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기의 밑줄긋기30] 나는 도서관 옆집에 산다

박명기 기자
  • 입력 2019.04.15 10:25
  • 수정 2019.04.2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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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자를 왕처럼 모시지 않겠습니다.”

-느티나무도서관 서비스 헌장

나는 도서관 옆집에 산다 뒤표지 중에서. 사진=박명기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있는 느티나무도서관에는 특별한 서비스 헌장이 있다. ‘과한 친절’이라고 생각했던 게 ‘환대’로 느껴지는 곳이다. 한결같이 엄마와 아이를 미소로 정말 환대해주는 곳이다.

시시때때 열리는 작가들의 낭독회에는 아이들 어른, 남녀노소 귀를 쫑긋 세운다. 도서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청년은 훌쩍 자라나 낭독회에서 기타를 친다.

도서관 서가에는 쉽게 밀 수 있는 바퀴가 달려있다. 도서관 뜰 앞에서는 계절에 맞는 ‘화요일 뜰 버스킹’이 이뤄진다. 일곱 살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도서관을 이용하다 어엿한 이 도서관 사서가 되었다.

느티나무도서관 서비스헌장. 사진=박명기

윤예솔의 책 <나는 도서관 옆집에 산다>는 느티나무도서관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헌사다. 그리고 꼼꼼한 관찰기다. 2014년 가을부터 2019년까지 자칭 ‘도서관 상습연체러’(책 반납을 연체하는 이)로 살았던 5년차의 솔직한 기록이다.

■ “도서관은 우연한 만남과 우연한 발견을 주는 곳”

글쓴이에 따르면 이 도서관은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공간, 내 아이를 같이 키울 수 있는 공간”이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세렌디피티(serendipity)>의 장소다. 뜻밖의 발견(을 하는 능력), 의도하지 않은 발견, 운 좋게 발견이 출몰한다.

우연한 만남과 우연한 발견을 만들어주는 이는 바로 박영숙 느티나무도서관 관장이다. 그는 20년 내내 도서관에서 항상 햇살처럼 웃었다. 직접 쓴 책 제목 <꿈꿀 권리>처럼 그곳에서 “누구나 꿈꿀 권리를 응원하고자 도서관을 운영한다”.

도서관 1층 로비 천장에 달린 물음표 쿠션. 사진=박명기

이 책을 쓴 도서관 옆집에 사는 필자는 관장의 철학에 대해 이렇게 전한다.

“이용자가 직접 빌린 책을 꽂으면서, 그리고 1층 로비에 마련된 컬렉션을 자주 지나치면서 이용자들이 우연한 만남을 통해 기쁨을 느끼기를 바란다.”

이 도서관은 경계를 허문다. 3살 아이도 그림책만 읽는 건 아니다. 성인 책을 가져와 읽어달라고 한다. 또한 책 연장도 전화로 가능하다. ‘도서관 1층 로비 천장에 달린 물음표 쿠션’이 걸려 있다.

느티나무도서관 전경. 사진=박명기

도서관 존재 이유는 분명하다. “사람들의 삶에 질문을 던지게 만들자.” ‘꿈꿀 권리’와 ‘뜻밖의 발견’을 위해 만들어졌다. 비록 시골이나 소도시 촌락에서라도 아시아 그리고 지구촌, 아니 우주까지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다. 꿈의 씨앗을 뿌려주는 곳이 도서관이기 때문이다. 문득 어디서 읽었던 이런 글귀가 떠올랐다.

“섬에서 태어난 나에게 <사회과 부도>는 어릴 적부터 세상을 상상해준 최고의 책이다.”

-강방천 자산운용사 에셋플러스 회장

■ 아이들이 쏟아져 들어올 때 별들이 쏟아져 온다

느티나무도서관은 한국에 드문 사립민간공공도서관이다. 개인이 재단을 설립하여 공공으로 운영한다.

어른들은 서로 음식을 나누어가며 존 홀트의 책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 한나 아렌트-지그문트 바우만& 스타니스와프 오비레크-앙드로 말로의 세 권의 같은 제목의 <인간의 조건>을 낭독회를 한다. 그리고 격의 없이 의견을 나눈다.

박영숙 느티나무도서관장. 사진=박명기

언제나 ‘환대’를 준비 중인 사서들은 이용자들에게 말을 건다. 사회적 이슈 등 관심사를 컬렉션으로 만들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전시해놓는다. 소설 <변신>의 작가인 프란츠 카프카는 이렇게 말했다.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느티나무도서관이 놀이 공간이라는 것이다. 글쓴이는 “도서관이 꼭 책 읽으려고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놀고 싶은 공간인 것,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된다는 것이 참 좋다”고 동네 이웃 이용자들의 인터뷰 형식으로 전한다.

책 속 인터뷰 대상자인 동네 사용자 글라라는 “지하 1층. 아이들이 쏟아져 들어올 때 별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아 눈부시다”고 말했다. 그랬다. 서가와 복도 등에서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은 무질서 같아 보이지만 별처럼 홀로 빛났다. 총총했다.

책 <나는 도서관 옆집에 산다>. 사진=박명기

마음이 열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느티나무 도서관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작은 마을이었다. 어떤 이에게는 마치 친정같이 느껴진다. 공원이 보이는 2층 창문 앞 소파에 사시사철 변하는 창밖 풍경과 하나가 된다.

■ 도서관 천장에 걸려있는 물음표...여기가 ‘천국의 도서관’

다시 한 번 도서관 1층 로비 천장에 달린 물음표 쿠션을 보았다. 왁자지껄 웃음이 터지는 낭독회, 집보다 편한 모습으로 원목으로 만들어진 서가와 책상에서 탐독하는 어린이들, 질문하는 아이들의 표정, 같이 뒹구는 부모들...‘천국의 도서관’을 살짝 엿보는 느낌이었다.

느티나무도서관 실내 모습. 사진=박명기

“왜 이들은 질문하지 않는 것일까? 왜 이들에게는 호기심이 없을까? 공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면 질문할 수 없다. 질문은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내가 아는 것과 더 알고 싶은 것 사이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나오는 것이 질문이다. 호기심도 그렇다. 평생 책 한 권 읽지 않고, 신문 한 장 보지 않는 사람에게 호기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 한근태의 <고수의 질문법> 중에서

봄을 기다리는 어느 토요일 오후, 느티나무도서관에서는 작가와 함께하는 낭독회가 열리고 있었다. 도서관 키즈로 자랐던 청년은 낭독회 중간에 기타를 쳐주었다. 그 중간 중간 전국의 각지에서 찾아온 도서관탐방팀들이 들이닥쳤다.

우연히 찾아간 도서관에서 ‘햇살 같은’ 박영숙-이상규 관장 부부는 나에게 책 <나는 도서관 옆집에 산다>를 선물해주었다.

박영숙 느티나무도서관장과 이상규 부부. 사진=박명기

정성스러운 책이었다. 이 책 필자는 이렇게 말한다. “느티나무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빌리고 공부하는 것을 넘어선 일들이 벌어지는 공간이다(…)사람에 대한 존중이 있는 공간이다.” 지난 겨울 바다와 강이 있는 곳으로 떠난 필자 윤예슬의 추억은 이 봄 만개한 벚꽃처럼 찬란하다.

아, 도서관 옆집에 사는 사람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다시 느티나무도서관을 꼭 찾아가겠다고 다짐하는 봄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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