태어나 두 번째 명함을 새겼다. 단순한 명함이 아닌 인생의 두 번째 날개였다.

2021년 9월부터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왕 마음먹고 시작한 거 적극적으로 했다. 도움이 필요한 분들의 연락을 기다렸다. 그러는 사이 요양보호사 자격도 취득했다. 요양보호사 공부를 같이한 분들께 틈틈이 스마트폰 활용 방법을 알려드렸더니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의 경험이 있어 가르치는 실력이 나쁘지 않았나 보다. 그렇게 기다리던 중 9월 24일 첫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여서 무시할까 하다가 블로그 올린 게 생각나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최정란입니다.”
“예, 저 블로그 보고 유튜브 배우려고 전화 드린 조ㅇㅇ입니다. 정말 무료교육이 맞습니까?”

스마트폰교육. 사진=최정란 제공

그렇게 상담이 시작되었다.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었다. 설레었다. 교육 대상자는 시니어 세분과 그의 자녀였고 유튜브에 대해 가르쳐 드렸다. 만난 날부터 4일간의 교육으로 그들은 유튜버가 되었다. 새롭게 시작한 일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가슴 벅차고 뿌듯했다. 그 이후 무료교육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젠 교육 신청하는 분들도 많아졌고 그들로부터 받은 피드백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 되었다.

“다음, 네이버 아이디와 비밀번호 등록을 마치고 나니 앞으로 인터넷 고민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집 가는 시내버스 도착시간 확인을 할 수 있게 되었네요. 마냥 기다렸는데 집 가는 시간을 확인할 수 있으니 여유가 생길 것 같습니다.”
“당근 마켓에 중고 물건을 팔고 싶었는데 사진과 내용을 올릴 수 있겠습니다.”
“그동안 몰랐던 휴대폰 사용법을 재미있고 알아듣기 쉽게 잘 설명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러한 후기를 들을 때마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행복한 마음이 든다.

스마트폰 기초교육. 사진=최정란 제공

최근 개인적으로 블로그 수업을 요청하는 분들에게 일정한 수강료를 받는다. 이를 모아 아프리카 우간다에 있는 학생들의 학비로 지원하고 있다. 물론 큰 액수는 아니지만, 그곳에 있는 학생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본다.

작년에는 상도 받았다. 2021년 12월 1일 경남 인생 이모작지원센터 성과발표회에서 ‘사회 공헌 우수활동상’이었다. 더 열심히 활동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퇴직할 때 받은 훈장보다 더 귀한 상이었다.

인생 이모작지원센터 성과발표회에서 ‘사회 공헌 우수활동상’. 사진=최정란 제공

나는 지금도 현실에 멈추지 않고 어제보다 나아진 나를 만들기 위해 사진 촬영하는 법, 유튜브 크리에이터 자격 과정, 메타버스 심화 과정, 디지털튜터 2급 자격과정 등을 배우고 있다. 물론 배운 것은 주변에 나눌 것이다. 돌아보면 내가 가진 작은 재능으로 나눔을 했지만, 사실은 더 많은 사랑으로 보답받고 있음을 안다. 감사한 일이다. 앞으로도 어느 곳이든 내가 필요한 곳은 있다면 건강이 허락하는 한 가려고 한다. 이런 게 진정한 인생 이모작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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