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110] 하롱베이로 스러지는 노을 5

윤재훈 기자
  • 입력 2023.01.30 13:29
  • 수정 2023.03.17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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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한 마리 용으로 이 바다에 내려와
하나씩의 영토를 만들어
수만 년 바람의 길을 따라
정수리부터 빗질을 하고 있다

저마다 모여서 화백회의라도 하는지
그들의 얼굴이 푸르다

- 하롱(下龍)에 빠지다

(하롱베이로 떠나는 배들. 촬영=윤재훈)
(하롱베이로 떠나는 배들.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모두투어 간판이 큼지막하게 산 쪽에 붙어있다. 바이차우 보트 터미널이다. 다 왔다고 하면서 이번에는 15만 동을 달라고 한다. 할 수 없이 10만 동을 주자 더 달라고 한다. 그가 하는 폼이 너무 심한지 옆에 있던 현지인들이 그것 받으면 되겠다고 하자, 그때사 포기한다.

관광객을 아예 다른 곳으로 데리고 다니고 청년은 상당히 계획적으로 하고 다니는 것 같다. 그렇게 관광객들에게 싫은 소리 들어가면서 그 돈들을 등치다시피 해서 뭘 할까? 그렇게 번 돈들이 과연 자신과 가족을 편안하게 해줄까?

하롱베이는 너무나 많은 관광객이 몰려오는 곳이다. 혹시나 이곳을 홀로 가는 배낭여행자들이라면, 반드시 코스와 그곳이 정말 하롱베이로 나가는 팀들을 짜서 가는 터미널인지, 확실하게 알아보고 가야 할 것이다.

(도선(渡船). 촬영=윤재훈)
(도선(渡船). 촬영=윤재훈 기자)

기분도 달랠 겸 맥주 2캔을 사고 다시 돈쳐우로 가는 도선(渡船)을 타는데, 5만 동이다. 그런데 그만 내리다 뻘에 미끄러져 팔목을 약간 찧었다. 도선이 쭉, 올라가야 하는데, 뻘 위에 내려준 것이다.

바닷가에 뻘이 묻어있는 곳은 아주 위험하다. 얼음 위와 똑같다. 만약 배를 타고 내리는 곳이나, 경사진 곳에 뻘이 올라와 있으면 발을 올리자마자 바다로 미끄러진다. 천천히 내리면 되었을 텐데, 후회가 밀려온다. 그래도 전중경수(轉重輕受)라고 생각한다, ‘이만하기 다행이다.’ 멘소래담을 바르고 계속 맛사지를 하는데, 약간 아픈 것이 쉬, 가시지는 않을 것 같다.

(눈 시린 바다 풍경. 촬영=윤재훈)
(하롱베이 눈 시린 바다 풍경. 촬영=윤재훈 기자)

드디어 한 배가 차자 작은 발동기선이 바다로 나간다. 서양인 여행자들이 칠팔 명 정도가 모인 것 같다. 바닷속에서 불쑥, 솟아오른 것 같은 섬을 지나면 또 섬이 솟아있고, 또 솟아있고 마치 양파껍질이 벗겨지듯 계속해서 섬이 포개져 있다. 중국의 계림이나, 라오스의 방비엔 느낌도 같이 난다.

작은 발동기선을 타고 3, 40여 분 이상 달려도 계속해서 섬들은 나타나고, 점점이 포개진 섬 사이를 따라 하염없이 배는 나아간다. 조금 더 지나자 이번에는 란하베이라는 곳으로, 하롱베이와 비슷한 풍경이다. 편의상 두 개의 만을 나누어 놓은 것 같다.

잠깐 배가 서는가 싶더니 선장은 우리에게 수영을 하고 싶으면 하라고 한다. 서양인 청년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주섬주섬 옷을 벗는가 싶더니 배의 일 층 꼭대기에서 그대로 다이빙을 한다. 나도 바닷가에서 자란 동양인의 자존심이 있지, 코흘리개 때부터 다져온 사가락질<어릴 때 촉광(방파제)에 모여 아이들이 쓰던 일본 말> 솜씨로 멋지게 바다로 뛰어들었다.

(여객선들. 촬영=윤재훈)
(하롱베이 여객선들. 촬영=윤재훈 기자)

그 당시 여수항에는 배들이 참 많았다. 커다란 배들이 줄줄이 놓여있는 그 사이 초등학교 아이들은 홀딱, 벗고 고추만 달랑 손바닥으로 쥔 채, 그 조그만 배 사이로 겁도 없이 뛰어내렸다. 그 당시 우리는 그것을 좇치기라고 불렀다. 아이들은 두 손으로 고추만 꽉 잡고 오후 내내 커다란 기선(機船) 위에서 뛰어내렸다. 잘못하다 바로 옆에 있는 배 밑으로라도 들어가면 큰일 났을 텐데, 한 번도 그런 일이 없는 듯했다.

물은 따뜻했다. 한참 동안 우리는 아이들처럼 유쾌하게 유영을 했다. 건너편에 작은 섬이 있어 그곳까지 건너가 한 마리 인어처럼 앉아 노닐다 왔다. 수만 년 풍화를 받아온 섬들은 곳곳에 허옇게 이마가 벗겨졌다.

육지가 바다가 되고
바다가 육지가 될 때
겁도 없이 솟아올라
하나의 섬이 된 것들

저마다 한 마리 용으로 이 바다에 내려와
하나씩의 영토를 만들어
수만 년 바람의 길을 따라
정수리부터 빗질을 하고 있다

저마다 모여서 화백회의라도 하는지
그들의 얼굴이 푸르다

- 하롱(下龍)에 빠지다

(하롱베이로 지는 노을. 촬영=윤재훈)
(하롱베이로 지는 노을. 촬영=윤재훈 기자)

배는 우리가 탔던 곳이 아닌 섬에 끝쪽, 상당히 외진 곳에 닿았다. 일부러 다른 사람들 영업을 시켜주기 위해 관광객을 그런 곳에 내려주는 것이다. 세계에 많은 나라를 여행하면서 이렇게 외진 곳에 내려주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그곳에는 몇 사람이 서성거리고 있었고, 아주머니가 호텔 주인이라고 하면서 봉고차를 세워두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가난한 배낭여행자들이 많이 오는지 방값은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다. 8달러, 6달러라고 한다. 그 옆에는 약간 문이 열려있는 버스가 있는데, 기사는 안 보이고 웬일인지 가게 주인은 가지 않는 차라고 한다.

6, 7명의 서양인이 배에서 내리는가 싶더니 하나, 둘, 그들과 흥정해서 100,000동씩 주고 떠난다. 나만 홀로 남아있는데, 보기에 안됐는지 그렇지 않으면 그것도 정상가격인지 50,000동에 타라고 한다. 3, 40여 분 달려간 차는 아니나 다를까, 아까 그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호텔 앞에 선다. 먼저 갔던 서양인들은 보이지 않고 8달러 방뿐이 없다고 한다. 6달러 방을 물어보니 옥탑방으로 데리고 가는데 앞에 배낭을 놓을 수 있는 공간도 있고, 난간에 서면 하롱베이가 한눈에 들어와 아주 명당 방인 듯하다.

(곳곳에 공사가 한창이다. 촬영=윤재훈)
(하롱베이 곳곳에 공사가 한창이다. 촬영=윤재훈 기자)

이제 이 외진 섬도 작은 콘크리트 통을 돌리며, 아스팔트 포장이 한참이다.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포크레인은, ‘made in Korea’인 대우중공업이다. 다음번에 오면 커다란 나무들 길게 뻗어 소실점을 이루는, 이런 신작로들이 다 사라지고 없을 것 같다. 

특히나 베트남의 북쪽 하노이 인근은 남쪽의 호치민(사이공)에 비해 전통적인 모습들이 많이 남아있다. 들판에 나가면 그 옛날 우리네 시골처럼 ‘잎으로 만든 모자’인 ‘논라’를 쓰고, 종일 한 마리 해오라기처럼 들판에 엎드려 있는 농부의 모습은, 영락없이 옛 시절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모습이다. 

여기에 이 지역의 멋진 산세처럼 아오자이를 입고 하늘, 하늘, 걸어가는 처녀의 곡선은, 까슬거리는 잠자리 날개처럼 쉬, 잊혀지지 않는다. 어쩌면 이 푸근한 정취들이 다음번에 오면 영영, 볼 수 없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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