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109] 하롱베이에서 연상되는 치앙마이, 라오스, 미얀마 국경 오지마을 풍경 4
[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109] 하롱베이에서 연상되는 치앙마이, 라오스, 미얀마 국경 오지마을 풍경 4
  • 윤재훈 기자
  • 승인 2023.01.18 10:5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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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롱베이를 닯은 국경 오지마을

한국인 사장님들이여,
외국인 근로자들을 나의 가족처럼 잘 대해 주십시요.
세계를 여행하다 보며 그것이 가장 걱정됩니다.

(캄캄한 밀림 속에 사는 오지 사람들. 촬영=윤재훈)
(캄캄한 밀림 속에 사는 카렌 오지 민족들.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수많은 ‘오지 소수민족’들이 사는 땅 치앙마이, 그 일대를 오토바이를 타고 약 1년여간 순례한 적이 있다. 라오스 국경을 따라 오른쪽으로 반원을 그리며 4개월여, 미얀마 국경을 따라 왼쪽을 반원형으로 돌며 4개월여, 어느 첩첩 산모롱이를 돌다가 망태를 메고 커다란 칼을 차고 산속 도로를 걸어가던, 그 처연하고 순한 눈망울을 잊을 수가 없다.

어느 날인가는 산 정상을 올라가다가 스콜을 만났다. 피할 수가 없었다. 몇 초만 지나면 물통에 들어갔다 나온 듯, 물이 줄, 줄, 흘렀다. 앞은 뿌옇게 잘 보이지 않았고 길은 미끄러웠다. 급히 산을 내려가다 보니 저 멀리 오토바이가 길가에 쓰러져 있었고, 청년은 화가 나는지 오토바이를 발로 차고 있었다. 그가 내 오토바이를 세웠지만 두려운 생각이 밀려와 세울 수가 없었다. 그냥 지나쳐 내려가니 멀리 집이 몇채 보이고, 나는 가장 첫 집의 마당으로 주저없이 오토바이를 밀고 들어갔다.

(고마운 부부와 아버지, 촬영=윤재훈)
(고마운 부부와 아버지, 촬영=윤재훈 기자)

한 청년이 나에게 마른 수건을 건넸다. 그리고 장작불을 피우고 있는 부엌으로 나를 인도했다. 아마 그들이 준 마른 옷으로 갈아 입었을까? 안은 따뜻했다. 저녁 식사를 차리고 있었다. 반질반질한 흙으로 윤기가 나는 땅바닥, 두어 가지 반찬과 국을 그 위에 놓고 식구들은 낮은 의자를 하나씩 놓고 둘러앉았다. 청년은 나에게 밥을 건넸다. 버슬버슬한 안남미(통일벼와 비슷)였다. 쌀은 저마다 흩어져 국물을 부어도 뭉치지가 않았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 한없이 뜨거운 정이 밀려왔다. 이 굴풋한 저녁나절, 소나기가 쏟아지는 산속에서 낯선 이국인을 선뜻 받아준 그들의 너른 마음이 고마웠다.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장작불은 부엌 안을 따뜻하게 달구어 주었다.

식구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하룻밤을 재워 주었다. 청년과 둘이 자리를 펴고 누웠는데, 그는 나에게 한국에 다녀온 적이 있다고 하였다. 선뜻, 하여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전전긍긍하는데, 이 마을에 15명의 청년들이 함께 근로자로 한국을 다녀왔다고 한다. 저어하며 살며시 한국에 대한 인상을 물었다.

(순박한 마을 풍경. 촬영=윤재훈)
(오지마을 순박한 마을 풍경. 촬영=윤재훈 기자)

한국에 가서 일을 하다가 그만 몇 달만에 다쳤다고 한다. 그리고 할 수 없이 혼자 돌아왔다고 한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그의 말은 한국에 대한 인상은 그리 나쁘지 않다고 힘없이 말한다.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근로자로 뽑혀서 갈려면 최소한 천만 원 이상의 빛을 졌을 텐데, 한국에서 그걸 벌어서 갚아야 하는데, 그걸 어떻게 했을까?

그리고 세상에, 이 조그만 마을에서 15명이나 한국에 갔다니, 나는 세계를 여행하면서 항상 그것이 걱정스러웠다. 한국에 갔다 왔다는 사람을 만나며, 그들의 인상은 어땠을까, 혹시, 월급이라도 못 받지 않았을까, 나쁜 사장을 만나서 구타라도 당하고 왔다면 한국인을 어떻게 대할까?

이제 우리도 다문화 국가를 피할 수 없는 운명인 모양이다. 시골에는 젊은이들이 없고 그 일손을 외국인 근로자들이 메꾸고 있는 실정이다. 농촌은 소멸 위기에 놓여있고 그 빈 곳을, 이들이 채워가고 있다. 시골 장날도 이들이 없으면 운영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한국인 사장님들이여,
외국인 근로자들을 나의 가족처럼 잘 대해 주십시요.
세계를 여행하다 보며 그것이 가장 걱정됩니다.

(넉넉한 촌부의 웃음. 촬영=윤재훈 기자)

그들의 일상은 불과 3, 40여 년 전 우리네 시골과 똑같다. 새벽이슬 밝으면 들판으로 나가 한 마리 해오라기처럼 종일 엎드려 있다가, 저녁이면 흙투성이가 되어 가족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먼지가 내려앉은 조용하던 운동장에
다시 아이들의 소리 왁자해지고
거미줄에 잠자던 노란 거미도
깜짝 놀라 깨어나 길게 은빛 줄을 내리는,

고국에서는 일제시대 공습을 피해
검정 판자 잇대어 짓던 그 아득했던 학교가
아직도 동그랗게 마을 가운데 남아
아이들의 지저귐 소리에 새 학기를 맞는다

그 소리에 잔뜩 물기를 머금었던
꽃봉오리들은 화들짝 깨어나 다시 생기를 찾고
바람에 흔들리며 잠자리를 희롱하는 오지 산마을
오랜만에 본 선생님 얼굴에
아이들의 얼굴 다시 해맑아지고
가을 햇살 아래 생글거리며 달음박질을 친다

아득한 삼한 시대
어디쯤 놓인 것 같은 학교
누런 들판에서는 쌀 타작 하는
아빠의 굵은 근육에 저절로 배가 불러오고

언제 왔다 갔을까
창틀에는 하얗게 허물을 벗어놓고 간 뱀
그 사이 숲속 어디쯤에는 둥지라도 틀었는지
아기 새들이 눈 시리게 하늘을 나는
아득한 전설 속 어디쯤 있는 것 같은 산골 학교
아름다운 동쪽 나라 한국에서는 사라진
아이들의 지저귐에 하루해가 뜨고 진다
- ‘깔리양족 마을에서’, 윤재훈

(일본인 친구 도모코 구라다, 그녀의 눈망울이 선하다. 촬영=윤재훈 기자)

하롱베이에서 만난 일본여인

같이 왔던 일본인 친구인 도모코 구라다는 아침 일찍 보트 투어를 간다고 나간다. 그녀 옆에 있으면 그 맑은 심성 전해오는 것 같다. 5층 옥상에서 보니 하롱베이 일대의 바다가 파노라마처럼 다가온다. 우후죽순(雨後竹筍) 솟은 섬들이 비현실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마늘 껍질을 집어 날리니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지상으로 내려간다

저들은 몸이 가벼워
나는 것도 새의 깃털 같다

- ‘말이 끊어진 자리’, 윤재훈

(바이 차이 투어리 왁 보트 터미널촬영=윤재훈)
(바이 차이 투어리 왁 보트 터미널. 촬영=윤재훈 기자)

늦은 아침을 먹고 하롱베이(만)를 구경하기 위해 갓빠섬으로 간다. 세움(오토바이 택시)을 타자마자 ‘붐붐’을 하란다. 낮인지 밤인지 구분도 없이 관광객만 보면 습관처럼 호객을 한다. 이 섬을 움직이는 주요수입원은 아마도 관광업일 것이다. 거기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아주 많을 듯하다.

그곳으로 떠나기 위해 팩키지 여행자들이 모여서 떠난다는 ‘바이 차이 투어리 왁’ 보트 터미널로 데리고 간다. 여기도 호객꾼들이 상당하다. 한 배가 모이면 출발하는 모양인데, 20여 분을 기다려도 뭔가 아닌 듯하다. 세움 기사에게 살짝 화를 내며 안내 데스크로 가서 물어보니 ‘돈 쳐우 아일랜드 섬’으로 가라고 한다. 다시 세움 기사와 흥정을 하여 10,000동을 주기로 하고 출발했는데, 20여 분 이상 간다.

섬에는 방파제가 있고 다리가 놓여있는데, 인가는 보이지 않고 콘도식 건물들만 있다. 오토바이 기사가 길을 잘 모르는 듯하다. 바닷가에서 머뭇거리고 있으니 호객꾼이 와 물어보더니 그를 따라간다. 역시 자기들 배로 데리고 가 이용하란다. 다시 화를 내자 그 옆으로 데리고 가는데,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정박된 것 같은 배들만 놓여 있다. 뭍으로 올려진 배들의 표면은 벌써 바다의 추억을 다 잊어버린 듯 낡아 있다.

 

영수네도, 철수네도, 다 어디로 갔을까
질긴 바람 속에
한평생 뱃전에 붙어 생계를 꾸리더니
낡아가는 간판처럼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이 바닷가를 떠났다

더러는 방파제에서 그물이나 꿰매며
저무는 생을 보내고 있다

“세월 속에 쓸모 있는 건 하나도 없어”

하릴없이 해풍에 날려 보냈던 말이
오늘 더욱 아릿하게 폐부로 들어 온다

파도는 온종일 몰려와
방파제를 쳐
울덕증이 나게 하고
잠깐 아릿하게 땅멀미를 하는데,

파랑, 노랑, 녹색의 깃발 속에 바다로 나가,
뭍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삭아버린 달비 몇 가닥만 남아, 아득하다

은물결로 뱃전에 부서지던 젊은 날들
오늘도 해풍 속에
갯내음으로 섞여 오는데
지나온 바다는 잔잔하다
그들의 生만큼이나 저물어,
놀 속에서 산란거린다

- 폐선, 윤재훈

(갓바섬 항구의 풍경. 촬영=윤재훈)
(갓바섬 항구의 풍경. 촬영=윤재훈)

 

도대체 어디에서 하롱베이로 나가는 표를 끊은 곳이냐고 청년에게 물어보니 이제 모른다고 한다. 아예 데려다주지 않을 양 천천히 휴대폰 보면서 기름을 넣으러 간다. 다시 빨리 가자고 화를 내자 그 옆으로 데리고 가는데 이번에는 진짜 같다.

두 번의 거리를 흥정한 데로 2만 동을 주며 화를 내자, 10만 동을 달란다. 그럴 수는 없다고 다시 하롱시로 가자고 하다가, 너무 심하게 하면 외국인으로 손해일 것 같아 3만 동 준다고 하니, 안 한다고 한다. 적반하장이다. 5만 동을 준다고 해도 안 한다고 해 할 수 없이 다시 터미널로 돌아가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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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2023-01-18 14:15:51
순박한 모습이 아름답네요.
농사짓는 넉넉함과 웃음속에 삶의 희망도
보이네요.
아릉디운여행소식
항상 고맙습니다.

윤재훈 2023-01-17 16: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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