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 2] 신중년 남자, 요리를 배워야 하나?

오은주 기자
  • 입력 2019.04.12 10:07
  • 수정 2019.05.07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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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대기업에서 50대 후반의 나이에 얼마 전 퇴직한 윤이사님은 요즘도 ‘윤이사님’이란 직함으로 불리긴 하지만, 실은 3개월째 백수생활을 하고 있다. 남들처럼 편의점이나 치킨집을 창업할 엄두는 내지 못하고 집에서 읽고 싶었던 책이나 실컷 읽으며 이른바 ‘욜로 라이프’로 유유자적 지내고 있다. 그런 여유는 아직 돈을 벌어오는 부인이 있는 덕분이다. 고등학교 사회교사인 아내의 정년은 아직 멀어서 여전히 학교로 출근하고, 윤이사님은 어색하고 뻘쭘하게 현관에서 잘 다녀오라고 아내에게 인사를 한다. 앞치마만 안 둘렀을 뿐 3개월차 새댁이 된 것 같았다.

대학교 졸업 후 공기업에 다니는 큰딸과 아직 대학생인 아들도 모두 아침이면 집을 빠져 나간다. 아침밥 먹은 식탁과 넘쳐나는 빨래를 남겨 놓은 채로 말이다. 집에 남아 있는 자신이 드센 요즘 학생들한테 시달려서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아내를 생각하면 청소는 당연하고 저녁밥을 해 놓아야 한다고 생각은 했다.

그런데 윤이사님 역시 생각과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전형적인 한국의 중년남자일 뿐이었다. 널브러진 집안 풍경이 싫으면서도 도무지 청소기조차 돌리기가 싫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집안을 나의 새로운 일터라고 생각하자 청소하는데 거부감이 줄어들고 깨끗해진 집안에서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는 게 슬며시 좋아지기도 했다.

그 다음 과제가 밥하는 일인데, 이게 가장 난코스였다. 만들 줄 아는 음식이 도통 없었다. 일찍이 부인과 사별한 친한 선배 형님은 60대 후반이 되자 “집에서 담근 진짜 잘 익은 맛있는 총각김치가 먹고 싶다”고 말하며 그것을 황혼재혼의 이유로 들었다. 총각김치로 대변하는 먹거리에 대한 절실한 욕구가 외로움 해소나 성적인 욕구를 앞서고 있는 것 같았다.

고민하던 윤이사님은 그 난코스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중년남성을 위한 요리교실을 찾았다. 어차피 죽을 때까지 먹어야 할 밥이라면 이제 내 손으로 해서 먹어보자고 결심하니 배울 수 있는 데는 많았다. 요리교실 이름부터가 ‘남성 요리교실’, ‘50플러스 요리교실’ 등으로 남성이 대상이었다. ‘50플러스 남성 요리교실 ’에서 윤이사님이 배운 첫 번째 완성 요리는 불고기와 미역국이었는데 그 두 가지 음식을 할 줄 안다는 것만으로도 천군만마를 얻은 듯 든든했다.

윤이사님은 다음 달 부인의 생일에 불고기와 미역국 시금치나물을 차려내 놓았다. 가족들은 “우리 아빠 요섹남 되셨네”라며 반색을 했다. 어깨에 힘만 빼면 새롭고 즐거운 일이 많이 기다리고 있다고 윤이사님은 생각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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