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시니어] 암환자의 억울한 삶 ‘다시시작’으로 토해내다...‘안연원’ 사회적협동조합 다시시작 이사장

김남기 기자
  • 입력 2023.02.06 17:05
  • 수정 2023.02.16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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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가슴을 잃다’
가슴을 잃은 슬픔은 여자로서 상징보다. 소중한 자식을 키워 낸 엄마의 가슴이 사라졌다는 것에 유방암 후유증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억울했다. 열심히 돈 벌고 가족 일구고. 또 사회에 이바지하고, 열심히 살았는데, 억울함이 회수가 안 됐다.
너무 억울해서 맨 날 앉아서 울고, 항암치료 과정에서 신체적인 모든 기능도 떨어지고, 아프고 먹지도 못하고, 아기 가졌을 때 입덧은 입덧도 아니었다.
삶의 질이 떨어지면서 살아 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나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다. 주변 사람도 멀리하고, 신체적 변화가 자존감을 상실시켰다.

- 안연원 이사장

안연원 이사장. 촬영=김남기 기자

암경험 24년 차 '안연원'

[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안연원 이사장은 밀레니엄을 앞둔 1999년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왼쪽 유방을 절제하고, 오른쪽 유방도 전이가 돼서 수술하고, 흉추로도 전이가 됐다. 안 이사장은 58년 개띠로 ‘오팔세대’이다. 베이비부머 세대이며, 최빈국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도약시킨 세대이다. 안 이사장은 암 투병 전까지 아침에 9시 출근해서 7시까지 일하고, 휴가도 없이 열심히 살아간 세대이다.

나이 42살에 암 투병이 시작됐다. 가족의 헌신이 지금의 나를 이끌었다. 딸의 사춘기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른다. 엄마의 그늘이 딸아이를 일찍 철들게 했다. 지금도 늘 응원해 주는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이다.

- 안연원 이사장

‘다시시작’

사회적협동조합 다시시작의 조합원은 50대 이상으로 암 환자가 80%이다. 이사진과 직원도 암환자이다. 건강이 좋은 분도 있지만, 몸이 불편해 오전 오후로 나누거나 격일로 근무한다.

사회적협동조합 ‘다시시작’은 국립암센터 유방암 환우회에서 출발한다. 안연원 이사장이 유방암 환우회 모임 회장직에 몸담고 일을 때, 국립암센터와 고양시에서 사회적협동조합 설립을 권유받았다. 암환자를 위한 치유와 사회공헌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암 환우회에 임원 다섯 명이 힘을 합쳐 사회적협동조합 ‘다시시작’을 2019년 만들게 됐다. 유방암을 이겨낸 환우들이 고양시, 국립암센터의 지원으로 설립한 국내 제1호 사회적협동조합이다.

사회적협동조합 다시시작 '천연비누'

‘다시시작’의 첫 사업은 천연수제비누를 제조 판매하여 수익금으로 암투병 후 경력 단절된 환우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사회복귀를 지원하는 것이다. 첫 수익모델로 천연비누를 선택한 이유는 바로 암환자에 건강을 위해서다.

암 환자는 항암치료 과정에서 피부 트러블과 탈모로 고생한다. 머리카락이 없어도 두피를 씻기 위해 비누나 샴푸를 사용한다. 투병과정에서 전신에 각질이 생기고 피부가 거칠어지고 윤기를 잃어간다. 암 환자는 보습이 좋은 비누가 꼭 필요하다.
그래서 ‘다시시작’의 첫 삽은 부드러운 세정과 보습도 되고,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자연 친화적이고 건강한 ​수제비누를 만들었다.

- 안연원 이사장

천연비누의 유통은 암 환자와 암 관련기관, 지자체, 보건복지부, 교육기관 등에서 구입한다. 일반 소비자 판매는 주로 인터넷 판매를 한다. 친환경 비누라는 입소문을 타고, 주문 판매도 한다.

천연비누공장의 사장과 부부도 암환자이다. 부부는 암환자 맞춤 천연비누 개발과 생산을 위해 그 누구보다 열정과 애정을 갖고 혼신을 다해 만들었다.

다시시작 경기민요 합창단 '암예방의날' 공연. 사진=다시시작 제공 

경기민요 '치유의 힘'을 얻다

암 투병 중 안 이사장은 주변에서 ‘누가 나를 좀 즐겁게 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즐겁게 해주었나‘하는 반문을 하고, 레크리에이션을 배워서 주변을 좀 즐겁게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래서 레크리에이션, 가요교실에서 노래도 배웠지만, 적성이 맞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역사회에서 봉사하면서 즐거움을 느꼈다. 무료급식소에서 어르신에게 배식하면서 마음은 즐거운데 몸이 아팠다. 체력이 봉사의 즐거움을 뒷받침하지 못했다.

연극에도 참여했다. 암을 소재로 한 연극에서 아픔을 이겨내는 암 환자의 극복기를 담아냈다. 하지만 무대가 막을 내리면, 연극의 즐거움도 지속적이지 못했다.

경기민요를 처음 만났을 때, 그날 처음 수업하면서부터 눈물이 났다.
가슴 한켠에 쌓인 한들이 소리로 토해져 나왔다.
혼자만 할 것이 아니라 암 환우와 함께하면 더 신명 나게 경기민요를 부를 것 같았다.
경기민요는 장소나 도구에 구애됨이 없다.
젓가락 장단에 흥만 있으면, 부르는 이도 보는 이도 기꺼이 어떤 아픔도 온데간데없고, 즐거움만 남는다.

- 안연원 이사장

안 이사장은 아버지 생신에 경기민요 한 자락을 올렸다. 가슴 한켠에 켜켜이 쌓인 아픔의 굴레가 경기민요에 함께 사라져 버렸다.

다시시작 경기민요 합창단 '소아암 환자' 위문공연. 사진=다시시작 제공 

경기민요 합창단 ‘다시시작’

경기민요 합창단은 안 이사장과 함께 2017년부터 암 환우의 모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경기민요 실력도 나날이 늘어 암 생존자 환우회 축하공연, 암예방의날 축하공연, 국립암센터 소아암치료종결잔치 축하공연, 요양원 위로 공연 등 다양한 곳에서 경기민요 합창단 공연활동도 이어졌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코로나가 발목을 잡았다. 그동안 공들인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 여러 곳에서 지원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던 차에 날벼락이었다.

그리고 작년 경기민요 활동은 다시 시작됐다. 가수가 자신의 노랫말처럼 인생이 흘러간다는 속설처럼 ‘다시시작’협동조합의 경기민요 합창단 활동도 작년부터 다시 시작하게 됐다.

다시시작 경기민요 ’희망망소리꾼‘. 사진=다시시작 제공 

경기민요 합창단은 사회적협동조합 온랩의 암인식개선 ‘암유어팬(I'm Your Fan)'사업에 함께 참여하게 됐다. 이 사업은 암생존자의 사회복귀와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경기민요 ’희망망소리꾼‘으로 다시 태어났다.

암생존자 경기민요 합창단은 13명으로 작년 말까지 매주 ‘다시시작’ 사무실에서 모여 이경자 무형문화재 경기민요 이수자로부터 경기민요를 전수 받았다. 처음 경기민요를 접하는 암 환우도 있고, 코로나 물러서거라 하며, 예전 참여자도 함께했다.

올해 암생존자 경기민요동아리 ‘희망소리꾼’ 활동이 재개된다. 암예방의 날, 암환우 희망걷기대회, 국립암센터유방암 환우회, 리본마켓 등에 공연이 예정돼 있다.

사회공헌활동 암환우 ‘사랑방’

‘다시시작’은 설립 이후 짧은 기간 동안 암환자를 위한 ‘사랑방’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사랑방’은 같은 아픔이 있는 암환자가 모여 정보교환과 소통의 터전으로 자리 잡았다.

'사랑방' 프로그램 활동 사진. 사진=다시시작 제공

주요 사업을 살펴보면, ▲비누공방은 국립암센터 공공의료사업팀 지원으로 암생존자 사회복귀지원 프로그램 ▲퀼트공방은 국립암센터 공공의료사업팀후원으로 암생존자 사회복귀지원 프로그램 ▲멀티밤공방은 암생존자들의 원데이 클래스 멀티밤 만들기 공방 ▲다시시작 텃밭은 암생존자들의 먹거리를 유기농 재배해 다시시작 암환자들에게 나눔 ▲이겨냈다~! 별별암 은 고양시 일산동구보건소와 협업으로 코로나19극복을 위한 원예, 운동, 암생존자의 구강건강 강좌 ▲천체관찰은 ‘다시시작’과 윤슬(암환자기업)의 협업으로 암환자와 가족과 고양지역주민들을 위해 개기월식 이해와 관찰프로그램 ▲국립암센터의 ‘리본마켓’에 암환자기업으로 참여해 마켓 운영 등의 활동을 했다.

'사랑방' 프로그램 활동 사진. 사진=다시시작 제공

‘사랑방’ 활동은 ‘다시시작’의 수익금으로만 운영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부지원사업이나 단체나 기업의 후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사회적협동조합 ‘다시시작’의 꿈은 암환자를 위한 힐링센타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는 천연비누 사업으로 명맥을 이어가지만, 암환자의 사회복귀와 힐링프로그램의 취지를 생각할 때 많은 지원과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인생살이 억울해하는 엄마에게,
‘들어주고, 공감해 주세요’
'엄마 존경하고, 사랑해요’라고 말해 주세요.
엄마는 그 한마디로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아가실 거예요

- 안연원 이사장 (경도성 인지장애 가진 기자의 어머니에 대한 얘기 중)

안연원 이사장. 촬영=김남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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